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학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면 당연히 영문 석사 졸업 증명서가 필요한데 내가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는 것처럼 대응해서 놀랐다. 매뉴얼에 없었던 모양이다. (중략)  매뉴얼대로만 대응하는 답답한 일본 경험담은 경험해 본 사람끼리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유도리‘가 없는 일본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다가도 "그래도 일본이 예측 가능성이 있는 건 좋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될 때도 있다. 사실 장점도 있다. 매뉴얼대로 할 것이라는 믿음은 소비자 입장에서 손해를 볼까 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편한 부분도 있다. 특히 자동차 수리 같은 경우가 그렇다. 적절한 금액을 알기 어려운 분야의 경우 일본에서는 매뉴얼대로 계산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 P175

일본에서도 ‘매뉴얼 인간‘이라는 말은 나쁜 이미지다.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실제로 한국보다는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리스크 회피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행동으로 뭔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 P177

일본에 비해 한국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대통령선거와 정권 교체가 있다는 것이 큰 차이다. "일본은 직접 총리를 뽑지 않는데 그래도 괜찮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이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총리는 국회의원 중에서 국회 의결로 선출된다. - P181

큰 재해를 겪고 나서 국민들은 다이내믹한 정치보다 경험이 많은 자민당에 맡기고 큰 실수 없는 정치를 원하게 된 것 같다. - P185

자민당 지지자 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 지지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다른 정당보다 믿을 수 있다", "지금까지 정권을 운영해 온 경험치가 장점이다" 같은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상 유지라는 보수적인 생각이 지배적이다.
한일을 비교하면 한국은 새로운 일에 도전적이고 일본은 리스크 회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P185

리스크 회피부터 생각하는 일본 방식은 답답할 때도 많지만, 큰 재해를 여러 번 겪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막상 가장 큰 리스크로 보이는 원자력발전소가 일본 같은 지진이 잦은 나라에 많은 이유는 모르겠다. 일본 국민은 원전 리스크는 왜 피하려고 하지 않는 걸까. - P186

일본에는 ‘냄새나는 것에 뚜껑을 덮는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나쁜 일이나 실패, 추문 등 세상에 알려지지 않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하지 않고 일단 감추는 것을 뜻한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잘못을 감추려고 하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만, 일본에서는 국민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가려는 경향이있다. - P188

그 내용이 무엇이든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 차갑다. 그런 아빠가 참여한 반대 운동도 결국 이긴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정부에 불만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기보다 조용히 포기해 왔다. - P194

일본 사람에게 종교를 물어보면 60퍼센트 이상이 ‘무교‘라고 답한다. 그런데 종교와 별로 상관없이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새해에는 신사에 하츠모데(첫 참배)를 가는 사람도 많다. 무교라기보다 사실 여러 종교를 조금씩 믿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 P196

이렇듯 ‘무교‘라고 하면서 불교도 기독교도 습관처럼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종교관은 세계적으로 봐도 희한한 종교관이다. 이는 일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야오요로즈의 신‘을 믿기 때문인 것 같다. 800만의 신. 일본에서는 예부터 산, 바위, 나무 등 자연뿐만 아니라 화장실에까지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무수의 신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부처님과 하나님을 다 믿는다고 해도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 P200

일본 사람들이 야오요로즈의 신을 믿는 건 자연 재해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대상이 뭐든 빌고 싶고, 빌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 P203

국가 신토란 메이지 시대 정부가 천황과 신토를 결합시켜서 천황을 아라히토가미로 모시게 만든것이다. 천황 숭배를 의무화하고 태평양 전쟁 때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래서 국가 신토는 전후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인해 폐지됐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믿는 전통적인 신토는 국가 신토는 아닌데, 그 안 좋은 역사 때문에 신토를 믿는다고 말하기가 불편한 것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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