*이 글에는 영화 '몬태나(Hostiles)'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영화 'Hostiles(2017)'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892년은 이제 인디언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이다. 이미 1890년 12월에 운디드니 학살(Wounded Knee Massacre)로 250여명의 라코타족이 죽었고, 남은 부족민은 황량한 보호구역에 유폐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블로커 대위(크리스찬 베일 분)는 오랫동안 인디언 전쟁의 제일선에 있었던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서로 대립하는 집단이 같은 방식으로 휘두르는 폭력의 양상을 마주한다. 로잘리의 가족을 습격한 코만치 인디언은 활과 총으로 죽인 것도 모자라 칼로 머리가죽을 벗긴다. 인디언 소탕 작전에 나선 블로커는 여자와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가혹하게 잡아들이고 그들을 짐승 취급한다. 인디언과 백인들 사이에는 오직 적의(hostile)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 질기고 오랜, 피비린내 나는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영화는 처참한 전쟁의 뒤안길을 응시한다. 로잘리의 가족을 도륙한 코만치 인디언들처럼 블로커가 속한 미 연방군 또한 도살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블로커에게 오직 처단해야할 적으로 상정된 인디언들은 죽거나 보호구역으로 보내져 더이상 찾기도 어렵다. 오랜 세월을 군에 몸담아온 블로커가 퇴역을 결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 때 그의 부대원들에게 가차없는 죽음을 안겼던 추장 옐로우 호크도 늙고 병들었다. 그럼에도 블로커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인디언들에 대한 적의가 들끓는다.

  추장 옐로우 호크를 부족의 땅 몬태나에 데려다 주는 여정은 블로커에게는 어려운 시험과도 같다. 마음으로는 추장과 일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지만, 상부의 명령을 어기면 군법 회의에 회부되고 퇴역 연금도 없다. 인디언들에게 가족을 잃은 로잘리가 갖게 된 적의는 어떤 면에서는 블로커의 내면과 맞닿아 있다. 오랜 세월 전장에서 보낸 그였지만 부대원들의 죽음만큼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다. 옐로우 호크에게 블로커가 갖게 된 처절한 증오는 바로 거기에서 나왔다. 로잘리의 고통에 블로커가 연민과 공감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감독 Scott Cooper는 그 지점에서 평화와 공존을 말하고 싶어한다. 블로커 일행은 로잘리 가족을 죽였던 코만치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고, 어렵사리 그들을 물리친다. 거기에는 추장 일가의 도움이 있었다. 여정이 거듭될수록 블로커와 추장 사이에는 이해와 연대의 감정이 생겨난다. 마침내 블로커가 몬태나에 이르렀을 때, 그는 추장의 시신을 기꺼이 부족의 땅에 매장해주려고 한다. 블로커는 그 땅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매장을 허락하지 않은 백인 목장주와 목숨을 건 혈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쓰고 나면 영화가 꽤나 감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그럴듯한 수정주의 웨스턴에는 헛점이 있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오류가 눈에 띈다. 일행이 몬태나로 향하는 여정에서 로잘리와 추장의 딸, 그리고 며느리는 모피 상인들에게 납치당해 몹쓸 일을 당한다. 미국의 모피무역은 1800년대 초반에 매우 흥했다가 1830년대에 끝물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1890년대의 서부에 등장하는 모피 무역상들은 정말이지 뜬금없다.

  거기에 덧붙여, 'Hostiles'는 역사적 과오를 피해자-가해자 구도의 개인적 차원으로 바라보는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다. 블로커와 인디언 전쟁을 함께 해온 동료 메츠는 살상의 기억으로 내면이 망가진 인물이다. 그는 추장 옐로우 호크에게 참회의 뜻을 전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미국 정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졌던 인디언 절멸의 책임은 그렇게 참전 군인의 윤리적 고통과 죽음으로 해소된다. 원주민 일가족을 잔혹하게 학살한 블로커의 예전 부대원 윌스의 죽음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로잘리는 추장 일가의 유일한 생존자인 어린 리틀 베어와 함께 떠난다.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서는 블로커는 발길을 돌이켜 기차에 오른다. 인디언 부족을 죽이는 데에 앞장섰던 연방군 블로커, 가족을 인디언에게 모두 잃은 로잘리, 백인들에 의해 부모가 죽은 리틀 베어. 피와 고통의 기억도 함께 실은 기차는 서서히 멀어진다. 어쩌면 그 기차가 향하는 곳은 목적지 시카고가 아닌 그들이 살아갈 새로운 20세기인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 장면은 해소되지 않은 적의가 미국의 현대사에 선명하게 스며듦을 보여주는 묵시적 예언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미국의 서부 개척사를 다룬 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pbs-8-ken-burns-west1996-8.html


***수정주의 웨스턴 Hombre(1967)와 Valdez Is Coming(1971)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1/hombre1967-valdez-is-coming19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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