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바보상자라 하지만, 그래도 나는 TV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시간 때우기로 채널만 빙빙 돌려대는 행태를 매일 지속하지 않는다면 난 TV로 충분한 인생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KBS 인간극장이란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여러 인생, 특히 남과는 사뭇 다른 인생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즐겨보곤 한다. 저번주에 소개된 사람들은 서울대, KAIST를 각각 졸업한 한 부부였는데 그들은 답답한 도시의 생활을 다 접고 시골, 그것도 적막한 산골에 들어가서 살고 있었다. 앞 부분을 놓쳤기 때문에 갑자기 왜 이런 생각으로 이런 산골에 들어와서 사는지, 지금은 어떤 벌이가 있어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그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하며 정말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며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쁜 도시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기 힘든 여유와 삶의 자세가 부러웠다. 니어링 부부가 한국에 와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이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 누구가 돌을 던지랴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kbs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엿본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그들이 배운 지식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나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는 국립대를 다녔다는 것은  배운만큼 사회에 환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배운 것을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데 사용하지 않고 썩힌다는 것도 죄라면 죄란다. 이들이 하필이면 수재 소리들으면서 좋은 학교 나온 것이 오히려 비난을 받는 조건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 그것도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 것, 그래서 적절한  세금도 지불하지 않는 것. 아이를 낳지도 않고 늙어서 후세들에게 부양의 짐만 늘리는 것도 모두 그들이 색안경을 쓰게 하는 요인이 된다. 참된 인간의 육성이 인적자원의 개발로 변해버린 시대. 이제 우리의 배움과 지식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국가와 사회에 종속되어 버린 것인가. 또 과연 그런 생활만이 국가와 사회에 정말 필요한 개인의 삶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러 의견 중 주인공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딸을 둔 한 어머니의 글이 가슴에 와닿아 그 글을 옮겨본다. 방송은 끝났지만 그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쓴 분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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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준씨보다 두살 위인 아들과 길연씨보다 한살 아래인 딸을 둔 환갑을 바라보는 여성입니다. 치과 치료를 마치고 목요일에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이 프로를 끝까지 보고 싶어서 강원도 내 집에 가는 것도 미루고 서울에 있읍니다. 거기는 길연씨네 처럼 TV도, 인터넷도 안되고 게다가 핸드폰도 안터지는 심심산골이거든요. 사람들 반응도 보고 요즘 젊은이들 생각도 알고싶어 계시판에 들렀더니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엘리베이터에 사람을 미리 태우고 모두 안쪽벽을 향해 서있게 한 후 새로운 사람이 탓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관찰 했더랍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처음엔 어리둥절 하더니 다른 사람과 똑같이 안쪽 벽을 향해 서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이 하려는 경향이 있나봅니다. 지금 범준씨와 길연씨를 안좋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이들 부부가 다른 사람처럼 안쪽을 향해 서지 않고 문쪽을 바라보고 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부부가 문쪽을 향해 서있는 것을 보고 영혼이 깨어 있는 젊은이들이로구나 하고 느꼈읍니다. 이들은 문을 향해 서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몇층을 지나가고 있고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게시판 글에 보면 비난의 이유중 하나가 공부시키느라 그많은 투자를 했는데 사회환원을 안하고 이기적으로 자기네 좋은대로 산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이 오래 못견디고 곧 서울로 올거라는 예언도 많더군요. 나는 이들이 설혹 산골 생활을 접고 도시로 돌아간대도 무언가 결과물을 갖고 오리라고 봅니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서 불과 2년밖에 안 살았지만 백여년이 넘도록 한국의 나까지 감동하며 읽게 만든 '월든'이라는 사색의 결과물을 남겼읍니다. 경제학 교수였던 니어링 부부도 50여년을 농사일을 하며 살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읍니까. 그가 그의 지식을 사회환원한답시고 대학교수로 계속 남아있었다면 몇십년이 지나서 한국의 한 여성에게까지 감동을 주는 책을 쓰지는 못했을 겁니다. 영혼이 깨어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다 자기 몫을 하게 되어 있읍니다. 포도 농사를 지어 당장 포도를 과일로 팔 수도 있고 즙을 내어 쥬스로 팔아 돈이 되게 할 수도 있읍니다. 내가 보기에 범준씨네는 포도로 술을 담아 오래 묵혀 아주 향기로운 값비싼 포도주를 만들려나 봅니다. 충분히 익을 때까지 우리 그냥 지켜만 봅시다. 길연씨는 영혼이 맑고 범준씨는 누구보다도 영혼이 깨어 있는 분 같아 믿음이 갑니다.

길연씨네나 범준씨 부모님의 생각은 어떨까 어른들의 생각도 궁금하신 모양인데 이들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 입장인 나의 생각을 말해볼까요? 나는 내 아들이 고3일때 과외공부는 커녕 공부하는 아들 방에 먹을 것 갔다준답시고 들어가서는 아들과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었어요. 콘베어 벨트에 올린 자동차들 처럼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중학교, 고등학교에,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남들 가니까 그냥 점수에 맞는 아무 대학교에 가는 것 말고 콘베어 벨트에서 뛰어내려와 그냥 좀 놀아봐라. 네 인생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네 소질이 어디에 있는지 세상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구경꾼 입장에서 세상을 두루 구경하고 생각이라는 걸 한 연후에 대학을 가던지 스님이 되던지 하고 싶은 걸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었읍니다. 그런데 내 아들은 아직 콘베어 벨트를 타고 일류대학나와 일류회사에 다니고 있읍니다. 그러면서 시골가서 펜션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아마도 시골에 있는 내 집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아직 결혼을 안했는데 회사에서 늦게 돌아와 엎어져 자기도 바빠 마누라 얼굴 볼 수도 없는데 결혼은 해서 뭘하겠느냐고 합니다. 콘베어 벨트에서 뛰어내리는 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다. 길연씨 부부처럼 남들이 어떻게 서있던 문쪽을 향해 서있을 수 있는 지혜와 뱃짱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길연씨가 산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컨베어 벨트를 타고 있다면 아마도 저같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길연씨가 도시에서 살면서 살아주기를 기대한 것같은 어떤면에서는 축복받은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읍니다. 40년전에는 정말 흔하지 않던 여기자에, 해외주재기자에, 미국유학에, 예술가에, 대학강사까지..... 그러나 오십이 지나 강원도 심심산골에 터를 잡아 민둥산에 묘목을 심으면서 땅을 가꾸기 시작해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아름다운 숲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도시에서 한 일보다 사회와 국가와 인류에 더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 그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길연씨 부부는 함께 일궈나가니 산골인들 무엇이 두렵겠읍니까? 나는 나이들어 온전히 혼자서 산골생활을 해왔는데. 길연씨 이번 방송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곳 생활이 여의치 않게 되면 연락주세요. 저의 동네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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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1-1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참,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건 말건......

전 그 프로 한 회도 빠트리지 않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렇다고 환상을 가지고 본 건 아니고요.

마음먹기에 따라 참 다양한 삶이 가능하구나 생각하고 좋았는데......

추천하고 퍼갑니다.^^

sooninara 2005-01-1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도 있군요..전 안봐서 몰랐지만..국립대 나온 사람이 사회에 돌려주지도 않고 아이도 안낳는것을 욕먹다니..지금이 무슨 히틀러시대입니까? 우수 유전자를 남겨야 한다는것이 웃깁니다..그럼 저같은 사람은 어쩌라구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것도 재미는 있군요..

플레져 2005-01-1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극장 프로를 즐겨봅니다. 길연씨 범준씨의 삶을 만날 수 있어 좋았어요.

나라면 과연 하루종일 흙일과 집을 돌보고 나의 먹거리를 챙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품었지요. 일단은 아니오입니다. 저는 자신 없어요. 아직은 도시가 좋은 것이 아니라 도시를 떠나는 것이 불안해서이겠지요. 혼자 낙오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허영과 욕심은 아무나 버릴 수 없어요. 물론 그걸 버렸다고 해서 우상화 되거나 특별한 올가미가 씌워지는 것도 싫습니다. 그들의 삶을 침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왜 엉뚱한 의도로 몰아세우는지... 저도 추천하고 퍼갑니다!

엔리꼬 2005-01-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그렇죠 환상은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봇대로 이를 쑤시는건 말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니나라님/ 그들이 아이를 낳을 예정인지 안낳을 예정인지는 파악이 안되었습니다. 다만 이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청자 평이 그랬어요...

플레져님/ 오래간만입니다. 저도 자신없긴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에 대한 이 꿈틀거리는 욕망을 저버리는 것은 당분간은 견디기 힘들 것 같습니다. 우상화는 저도 반대합니다. 다만 너무 아름다워보였어요..

icaru 2005-01-26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방송은 못 보았지만...님의 이 글....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걸요~ 요전에 스콧니어링의 자서전을 보았던 터라...더더욱 그렇네요...

방송 보고 게시판에 비판적인 평을 했다는 분들~ 이 경우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 운운은... 좀 이해가 안 되네요...>,<

엔리꼬 2005-01-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연히 몇편만 보게 되었어요... 이해가 안되지만 참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공로는 있지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