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출판 위기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읽어 왔습니다. 그 모든 논의에 독자에 대한 경의가 공통적으로 결여돼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이것은 출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위기론‘의 화법에서 드러납니다.
많은 사람이 출판 위기의 원인을 자연스럽게 독자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젊은 사람의 문해력이 저하해서‘, ‘학교 교육이 실패해 지적으로 쇠퇴해서‘, ‘스마트폰과 전자책 등 전자 기기로 돌아섰으니까‘ 등의 설명 기저에 흐르는 것은 독자는 ‘가능한 한 싸고 입맛에 맞고 지적 부하가 적고 자극적인 오락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선입관입니다. 즉 ‘독자란 소비자‘라는 발상입니다. - P169

"독자는 소비자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싸고, 가능한 한 입맛에 맞고, 가능한 한 지적 부하가 적고 자극적인 오락을 추구한다." 이렇게 독자를 내려다보는 관점 자체가 최근 출판 위기의 본질적 원인이 아닐까요. - P171

전자책 서비스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독자도 독자로서 인지해 편의를 배려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왔을 때 곧바로 접속해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인 거죠. 지금까지 독자로 인지되지 않았던 사람들을 독자로 인지한 것. 그것이야말로 전자책의 최대 공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P173

글을 쓰는 사람이 글로 안정적인 생계를 꾸리고 싶다면 일단 해야 할 일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 과금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독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 P177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작품을 통해 기쁨을 누릴 수있는 것‘과 ‘가능한 한 오랜 기간 작가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지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곤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일은 종종 ‘정답‘에 다다르는 것 이상의 지적 이익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 P180

문제는 많은 사람이 책을 상품이라고, 출판을 상거래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원리적으로 책은 상품이 아니고 출판 사업은 돈벌이가 아닙니다. 저는 이상론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 P183

저작권이란 어떤 일이 있어도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P187

책에 한해 말하자면 ‘독자는 없지만 가치 있는 책‘ 같은 건 없습니다. 책은 읽는 사람이 없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작권에 관해서 논하는 많은 사람이 문제로 삼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사는 사람‘입니다. 독자가 아니라 구매자가 문제인 거죠. - P189

타인이 독창적으로 고안한 것을 통해 일군 성과를 타인이 모방하고 복제하여 부를 얻는 것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혁신가에 대한 경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자신이 손수 노력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타인이 만들어 내는 것을 기다려 그것을 훔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는 구조적으로 ‘손수 노력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자‘는 의욕이 파괴됩니다. - P191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매체가 옮겨갈 때, 책과 만나 책을 읽어 나가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했던 기능의 무언가가 상실됩니다. 저에게는 그 상실된 무언가가 ‘잃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종이책이 없어지지 않으리라 보는 이유는 비용이나 접근성이나 휴대의 편리함과는 전혀 무관한 차원의, 인간의 본연적 삶 속 힘의 사활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 P202

출판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독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독자가책을 계속 읽을 수 있도록, 더불어 문해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겠지요. 높은 문해력을 가진 독자를 수백 명 수천 명 만들어 내어 그들이 지갑을 열고 처음 책을 구매할 때 그 선택을 받는 책을 만드는 것. 그것이 출판인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면 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책장에 꽂아 두는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일까요? 그 일이 의무처럼 관념화된 게 아닌가 하는 것이 제 가설인데, 이유인즉 이렇습니다. 그 나름의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넓은 서재와 응접실을 갖춘 집에 살게 된 사람에게는 ‘자신이 읽지 않은 책에 둘러싸여 만년을 보낼 의무‘가 부과된 것입니다. 그런 암묵적 규칙이 있을 겁니다. 자신이 읽지 않은 책은 ‘가시화된 자신의 무지‘이기 때문이죠. - P150

기시감을 갖고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다름 아닌 지금 이 책을 읽을 것이 먼 옛날부터 숙명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감각에 사로잡히지요. 그것은 가장 행복한 독서 체험입니다. ‘문자 읽기‘란 아마도 그런 것일 겁니다. - P1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인의 탄탄한 층이란 책에 관여한 모든 사람이 절실히 바랄 만할 일입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은 살아 있는 독서인 층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이 장치 때문에 ‘자신에게 들어와야 했던‘ 얼마간의 인세가 줄어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작가가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 P139

책장에 어떤 책을 어떻게 꽂느냐 하는 문제에는 수행적인 목적이 동반됩니다. 저는 결코 산 순서대로 꽂아 둔다든지, 저자명을 알파벳순으로 분류해 꽂아 두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기묘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책을 사서 순서대로 꽂는 특이한 사람으로 여겨 달라‘는 욕망에 지배되고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 P141

인간은 자신이 달성한 일에 관해 종종 ‘바람‘과 ‘사실‘을 혼동합니다. 똑같은 일이 책장에서도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도 자주 경험하는 일인데요. 우리 집에 와서 제 책장을 본 사람들은 제가 거기에 있는 책을 전부 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죠. 설마 그럴 리가요. - P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국적으로 대학 입학시험이 재개되었는데, 10년 동안 놓친 기회를 보상해주기 위해 응시 연령 제한을 37세로 상향했다. 역사상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이 시험에 약 600만 명이 응시해 5퍼센트만이 대학에 합격했다. 이 ‘77학번‘은 여전히 주목할 만한 인구 집단으로 여겨진다. - P187

하지만 비판자들은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문화대혁명은 비판하면서 대약진운동은 왜 비판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들은 당이 1957년의 반우파투쟁을 부인하기를 원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혁명 자체를 부인하기를 원했다. 당과 국가 지도자들은 (문화대혁명 기간에) 삶이 나아진 노동자들부터 심한 고초를 겪은 지식인들까지 모든 중국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결국 중국은 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과거를 다루는 데 (다른 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불만을 야기할 만한 여러 제한을 두었다.
이런 제한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당이 보낸 신호는 분명했다. 중국공산당은 다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마오쩌둥과 4인방에게 최대한 많은 책임을 전가한 뒤 모든 사람들에게 ‘미래를 바라보자‘고 촉구한 것이다. - P191

6월 4일 베이징 대학살 이후 당은 정치적 장악력을 회복하더니 문화대혁명을 이전보다 가볍게 대중적으로 다룰 수 있게 했고, 행복했던 시절로 문화대혁명을 기억하는 전례없는 향수의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 P196

중국은 문화대혁녕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가 커질수록 좋든 나쁘든 마오쩌둥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P2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으며, 문화대혁명은 사회공학에서의 대담한 실험처럼 보였다. 서구에서 마오쩌둥에 열광한 사람들은 중국이 서구 자본주의나 소비에트의 하향식 계획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의 길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서구의 시위대는 홍위병의 에너지에 감탄했고,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는 마오쩌둥주의의 슬로건을 차용했다.(중략) 계급투쟁, 사회주의의 의미, 혁명운동의 미래 등 문화대혁명의 이슈는 중국 밖에서는 꽤 원대하게 보였다. 하지만 중국 내부를 들여다보면 근저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정치 문제와 흡사했는데, 쌓여가는 불만, 불만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새로운 정치적 거래와 같은 것들 등이다. - P155

많은 서양인들은 중국이 세계혁명의 요체가 되기를 기대했다. 또다른 사람들은 중국을 단순하게 불평등으로 갈라진 현실세계에서 일종의 도덕적 힘으로 보았다. - P157

1970년까지 베트남, 북한, 파키스탄, 알제리, 알바니아를 제외한 중국에 우호적인 정부는 소수에 불과했다. 중국은 각국의 정부보다는 세계 ‘인민‘들의 사랑에 의존했지만 인민은 군대나 무역을 통제하지는 않는다. - P167

그 모든 실책에도 불구하고 마오쩌둥주의자들은 이후 이어진 급속한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될 물리적인 공장시설과 인적자원을 구축했다. 자국을 현대 세계로 이끌고, 문맹을 근절하고, 만성질환을 퇴치하고, 산업화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한 혁명가들의 공헌을 깎아내리는 것은 비뚤어진 심보이다. 마오쩌둥주의 중국의 차고 넘치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경제 호황은 국가적·사회적 해방을 포함한 중국의 성과 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문화대혁명이 경제 분야에서 좀더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문화대혁명을 중국의 발전에서 잃어버린 10년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에야 이전에는 없었던 더 큰 국제적인 기회를 발견했다. 중국과 세계자본주의의 경제적 재통합은 세계자본주의가 중국의 방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할 때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조건은 1960년대 중반의 소규모 세계경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 P177

개혁 프로그램이 경제를 아무리 자유화했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개혁개방은 자본주의에게 나라의 문을 활짝 연 순진한 개방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국가가 주도한 모험이었다. 문화대혁명을 포함한 중국의 혁명은 중국이 더 넓은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중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중국이 돈을 받고 세계자본주의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었으며, 초기 마오쩌둥주의자들이 정치 캠페인을 동원해가며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려고 했던 노력과 매우 비슷하다. - P178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중국이 파산한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를 구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한때 혁명의 배후 지원자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중국이 세계자본주의가 세계에서 안심하고 번성할 수 있게 만드는 중국이 된 것이다. - P1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