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두치(咽頭齒) 10
"음, 그러니까 이건 실패한 소설 같아요."
중기는 문득 오늘 소설 수업 시간의 합평을 생각하고는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중기의 소설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나는 송파가 좋아요'를 쓴 송파구 주민, 미자 씨였다.
"제 소설을 그렇게 읽으셨다니, 흥미롭네요. 어느 부분이 실패했다고 보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송파구 주민 미자 씨는 톤 업 썬크림으로 희게 번들거리는 얼굴에 비해 목은 때가 낀 거 마냥 시커멓게 보였다. 거기에다 60대에 접어든 여자의 목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중기는 그 늙은 여자의 글만 아니라 외모까지도 아주 싫었다. 더더군다나 말도 안 되는 비평을 자신감 있게 늘어놓는 그 뻔뻔함은 더 싫었다.
"자, 봐봐요. 구만이나 경주나 그냥 가만히 있잖아요. 모름지기 소설의 주인공은 움직여야 한다구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언제쯤 뭘 하러 돌아다닐 거냔 말이죠."
얇고 윤기 없는 입술을 움직이며 여자는 중기의 소설을 마구 깎아내리고 있었다. 아니, 아줌마 소설에서 집 나가버린 개연성은 어쩌구요. 댁이 쓰는 게 소설이야? 그냥 돈 있고 시간 남아도는 강남 아줌마의 우스꽝스러운 수필이지. 하지만 중기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에 어제저녁에 모기에게 물린 왼쪽 팔꿈치를 벅벅 긁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 결말 부분은 생각해 두었습니까?"
소설가 선생이 중기의 프린트물을 책상에 천천히 내려놓으며, 중기에게 그렇게 물었다. 중기는 그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뭔가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그래, 결말을 쓰기는 해야지. 그런데 그 결말은 아직 중기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글쎄요, 그게 아직..."
"우선은 결말을 먼저 생각하고 써보세요. 그러면 지금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보일 겁니다."
기성 작가의 눈이 다르긴 다르구나. 중기는 이제 더는 자신의 소설을 써내지 못하는 작가 선생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중기에게는 저 선생의 소설집이 있었다. 선생이 처음으로 써낸 장편소설이었다.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던 단편소설집에 비해, 선생의 장편소설은 솔직히 별로였다. 그냥 별로가 아니라, 아주 형편없었다. 이야기는 늘어지고, 별다른 주제 의식도 없었다. 그저 분량 채우기에 급급한 소설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중기는 선생의 수업을 들으려고 그 소설책을 샀다. 그리고 선생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그러고는 그 소설책을 책장에 꽂아놓으며 다짐했다. 나는 저런 소설은 절대로 쓰지 말아야지. 저런 소설을 썼기 때문에 선생은 작가로서 실패했고 잊혀졌다. 그리고 이제는 문화센터 강의와 이런저런 강연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6월이면 이 강의도 끝나네요. 지금까지 써온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다들 궁리들 하세요."
소설에는 끝이 있다. 중기는 이 소설을 끝낼 수 있을지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모호했다. 중년 남자에게 닥친 생의 위기에 매혹될 독자가 과연 있을까? 독자는 커녕 이런 소설을 공모전에 냈을 때, 이걸 끝까지 읽어줄 작가나 평론가도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동시대성이 중요한 거겠죠. 20대 젊은 여성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내면 됩니다. 그런 게 어떻게든 팔리니까요. 그걸 못해서 나도 이 모양이지만."
"선생님, 그런데 지금도 소설을 쓰고 계십니까?"
"그럼요. 매일 밤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나는 밤에 글을 쓰는 게 편해서. 물론 뭔가를 써내는 날은 드뭅니다만."
중기가 공모전에 낼 소설을 고민한다는 말에 소설가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중기는 강의실 문을 나서는 선생의 굽은 등을 바라보았다. 중기는 선생이 왜 아직도 소설을 쓰는지 궁금했다. 선생이 소설을 완성한다고 해도 선생의 책을 내줄 출판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의 글이 빛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그럼에도 선생은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었다. 설마 선생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닐 터였다. 어쩌면 저런 것이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르겠군. 중기는 혼자서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