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에게 이런 버릇이 있다. 심을 때는 일할 시간이 많다는 듯 신이 나서 사방에 씨를 뿌린다. 뿌리고 나면 돌볼 기운이 없어 제멋대로 자라거나 풀에게 잠식되도록 내버려둔다. 아니면 아예 버리고 떠나버린다. 이 거대하고 꼴 보기 싫은 농작물을 대지에 팽개친 채. - P135

미처 끝내지 못한 한두 가지 일을 겨우내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매년 눈이 내리기 전에야 알아차린다. 겨울이면 한 해의 일을 내려놓고 나처럼 시린 손으로 자신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어루만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P144

사람은 늙으면 봄이 오기를 그토록 갈망한다. 봄이 와도 자신은 새순 하나도, 꽃잎 반쪽도 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봄은 그저 대지에, 다른 이의 삶에 찾아올 뿐이다. 그래도 그는 봄을 간절히 기다리고 추위를 두려워한다. - P149

이제 와서 보면, 사람의 생에서 자라는 잡초는 호미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속에서 몇 년을 키워온 것들은 온 들판에 무성한 잡초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이 누렇게 시들 때는 어느 것이 잎을 몇 장 더 내고 열매를 몇 알 더 맺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음자리야말로 가장 머나먼 황무지다. 그곳을 한평생 잘 가꾸는 사람은 몹시 드물다. - P162

사실은 사소한 일 하나가 사람의 평생을 소진할 수도 있고,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가 사람의 평생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찾지 못하는 그 사람들이, 이런저런 사소한 일 한두 가지를 마주하며 알게 모르게 한평생을 흘려보낸다. - P166

집을 잃기란 참으로 쉽다. 사람이 떠나면 집은 곧 빈집이 된다. 집안의 공기나 간신히 발이 묶여 있지, 다리 달린 가구는 너를 기다릴 리 없다. 바퀴 달린 수레도 너를 기다릴 리 없다. 네가 문을 잠그면 사방이 다 길이 되어 모든 것이 떠나버린다. - P173

아버지 어머니, 당신들의 목소리는 결국 자식들의 목소리가 되어 세대와 세대의 골짜기에서 오랫동안 울려퍼질 거예요. 우리가 젊은 시절 아무리 말을 안 듣고 어머니 당부와 아버지 분부를 거역했다 해도요. 결국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 속으로 돌아가 당신들의 말씨로 우리 스스로는 완전히 새롭다고 여기는 인생을 표현하고, 당신들 이야기 속에 있었던 모든 일을 하고 있어요.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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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죽음을 좋은 일로 여긴다. 우리는 아직 죽을 자격이 없어서 살고 있는 거다. - P80

일이란 사람이 하니까 생기는 것이다.
어떤 일은 하지 않으면 그냥 없어진다.
하기 시작하면 평생에 걸쳐 해도 끝이 없다. - P108

똑똑한 자와 어리석은 자 모두 자기 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남에게 간섭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똑똑한 사람에게 지혜와 재주를 마음껏 발휘하게 해준다면 바보에게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맘껏 펼칠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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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면 내가 그 나이에 이르렀을 때 무슨 재미로 살지 명확히 보인다. 한 사람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이 마을에는 그의 온 미래가 빤히 펼쳐져 있다. 그가 열다섯이나 스무 살일 때에는 서른 살, 쉰 살, 일흔 살인 사람들이 그의 모든 미래를 펼쳐 보인다. 그가 여든이 되면 마흔 살, 스무 살,열 살짜리들이 또 그의 모든 과거를 재현한다. 그는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없다. 그들보다 나을 수도 처질 수도 없다. - P71

큰일을 이뤄낸 많은 사람이 한두 가지 평범한 일을 못 해봤거나 못 해냈다는 사실을 임종 직전에야 알아차리고 아쉬워하곤 한다. 평범함에 다가가려면 기나긴 일생 동안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시간을 나처럼 길 하나 또는 무성한 풀밭 또는 소 몇 마리를 사이에 두고 마을 사람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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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통신은 일본에서 중년 숫총각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가 경기 침체기와 겹친다고 분석했다. 한 결혼 문제 전문가는 "많은 일본 남성이 경제적 근육을 잃자 자신감까지 상실했다"라고 진단했다. 지난 20년간 이들이 안정적인 정규직을 찾느라 정력을 쏟는 과정에서 ‘남성성‘이 희생됐다고 덧붙였다. - P66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억제하는 일본 문화는 강렬한 변신 욕망을 자극한다. 일상이 규범과 매뉴얼로 촘촘히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탈출해 다른 비일상적 자극에서 자신을 찾고 싶은 욕망이 더강하다는 것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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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사람 가랑이 밑에서 오랫동안 달렸다고 그 말을 자기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말이 보기에 사람은 그저 등에 실린 물건일 뿐이다. 어쩌면 말은 진즉부터 사람을 자기 몸의 한 부위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 P25

세월이 흘러 마침내 무언가가 등 뒤에서 슬금슬금 나를 따라잡았다. 모두 엄청난 것이지만 젊을 때는 대수롭게 여기지도, 마음 졸이지도 않았다. 어느 날 돌아보니 어느새 그것들이 지척에 와 있다.
그제야 나는 지난 세월 쉬지 않고 달린 말과 말 탄 사람을 이해한다. 말은 사람에게 채찍질당해 달리는 것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말은 스스로 달아나는 거다. 말은 태어나자마자 달아나기 시작한다. 사람은 그저 말의 속도를 빌려 자기 운명의 액운에서 벗어나려는 거다. - P25

거창한 일들을 마무리하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 싶다. 그는 사람들 뒤에 멀찍이 떨어져 그들이 다 했다고 여기는 일을 마저 한다. 수많은 일이 이런 식이다. 시작한 사람은 잔뜩 있지만 막판에 이르면 어느 한 사람 몫이 되고 만다. - P33

내가 풀과 나무의 몸에서 얻은 것은 사람의 몇몇 이치일 뿐 초목의 이치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초목을 이해한 줄 알지만 실은 나 자신을 이해했을 뿐이다. 초목에 대해서는 통 모른다. - P51

둔덕 하나를 택한 쥐는 둔덕 꼭대기에 올라 멀리 내다보며 스스로 높은 곳에 있다고 며기지난, 이 조그만 둔덕이 커다란 구덩이 속에 있는 줄은 모른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근시안적 행태는 쥐는커녕 사람도 피할 길이 없다. - P55

바삐 움직이는 이들 수확자를 보면 풍작의 기쁨은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만물의 것임이 느껴진다.
우리에게 경사스러운 날에 쥐가 흐느끼고 새가 슬피 운다면, 우리의 기쁨은 얼마나 쓸쓸하고 거북할까.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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