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가는 우리집 옆 슈퍼마켓은 24시간제로 운영된다. 카운터를 보는 여직원도 교대로 돌아가면서 일한다. 요즘같이 추운 날 출입구 옆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주로 중소기업에서 단체로 맞춰 입는 군청색 잠바를 입고 있다.

그런데, 아무 관심없이 지나치기 마련인 카운터 직원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이 있다. 주로 카운터를 보는 여직원은 평범하다못해 펑퍼짐하고 못생겼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으나 이 여직원은 그야말로 출중한 외모를 지녔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군청색 잠바를 입어도 스타일이 산다), 목소리면 목소리. 자연스런 긴 머리는 또 어떻고.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물론 옅은 화장 이외에는 치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 정도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풍기는 외모를 지닌 여성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바구니를 들고 계산을 기다리시는 한 아주머니는 연신 '참 곱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같이 일하는 남자 직원은 한 번이라도 말을 더 걸려고 수작 걸기 바쁘다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이쁜 여자를 보면 정신 못차리는 스타일인지라 그 여직원이 있는 날이면 물건 사는 척 하면서 힐끗 힐끗 쳐다보기에 바빴고,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죄지은 듯 고개를 훽 돌리며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직원을 보면 드는 생각이 어이없게도 '기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마운 느낌마저 드니 이게 웬일인가.

물론 그리 높지 않은 학력에 따로 익힌 기술도 없으니 흘러 흘러 여기까지 들어왔겠지.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손님 장바구니에 든 상품들 바코드에 찍는 일이 대부분인데 재미는 또 있겠나. 이 일을 자부심 느끼면서 하는지 당장에 때려치우지 못해 안달인지는 몰라도, 일단 그 외모에 이런 일을 최소 몇개월동안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룸싸롱엔 대한민국에서 이쁘다고 하는 애들은 다 모였다고 하지 않나? 굳이 그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요즘은 조금이라도 이쁘게 생기면 연예계니 모델이니 외모로 한 몫 하려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이들의 직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학벌도 딸려, 외모도 받쳐 줘, 마음만 크게 먹으면 어디 가서 외모로 벌어먹을 수 있는 길이 널려 있는데. 그것도 박봉인 카운터일보다 재미도 있고 크게 돈을 모을 수 있는 일이 많고 많을텐데.

이 환락의 시대에 아직도 공장에서 조립 생산 활동하면서 열심히 일하거나 외로이 슈퍼마켓 카운터를 지켜내는 젊은이들이 갑자기 이뻐 보인다.

그 직원이 내 글을 본다면 분노할 지도 모르겠다. 외모가 정신을 지배하냐고, 자기는 자기 길을 묵묵히 갈 뿐인데 니가 뭔데 기특하다느니 고맙다느니 운운하는가 라고. 그렇지만 고마운 마음이 드는건 사실이다. 앞으로도 계속 물건사면서 힐끗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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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1-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두 슈퍼마켓의 이쁜 아가씨를 보면 넋이 나갑니다. 게다가 상냥하기까지 하면...금상첨화지요. 서림님의 고운 글도 좋구요, 그 여직원이 꾸준히 그곳에 있어줘서 더 좋구요~ ^^

깍두기 2005-01-26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계속 물건사면서 힐끗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ㅎㅎㅎ 서림님, 전 갑자기 님이 아주 좋아질려고 합니다^^

엔리꼬 2005-01-2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여자분이 그러신데 남자인 저는 어떻겠습니까? 이건 남자의 본능이라서 결혼 유무와는 관계도 없습니다.
깍두기님~ 유부녀와 유부남끼리 서로 너무 좋아하면 비극이 됩니다. 적당히~ 적당히~

세실 2005-01-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솔직하십니다 그려~ 흐흠. 하긴..저도 뭐...울 도서관 공익이 4명이 있는데 그중 한명이.... 일이나 생김이나, 과묵함이나...아주 똑 떨어지네요....그러면...그저 흐뭇해서 바라본답니다~

털짱 2005-02-06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글이라 뒤늦게 추천 한방 날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