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 천황이 생전에 퇴위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죽음을 둘러싸고 일본 사회가 정체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쇼와 천황 때가 그랬다. 1988년 가을부터 쇼와 천황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축제 같은 행사가 잇따라 취소됐다. 방송에서는 오락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쇼와 천황이 서거했을 때는 천황에 관한 프로그램 일색이 됐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일본 전체의 분위기가 침체되는 상황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 P210
헤이세이 천황은 ‘평화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11차례나 오키나와를 방문한 것도 그런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큰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그의 아버지 쇼와 천황은 전국을 순행하면서도 한 번도 오키나와를 방문하지 않았다. 헤이세이 천황은 1975년 황태자였을 때 처음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중략) 일본에도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작아진 데에는 헤이세이 천황이 보여 준 평화 지향적 태도도 큰 역할을 했다. - P213
그런데 한국에서는 천황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천황의 ‘전쟁 책임‘이라는 관점에 집중해서 보도한다. 한국 언론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지만, 그러다 보니 일본 국민들의 감정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사건이 일례다. 이 사건이후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 P214
천황의 존재감은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특히 에도시대 말기부터 존재감이 커졌다. 에도 시대는 쇼군을 정점에 둔 봉건 사회였고 천황의 존재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계급이 명확했고 사무라이가 제일 높았다. 역사 시간에 ‘사농공상‘이라고 배우는 계층 구분이 있다. 위에서부터 무사(사무라이), 농민, 장인, 상인의 순이다. (중략) 한국에서도 ‘사농공상‘이라는 말을 쓰지만 한국에서 ‘사‘는 무사가 아니라 선비라고 들었다. 이는 아주 큰 차이다. - P217
나는 천황에게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던 것이 한국을 포함한 전쟁과 식민 지배로 피해를 입은 나라들과 지금까지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이 패전한 뒤 80년이 지나 버린 현재로서는 천황제를 부정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 - P224
천황이란 존재는 신화와 실화가 섞인 것이다. 그런데 진무 천황이 실제로 있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의외로 많을 수 있다. 왜냐하면 진무 천황의 묘가 나라현 가시하라시(橿原市)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진무 천황의 묘가 지금의 장소로 확정된 것은 에도 시대 말기인 1860년대다. 서구 열강 국가들이 몰려오는 속에서 천황의 정통성을 확립함으로써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 같다. - P226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에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하고 메이지 천황이 즉위한 후 천황 중심의 근대 국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에도 막부를 타도하고 성립된 메이지 정부는 천황의 존재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천황을 사람의 모습을 한 신 ‘아라히토가미(現人神)‘로 신격화했다. 그런데 메이지 초기에는 천황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지방을 순행하면서 천황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천황은 근대화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앞장서서 양복을 입고 소고기를 먹는 등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며 일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 P230
정리하면 신화로부터 시작한 천황이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헤이안 시대까지, 쇼군이 정치의 중심이 된 것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다. 메이지 시대 이후다시 천황이 정치의 중심이 됐다가 1945년 패전을 거쳐 주권자는 국민, 천황은 상징이 됐다. - P233
<기미가요>‘에서 ‘기미(君)‘는 ‘천황‘을 뜻한다. 즉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다. 원래가사는 10세기의 와카(和歌)에서 유래했고 ‘기미‘는 ‘그대‘라는 뜻으로 천황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메이지 이후에 주권자인 천황의 치세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가사로 해석되었다. 패전 후 주권자가 국민으로 바뀐후에도 여전히 <기미가요>가 국가로 남은 것에 불편함을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 P236
왜 애국심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면, ‘나라를 위해‘라는 명분으로 전쟁터에 나가 죽이고 죽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중략) 2021년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당신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가장 낮았던 나라가 일본이다.(중략) - P-1
그런데 2006년 교육기본법 개정으로 ‘애국심 조항‘이 추가됐다.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함양한다"는조항이다. 애국심을 교육의 목표로 정하는 것에 반대하는목소리는 적지 않았다. 가치관을 국가가 법률로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P238
전전(戰前)과 전후(戰後)에 많은 변화와 단절이 있었지만, 이어지고 있는 것도 많다. 그중 하나는 ‘재벌‘이다. 일본에서는 전후 GHQ (연합군 최고사령부)로 인해 재벌이 해체됐다. 재벌이 군국주의에 가담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야스다 등 재벌에 대한 일족의 지배력이 배제됐다. 이를 교과서에서는 ‘재벌 해체‘로 표현한다. - P239
아소의 지역구는 후쿠오카다. 이곳에서 아소는 세습의원이며 재벌가다. 아소의 전직은 아소 시멘트 사장이다. 아소 시멘트는 아소 그룹의 핵심 기업이다. 아소 그룹은아소 다로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가 시작한 아소탄광이 원류다. 식민지배 당시 조선인 강제 동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회사다. - P242
국회 의원은 그 지역의 대표이므로 누가 당선되었을 때 지역에 이득이 있을지도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다.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아무리 실언을 되풀이하고 한자를 못 읽어도 그래도 아소 재벌가다. 여기에 여당인 자민당의 핵심정치인 중 하나다. 야당 의원보다는 지역에 이익을 더 줄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 P243
아소는 탄광왕의 증손, 아베는 만주국의 실권자였던 전범의 손자다. 그런 배경이 강제 징용 문제나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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