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너무 똑같.‘.‘
그때 일어났던일이 새록새록 기억나면서 비교한다.
그리고 정희진샘이 요즘 어떤글을 쓰시는지도 너무 궁금하다. 십년전 이야기를 또해야돼 이럼시롱.
김어준 끊었는데 mb시절 떠올리니 다시 들어야될꺼같고.

본격적으로 뻔뻔함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MB 정권 초기 장관 인사 청문회였다. 적반하장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는 소통 불가 상태. 모 장관 후보자는 자녀의 의료 보험료 미납이 문제가 되자 "미국에서 공부하고 나중에 한국에 들어와서 애국할 애를 격려하지는 못할망정……"이라며 눈물을 보였고, 땅 투기 의혹을 받은 후보자는 "땅을 사랑할 뿐"이라고, 건물 수십 채를 소유한 후보자는 "남편의 사랑의 선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뻔뻔함은 자기 보호를 위한 위악(僞惡)이 아니다. 진정성 넘치는 자기 확신이다. 또한 이들은 약간의 조증(躁症) 상태로 자신감 넘치는 즐거운 생활을 한다. 상대가 강자냐 약자냐에 따라 얼굴 표정이 급변하는 ‘재능’도 있다. 이들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건강하다. 정신병은 뻔뻔한 사람에게 피해 입은 착한 사람들이 걸린다. 자신의 지나친 자신감을 불편해하는 이들을 무능하다고 비웃으며 성공에 강한 집념을 보인다. 사과나 양보를 굴복으로 생각한다. 양심과 윤리, 부끄러움은 자신의 질주를 방해하는 도로의 불필요한 표지 같은 것이다.
낯선 시선 : 메타젠더로 본 세상 | 정희진 저
노약자석의 경우 장애인, 임산부, 노인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그들의 권리다. 당연한 권리를 상대방이 선심을 베푼다고 주장하며 고마워할 것을 요구한다면 불쾌감을 넘어 억울한 일이다. 배려나 관용은 ‘잘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베푸는 선의가 아니다. 배려는 동등한 적대자(適對者 혹은 敵對者)와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윤리다.
낯선 시선 : 메타젠더로 본 세상 | 정희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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