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얼 노래와 벤슨 분 노래를 엇갈아 들으면서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친구와 커피를 마시면서 나눈 대화를 떠올려보다가_ 기 빨려, 라는 표현을 쓰는 친구에게 말했다. 네가 말하는 선순환이라는 게 서로 좋은 기를 주고받는 걸 뜻하는 거잖아. 그런데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서 계속 기가 빨려, 그렇다면 그건 균형이 맞지 않다는 거야. 그러니까 봐봐. 뭔가 바뀌기를 원하고 변화를 원하는데 선순환도 같이 이루려고 하고 사람들을 만나 함께 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기가 빨려서 지치고 쉬이 나가떨어져. 몸이 버티지를 못해. 그렇다면 바꿔야 하는 거야.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는 그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거고. 안주와 변화. 그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걸 알고 있다. 이마 라인에서 싹이 돋듯 하얀 머리카락이 뽕뽕뽕 솟아있는 모습을 거울로 보면서 외모를 두 단계 정도 업그레이드시킵시다_라고 어제 친구가 한 말을 떠올려본다. 어떻게 업그레이드 시켜야 합니까? 물어보니 일단 수영을 시작합시다.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_라고 답했다. 변화와 안주. 친구가 말했다. 영어단어를 하나 더 외우고 영어책을 읽는다고 해서 삶이 업그레이드 되는 건 아니잖아_라고. 친구의 대답을 듣고 말했다. 영어단어를 하나 더 외우고 영어책을 읽는다고 해서 삶이 업그레이드 되고 인간이 업그레이드 되고 이런 건 물론 아니지만 뭔가를 새롭게 하고 그 낯선 걸 내 걸로 만들 때 기분이 좋아지고 영어를 할 줄 아는 너와 영어를 못하는 너를 바라봤을 때 네 마음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곧이어 말했다. 안주하느냐 아니면 다른 변화의 요인을 내 삶으로 끌어들여와서 새롭게 필드를 바꿀 것인가, 이건 네가 선택할 일이야. 나는 지금 네게 변화해야만 해, 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야. 너를 잘 들여다봐, 뭔가가 바뀌기를 원하는 거잖아, 한편 만족하는 것도 알아. 만족하고 안주하면 그대로 나이드는 거야, 지금 네가 마흔다섯이니까 백살까지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야_라고 이야기하니 악담하는 거 같은데! 하고 버럭 하는 친구에게 말했다. 인생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안겨줘. 그중에서 어떤 걸 받아들일지 내칠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거고. 그래서 언니는 전남편을 내친 거고?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내 전남편이 나를 먼저 내친 거야. 절벽 아래로 밀었고 헤엄도 칠 줄 모르는데 나를 바닷속으로 내꽂았어. 물론 그게 그의 진심은 아니겠지만 그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나를 배신하는 일을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돈과 시간이 있고 다른 여인들의 유혹이 있으니 그에 넘어가는 걸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런 사람을 믿고 어떻게 내 한평생을 함께 할 수 있겠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속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면 그건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어서 죄책감을 지닐 수조차 없게 돼. 내가 그를 버리고난 후에야 그도 알게 된 거야. 모르고 내내 살아간다고 해도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진이랑 통화할 때 소개팅들은 다 어떻게 됐어? 할 거야? 물어봤다. 모두 다 거절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홍대앞에서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올라서 생각을 이어갔다. 만일 내가 그저 섹스만을 원한 거라면, 네 몸만을 원한 거라면 내가 지금 여기에서 손을 번쩍 들고 꽤 야한 옷을 입고 저랑 오늘밤 섹스하실 분 계실까요? 말하면 무척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목선을 훔쳐보고 있는 저 잘생긴 청년과도 잘 수 있을 거 같은데_라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들 말이 그저 섹스만을 원하는 거라면 늦은 밤 클럽이나 술집에서 만나는 이들과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중년 여성들도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다. 언니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왜 그렇게 사는 건데 그 분들은? 그랬더니 호빠 가는 심정이랑 비슷한 거 아니겠는가? 다만 호빠를 가면 다정함과 몸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거고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찰나의 다정함과 찰나의 섹스를 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언니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다정함이고 사랑인 건 알겠는데 물론 플러스 몸도_ 그보다는 민이와 딸기주스를 마시면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펼쳐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을 때 서로에게 보여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를 외롭게 했을 수도 있다. 그 죄책감뿐만은 아니지만 만일 소개팅을 했다가 마음이 맞거나 눈이 맞거나 그러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려. 그러니 거기에 다른 인연의 실이 더해서 꼬인다면 또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은 내 계획을 먼저 실행하는 게 우선인듯_ 말하니 진이는 잘 생각했네, 라고 했다. 어떻게 얻은 평정심인데_ 라는 말은 통화 끝내고난 후 나 홀로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만한 사람이 내 일을 하고 있노라면 알아서 잘 오시겠지 싶었다. 지나가다가 민이 잠옷 하나 사고 예쁜 가디건 보여서 가디건도 샀다. 민이가 보더니 엄마, 그거 예뻐, 나도 입을래, 해서 응, 입어 했다. 내가 나의 뮤즈다_라는 프리다 칼로의 말을 어젯밤 잠들기 전에 다시 매만져봤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이들고 싶고 그 나이든 모습이 추악해지지 않기를 원하는 거구나 알았다. 친구와 제대로 이야기해보지 못했지만 아줌마들의 좋은 면모와 아줌마들의 추악한 면모들이 있지 않나. 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 친구와 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게 겹치는구나 그것도 깨달음. 왜 신이 이 녀석을 내게 보냈는지 알 거 같았다. 내 각진 면을 자꾸 녀석이 둥글게 만들어준다는 걸 깨달음. The idea of you_는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좋다. 물론 소설이 더 리얼에 가깝긴 하지만. 리얼과 판타지를 적절하게 짬뽕시킬 때 만족감이 극대화된다는 것도 알았고. 1년 전 오늘 딸아이와 서로의 뒷모습을 찍어준 게 기록에 떠올라 덧붙인다. 친구들에게 선물받은 책들도 함께. 불과 1년. 1년 동안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는 게 때로는 놀랍기도 하고. 1년 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나 스스로도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