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길의 본질. 민족의 지도자로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티끌만큼(더 이상은 생각할 수 없다) 의식하며 이 길을 따라 자신의 민족을 인도하는 사람. 그는 일평생 가나안에 대한 후각을 지닌 채 산다. 그가 죽기 직전에야 겨우 그 땅을 보게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다. 이러한 꺼져가는 가능성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불완전한 순간인지를 보여줄 때만의미를 지닐 수 있다. 불완전한 이유는 이와 같은 삶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지만, 순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명이 짧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수명이 짧기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모세 오경의 이러한 결말은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의 마지막 장면과 유사하다.

일기, 1921년 10월 19일 - P45

뱀의 중재가 필요했다. 악은 인간을 유혹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다.

팔절판 노트, 1917년 12월 7일

낙원에서의 추방이 지닌 중요한 의미는 추방이 영원하다는것이다. 따라서 낙원에서의 추방은 최종적이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사건의 영원성, 혹은 임시변통으로 표현하면, 추방 사건의 영원한 반복이 우리를 언제나 낙원에 살 수 있게 했을지도 모를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낙원에 언제나 머무르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그것을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팔절판 노트, 1917년 12월 12일 - P53

하나님 말씀에 따르면, 선악과를 먹은 즉각적인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뱀에 따르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동등하게 된다고 했다(적어도 그런 뜻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둘다 똑같이 옳지 않다. 인간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처럼 되는 데 있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능력을 얻었다. 둘 다 똑같이 옳다. 인간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낙원의 인간은 죽었다. 인간은 신이 되지 않았지만 신의 지식을 얻었다.

팔절판 노트, 1918년 1월 20일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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