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사를 했다. 최근 10년 들어 벌써 4번째 이사. 이번엔 차원이 다른 것이 작은 평수이긴 했지만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에서 강북으로 옮겼다는 점. 10년동안 정들었던 곳과 헤어지려니 섭섭하긴 하다.

이사를 하고 나서 드는 여러 생각들.

동네 분위기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전에 살았던 곳은 대단지 아파트단지.. 주위에 이른바 일반 주택이나 다세대 주택은 거의 없었던 동네. 걸어서 최소 5분 넘게 줄기차게 걸어야 슈퍼라도 나왔던 그 동네에 비해 여기는 아파트 문만 나오면 시장이 펼쳐진다.

그동안 대형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느라 구경하라 바빴었는데, 여기 시장에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호떡집 아줌마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여기 이사왔다고 했더니 우리집에 살았던 사람들이 잠실로 갔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걸 보고 놀랐다. 매일 매일 갔었던 슈퍼마켓과 대형마트에서는 대화를 나눌 상대라도 있었나?

엘리베이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참 서민적이다. 이전 살았던 곳은 -작은 평수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부터 버블 세븐의 분위기가 느껴졌었다(우리만 제일 ...). 60대 할아버지가 허술하게 런닝만 입거나 할머니들이 몸빼바지를 입은 광경을 거의 보기 힘든 분위기. 그런데 여기는 딱 보면 옷차림부터가 서민들이다. 요즘이야 집값이 뛰었다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싼 편에 속한 아파트라서 그런가?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이전 동네는 사람들끼리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았던 동네다. 물론 아파트 평수에 따라 또 재산의 정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우리 동네, 우리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고 본다. 그런데, 여긴 또 다르다.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사이의 간격이 있다고 할까? 요즘엔 지하철 길목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출퇴근 시간 외에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막아놓아 시끄럽다. 아파트 주민 외의 사람들이 아파트 안을 통과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바로 길 옆 동네 사람들은 또 이 동네를 한 두 수 아래로 본다는 점.. 부동산 가보니.. 완전 대놓고 무시한다.. 여긴 저 동네랑 수준이 달라.. 거긴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차원이 다른 동네야...  같은 지하철역에서 내려도 어떤 출구로 나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동네.. 우습다.

이쪽 동네 부동산에서는 이러한 격차를 만회하기 위한 히든 카드로 내세우는 것이 바로 재개발이다. 즉, 오래된 주택을 부수고 주상복합을 지으려는 한 업체의 건설계획을 부동산 벽면에 떡하니 장식해 놓는다. 호떡집 아주머니께 여쭤봤다. 주상복합이 들어서면 어떠신가요? 저희 장사하는 사람들로서는 별로 안좋죠.. 그 사람들이 호떡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저희는 힘들어져요.. 나중에 대대적인 재개발이 되면 몇십년동안 삶의 터전이 되었던 전통의 시장도 깡그리 없어지는 것이다.

또 차이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어린이집.. 예전 살던 곳의 가장 큰 장점은 어린이집이었다. 구의 재정 상황이 풍부해서인지 좋은 시설의 신설된 어린이집에 운좋게 창립멤버(?)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추첨으로 2-3대1의 경쟁률을 뚫기는 했지만. 아시는 분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구립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는 순서라는 것이 있다.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기초생활수급대상자, 한부모 가정, 장애아동 등등의 5-6가지 경우의 우선순위가 있고, 그 이후에 맞벌이라는 조건이 있다. 예전 살던 곳에서는, 놀랍게도, 맞벌이 이전 순위의 경우에 해당하는 아동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나이롱) 맞벌이에 불과했던 우리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사한 동네에는? 누구 말을 들으니, 한 100명쯤 기다리고 있단다. 달랑 맞벌이만 해당되는 우리 가족이 낄 자리는 거의 없어 보인다. 참 다르다. 그리고 고민이다.

아무튼 다른 느낌의 다른 동네에서 살다보니 그동안 못느끼고 살았던 잔재미가 느껴진다. 출퇴근 거리는 좀 멀어졌지만 지하철 타는 동안 책이라도 한 글자 더 보고 다닌다는 생각으로 다니니 마음이 좋다. 주말에는 자전거 타고 동네 구석구석 다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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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셨군요.^^

sooninara 2006-11-2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 잘하셨어요? 버블세븐에 안살아 봐서 모르지만..
서민동네만의 재미도 좋아요. 아이들 어린이집은 잘 해결되시길..
요즘 유치원비가 장난이 아니죠?

Mephistopheles 2006-11-2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집...저도 그 순번 기다려봐서 아는데 고역이였죠..^^
그래도 잘 해결되시겠죠..^^

클리오 2006-11-22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롱 맞벌이라.. 우리 집하고 비슷한가요? ^^ 어린이집..아, 애가 크면 그런게 고민이군요....

전호인 2006-11-2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살아가는 맛을 느끼실 수 있으시겠군요. 아파트가 너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니 아파트를 가지고 사람의 귀천을 따지는 이사회가 싫어집니다. 그냥 조용히 살명되는 것인데.......서로 나누고 즐기면서 말이지요. 이런 잘못된 국민성은 없어져야 하는데. 그쵸?

엔리꼬 2006-11-22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이제 동네 사람 아니예요.. 가까이 살았다고 전에 만난 적도 없지만서도요.
수니나라님.. 서민 동네엔 서민님 같은 분이 사시겠죠? 근데요.. 저도 서민이예요. 그 전 동네 위화감나서 못살아요.. ㅎㅎ
메피스토님.. 음.. 지금은 합격해서 다닌다는 말씀이겠죠? 부러워요. 그리고 어린이집에 대한 내용은 다음 페이퍼 주제입니다. (스포일러)
클리오님.. 그 집은 둘 다 정식으로 출퇴근하시는 집이시잖아요. 나이롱 아니죠.. 저희는 아내가 일명 프리랜서라.. 어찌 어찌 재직증명서를 뗄 수는 있지만요, 가끔은 하루종일 집에 있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안보낼 때도 있다는 뜻에서 나이롱이란 뜻입니다.
전호인님.. 네..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저한테선 발 냄새가 나고요.. 음.. 점점 지역의 계층화, 계급화가 나타나는 것 같네요.. 저도 물드는 건 아닌가 반성하면서요..

클리오 2006-11-2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연수휴직과 육아휴직을 이어서 해서, 결혼한 후 프리랜서로 뛴거 말고는 한번도 정식출근한 적 없으니 나이롱인데... ^^;

날개 2006-11-2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장 가까운 곳이 너무 좋더라구요.. 울 시댁이 시장 근처인데, 시장구경하는 재미로 시댁엘 간다니까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