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미족의 잊혀진 진실과 슬픔, Sami Blood(2016)

  사미족(The Sámi)은 스칸디나비아 북부 대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을 일컫는다. Amanda Kernell의 2016년작 'Sami Blood(스웨덴어 제목 Sameblod)'는 바로 그 사미족 소녀의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는 노년의 엘라 마리아가 여동생의 장례식을 위해 사미족 마을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의 환대에 친근감을 느끼고 머무르고 싶어하는 아들과는 달리 엘라 마리아는 내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다. 급기야 엘라 마리아는 근처 호텔에 머물겠다며 마을을 떠난다. 젊은이들로 가득찬 클럽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엘라 마리아는 화려한 불빛 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때는 1930년대, 스웨덴 북부 사미족 거주지에 사는 어린 자매 엘라 마리아와 은제나는 어머니 곁을 떠나야만 한다. 스웨덴 정부의 사미족 동화 정책에 따라 강제로 기숙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 그곳에는 자매와 같은 처지의 사미족 아이들이 모여있다. 외딴 산골에 위치한 학교에는 강압적인 여교사가 아이들을 혹독하게 훈육한다. 아이들은 사미족 언어로 말하면 회초리를 맞는다. 언니 엘라 마리아는 스웨덴어를 열심히 배우며 웁살라에 가는 꿈을 품는다. 그와는 달리 동생 은제나는 사미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긴다. 조금씩 멀어지는 언니와 동생. 과연 이 자매 앞에는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미족 동화 정책은 19세기에서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북부 유럽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 영화 속에서 스웨덴 정부 연구소 사람들은 아이들을 발가벗겨서 신체를 계측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 장면은 '동화 정책'이 인종주의와 우생학에 기반한 열등 민족 관리의 일환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교사는 웁살라의 학교에 가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엘라 마리아의 바람을 비웃는다. 이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 교사는 사미족의 머리는 좋지 않으며, 순록 목축이 사미족의 운명이라고 일러준다.

  학교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사미족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모욕적인 언사와 욕설을 퍼붓는다. 그 말에 항의하는 엘라 마리아는 청년들에게 붙잡혀 귀의 일부분이 잘리는 상처를 입는다. 그들은 엘라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작은 칼을 빼앗아서 그런 무도한 짓을 저지른다. 그 칼은 사미족이 소유의 표식으로 순록의 귀에 흔적을 남길 때 쓰는 도구이다. 그렇게 엘라 마리아의 귀에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는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국가가 사미족에게 저지른 학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는 스웨덴인이 되려는 엘라 마리아의 치열한 몸부림을 따라간다. 엘라 마리아는 학교에서 도망쳐 웁살라로 향한다. 스웨덴 청년과의 연애, 그곳 여학교에서의 생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가족을 찾기까지의 여정. 영화의 내러티브와 전반적인 만듦새가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Sami Blood'에는 잊혀진 진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는 여러 세대에 걸쳐 사미족 아이들이 언어와 전통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으며, 구조적인 차별 속에 살았음을 그 자체로 증명한다. 사미족의 정체성 대신 스웨덴인으로 살아온 엘라 마리아의 삶이 행복했었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언니는 사미족 전통 의상을 입고 관 속에 누워있는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용서해 달라'고 말할 뿐이다. 용서를 청해야하는 주체는 엘라 마리아가 아니라, 폭압적 인종 동화 정책을 편 국가 권력이라는 점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깨닫는다.   


2. 사회주의 쿠바 영화의 전형적 풍경, The Last Supper(1976)

  오늘 영화 글의 여정은 북부 유럽에서 이제 쿠바로 향한다. 바깥의 영화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나라를 영화로 만나는 여정이다. 이 영화의 감독 Tomás Gutiérrez Alea는 이탈리아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의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고국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과 맞물려 그의 영화 작업은 당연히 국가 주도의 영화 산업과 긴밀한 연관을 맺었다. 1959년, 쿠바 혁명 정부는 'Instituto Cubano del Arte e Industria Cinematográficos(ICAIC)'을 설립했다. ICAIC는 쿠바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총괄하는 단체로 이곳의 역사가 쿠바 영화사이기도 하다. 영화 'The Last Supper(La última cena, 1976)'는 ICAIC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어떤 영화가 정치적 선전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고 해서 미학적 성취와 배치(背馳)되지는 않는다. 나치 시절에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만들어낸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 1935)''올림피아(Olympia, 1938)'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영화 'The Last Supper'는 그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시종일관 거칠고 직설적이며, 무엇보다 매우 지루하다. 잘 모르는 사람과 밥을 먹게 되었는데, 거의 2시간 동안 설교조의 웅변을 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참으로 괴로울 것이다.

  1790년대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쿠바.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을 소유한 스페인 귀족 백작은 성삼일(聖三日,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이르는 성주간의 목 금 토요일)을 맞이해 특별한 행사를 기획한다. 바로 자신의 농장 노예 12명을 뽑아, 예수의 최후 만찬을 재현하고자 하는 것. 농장 감독 돈 마누엘은 백작의 명에 따라 무작위로 만찬에 초대받을 노예 12명을 뽑는다. 도망쳤다는 이유로 마누엘에 의해 귀가 잘린 반항적 노예 세바스찬도 만찬 식탁에 초대받는다. 예수의 성삼일 전례를 따라하려는 백작은 노예들의 발을 씻기고 입을 맞춘다. 백작은 온갖 음식들이 차려진 식탁 중앙에 자리잡고 좌우의 노예들을 둘러보며 설교를 시작한다. 노예들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동안, 세바스찬은 백작에게 침을 뱉는다. 늙은 노예는 자신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애원한다. 예수 흉내 내기에 심취한 백작은 그 모든 상황에서 관대함을 보여주는데...

  무려 48분에 이르는 백작과 노예들의 만찬 시퀀스는 관객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백작은 노예들에게 자신이 믿는 성서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그런데 백작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것이 성서의 본질적 가르침과는 동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더 많은 고난을 받을수록 천국에 가깝다는 말을, 백작은 노예들의 삶에 빗댄다. 죽도록 일하고 고통스러운 노예들의 삶이야말로 그리스도가 말하는 행복한 삶이라고 우겨댄다. 백작이 보여주는 종교적 위선과 기만적 행태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킨다.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는 스페인 식민 시대를 배경으로 오늘날의 착취적 자본주의와 종교의 허위의식을 맹공격한다. 영화는 만찬 식탁의 노예들로 대변되는 피지배 계층의 가난과 고통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성 금요일에 노예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백작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노예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결말은 수탈자인 백작의 잔혹함을 부각시킨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 영화가 말하는 날것 그대로의 선전 선동에 진력을 낼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빈곤과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쿠바 정부는 영화를 체제 유지를 위한 대중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도구로 인식했다. 과연 당시의 쿠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떤 면에서 백작이 성서의 가르침을 자신의 수탈을 정당화하는 데에 써먹었던 것처럼, 영화도 사회주의의 충실한 메신저였을 수 있다. 'The Last Supper'는 영화라는 매체가 시대, 정치 체제와 이념, 국가의 영향력 아래 놓인 종속적 산물임을 상기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revistacinecubano.icaic.cu    영화 'The Last Supper' 촬영 현장의 감독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사진 오른쪽) 



**사진 출처: themovedb.org   영화에서 엘라 마리아 역을 맡은 Lene Cecilia Sparrok은 사미족 출신의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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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미디 속에 감추어진 계급과 자본주의, 홀아비(Il Vedovo, The Widower, 1959)

  "내 꿈은 말입니다, 아내가 어서 죽어 내가 홀아비가 되는 겁니다."

  남자는 꿈꾸는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회계사에게 그렇게 말한다. 로마의 엘리베이터 회사 사장 나르디(알베트로 소르디 분). 그가 사업 때문에 여기저기서 빌린 돈이 산더미처럼 늘어나지만, 회사의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나르디는 부유한 아내 엘비라의 도움을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엘비라는 남편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남편의 무능을 비웃으며 면박을 주기 일쑤이다. 이쯤되면 이 남자가 왜 '홀아비(widower)'가 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채권자들, 공장 노동자들, 내연녀. 그들은 모두 나르디에게서 돈을 원한다. 머리가 터질 지경의 나르디에게 곧 놀라운 소식이 들린다. 친정인 밀라노에 가기 위해 아내가 탄 기차가 탈선으로 호수에 추락했다는 것. 아내의 장례식을 준비하며 나르디는 부자 홀아비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데...

  나르디의 아내 엘비라는 밀라노 출신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경제 중심지로서 밀라노 사람들이 갖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곳 출신으로 부자인 엘비라는 투자 감각도 뛰어나서 손대는 것마다 돈이 되어 돌아온다. 그런 엘비라가 사업 말아먹는 나르디와 사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이 가진 돈 때문에 남편이 결코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엘비라는 로마 출신, 거기에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에게 지배적 우위를 확인하며 사는 것이 삶의 낙이다.

  나르디라고 생각이 없지는 않다. 아내의 구박을 받고 살기는 하지만, 나르디는 자신의 사업이 반드시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인생은 한방, 나르디의 이 과대망상적 기대는 끊임없이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경제적 성공에 대한 나르디의 열렬한 바람은 한편으로는 아내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엘비라는 부자이며 그 지인들도 모두 성공한 사업가들이다. 그들은 돈이 돈을 버는 전형적인 자본가 계급에 속해 있다. 어떻게든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서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만 나르디의 현실은 암담하다. 그런 그에게 죽은 아내의 유산은 유일한 희망이 된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아내는 살아서 돌아온다. 다시 예전처럼 지겨운 빚쟁이들과 아내의 모욕적인 독설에 시달리면서 살 수는 없다. 남자는 이제 우연을 기다리지 않고 필연적인 죽음을 계획한다. 엘리베이터 사고로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내버리려는 것. 그러기 위해 자신의 삼촌, 회계 담당 비서, 회사의 기술자와 공모한다. 뭔가 계획은 그럴듯한데 그걸 꾸미는 이들의 면면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나르디의 계획이 실패할 거라는 데에 호주머니 속의 동전을 내놓을 것이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무능한 사업가 남편의 예기치 않은 일탈을 그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경제적 모순이 담겨 있다. 이탈리아는 2차 대전의 패전국이었음에도, 미국의 전후 유럽 원조 정책인 마셜 플랜의 수혜로 재빨리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 전후의 정치적 격변기를 틈타, 기존의 기득권 세력과 지주들은 자본가가 되었다. 영화 속에서 엘비라와 그 주변 지인들이 보여주는 호화로운 삶은 그런 자본가 계급의 행태에 대한 비판적 은유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성공한 사업가로 부자가 되고 싶은 평범한 로마 사람 나르디의 바람은 결국 좌절된다. 나르디에게 닥친 비극은 극복할 수 없는 계층적 간극을 보여준다. 영화 '홀아비(Il Vedovo, 1959)'에서 디노 리시(Dino Risi)는 탁월한 코미디적 감각으로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부각시킨다.


2. 디노 리시가 반추하는 전후 이탈리아 현대사, 힘든 삶(Una vita difficile, A Difficult Life, 1961)

  영화는 파르티잔(partizan)인 남자가 한적한 시골 호숫가 마을에 숨어드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남자의 이름은 실비오. 당시 이탈리아 북부는 독일군이 장악한 무솔리니의 괴뢰정부가, 남부는 연합군에 승복한 왕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반파시스트 파르티잔들은 독일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실비오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죽을 위기에 처한 실비오(알베르토 소르디 분). 마을 여관집 주인 딸 엘레나는 다리미로 독일군을 죽이고 실비오를 구해낸다. 석 달 동안 함께 지내며 연인이 된 두 사람은 실비오가 다시 파르티잔에 합류함으로써 헤어진다. 종전과 함께 신문기자가 된 실비오는 2년 만에 엘레나를 찾아가는데... 

  때로 영화는 우리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탐색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영화 '힘든 삶(A Difficult Life, 1961)'은 이탈리아의 전후 역사에 대한 개관적인 사실을 제공한다. 주인공 실비오가 파르티잔이었다는 점은 이 영화가 그려내는 역사적 풍경이 반파시스트 공산주의자의 전후 생존기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과연 그들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조국으로부터 합당한 대우와 평가를 받았을까? 영화의 제목 '힘든 삶'에 그 답이 들어있다.

  실비오는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재능 뿐인 가난한 지식인이다. 영화는 실비오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굴곡진 삶의 행로를 걷는 것을 충실히 보여준다. 진실을 전한다는 언론인의 자부심은 궁핍한 삶과 충돌한다. 어렵게 엘레나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두게 되었지만, 가장으로서의 실비오는 낙제점이나 다름없다. 그는 언론사를 소유한 부자 기업인의 매력적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의 신념을 꺾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도, 실비오는 좌파주의 신념과 개혁에 대한 이상을 고수한다. 그럴수록 실비오의 삶은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는 사회전복 혐의로 2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석방된 뒤로는 일자리도 얻지 못한다. 

  목구멍이 포도청. 엘레나는 실비오에게 전공인 건축학 대학원에 진학해 안정된 일자리를 얻으라고 간청한다. 대학원 면접 시험장에서 교수들은 실비오의 파르티잔 경력을 폄하한다. 그러자 실비오는 1944년에 누군가는 검은 셔츠(Blackshirts, 파시스트 준군사 조직) 입고 무솔리니를 위해 싸웠다고 일갈한다. 그 파시스트 잔당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기존 정치 세력에 흡수되었다. 실비오는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책을 쓴다. 그가 쓴 '힘든 삶'이라는 제목의 책은 출판사, 그리고 영화사로부터도 거절당한다.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는 것이 거절의 사유였다. 반파시스트들과 공산주의 세력은 이탈리아 정치계에서 국외자 취급을 받으며 쇠퇴의 길을 걸어갔다.

  실비오의 불운한 삶은 그렇게 전후 이탈리아의 현대사와 공명한다. 엘레나는 실비오의 곁을 떠난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교주와 같았던 스탈린도 죽었고, 실비오도 이젠 더이상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부자 언론인의 비서가 되어서 그 뒤치다꺼리를 떠맡는다. 사랑하는 아내, 아들과 함께 하는 안온한 삶을 위한 댓가란 그런 것이다. 영화는 실비오가 자본과 권력의 시종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는 데에서 끝난다. 그러한 결말은 이 파르티잔의 '힘든 삶'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디노 리시 감독의 영화 '홀아비'와 '힘든 삶'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는 이탈리아의 국민배우로 불리는 알베르토 소르디(Alberto Sordi)이다. 이 위대한 배우의 연기에는 그 어떤 걸림도 없다. 흔히 배우를 '천(千)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배우가 바로 소르디이다. 그는 평범한 얼굴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끌어내며, 관객을 인물의 현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한 소르디의 연기는 디노 리시 감독의 사회 비판적인 영화와 멋지게 조우한다. 디노 리시 감독이 '힘든 삶'에서 재즈 음악을 적절하게 사용한 것도 인상적이다.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변화는 흥청거리는 재즈의 음률과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 영화사에 관심있는 이라면 두 영화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사진 출처: themoviedb. org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의 영화 리뷰
모두들 집으로, Tutti a casa(Everybody Go Home, 1960)
과학적인 카드 도박꾼, Lo Scopone Scientifico(The Scientific Cardplayer, 1972)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1/luigi-comencin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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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자의 옷은 낡고 헤졌으며, 그가 가려는 방향에 자리한 출입문은 막혀있다. 그가 이제 막 지나온 농촌의 집은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다. 허물어진 지붕, 현관문 앞에서 희롱하는 남녀, 집밖에서 소변을 보는 남자, 방랑자에게 으르렁거리는 적대적인 개... 중세 시골 마을의 생생한 풍광을 담은 이 그림은 귀족이나 부유한 이들의 집 거실에는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의 제목은 '방랑자(Wayfarer)', 이를 그린 화가는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생생한 이미지를 보여준 중세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David Bickerstaff의 다큐 'The Curious World of Hieronymus Bosch(2016)'는 화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 사후 500주년을 기념하는 고향 마을에서의 기념비적인 전시회를 담았다.

  3면화(Triptych, 성당 제단의 앞면을 장식하는 그림)는 보쉬의 주력 작품이었다.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은 에덴 동산, 속세, 지옥으로 이어진 3면화로, 특히 지옥편은 무시무시한 도상학적 상징들로 가득하다. 현대인의 눈에도 이 중세 화가가 그려낸 지옥의 이미지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새의 머리를 한 괴물은 사람을 삼키고 있는 중이며, 온갖 고문 기구와 변형된 신체가 그림 곳곳을 채운다. 도대체 이런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어떤 사람일까?

  보쉬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부친은 화가였고, 집안은 대대로 신앙심이 깊었다. 화가는 자신이 평생 동안 살았던 고향 s-Hertogenbosch의 지명을 자신의 이름에 넣었다. 그곳의 대다수 주민은 상인들이었다. 몇 개의 수도원과 교회가 자리한 중세의 평범한 소도시에서 보쉬는 존경받는 화가이며 지역의 유지였다. 그는 그렇게 평탄한 삶을 살다가 60대 중반에 세상을 떴다. 보쉬의 명성은 사후에 더 커져갔다. 그가 창조해낸 놀라운 도상학적 이미지들은 후대의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현대 회화에 있어서 그 기괴하고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은 초현실주의와 긴밀한 접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과연 보쉬는 그 기기묘묘하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들을 온전히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일까? 다큐는 보쉬가 중세의 종교 서적과 문학 작품들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르네상스의 교양인으로서 보쉬는 그림 속에서 학문적 지식과 신앙을 조화롭게 구현할 방법을 찾았다. 보쉬가 그린 일련의 성인들에 대한 그림은 소박함 속에 은유적 상징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그가 그린 은수자(隱修者)들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그림을 통해 신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보쉬의 삶이기도 했다. 그가 면밀하게 그려낸 지옥의 끔찍한 이미지들 또한 세상 사람들을 향한 신앙 교육의 일환이었다. 그럼에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이한 도상학적 그림에 후대의 사람들은 이 화가를 악마주의 신봉자와 약물 중독자로 여기기도 했다.

  이 다큐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보쉬의 그림이 중세 민중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한 점이다. 분명, 보쉬의 그림들은 당대 권력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 속에는 '방랑자'에서 볼 수 있듯 서민의 거칠고 고단한 삶의 풍광이 펼쳐진다. 보쉬의 그림은 성인과 천당, 속세와 지옥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보편적 중세인의 삶에 대한 관찰과 성찰이다. 후대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이 사실주의적 중세 풍속화를 그려냈다면, 보쉬는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종교화 속에 중세의 환상적 시공간을 펼쳐놓는다.

  보쉬가 만들어낸 도상학적 이미지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면에서 현대인은 그가 남긴 그림을 통해 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중세의 문턱을 넘으려는 시간 여행자인지도 모른다. 이 여행이 주는 놀라움은 보쉬의 그림을 볼 때마다 새로운 궁금증이 일어난다는 데에 있다. 다큐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기이한 세계'는 비밀스러운 중세 화가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방랑자(Wayfarer)


아기 예수를 안은 성 크리스토퍼(Saint Christopher Carrying the Christ Child)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사후 추정 초상화


**사진 출처: themoviedb.org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생애와 작품 세계(1909-1992)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0/francis-bacon-1909-19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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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태풍 클럽(Typhoon Club, 1985)'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어의 '다녀왔습니다(ただいま, 타다이마)' '어서 와(おかえり, 오카에리)'는 마치 한 벌의 젓가락 같다.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ただいま'라고 말하면, 집안에 있는 사람은 'おかえり'라고 응답한다. 영화 '태풍 클럽(台風クラブ, 1985)'의 중학생 켄은 허름한 판잣집에 살고 있다. 켄은 현관문을 계속 열고 닫으면서, 'ただいま'와 'おかえり'를 반복한다. 집안에 누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켄에게 가족이 있기는 하다. 폐인처럼 보이는 켄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한밤중에 집밖을 서성인다. 그렇다. 켄에게는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켄은 주문처럼 'ただいま'와 'おかえり'를 뇌까린다.

  소마이 신지((相米慎二) 감독의 '태풍 클럽(1985)'의 주인공들은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다.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기이하고 불편하게 엉키며 직조된다. 영화는 도입부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다. 여름날 저녁, 시골 학교의 수영장에서 여중생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동급생 아키라는 마침 수영을 하고 있다가 여학생들을 훔쳐 본다. 여학생들은 그런 아키라를 골려주기 위해 아키라에 목에 끈을 묶어 수영장 밖으로 억지로 끌어낸다. 아키라는 익사할 위기에서 겨우 되살아난다. 학교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 왕따의 대상인 아키라에게 여학생들이 집단으로 휘두르는 폭력. 무언가 이 학교는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 지역에 태풍이 예보된 가운데,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아이들의 일상적인 삶이 뒤흔들리고 억눌렸던 본성이 폭발한다. 주말 동안 어쩌다가 학교에 갇힌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광기에 가깝다.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할 줄 모르는 켄은 좋아하는 여학생 미치코를 겁탈하려고 든다. 영화의 중반부, 8분 가량의 이 시퀀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흥분한 켄은 'ただいま'와 'おかえり'를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미치코를 쫓는다. 켄은 미치코가 도망친 교무실 문짝을 부수며 압박한다. 그런가 하면 연극반의 3총사 여학생들은 동성애에 빠져든다. 학교에 남은 6명의 아이들은 태풍이 몰고온 폭우 속에서 속옷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렇게 청소년 연기자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최대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이 감독의 연출력은 비범한 것일까, 아니면 착취적인 것일까?

  태풍에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것은 학교에 갇힌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출을 감행한 리에는 인근의 도쿄 도심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낯선 젊은 남자를 따라나서고, 결국에는 남자의 자취방에까지 간다. 남자와 리에가 함께 있는 장면이 주는 공포는 이 남자의 의도가 불분명하다는 데에 있다. 대학생이냐고 묻는 리에의 질문에 남자는 얼버무린다. 리에에게 값비싼 옷을 사주며 자신의 처소로 유인한 이 남자는 어설픈 원조교제를 시도한 것일까? 리에는 결국 정신을 차리고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소마이 신지의 '태풍 클럽'은 영화 전체에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솔직히 이 감독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확실히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이 '태풍'이라는 자연적 재난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단서는 아이들이 아닌, 영화 속 '어른'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태풍 클럽'에서 어른들의 존재는 거의 의도적으로 삭제되어 있다. 학급의 젊은 담임 교사 우메미야가 그나마 비중이 있고, 양호 선생과 교장은 거의 보조 출연에 그친다.

  우메미야는 교육자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실패한 사람이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난데없이 들이닥친 중년의 남녀를 보게 된다. 우메미야가 사귀는 여자의 엄마와 삼촌을 자처하는 이들은 우메미야에게 조카를 책임지라며 행패를 부린다. 그들의 입을 통해 아이들은 우메미야가 연인의 돈을 물쓰듯 쓰며 비겁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메미야는 학교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학교로 와달라고 전화를 걸었을 때에도 그 요청을 무시해 버린다. 전화를 건 우등생 미카미가 그런 우메미야를 비난하자, 우메미야는 이렇게 강변한다.

  "너 말이야. 대단한 것처럼 굴지만, 15년 전에 나도 너 같았어. 네가 15년 뒤엔 나처럼 된다고, 알겠냐?"

  실패한 인생을 자인하는듯한 우메미야의 미카미를 향한 질타는 기묘한 울림을 준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이며 냉정한 미카미는 오직 학업에만 열중한다. 미카미는 도쿄의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결정된 상태이다. 미카미의 눈에 동급생들의 모든 행동은 유치하고 한심하게 보일 뿐이다. 미카미는 출세하고 성공했다고 여기는 삶에 진입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그런데 미카미도 그 삶이 정말로 괜찮은 건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믿고 따르던 우메미야의 한심스런 행태는 미카미를 좌절에 빠뜨린다. 15년이 지난 후에 자신이 저런 모습이라면, 과연 이대로 계속 사는 것이 가치가 있는 걸까...

  소마이 신지는 아이들을 사각의 틀 안에 가둔 쇼트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미카미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장면, 독서실 창문 밖에서 찍은 쇼트는 미카미를 학교의 수인(囚人)처럼 보이게 만든다. 아이들은 학교 창문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강당의 무대 위 사각의 프레임에 갇힌 존재들이다. 결국 그 틀은 태풍 속 비바람이 몰아치는 운동장으로 뛰쳐나감으로써 부서진다.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감정을 분출시키면서 잦아든 것과는 달리, 미카미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옥죄는 틀에서 탈출한다. 교실 안의 책상을 창가에 차곡차곡 쌓은 후, 미카미는 창문을 열고 투신 자살을 시도한다.

  이 영화는 얼핏 보기에 청소년 성장 영화라는 외피를 두른 것 같다. 하지만, '태풍 클럽'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일반적인 청소년기의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이들의 일탈과 폭주는 병리적인 현상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학교'라는 공간은 거대한 병동으로서의 일본 사회와 맞닿아 있다. 1980년대, 일본은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이었다. 고도 성장의 정점에서 일본인들은 안정적인 삶을 향유했다. 그럼에도 일본 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견고한 가족주의에는 균열이 가고 있었으며. 청소년 세대는 약물 남용(암페타민 복용과도 같은)을 비롯해 여러 범죄 문제에 노출되었다(1983년, 저널리스트 Robert C. Christopher는 이에 대한 칼럼을 뉴욕 타임즈에 기고했다). 개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삶의 구심점을 설정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 속 '태풍'이라는 자연 현상은 그러한 일본 사회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작용한다. 책임감을 지닌 어른의 부재, 가족의 붕괴, 방향성을 상실한 아이들... '태풍 클럽'에서 학교는 물질적 풍요 속 정서적 공황에 처한 일본 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소마이 신지는 자신이 통과하는 동시대의 일본을 냉철하게 직시한다. 이 영화가 개봉된 1985년, 일본은 미국의 강압적 요구로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를 받아들이게 된다.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구하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조정이었다. 그 합의로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 1991-2001)'이라는 경제 침체기를 마주한다. 영화 '태풍 클럽'은 그러한 격변기에 접어들기 직전, 임계점을 향해 가는 일본 사회의 피폐한 내면을 중학생의 눈을 통해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お引越し, Moving, 1993)'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6/moving-1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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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가 자신이 궁금해하는 질문 하나를 지독하게 파고 든다. 'What is a Woman?' 남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의사와 심리학자를 비롯해 정치인, 교수, 그리고 저 멀리 케냐까지 가서 마사이 부족을 만난다. Justin Folk의 다큐 'What is a Woman?(2022)'은 6월에 미국에서 개봉된 후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 다큐를 이끌어 가는 이는 미국의 보수 정치 평론가 Matt Walsh. 그는 '여성'이란 단어의 정의(definition)가 매우 궁금하다. 그런데 그 궁금증의 이면에는 non-binary(제 3의 성, 트랜스젠더나 젠더 퀴어에 속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가 내재되어 있다.

  Journey. 이 다큐는 성차(sex differences)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닌 보수 정치 평론가의 도발적인 탐구 여정이다. 그는 생물학적 성을 부정하는 이들, 특히 트랜스젠더를 LGBT Movements가 만들어낸 비현실적 존재로 인식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억지 소리를 쏟아내지는 않는다. 과연 '여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에 대한 매트 월쉬의 질문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지하게 공명한다. 트랜스젠더이면서 성전환 수술 전문의가 된 의사, 페미니스트 성심리 상담가, 성전환시술인 호르몬 요법을 전문으로 하는 내과 의사, 젠더 연구 전문가인 사회학과 교수... 월쉬의 인터뷰는 '젠더(gender, 사회적으로 획득한 성정체성)'의 실제적 근거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공격적으로 진행된다. 그는 '젠더'를 터무니없는 허상으로 인식한다.

  케냐로 날아간 월쉬는 마사이족들과의 인터뷰를 자신의 신념에 단단하게 덧댄다. 마사이 족장은 'non-binary'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월쉬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린다. 마사이족 사람들에게 그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트랜스젠더'는 기이한 이형적 존재로 새삼스럽게 각인된다. 이제, 보수 정치 평론가는 성 정치 운동을 자신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거대한 기만극으로 확신한다. 그는 TV와 영화와 같은 문화 컨텐츠들이 LGBT에 대한 긍정과 호감의 메시지를 양산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한 환경이 특히 청소년들의 'gender dysphoria(sex와 gender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행감)'를 조장하며, 결과적으로 트랜스젠더의 삶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다.

  'What is a Woman?'은 굉장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다큐임에도 여러모로 시사하는 부분도 있다. 트랜스젠더가 되려는 청소년들이 감수해야 하는 의학적 위험을 다룬 점이 그러하다. 호르몬 요법에 쓰이는 약물의 장기적인 추적 연구가 없다는 점, 또한 비가역적인 신체 변화를 가져오는 수술의 후유증이 관객에게 객관적 정보로 주어진다. 아마도 이 다큐는 LGBT 운동가들에게는 악의적이고 편협한 시각에서 제작된 한심한 다큐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언론과 평론가들이 이 다큐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출처: en.wikipedia.org).

  그러한 관점과는 별개로 종횡무진, 도발적 질문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자신의 논지를 설파하는 매트 월쉬를 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이 다큐가 취하는 접근 방식은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Roger & Me, 1989)'를 떠올리게 만든다. 미시간주 플린트 출신의 백수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불굴의 의지로 GM의 수장을 만난다. 마이클 무어는 고향 플린트를 유령 도시처럼 만들어버린 GM의 공장 폐쇄를 따질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다.

  그 허망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무어의 여정은 미국 사회의 계층적 간극과 주변부의 황폐한 풍경을 담는다. 'What is a Woman?'의 매트 월쉬의 여정은 어떤 의미에서 성적 다양성 담론에 대한 보수 우파의 극렬한 공격처럼 보이기도 한다. 6월 24일, 미국 대법원은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한 'Roe v. Wade(1973)'의 판결을 뒤집었다. 미국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도 그렇게 제한받게 될 날이 올까? 어떤 관객들은 이 다큐를 보며 그런 음울한 질문을 던질 법도 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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