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혼자서 마음먹었다.

한가지 먼저 이야기할 것은 내가 골프를 안치겠다는 것과 골프치는 사람이 잘못 하고 있다는 말은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골프 예찬가들의 말은 이렇다.
'열심히 일하고 난 후 주말 새벽에 드넓은 잔디밭가서 골프를 한 게임 치고 나면 몸도 마음도 아주 상쾌하다. 내가 친 공이 컵 속으로 쏙 빠져들어가는 그 느낌 그것 때문에 즐긴다. 골프가 무슨 운동이냐고 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운동이 되는지는 안 쳐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간혹 로비를 위해서 정치인들이 골프장에서 만난다던가 내기 골프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프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골프 그 자체로는 정말 신사적이고 멋진 스포츠가 아닐 수 없다. 골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돈이 적게 든다. 물론 초기 장비 구입비용이 들긴 하지만 일주일에 3-4번 가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한번 가는 것인데, 그 정도의 비용은 다른 운동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비용 조달이 힘든 사람이 하면 문제일지 몰라도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 가끔 나가는 것으로 귀족 스포츠라며 좋지 않은 눈으로 보는 시각은 편치 않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나도 대학 1학년 '레저스포츠'란 과목에서 골프를 배웠고, 골프공이 클럽에 짝짝 맞아서 뻗어가는 그 손맛 또한 일품이란 걸 안다. 물론 야외연습장에서 배운 것이지만 허리운동도 되고 숨도 가빴다. 게다가 당시에는 골프공 가득 담긴 한 바구니가 단돈 '오백원'이었다.

또한, 박세리나 박지은이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고 있는지(그런데 진짜 박찬호나 박세리가 큰 힘을 주고는 있는건지 의심스러울 때는 있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한 가지 생각하지 않은 것이 있다. '골프를 친다는 것'과 '한국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은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한국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스포츠를 넘어선 것이다. 날로 늘어나는 그 많은 골프 인구들이 모두 스포츠로서의 골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즐기는 사람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계급이 되었다. 웬만한 권위나 명예나 부를 가지고 있는 집단에서 골프 모임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집단에서 골프를 치지 않으면 이상한 눈초리를 받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골프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한다. 골프는 이제 있는 사람들만의 자존심을 넘어섰다. 그들의 문화를 따라가고 싶은 사람들이 안간힘을 써서 공유하고자 하는 문화가 되었다. 비즈니스와 접대를 위해 배우고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럭셔리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배운다. 골프는 이상하게 변질된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골프가 무슨 죄가 있는가? 골프가 없었더라도 상류층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그들만의 동질의식을 고취시키는 스포츠와 같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오히려 가장 큰 문제는, 골프치는 사람들이 제대로 모르거나 알고도 입을 닫고 있는 사실은, 그것이 지극히 반환경적인 운동이라는 사실이다.

넓은 자연환경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산과 나무를 훼손하고, 그 푸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농약을 뿌리며, 얼마나 많은 산사태와 토사유출과 지하수 오염을 유발하는지, 얼마나 많은 천연기념물들이 제 보금자리를 잃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이제는 서민들의 보금자리 바로 옆까지 치고 들어온 그 골프장. 그들의 럭셔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 좁은 땅덩어리가 말라죽어 가고 있다. 영국의 드넓은 초목지대에서 생겨난 골프는 결국 우리 땅의 맥락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가진 장점과 어느 사회에든 불가피한 '그들만의 문화'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로 인해 우리의 생활터전이 훼손되는 것 때문에 나는 반대한다.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애호가들의 숫자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또 엄청난 땅을 골프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골프장 건설 찬성론자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 고귀한 이름 '경제'를 들먹인다. 아름다운 골프장 하나에서 얼마나 많은 관광객과 외화를 불러들이는지 아느냐고. 그리고, 이 불경기에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느냐고. 이제는 콧물 달고 다니는 시골의 초등학생들도 골프를 배운다. 박세리 언니처럼 훌륭한 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서...

골프가 진정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대중적인 스포츠가 되는 그 날. 그 날은 바로 우리나라 땅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골프가 도입 초기의 정신을 되살려 극소수 계급 그들만의 스포츠로 남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내가 아는 교수님은 외국 유학시절 골프 치시기를 좋아했다. 힘든 유학시절 미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가끔 골프를 치는 것은 당시 부유하지 않은 교수님에게도 심적 부담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신 다음, 골프를 딱 끊으셨다. 주위 교수님들이 아무리 가자고 협박해도 막무가내였다. 미국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과 한국에서 한다는 것의 차이는 너무 커서 감당할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것이 재정적 이유나 시간적 여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진정한 의미의 골프 애호가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골프를 친다는 개개인의 취미나 선호의 문제를 넘어서서 이미 내가 사는 이 사회와 어떻게든 관련이 되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내가 아직까지 골프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집단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기득권층인 국회의원들의 이러한 골프장 건립 반대운동은 반갑다. 이재오, 김문수 의원의 이름을 보니 더더욱 반갑다. 진정으로...

 

여야 의원 30여명 'NO 골프' 선언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4.11.18 11:54 45' / 수정 : 2004.11.18 12:47 56'


 


▲ 무분별한 골프장 증설에 반대하는 열린우리당 안민석, 한나라당 고진화, 민노당 천영세의원 등 여야 30여명의 의원들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NO) 골프'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여야 의원들이 정부의 골프장 증설 방침에 반대하며 ‘노(No) 골프’ 선언을 해 눈길을 모았다.

앞으로 골프채를 절대 잡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한 의원은 모두 30명. 열린우리당이 안민석(安敏錫) 의원 등 12명, 한나라당이 이재오(李在五) 의원 등 8명,민주노동당은 천영세(千永世) 의원 등 소속 의원 10명 모두가 포함됐다.

이들은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토를 후손에게 제대로 물려주기 위해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규모 골프장 건설 계획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 무분별한 골프장 증설에 반대하며 골프를 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골프장으로 인해 ▲토사유출과 산사태 ▲지하수 고갈과 농약 오염 ▲산림 훼손 등 환경이 파괴되고 인근 주민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런폐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골프장 무더기 허가를 추진하고 있어 국민 갈등이 더욱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와 골프장 예정지 주민들이 ‘골프장반대공동대책위’를 구성, 시위등을 통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음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골프장 신규허가 계획을 잠정 중단한 뒤, 골프장 건설이 경기 부양과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정부측 주장과 경제적 실익 없이 환경을 파괴하고 국민 갈등만 부추긴다는 시민단체 등의 주장을 토론을 통해 엄밀히 검증해야 한다는것이다.

안민석 의원은 “현재 국내에 262곳의 골프장이 운영 또는 건설 중인 상황에서 230여곳의 골프장이 추가돼 500여곳이 되면 전 국토의 0.5% 이상이 골프장으로 잠식될 것”이라며 “의원들의 ‘노 골프’ 선언이 정부가 골프장 증설계획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No 골프 선언 의원 30명 명단

강혜숙 김원웅 김재윤 김재홍 안민석 우원식 유승희 이경숙 이목희 이철우 제종길 한명숙 (이상 열린우리당 12명)

강기갑 권영길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이영순 조승수 천영세 최순영 현애자 (이상 민주노동당 10명)

고진화 김문수 김영숙 김재경 배일도 심재철 이계진 이재오 (이상 한나라당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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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11-1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회의원들이 어쩌다 한번 괜찮은 일 했네요.

무분별한 골프장 증식, 정말 문제입니다.

저 아는 이는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 할 수 없이 용인으로 이사해 호전되었는데,

집 앞에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다시 아토피가 심해졌답니다.

심증은 농약살포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마땅히 입증할 방법도 없고, 또 이사하자니 막막하고, 속만 끓이고 있대요.

마태우스 2004-11-1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안치는 이유는 환경파괴보다, 비싸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랍니다. 아마 평생 안칠 것 같네요...

엔리꼬 2004-11-1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선인님은 직접적인 피해자이시군요.. 아토피라 정말 속상하겠어요.. 저희 아이들은 엄마가 아토피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걸리지 않았는데... 주의 또 주의 해야겠습니다...

마태우스님... 님은 확실히 아웃사이더라니깐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마세요..

조선인 2004-11-1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제가 아니라 '저 아는 이'요. 제 표현이 영 미숙했네요.

엔리꼬 2004-11-2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잘못 읽었군요.... 히히

sooninara 2004-12-2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프장은 섬과 같습니다. 색은 녹색이고 물이 있으니 자연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물은 엄청 필요하고, 벌레 곤충은 못 살게 다 죽여버리니 섬과 같답니다.

한국에선 골프장이 안맞지요. 산이 많은 지형상 다 깍아버려야하고..

그래도 골프장이 늘어가기만 하니..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