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프로야구가 시작하는 달. 국민학교 시절부터 꿈과 희망을 선물했던(정말?) 프로야구는 20년 넘도록 나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이다. 최근 몇 년동안 꼴찌를 차지했던 롯데 자이언츠가 5연승이란 행진을 하고 있어 올해는 흥분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야구의 묘미는 무얼까?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야구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야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직접 찾아간 야구장의 드넓은 잔디(인조도 있다)를 배경으로 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를 펼치고, 함께 응원도 하고 야유도 보내는 재미로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 규칙이나 선수들의 면모를 알지 못해도 무조건 재미있다. '땅' 소리 나면서 외야 관중석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홈런공을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 짜릿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 분들은 매일매일 TV에서 중계하는 야구경기나 응원하는 팀이 없을 경우 흥미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또 한 부류는 좋아하는 야구팀이 있어 그 팀을 응원하는 재미로 야구를 즐기는 경우다. 주로 자신의 연고지 팀을 응원한다. 다들 알다시피 5공화국의 3S 정책의 하나로 도입되면서 지역색을 가장 강하게 가지게 된 스포츠가 바로 프로야구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각 지역 스포츠신문의 1면은 지역의 연고팀과 관련된 뉴스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이 연고지인 롯데가 11대 1로 삼성에게 지더라도, 부산에서 발행되는 스포츠신문에는 "마해영 1점 홈런포"와 같은 1면 기사가 나가는 경우다. 자신의 연고지에 소속된 프로야구팀의 우승은 그 지역의 경사로 알고 지역의 발전으로 혹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기 쉽다. 그러나 해태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그것은 헛된 지역주의의 꿈일 뿐이다.
이들 중에는 물론 야구 그 자체의 묘미를 알고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야구팀을 응원하면서 자신의 애향심을 높이고 자부심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롯데의 이대호가 극적인 만루홈런을 쳤을 때 '울 뻔 했다'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이들의 단점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죽을 쑤고 있을 때는 관심도가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요 몇 년 사이 부산이 그랬다. 부산 사람들은 요 몇 년동안 야구 이야기를 하기 싫어했다. 야구의 침체는 경제 침체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긴 몇 만명이 매일 야구장을 찾으면서 여기저기서 푸는 돈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음 부류는 스포츠로서 프로야구를 즐기는 경우다. 야구가 축구나 배구, 권투와 다른 점이 있는데, 이 점에 묘미를 느끼는 경우다. 각각의 스포츠는 나름의 매력이 있고, 그러한 매력들은 스포츠의 인기 순위를 좌우한다. 물론 스포츠는 문화적 배경과 혼합되기 때문에 각국의 인기 스포츠가 모두 다르긴 하다.
아마(고교) 야구와 프로 야구는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다. 아마 야구는 단기전이다. 토너먼트이기 때문에 결승전까지 가봤자 대여섯 경기를 1주일 정도에 끝내면 대회가 끝난다. 그러므로 총력전이 될 수밖에 없어 몇몇 초고교급 투수들은 싱싱한 어깨를 혹사당한다.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한사람이 던진 학교도 있을 정도로. 여기서는 경기 운용의 묘미가 많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도 아마야구는 나름의 풋풋함과 어설픔으로 프로야구와는 또 다른 맛을 낸다.
프로야구는 다르다. 1년에 150경기 이상을 치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을 어떻게 잘 쓰는가가 중요해진다. 선발투수들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4-5일만에 등판을 하게 되고(염종석 선수의 경우 어깨부상의 후유증으로 하루 100개를 던지고 나면 힘들어서 며칠 동안 앓는단다), 투수들의 업무는 분업화되어 중간계투, 마무리투수와 같은 보직을 가지게 된다. 구원투수를 내세울 적당한 시기를 정확히 판단해야 하며, 축적된 데이터를 참조하여 각 투수나 타자에게 강한 선수를 내세운다.
공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왼손 투수에는 오른손 타자가 강하고, 타격이 부진한 이유 뒤엔 타격폼을 어설프게 변화시킨 시도가 있으며, 주자가 1, 2루에 있을 때는 3루측으로 번트를 대야 하며, 무작정 홈런치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주자를 루상에 많이 보내는 것이 유리하며, 투수의 투구 패턴을 간파하여 도루를 실행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부상선수만 없다면 오늘 경기나 내일 경기의 용병술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그래서 그렇게 한 시즌을 치루는 프로축구의 경우와는 달리, 프로야구에서는 매 경기에서 매번 다른 용병술과 작전을 구사해야 하고 다양한 변수가 나타나 재미를 증폭시킨다. 이런 맛을 아는 팬들은 그야말로 야구의 진정한 맛을 아는 사람들이다.
야구는, 특히 프로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고 부르고 싶다. 야구는 무수한 숫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스포츠다. 축구가 기껏해야 득점, 어시스트, 골키퍼의 경기당 골허용률 등의 순위가 나오는데 그쳐 기록의 스포츠라 부르기는 어려운 반면, 야구는 한 경기만 끝나도 수많은 숫자의 조합이 만들어지고 그 데이터들은 각 영역별로 순위로 매겨진다.
투수 부분에서는 방어율, 탈삼진, 승률, 다승, 세이브, 홀드 등의 순위가 매겨지며, 타자 부분에서는 타율, 최다안타, 도루, 타점, 출루율, 장타율, 홈런 등의 타이틀이 있으며, 포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도 도루 저지율이란 숫자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안타를 치느냐 마느냐에 따라 하루하루 뒤바뀌는 타격 순위를 지켜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물론, 시즌 종반 각 부분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 타격 1위를 달리는 타자를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는다던지, 억지로 승리투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5회 말 2사에 선발투수를 바꾼다던지 (야구를 아는 사람은 대략 무슨 소리인지 안다.)하는 부작용도 나오지만, 이런 묘미가 야구의 잔재미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숫자 놀음으로 어느 선수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하고, 어느 선수는 훨씬 좋은 조건으로 다른 팀에 팔려가기도 하며, 홈런왕이란 이름으로 광고세계에 진출하기도 한다. 또, 누구는 초라한 성적 때문에 야구판을 떠나서 어떤 음식점을 차릴지 고민도 하며, 작년 대비 20% 임금삭감이란 시련을 겪으며 2군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100년이 넘는 프로야구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집적하고 있는 데이터들은 우리와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작년 일본에서 건너간 이치로가 수립한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다시 쓰게 했으며, 일본인들의 자부심을 드높였다. 통계가 많이 축적되어 있는 만큼 100년 이상의 기록을 깬다는 것은 때로는 위대한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몇 년 전 최다경기 연속출장 신기록을 세우고 스스로 기록을 중단시킨 볼티모어의 칼 립켄 주니어는 그가 보유한 숫자의 위대함에 겸손한 인간미를 더해 온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미국 MLB 중계를 보면 아래 자막으로 퀴즈를 내곤 하는데, 그 퀴즈는 한국의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저스 구장에서 가장 많은 3루타를 만든 매리너스의 타자의 순위는 어떠한가? 1970년 이후 뉴욕 양키스를 대상으로 가장 많은 승리를 엮어낸 투수는 누구인가? 맘만 먹으면 무궁무진한 데이터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물론 흥미 없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지만.
남편이 휴일에 외출도 마다하고 집에서 야구 중계를 보고 있을 때, 넌지시 물어보라. 넋 놓고 야구를 수동적으로 보고 있다면, 그것은 시간 때우기와 다름 아니다. 그러나 야구를 분석적으로 바라본다면,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탐험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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