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치(咽頭齒) 11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바지락 칼국수라는데, 갈 거예요?"
월요일 오전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옆자리의 신 주무관이 중기에게 물었다.
"아, 그거면 안 가는 게 낫겠네요. 전번에 해감이 덜 된 바지락 나와서 아주 고생했거든요."
"그럼, 밖에서?"
"시장 막국숫집 있잖아요. 거기서 그냥 먹을까 하구요."
"그럼, 나도 같이."
"그러죠, 뭐."
점심시간까지는 15분 정도 남았지만, 구청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기는 공무원이란 사람들이 식당에서 줄 서는 것이 싫다고 저렇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영 마뜩잖았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15분 일찍 오후 업무를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직 사회의 관성이란 참으로도 무섭고도 기이한 것이다. 중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들고서 동료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막국숫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중기는 막국수집 옆의 순댓국집이 좀 나은가 해서 가게 안을 힐끔 들여다보았다. 그곳도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침 막국수집에 두 자리가 났고, 중기는 동료와 함께 앉을 수 있었다.
"손님은 뭐로 하시게?"
"막국수 둘."
서빙을 하는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인지 조지아인지 아무튼 그쪽 나라 사람처럼 보였다. 덩치가 좀 있는 외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말은 그다지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하네."
신 주무관이 남자가 가고 난 뒤에 신기한 듯 말했다. 문득 중기는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빌라 출입구에서 젊은 동남아시아 남자를 만났다. 빌라의 수다쟁이라고 할 수 있는 영천댁의 말에 의하면 이사간 박 차장네 집에 살게된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이라고 했다. 잠깐 살다 간다는데, 모르지 뭐. 영천댁은 못마땅하다는 듯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했다. 주인 영감이 깔세로 얼마나 월세를 당겨서 받았는지 중기는 궁금해졌다. 분명 자신에게서 받는 월세보다 더 많은 돈을 불렀을 것이다.
"안녕!"
중기는 이제 겨우 스물을 좀 넘겼을 법한 베트남 청년의 인사말에 기가 찼다. 우리말을 잘 몰라서 저러는 건가? 모른다고 해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봐, '안녕'이 아니라 '안녕하세요'라고 해야지."
"알아. 그냥 친구 하고 싶어서."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의 청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활짝 웃으며 중기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저렇게 허물없이 구는 것이 저 청년의 생존 방식인지도 몰랐다.
"난, 네 친구가 아냐. 앞으로도 아닐 거고. 그러니 말조심해."
"그래, 알았어. 잘 가."
중기의 싸늘한 말을 청년은 씨익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겼다. 중기는 청년의 누렇게 때가 낀 흰색 티셔츠와 너덜거리는 운동화 밑창을 보고는 기겁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강서구의 그저그런 빌라가 갑자기 쪽방촌이 되어버린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돈에 환장한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 중기는 빌라의 주인 영감을 향해 욕지기가 절로 나왔다. 방이 하루라도 비어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저런 놈들까지 살게 하다니.
"이모님, 3번 테이블 막국수 둘 빨리요!"
"좀 걸려. 기다리라고."
서빙 보는 외국인이 주방과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3번 테이블의 중기는 하릴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가게의 구석진 곳 벽에 달린 TV에서는 뉴스 채널의 정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치 뉴스와 교착 상태에 빠진 이란과 미국의 종전 협상에 대한 뉴스가 짧게 이어졌다.
"다음은 국내의 사건 사고 소식입니다. 식물인간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살해한 남자가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저희 취재 기자가 경찰청에 나가 있습니다. 민현수 기자, 자세한 소식 전해주시죠."
중기는 '식물인간'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에서 고개를 들어 TV를 보았다. TV 화면 속에서는 검은색 야구 모자에 마스크를 쓴 중년의 남자가 막 경찰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네, 체포된 43세의 박 모 씨는 식물인간 상태의 아내에게 독극물을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망자 친족의 강력한 요청으로 부검이 이루어졌고, 경찰은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긴급 체포했습니다. 자, 그럼 용의자의 인터뷰 내용을 직접 들어보시죠."
중기는 남자의 성씨가 박씨라는 사실에 조금은 소름이 끼쳤다. 혹시 저 사람이 자신이 아는 그 박 차장이 아닐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가던 날, 그가 보여주었던 그 평온한 얼굴 표정과 웃음이 이상하게도 잊혀지지 않았다.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인정합니까?"
"난 아내를 죽이지 않았어요. 죽여달라고 한 건 아내였습니다.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 것뿐입니다."
중기는 늘어지면서 뭉개지는 박 차장의 말투가 TV에서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해자는 식물인간 상태였다고 들었는데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말을 했다는 겁니까?"
"분명히 나는 아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 의식이 돌아왔겠지요."
TV 화면 속의 살인 용의자, 그러니까 중기가 알고 있는 그 박 차장은 아주 차분하게 기자들과의 문답을 이어갔다. 중기는 점심이고 뭐고 정신이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