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슬리퍼족저근막염에 시달린지 벌써7개월째이다 8년 전에 사놓은비치 슬리퍼가 없었다면 내오른발바닥은 진작에 닳아져버렸을 것이다 이 기적의슬리퍼는 뒤꿈치가 좀 꺼진것 빼고는 멀쩡하다 그래도한 켤레 더 사두어야지 생각했다 주문한 슬리퍼가 오길기다리는데 이상하다 배송이완료되었다는 슬리퍼는 어디에도 없다 택배기사는 사흘째슬리퍼를 수소문하러 다니고있다 어느 집구석에서 내가 주문한 파란색 비치 슬리퍼를신고 있는 걸까 아니 김중배의다이아몬드도 아니고 고작 1만 원짜리 남의 슬리퍼를 훔쳐서신고 다닌단 말인가 앞으로이 동네에서 그 퍼렁 슬리퍼를신고 다니는 인간이 있는지눈에 불을 켜고 살펴봐야지오늘따라 아픈 발바닥이 더아프다 잃어버린 슬리퍼보다양심을 잃어버린 이에 대한역겨움이 신물처럼 올라온다
뺄셈엄마는 뺄셈 문제를 풀 때마다 머릿속이헝클어져서 하기가싫다고 말한다그나마 덧셈은 잘한다 뺄셈의뇌세포에는 전기가들어오지 않나 보다기억의 뺄셈으로세상을 뜬 남편의생일을 말하지못해도 아이고,가버린 사람 생일뭐하러 생각해그렇게 눙친다기억이 인간 자신을규정하는 것이라면기억하지 못하는자는 인간이 아닌가엄마는 했던 말을또하고 또하고또한다 언젠가그렇게 또할 수 있는 말조차잊어버릴 것이다오늘 엄마는손가락으로뺄셈하는 법을새로 배웠다
무해한 시난해한 시를 쓰면 성의가 있고뽀대가 난다고믿는 거냐읽기 쉬운무해한 시는일기장에나 쓰라고 말하는구정물 같은오만과 편견삶에 밀착하지않는 공허한유리알의 서사를아름답다 말하는네 손가락이나다듬어봐답답하면 네가 쓰든지 써야지별 수 있니일상의 언어를경멸하며한국 문학의미래를 논하는무해한 달팽이들
선거일 아침빨강 티셔츠에 빨강 바지의 중년 여자는자신의 표심을입증한다팔순의 할머니는투표소가 어디냐고묻는다 가만가만걸음을 떼며라일락 꽃가지방정맞게 흔들며건너편에서 오는여편네 꺾은봄을 전시한다까마귀 한 마리넙데데한 날개를휘두르며 머리위로분노의 흉조세상이 뒤바뀌지는않겠지 그래도경건한 마음으로기다리는 한 표
당근을 썰다냉장고에서 한 달묵은 당근을꺼낸다 대가리에조금 싹이 난 것 빼고는 당근은아주 멀쩡하다흰색 플라스틱도마는 옅은주홍 물이 드는데어라, 얘 바람들었어가운데 심지가숭숭 뚫린 당근을보며 생각한다바람난 배우자와산다면내다 버릴까아니야, 어차피카레에 들어가면당근은 그냥당근일 뿐가스불에 뭉근히시간이 약이지길고 반듯하게썰어서 샐러드통에 담아둔바람든 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