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The Green Knight(2021)'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1. 이상한 녹색과 죽음의 붉은색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를 그린 그림에 그런 문구가 써져 있다. 그림의 제목은 '이미지의 배신(The Treachery of Images)', 그림을 그린 이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이다. 영화 'The Green Knight(2021)'를 보고서 나는 그 그림을 떠올렸다. 이 영화의 원작은 14세기 Gawain Poet 라는 별칭이 붙은 무명 작가의 장시 '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이다. David Lowery는 그 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해석이라는 것이 정말로 기괴하다. 원작의 시를 읽은 독자라면 로워리의 이 영화에 'The Green Knight'란 제목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를 알게 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사창가에서 눈을 뜬 한 남자와 만나게 된다.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그는 삼촌이 주관하는 성탄 만찬에 참여한다. 그런데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Green Knight'라고 불리는 거대한 장신의 남자는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의 목을 베는 기사에게 녹색의 도끼가 선물로 주어지며, 그 기사는 1년 후에 같은 방식으로 참수의 일격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탁의 기사들 모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가운데 가웨인이 앞으로 나온다. 그는 그린 나이트의 목을 단칼에 벤다. 놀랍게도 녹색의 기사는 잘린 자신의 목을 들고서 웃

으며 성을 빠져나간다.

  이 초반부의 시퀀스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 왜 'Green Knight'는 녹색이 아닌가? 시인이 묘사한 기사의 모습은 피부색과 의상을 비롯해 말 그대로 녹색 그 자체이다.

  All of green were they made, both garments and man:
  a coat tight and close that clung to his sides;

  (원문 출처: J.R.R. Tolkien 번역, HarperCollins 출판사)

  남자와 그의 옷은 온통 녹색이었습니다.
  그는 몸을 꽉 조이는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 그린 나이트의 색깔은 매우 우중충한 회색에 가깝다. 아주 너그럽게 봐주어서 어두운 녹색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감독 데이비드 로워리는 계속해서 원작의 싯귀에서 이탈해 나간다. 가웨인은 그린 나이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 약속을 지키는 일은 사실 '죽으러 가는 길'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서 걸어나갈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의 그린 나이트와는 달리 가웨인은 필멸의 인간일 뿐이다.

  가웨인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과 두려움은 그린 나이트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점점 커져간다. 숲에서 그는 썩어져 해골이 되어버린 시신의 모습을 환영(幻影)으로 마주한다. 운 나쁘게 산적들에게 걸려서는 가진 것을 빼앗기고 겨우 목숨을 건진다. 가는 도중에 버려진 오두막에서는 Winifred란 젊은 여자를 만나는데, 알고 보니 산 사람이 아니라 목이 잘린 유령이다. 유령은 가웨인에게 샘에 던져진 자신의 머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이 여정의 모든 이야기는 원작시에는 없는, 데이비드 로워리의 상상력에서 나왔다.

  성녀 위니프레드(
Saint Winifred)는 7세기 경에 순교한 웨일스의 성인이다. 수도자가 되겠다는 성녀의 결심에 분노한 구혼자는 그 목을 베었다. 위니프레드 성녀의 이야기는 민간에서 전승되다가 12세기에 이르면 영국에 널리 퍼진다. 전설에서 성녀는 은총에 의해 잘린 목이 다시 붙으면서 소생했다. 웨일스의 이 성인전에 '참수' 테마가 있다는 점이 로워리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에서 위니프레드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샘에 뛰어든 가웨인은 물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을 본다. 그 '붉은색'은 예고된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길한 암시이다. 그리고 그는 '해골'을 건져서 나온다.



2. 기사(士) 가웨인과 필부() 가웨인 


  원작에서 가웨인은 길을 떠나기 전에 성안의 여자들이 7년 동안 짠, 정성이 담긴 옷 위에 빛나는 갑옷을 입는다. 그 옷의 색깔은 '붉은색'이다. 시인은 가웨인의 출정길에 생명의 '붉은색'을 입힌다. 그와는 달리 로워리는 가웨인을 죽음의 핏물에 담근다. 이쯤 되면 감독의 데이비드 로워리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그는 14세기 '그린 나이트'의 이야기를 철저히 비틀고, 거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도배하기로 결심한다. 원작에서 묘사된 가웨인은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에 대해 근심하지만 겁쟁이는 아니다. 그런데 로워리는 가웨인을 품위있는 '기사'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애욕을 지닌 인간으로 묘사한다. 가웨인은 산적에게 목숨을 애원하며, 위니프레드에게는 잘린 목을 찾아주는 댓가에 대해 묻는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영화 속의 가웨인은 자신을 환대한 영주의 부인과 관계를 맺는다. 원작에서 가웨인은 영주 부인으로부터 세 번의 유혹을 받는다. 그는 두 번은 입맞춤으로, 마지막에는 '녹색 허리띠'를 받는 것으로 기사도를 어렵게 지켜낸다. 영주는 가웨인이 성 안에서 얻은 것과 자신이 사냥에서 얻은 것을 교환하기로 내기를 한다. 가웨인은 두 번의 입맞춤은 돌려주지만, 목숨을 지켜준다는 녹색 허리띠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원작에서 가웨인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부분은 바로 그 장면이다. 시인은 기사도와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웨인의 내적 투쟁을 우아하고 격조있게 묘사한다.

  로워리에게 시인이 그려낸 가웨인의 내적 여정은 진정성 없는 가식으로 여겨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원작의 가웨인은 그린 나이트의 도끼 앞에서 의연하지만, 영화의 가웨인은 겁을 먹고 도망친다. 그는 성으로 돌아와서 아서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는다. 왕녀와의 결혼, 전투에서의 패배, 아들의 죽음... 그런데 그 모든 것은 기사의 거대한 덴마크 도끼(Dane Axe)에 목을 내놓고 기다리는 동안, 가웨인의 눈 앞에 펼쳐진 환상이었다. 가웨인은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고, 기사는 목을 치겠다고 응답한다.

  정말로 가웨인의 목은 잘렸을까? 영화의 이 모호하고 열린 결말은 원작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위치한다. 시인은 녹색의 기사가 가웨인의 목에 약간의 상처를 남기고 목숨을 돌려주도록 만들었다. 그린 나이트는 아서왕의 이복 여동생 모건 르 페이가 가웨인의 기사도를 시험해 보기 위해 마법으로 그 모든 것을 꾸몄음을 알려준다. 이 중세의 기사도 로맨스는 문학의 틀에서 이루어진 이교도 신앙의 기독교적 수용을 보여준다. 굳은 신앙심과 기사도 정신을 지닌 가웨인의 선함은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보답을 받는다. 그와는 달리 로워리는 가웨인에게 직접적인 죽음을 선사한다. 영화가 참수의 일격을 예고하는 그린 나이트의 '말'에서 끝나기는 했어도, 결국 가웨인이 죽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3. 진짜 그린 나이트는 어디에

  영화 'The Green Knight'에서 원작의 플롯, 상징적 의미, 인물들 사이의 관계, 그 모든 것은 뒤틀리고 바뀌었다. 그 점은 영화에서 가웨인을 그린 나이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여우'의 존재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영주는 떠나는 가웨인에게 입맞춤과 함께 살아있는 여우를 선물로 준다. 원작에서 영주가 사냥한 세 번의 사냥감 가운데 마지막이 '여우'였다. 로워리는 가웨인이 영주에게 해야할 입맞춤을 영주가 가웨인에게 하는 것으로, 그리고 죽은 여우는 살려서 가이드로 만들어 버린다(원작의 가이드는 사람이다). 그렇게 영화와 원작은 마치 거울의 이미지처럼 반대의 위치에 자리한다. 14세기 시인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린 이 영화를 원작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보는 것은 과연 타당할까?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14세기부터 전승된 장문의 영시는 그렇게 와닿지도 않는, 케케묵은 고전 문학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로워리는 원작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는 대신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린 나이트'를 그려냈다. 중요한 것은 원작의 의미를 잘 살려냈느냐일 것이다. 나는 데이비드 로워리의 시도가 그렇게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뇌하는 기사 가웨인의 다층적인 로맨스는 매우 인간적인 필부 가웨인의 허섭스러운 무용담이 되어버렸다.

  이제, 이 글의 처음에 언급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지 진짜 '파이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림에 쓰인 문구는 타당하다. 영화 'The Green Knight'는 '그린 나이트가 등장하는 영화'일 뿐이다. 진짜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는 여전히 활자로 된 텍스트 속에서 존재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그린 나이트'가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다고 느낀다면 데이비드 로워리의 영화적 말발에 매혹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출처: variety.com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르네 마그리트 The Treachery of Images(1929)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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