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늘 앉아왔던 의자에 앉은 나는, 중요한 깨달음이 임박했다는 예감과 기대감으로 갈라져 쉰 목소리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정신분석가에게 말했다.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정말로 깨달았어요. 남자들이랑 맺은 관계가 그간 얼마나 기만으로 얼룩져 있었는지 말이에요.˝
정신분석가는 지치고 따분한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이 대답했다.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라는 말을 스스로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세요? 이제야 비로소 처음 알게 된 것들을 언제 행동에 옮길 생각인가요?˝
나는 물끄러미 그 여자를 바라보았고, 그도 나를 빤히 보았다. 참 기구한 팔자네, 그날 생각했다. 뉴욕의 정신분석가로 살면서 오랜 세월 허구한 날 나 같은 피분석자들의 얘기를 들어줘야 하다니.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통찰 제조 공장들, 날마다 처음 이런저런 것들을 깨닫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깨달음에 기초해 행동하지 못한다. 그 순간 뭔가 사춘기의 반항심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폭발했다. 됐어, 다 집어치워, 마음속으로 외쳤다. 날 여기서 내보내달라고, 이 의자에서, 이 방에서, 이 삶에서 나가게 해줘. 못 하겠어, 도저히 못 하겠단 말이야.
얼마 후 나는 [이름 없는 주드 Jude the Obscure]를 다시 읽다 끔찍하고 형편없는 행동을 해놓고는 참담하게 부적절한 변명을 늘어놓는 수 브라이드헤드와 맞닥뜨렸고, 정신분석가 상담실에서 벌어진 바로 이 장면이 떠올랐다. ‘이 여자도 못하겠다 싶은 거지. 이 여자도, 그냥, 나가버리고 싶은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엾은 수를 공감해줘야 할지 경멸해야 할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못 하겠다.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 나는 줄곧 토머스 하디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때문에 가슴 아파했다. 기나긴 세월 온갖 시련을 견디고 견뎌도 결국 무시무시한 패배로 끝나고 마는 그 비참한 운명에 이유가 있다면,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곅급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그런 인물들 사이에서도 수 부라이드헤드는 누구보다 더 내 마음을 아프게 쥐어짰다. 내가 성장의 여러 단계를 거치는 사이에도 이 여자의 이야기는 변함없이 그 신화적 힘을 잃지 않았고, 희박한 승산에도 굴하지 않고 통합된 삶 비슷한 무언가를 이루려는 그의 투쟁(이라고 생각했다)을 지켜보던 나는 - 까마득히 오랜 시간에 걸쳐! - 기쁜 마음으로 그와 나를 동일시했다. 최근 그 책을 다시 읽었는데, 물론 주드와 수 두 사람 모두의 기념비적인 불행을 따라가는 동안 커다란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 답답해지는 건 여전했지만, 이번에 내가 가장 흥미롭게 주시한 건, 빅토리아시대의 위대한 소설가가 한 캐릭터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질병, 즉 의식에의 저항을 추적하는 그 천재적인 방식이었다. 피와 살을 지니고 구체적 현실로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그 캐릭터는 가히 사례 연구에 근접하는 듯 보였다. (21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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