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에 푸코는 디디에 에리봉과 가진 미발표 인터뷰에서 사르트르와 라캉이 얼마나 ‘엇갈린 동시대인‘이었는지를 지적했다. 그는 30년대에 두 사람 모두 반쇼비니즘 운동의 일원이었으며 그래서 독일 철학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 신문인 [일 코리에라 델라 세라 Il Corriere della sera]에 실린 또 다른 인터뷰에서 푸코는 자기 생각을 좀더 자세히 밝혔다. 이에 따르면 푸코에게 50년대에 라캉과 레비-스트로스의 저서를 발견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혁신적인 점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철학과 인문과학이 여전히 인간 주체에 대한 아주 전통적 개념을 바탕으로 존속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철학에서처럼 주체가 근본적으로 자유롭다고 말하거나 인문과학에서처럼 주체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대명사 ‘나‘의 아주 단순해 보이는 사용 뒤에 숨겨진 모든 것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발견했다. 주체: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주 어렵지만 또한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이면서도 불안정한 어떤 것.˝ 푸코는 이어서 라캉의 비의적 언어가 ˝불투명한 글과 주체의 복합성을, 글을 읽는 데 들어가는 노력과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일치시키려는˝ 그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한편 소위 라캉의 ‘공포심 조장(terrorism)‘ 혐의에 관해서 푸코는 ˝누군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해서 결코 그가 어떤 권력으로 강요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라캉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만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엇갈린 동시대인. 이것은 확실히 자유에 관한 두 대가의 역사적, 이론적, 정치적 입장을 잘 요약해주고 있었다. 이들은 실제로는 직접 가깝게 교류한 적은 없었지만 1943년부터 끊임없이 엇갈리고 비교되고 서로 대립했다. [에크리]가 출판되었을 때 사르트르는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을 모두 오인했다는 일반적인 비난에 직면하고 있었다. 존 휴스톤의 요청으로 씌어진 훌륭한 [프로이트 시나리오]는 아직 출판되지 않은 상태였고, 사르트르가 프로이트 저서의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사르트르와 정신분석의 관계에 대해 60년대의 구조주의 세대가 알고 있었던 것은 [존재와 무]에 나타난 현상학적 입장과 [말]에서 신랄하게 제기된 주장에 국한되어 있었다. 여기에 영국의 반정신의학적 태도에 대해 그가 공감을 보였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그것은 사르트르가 일종의 초기 반프로이트주의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게다가 같은 세대의 거의 모든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르트르도 라캉을 읽지 않았다. 그의 프로이트는 ‘사르트르적‘인 프로이트였으며, 결코 라캉의 재해석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와 달리 라캉은 사르트르의 훌륭한 독자였다. (150-151)
  • 자크 라캉 2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지음, 양녕자 옮김새물결 2000-12-07장바구니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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