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장의 사진 - 내 마음속 사진첩에서 꺼낸
박완서 외 지음 / 샘터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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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사진을 배울 때에는 무얼 찍으면 그림이 될만한지에 정신이 팔려서 일상적인 것보다는 특이한 소재와 인물들을 담기에 바빴다. 거기에다 노출과 촛점, 심도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정작 내가 찍는 대상에는 그다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현상과 인화를 거치고 나서야 내가 찍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는데 처음이라 그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사진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상심이 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는 자체에만 흥미를 갖고 열광했을 뿐이지, 사진 안에 담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소통하는 데에는 무지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문인들 각자에게 각별한 의미로 남는 한장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말하자면 사진들의 내력에 대한 풀이인 셈이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그 사진들이 과거의 특정한 시점, 사건,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글을 쓴 사람에게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의 삶에서 그런 사진이 얼마나 될까? 너도 나도 디지털 카메라로 손쉽게 이미지를 담아낼 수 있게되었지만 거기에 대상의 진정성은 얼마만큼이나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너무나 흔해진만큼 정작 중요한 것은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다보면 우리네 삶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들이 투명하게 드러나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부모, 형제, 친구, 자녀, 손주, 이웃, 나무와 풍경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단면들을 담아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가하면 자신만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과도 같은 사진을 통해 스스로 삶의 여정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손녀에게 글을 가르치려는 욕심에 그림책으로 열심히 설명을 하는 할머니로서의 박완서, 살림이 어지럽게 널려진 거실에서 티없이 맑게 웃고 있는 어린 남매의 사진을 통해 결혼 초의 어려움을 회상하는 이명랑, 젊은 시절 형제들의 산행을 담은 사진에서 각자의 삶에 어린 굴곡을 읽어내는 조은, 백야의 그 황홀하고 아찔한 순간을 그 때 찍은 사진에서 잡아내는 박상우... 비록 한장의 사진에 불과해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생의 일부가 녹아들어가 있다.

  무엇보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이호철의 사진이다. 북에 있는 누이가 그의 동생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한장의 사진을 보냈는데 그 사진으로 그는 바로 누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에는 "들뜬 두마음"이란 글귀와 함께 열아홉살의 이호철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한장의 사진이 그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혈육의 증표가 되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뜨거움이 마음에서 일어났다.

  카메라를 잡지 않은지가 일년이 지났다. 내가 다시 카메라를 든다면 잘 찍을 수 있을것인지에 대해 요즘들어 자주 생각해보곤 한다. 사진과 담을 쌓고 지내온 동안 나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이젠 내가 사진 속에 담고자 하는 대상에 더욱 집중할 것과, 그 진정성을 한자락만이라도 담아낼 수 있도록 더 진지해지자는 것이다. 그런 연후라면 내가 찍은 사진들 속에서 삶의 진실된 단면들이 잘 드러나지 않을까. 마치 이 책에 실린 인생을 말하는 사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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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 웨이트 타로 따라하기
칼리 지음 / 물병자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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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타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 "녹색 광선"을 본 이후부터인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타로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 영화에 나온 타로 카드의 상징성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에 지치고 권태로워진 여자 주인공은 어느날 길을 가다가 타로 카드 한장을 줍는다. 그날부터 새로운 깨달음을 찾으려는 여자의 여행은 시작된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도 타로카드가 등장한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도피를 떠난 곡마단 처녀와 장교. 그 도피길에서 엘비라는 점쟁이를 찾아가 타로점을 본다. 점쟁이는 처음에 나온 죽음 카드를 어떻게든 피해보려하지만 반복해보아도 점괘는 똑같다. 

  온라인 상에서 잘 알려진 타로 마스터로 활약하고 있는 저자 칼리는 타로와 관련된 책을 몇권 펴냈다. 이 책은 그 가운데에서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데, 78장의 아르카나에 대한 키워드를 잘 요약해놓았으며 카드를 섞는 방법에서부터 기본이 되는 배열법인 켈틱 크로스까지 찬찬히 설명해준다.

  사실 타로 카드를 배우기 위해 관련 서적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그 빈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숫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책을 찾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일은 어려워보인다. 그 때문에 타로 입문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베이직 웨이트 타로 따라하기"는 초보자라면 반드시 숙지해야할 각각의 아르카나들에 익숙해지기 위한 좋은 안내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느정도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고, 기본인 켈틱 크로스 이외에 다른 배열법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타로 서적을 찾아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기본 배열법 이외의 다른 배열법은 나와있지 않으며, 카드점의 예도 설명을 위한 것 외에는 지면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웨이트 계열의 카드에 맞도록 쓰여졌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타로 카드의 종류가 웨이트 계열(웨이더 라이트, 유니버셜 라이트 등)에 해당하는지도 미리 살펴 보아야 한다.

  사람마다 타로 카드를 접하게 되는 계기가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험을 통해 얻은 한가지 성찰이라면 무엇이든 지나치게 빠지거나 의존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타로 카드는 어디까지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수많은 도구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그것으로 인해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잘 살펴볼 수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라면 타로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은 유쾌하고 신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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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앨벗 놀런 지음, 정한교 옮김 / 분도출판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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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사순시기를 보내면서 내가 새롭게 인식한 것이 있다면 인간으로서 고통을 받는 예수님에 관한 것이다. 그분이 왜 그러한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을까에 대해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얻은 성찰은 이렇다. 당신 자신이 고통을 받음으로써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시고 그들과 함께 하며 위로해주기 위해서라고... 그분은 스스로 고통의 대가가 됨으로써 고통받는 이들의 항구한 피난처가 되신 것이다. 

  무자비한 수난의 고통을 당한 예수는 전적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동등하게 지닌 분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면서 그 안에 신성을 동등하게 지닌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면 신성이란 무엇인가... 사제 신학자 앨벗 놀런의 저서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는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신앙의 대상이 되기 이전의 인간 예수의 모습을 복원해낸다. 이 책에서 놀런이 보는 예수는 말그대로 인간 예수이다. 그 어떤 종교적 후광이나 신학적 해설의 덧붙임없이 오직 성서를 텍스트로 삼아서 인간 예수의 족적을 하나하나 살펴나가는 것이다.

  놀런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로서 세례를 받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예수는 확실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친 재난과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복음서 곳곳에 드러나는 세상의 끝날이란 바로 70년 뒤에 일어난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사건이다. 그렇다면 예언자 예수의 예지력이란 고작 70년 뒤의 일을 예측한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이에 대해 놀런은 이 문제의 핵심은 파국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라고 답한다. 사실 대재난과 종말에 대한 예언은 형태만 달리할 뿐 역사상 각 세대마다 나타났다. 놀런이 보기에 오늘날 인류에게 닥친 재앙은 환경파괴와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폐해, 기아와 질병의 확산이며 그런 이유로 파국에 대처하라는 예수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가 보여준 삶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놀런은 그 메시지의 핵심이 가난한 자에 대한 예수의 연민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예수만큼 가난한 자들(여기에서의 가난이란 물질적 가난 뿐만 아니라 영적인 가난까지도 지칭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낀 인간은 없었다. 예수가 설파하는 이상적 인간이란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이다. 도적을 당하고 상처까지 입은 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끝까지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사마리아인이야말로 최고로 발휘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다. 예수는 그 자신 스스로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버림받았다고 할 수 있는 창녀, 세리, 거지, 병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결국 놀런이 보기에 오늘날 신학에서 말하는 예수의 신성이란 그의 인간에 대한 연민, 즉 인간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것이 최고로 발휘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신념과 행동으로 사람들과 세상을 재앙에서 구하고, 보다 더 평등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연대(Solidarity)"라고 할 수 있다. 고통받는 자들, 억압받는 자들,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과 같이 무관심과 소외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들을 바라보고 돌보는 것이다. 그럴때에야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닥친 파국을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거기에 덧붙여 놀런은 신앙이란 인간 예수가 살았던 그 삶 안의 본질을 깊이 자각하고 그것을 직접 실천하는 것에 다름아니라고 말한다. 

  어쩌면 놀런이 말하는 예수의 모습 또한 추측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예수에게 덧입혀진 온갖 종교적인 부가물을 제거하고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 신앙의 대상이 되는 예수의 인간적 면모에 새롭게 눈뜨게 만들고, 신앙을 되돌아볼 계기를 준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뛰어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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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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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요새도 아이들 사이에서 특정한 큰 흐름의 유행이란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런 것이 더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4학년 때의 유행은 가지각색의 퀴즈 카드 놀이였다. 세계 각국의 수도를 알아맞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 나라의 위인들에 관한 퀴즈까지 다양했다. 그런가하면 스카이 콩콩이라던가 스카이 씽씽, 인생게임과 부루마블에 이르기까지 마치 하나의 유행이 뜨면 모든 아이들이 그 유행의 품목을 필수적으로 지녀야하는 것으로까지 여겨졌다. 심지어 먹을 것에서도 그러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입안에 들어가면 말할 수 없는 신맛을 비롯해 입안에서 불이 나는 것과 같은 이상한 맛을 내는 작은 구슬사탕을 너도 나도 사먹었다는 것이다. 사실 한통을 사면 제대로 다 먹는 것이 어려울 정도였는데도 아이들은 모두 그 기가 막힌 신맛을 매일매일의 영양제처럼 챙기곤 했었던 것 같다.

  카버의 단편들을 읽고난 느낌은 바로 그 구슬사탕을 입에 가득 넣고난 뒤의 느낌과도 비슷했다. 입안에서의 그 시고 탁탁 튀는 듯한 느낌... 삼켜지지도 않아서 그냥 입안에서 우물거리며 녹히지만 더는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그 구슬사탕이 생각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카버에게는 마치 아주 잘 드는 면도칼이 있어서 그것으로 우리네 일상의 구석구석을 잘게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 이유로 그의 단편에는 낭만이나 즐거움 보다는 냉소와 회의, 침체된 우울이 더 많이 내재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인생이란 참으로 보잘것 없고 사소할 뿐만 아니라, 때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도가니이다.

  어느날 알지도 못하는 여자로부터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는 남자, 자신의 불운이 개에게서 연유한다고 믿고 아이들이 아끼는 강아지를 몰래 내다버리려는 아버지, 자신의 아내가 남들이야 뭐라하든 가장 매력적이라고 믿는 남편, 어린시절부터 이해못할 행동을 하던 아들이 집을 나간후 세월이 흘러 유명한 정치가가 되자 두려움을 느끼고 잠적한 어머니, 카펫의 먼지만을 수집하는 이상한 남자... 이렇듯 카버의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면면은 삶이란 것이 얼마나 팍팍할 수 있는지, 우연이나 행운이란 것이 들어오기엔 얼마나 비좁은 틈을 지닌 것인지를 한눈에 보여주는듯 하다.       

  그 메마르고 치밀한 문체와 끝없이 침잠하는 의미들로 보자면 카버의 소설들은 얼마전 읽은 오헨리의 것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 둘을 두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그렇게 현명한 일은 아니지 싶다. 삶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물체가 있다고 할 때 우리 각자는 자신이 서입는 입장에서 그것을 보게 마련이고, 그런 이유로 각사람마다 보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다른 이들이 본 모습을 조합해야만 그 전체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카버 또한 자신이 본 삶의 문제, 그 진실을 이야기 한 것 뿐이다.

  카버의 이야기는 "정말 그럴까?"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 먹었던 구슬캔디의 맛처럼 카버의 글에는 그 시디 신맛이 베어져나온다. 그러나 한번 먹고나면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그런 신맛이 아니라 어떤 때는 그 신맛이 못견디게 생각나는 그러한 맛처럼 입안에 남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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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버지니아 울프 전집 10
버지니아 울프 지음, 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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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달빛이 환히 비치는 도시의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이미 밤이 늦어서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없다. 그렇게 나 홀로 걷는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어느새 내 앞에는 앞서가는 이의 긴 그림자가 흔들리며 가고 있다.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내 빰을 스친다. 그림자에는 잔잔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의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밤거리에 출렁인다. 나는 그 그림자의 주인을 보고자 걸음을 서두른다. 그러나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알자 그림자는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아, 그 매혹적인 뒷모습이란... 

  울프의 글을 읽을 때면 그러한 매혹적인 뒷모습을 보고난 아쉬움을 남긴다. 그의 글을 결코 완전한 이해라던가, 전부를 보여주는 법이 없다. 오히려 작가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그림자 속에 숨어버린듯한 느낌이 든다. 결국 독자의 몫은 그림자를 통해 울프의 생각과 느낌을 상상 속에서 헤아려보는 것이다.

   울프 전집 기획으로 나온 단편집 가운데 첫번째 권인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작가의 신비스럽고 매혹적인 뒷모습을 엿볼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같은 작품을 되풀이해서 읽을 때에 조금씩 그 의미의 질감들이 살아나는 것 같다. 마치 파도를 타듯 각각의 단편들은 고유의 높낮이와 움직임으로 독자를 울프의 내면 세계로 이끈다.

  울프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과 결혼에 대한 성찰들을 섬세하게 마치 레이스를 짜듯 풀어낸다. "라뺑과 라삐노바", "필리스와 로자먼드", "밖에서 본 여자대학", "어떤 모임"은 마치 울프 자신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어떤 제약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유롭고 온전한 삶을 살고 싶은 여성이자 한 인간의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울프가 보여주는 삶이 여성에 제한되지는 않는다. 그는 인생의 불가해한 일면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다가온 부를 앵무새가 가져다 주었다고 죽을 때까지 믿었던 과부를 그린 "과부와 앵무새", 떠돌이 개에게서 인간과도 같은 감정의 순간을 잡아내는 "잡종견 집시", 단한번의 기이한 경험으로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되는 정치가의 모습이 담긴 "단단한 물체들"과 같은 글들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가하면 울프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는 데에도 뛰어났던 것 같다. "세개의 그림"에는 어부에게 닥친 비극이, "본드가의 델러웨이 부인"과 "사냥꾼 일행"에서는 상류 계층의 삶의 단면이, "어느 영국 해군 장교의 생활 현장"에는 해군장교라는 특수한 직책에 있는 이의 일상이 마치 사진처럼 정교하게 재현된다. "본드가의 델러웨이 부인"과 "새옷"의 경우는 후에 나온 그의 장편 "델러웨이 부인"의 밑그림과도 같은 것이어서 매우 흥미롭다.

   어쩌면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청색과 녹색"의 경우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특정한 색에 대한 울프의 주관적인 느낌을 묘사한 것이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가 평생동안 앓았던 정신질환의 반영처럼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예전에 울프에 대한 보고서를 쓰기위해 그의 전기와 많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러한 가능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울프는 어린 시절의 어머니의 죽음이 가져다준 정신적인 충격으로 평생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으로 추정되는 심리적인 고통을 겪었다. 그러한 고통을 감내할 수 없어서 결국 주머니에 돌맹이를 가득 넣고 강에 투신자살한 그의 비극적인 삶의 단면들은 필연적으로 작품 곳곳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서가에서 울프의 나머지 단편들이 실린 "유산"을 발견하고서는 얼른 빼어들었다. 아마도 나는 울프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 그 매혹적인 뒷모습에 빠져있는 것 같다. 울프는 내게 있어 그런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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