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따위는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 검열관 사키사카는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자신에게 올라오는 희극 대본을 철저히 검열하여 어떻게든 극장에서 상연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 그런 그에게 희극작가 츠바키라는 강적이 나타난다. 웃음의 요소를 배제시키려고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검열관에 맞서 츠바키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더 웃기는 내용을 넣은 희극을 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웃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검열관은 공동 창작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웃음의 대학(호시 마모루 감독, 2004년)에 나온 희극작가 츠바키를 괴롭히는 것은 검열관으로 상징되는 국가 권력이다. 개인이 자유롭게 웃을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하려는 거대 권력에 맞서려는 츠바키의 무기는 오직 글 뿐이다. 그가 고치고 삭제하라는 검열관의 요구를 순순히 수용하는 것은 어찌보면 권력에 순응하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떤식으로는 자신의 글을 관객과 만나게끔 하려는 강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다. 츠바키에게는 쓰고 또 쓰는 것이 곧 저항의 방법이었던 셈이다. 그의 열정은 마침내 검열관의 마음마저 움직인다. 강제 징집 영장을 받고 떠나는 그에게 검열관 사키사카는 외친다.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반드시 살아 돌아와서 멋진 희극을 함께 공연하자고...
브로드웨이를 쏴라(우디 앨런 감독, 1995)에 나오는 극작가 데이빗을 괴롭히는 것은 국가권력이 아닌 돈, 바로 자본이다. 자신의 작품을 상연하는 데에 필요한 돈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던 그는 마피아 두목을 제작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상연을 댓가로 두목은 자신의 애인을 주연 배우로 써줄 것을 요구하게 되고 그 순간부터 데이빗의 연극은 예측 불허의 결말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대사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올리브, 연극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올리브의 경호원 치치, 배우들 간의 불화, 그 와중에 주연배우 헬렌과 사랑에 빠져버리는 데이빗... 이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데이빗은 무력하기만 하다. 그런 그가 도움을 받게 되는 사람은 바로 치치. 16살 때부터 갱으로 살아온 치치는 자신의 처절한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극 대본에 생기를 불어넣고, 연극은 데이빗이 아닌 치치의 것이 되어간다.
하나의 연극 상연을 두고 결국 살인까지 일어나는 것을보면서 데이빗은 절망하며 브로드웨이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에게 예술이란 잔혹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다. 데이빗이 느끼는 참혹한 심정은 어댑테이션(스파이크 존즈 감독, 2002)의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에게 이르면 좀 더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그물망 속으로 들어온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글쓰기에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을 던질 수 없었던 그는 "난초 도둑"이라는 책을 각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좌절감과 회의에 휩싸인다.
그와는 달리 여유있고 낙관적인 쌍둥이 동생 도널드는 그냥 한번 써본 대본으로 제작자들에게 극찬을 받게 되는데, 동생의 성공에 대한 질시와 벽에 부딪힌 각본 작업으로 찰리는 점점 더 괴로워할 뿐이다. 도널드는 어떻게든 형을 돕고자 "난초 도둑"의 원작자인 수잔을 만나서 인터뷰를 시도하게 되고, 그들 형제는 수잔과 수잔의 책에 나온 실제 주인공 라로쉬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얽히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의 만남은 도널드의 죽음으로 끝나게 되고, 찰리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써야하는지, 어떻게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이 세 편의 영화에 나타난 작가의 초상은 참으로 괴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한가롭게 차를 마시며 깨끗한 책상에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라는 불구덩이 속에서 스스로를 던져 소진시키면서 자신의 글을 건지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초상에는 기쁨 보다는 슬픔이, 여유보다는 쫓기는 초조함이, 희망 보다는 불안과 우울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과연 이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애초부터 작가들은 그런 것을 누군가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단 하나의 것만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을 따름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죽은 후에도 남을 작품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모든 것을 말하고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러기 위해 치루어야할 댓가가 무엇이든 간에 글쓰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세 편의 영화들은 각기 다른 방식이기는 해도 작가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탐색해가며 진솔한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