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창 『에크리』를 읽으며 논문을 쓸 때 프랑스 친구가 농담처럼 "너의 성경"이라고 지칭했던 이 책은 정말 성경과 비슷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성경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지만 텍스트에 감춰진 비밀과 숨은 의미는 텍스트와 일체가 되어 그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그리고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비유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무한정 가능하게 한다. 『에크리』도 마찬가지이다. 텍스트는 텍스트로 머무는 게 아니라 ‘나의‘욕망의 언어로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 『에크리』가 던지는 메시지이다. 이렇게 보면 『에크리』는 경직된 텍스트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나와 너를 볼 수 있고, 동시에 그 옆에서 넌지시 자신을감추고 있는 라캉의 모습도 훔쳐볼 수 있는 거울 같은 것이다. 아니 『에크리』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요술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라캉이 말하는 "읽을 수 없음"이라는 단어는 역설적으로 『에크리』의 암호를 푸는 열쇠가 된다. - P29
그리고 세미나 XI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게 다뤄진 ‘충동‘ 개념을 통해 라캉이 이제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상징계가 주체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의미화의 세계라면 실재계는 상징계의 한계와 욕망의 절대성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충동들이 겨냥하는 부분 대상들은 충동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충동 자체는 계속되는 순환을 통해 만족을 누리는데, 그 중심에는 영원히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욕망 즉 결여가 놓여 있다. 충동이 겨냥하는 것은 상징계를 넘어서는 실재이다. 여러 모로 1964년의 세미나는 중요하다. 그리고 1964년에 라캉은 자신의 학설을 실천할 새로운 조직인 파리프로이트학교(Ecole Freudienne de Paris, 이하EFP)를 주도적으로 창립한다. 라캉이 보기에 정신분석이 주된 탐구 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욕망의 현실이며, 그것을 새로운 이론을 통해 규명하고 임상적 영역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조직적 훈련을 통해 분석가를 양성해야했다. - P56
이처럼 라캉의 삶은 IPA와의 투쟁과 계속되는 조직의 분화와 재창립의 반복으로 점철된다. 라캉에게 사상은 양보의대상이 아니었으며, 그것의 실천은 욕망에 따라 행동하라는정신분석의 윤리에 의해 정당화된다. 물론 라캉이 말하는 욕망은 개인적 차원의 욕구와는 구별된다. 욕망의 본질은 구체적인 대상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다. 욕망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며,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해주는 그런 것이다. 인간은 무엇보다 언어적인 존재이고 언어는 언제나 인간을 속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무엇인가를 찾으며 그것이 욕망의 대상이라고 착각하지만, 어떤 대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여는 끈질기게 인간을 괴롭힌다. 그러기에 욕망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복합적 관계 속에서 작용하면서 죽음까지 지속되는것이다. 라캉 이론과 실천 속에는 욕망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다. 욕망이 인간의 고유한 본질이며, 정신분석은 욕망이 무엇이고 어떻게 욕망의 윤리에 충실해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는 물론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 말이다. - P58
레비스트로스, 알튀세르, 푸코 등 이상의 구조주의자들 명단에 우리는 『에크리』를 집필한 라캉을 첨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주의자라 불리는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지만 우리는 몇 가지 공통점을통해 구조주의를 정의할 수 있다. 구조주의자들은 주체 혹은의미적 차원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영역인 상징적 질서가 더 본질적이라고 주장한다. 구조주의를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À quoi reconnaît-on le structualisme」를 쓴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에 의하면 구조주의 사상의 첫번째 특징은 상징적인 것을 제3의 자율적 질서로 발견하고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징적인 것은 차이화를 발생시키는 미분적인 관계들의 체계와 언어와 같은 구조의구성 요소가 만들어내는 특이성의 체계를 말한다. 구조주의에 의하면 주체의 행위와 의미는 구조의 요소들이 맺는 관계와 위치에서 발생하는 부차적 결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자리들과 위치들이 그것을 점유하는 존재자나 현상보다 더 근본 - P64
적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이들은 자유, 의지, 실천 대신 인간의 죽음과 휴머니즘의 종말을 역설하고, 주체 없는 과정으로서 역사의 진행을 보여주려고 한다. 주체의 동일성을 부정하고 관념과 의미를 비의미적 요소들의 분산과 이동의 파생물로 본다는 점에서 구조주의는 전통적인 이성 중심주의 철학과 철저하게 대립된다. 라캉역시 상징계의 독립성과 우월성을 말하고, 주체를 언어의 효과로 본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라캉은 마지막까지 주체라는 개념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주체와 상징계의 관계에 욕망을 위치시키고, 욕망의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여타의 구조주의자들과는 다른 특이성을 보인다. 그리고 에크리』 이후 상징계를 벗어나고 그것에 저항하는 실재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론적인 전환을 보이기 때문에 라캉을 구조주의 테두리에만 묶어두려는 것은 자칫 라캉의 풍부한 이론과 문제의식을 박제화하거나 왜곡할 위험이 있다. 『에크리』가 출판된 1966년에는 구조주의 사유가 프랑스를 휩쓸고 있었다. 만약 『에크리』에서 제시되는 라캉 이론이 전통적인 데카르트적 주체를 부정하고, 상징계의 결정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라캉을 구조주의로 분류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 P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