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어나 어디로 향할 것인가 - 문제는 정책이다
스테판 에셀 & 에드가 모랭 지음, 장소미 옮김 / 푸른숲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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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동지들이여

   우리의 발언은 우리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무지몽매한 정치의 그릇된 흐름을 고발하고자 함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 정치적 방향을 언명하고자 함이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자 함이다.



  IMF를 맞이한 이후 신자유주의 봇물처럼 퍼져나갔다. 모든 것은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 결정되었으며 그것이 진리인 마냥 숭배되었다. 너도나도 세계화의 흐름에 앞장서야 한다며 민영화하고 고용유연화의 이름으로 비정규직을 마구 만들어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언 1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들이 떠들어내던 장밋빛 환상은 온데간데없고 시궁창만이 남았다. 경제위기를 넘어 살아남은 굴지의 대기업들은 세계를 무대로 삼는 다국적기업이 되었고 가진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반면에 중산층은 줄었으며 서민은 빈민층이 되어버렸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올 수 없는 시대가 되면서 다른 계층으로 도약하는 길 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는 돈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정신은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고 물질만능주의, 천민자본주의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물질만을 추구하던 사회는 경제를 이데올로기화 시켜 결국에는 금융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어 버렸다. 모든 것에는 이익이 우선시되어 버리고 돈이 곧 권력이 된 현상을 우리는 심심찮게 보게 되었다. 우리가 보는 이 현실이 아마도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이 보는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작 <분노하라>에서 이미 이윤의 논리 등에 과거 레지스탕스가 추구했던 가치들이 파괴되는 것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결과를 초래한 세계화를 저자는 인류에게 일어난 최상이자 최악의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가 상호의존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저자는 최상이라 하였고, 최악이라 함은 연쇄 재앙으로 향하는 광적인 질주의 출발이라는 점에서였다. 최상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하지만 최악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한다. 몇년전 일어난 세계 금융위기는 그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일 법하다. 이렇게 최상과 최악이라는 양면을 가진 세계화에 대한 대책을 세계화와 탈세계화라고 본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동시에 상반되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기에 나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인류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해 긴밀히 연대하여 세계화에서 비롯된 문화적 풍요로움을 발전시키고 영속시켜야 한다는 등의 세계화를 추구하고 동시에 그 지역의 상업과 수공업을 보호함으로써 농촌의 공동화현상과 곤경에 처한 도시외곽지대의 공공시설 부족을 막기 위해 사회연대경제에 모든 자리를 내주는 탈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테면 세계화의 장점은 발전시키고 단점은 보완한다는 구체적인 방법이라 하면 될 듯하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이후 <정치를 사랑하기 위한 13가지 제안>이라는 이름으로 담겨있다.


  저자는 세계화에 대하여 피할 수 없으며 피하기 위해서는 탈세계화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세계화와 탈세계화, 개발과 반개발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의거하여 말이다. 사실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좋은 점이 많다는 사실도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점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가 직면한 장애물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 사회를 봐도 개방화, 세계화로 이익을 얻는 것은 돈 많은 기업이나 부자들이 대다수라고 생각되니 말이다. 저자가 뒷부분에 정책은 사람간의 연대감을 회복하여 종국에는 인간들이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정책이다. 이러한 모든 제안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인간이다. 더 많은 것을 추구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웰리빙 정책이나 개인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는 다는 박애의 정신,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불평등을 감시하는 상임위원회, 지금 수준의 도덕교육이 아닌 타락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재도덕화 등 다양한 정책들은 물질을 우선하던 사회속에서 진짜 인간을 되살리기 위한 것들로 되어있다. 특히 연대의 활성화는 가장 인상 깊은 챕터였다.


  이러한 정책들을 통해서 인간이 다시금 제자리를 잡기를 바란다. 이윤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에서 이윤우선주의가 조금은 후퇴하기를 바란다. 다른 어떠한 가치보다도 인간이 먼저 생각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미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이대로 지속된다면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될 것이 자명하다. 저자는 우리가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기회를 살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 그 곳으로 향하는 한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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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넥세노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5
플라톤 지음, 이정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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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의 저작들을 하나 둘 읽어가면서 그의 위대함을 진정으로 느끼고 있다. 1학기에 들었던 논술과목에서 교수님이 플라톤에 대해 평가한 것이 약간 과하게 평가했던 것이 납득이 되었다. 또한 교수님께서는 플라톤의 저작들을 볼 때는 그 문장 하나 하나에 담긴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셨다. 물론 다른 책들을 보더라도 문맥상의 저자의 의도를 알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독 플라톤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플라톤이 하고자 하는 주장을 정확히 알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이 “메넥네노스”를 통해서 확연히 알게 되었다.


  메넥세노스는 서두에는 메넥세노스와 소크라테스의 간단한 대화가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소크라테스가 전하는 전몰자들에 대한 추도의 연설이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나라를 지키다가 생을 마친 전몰자에게 추도의 염과 경의를 담아 연설하는 것이 관례였다. 간단히 장례 장면에 대해 언급하자면 이렇다. 당시 아테네에는 전몰자의 장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었다. 3일간 천막에 안치되고 나서 종족별로 관에 넣어져 묘지까지 마차로 운구한다. 그 뒤로 유족과 친지들이 따른다. 그렇게 관에 넣어진 전몰자들은 아테네 주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마련된 국립묘지에 안장되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시민들 중에서 뽑힌 식견이 높고 명망 있는 연설자가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한다. 바로 이때 하는 연설이 바로 이 메넥세노스에 담긴 것이다.


  전몰자들에 대해 찬양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 연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단순히 전몰자들을 위해 하는 연설이구나 하는 생각만 했는데 다 읽고 나서 해설을 접해보니 그렇게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플라톤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던 나로선 매우 놀라운 해석이었다. 기실 그 연설문 자체에 드러난 전몰자에 대한 경의의 표현과 유족들을 위해 하는 이야기들만으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품이나 그동안 드러난 플라톤의 생각과는 대치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초기에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해석이 없었다면 그냥 평범한 작품으로 판단했을 나이기에 충분히 동감하는 바였다. 전에 본 크리톤처럼 시민불복종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대부분이 나처럼 생각할 듯하다. 앞의 해설에 의하면 이 메넥세노스는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연설기술에 대한 패러디라고 보는 관점이고 둘째는 페리클레스의 정치철학적 입장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보는 관점이다. 전자나 후자 모두 나에게는 매우 놀랍게 다가왔다. 플라톤이 말만 앞서는 소피스테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앞부분에서 연설가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음에도 본문을 보면서 그것을 놓치고 의아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참 안타깝다. 두 번째 관점에 대해서는 정말 전문가들에 대해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구절 하나하나 페리클레스와 대치되는 것들을 포착하다니. 이렇게 해석하는 두 가지 관점이 완전히 들어맞는 것이 아니고 각각이 허점이 있다는 것도 후에 이어진다.


  메넥세노스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 깊은 사실은 소크라테스의 추도연설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추도연설의 의의를 밝히고 오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힘써왔던 신과 선조들에 대한 찬양과 그동안 희생된 전몰자에 대한 경의, 전몰자의 유족에 대한 위로, 전몰자들을 살아있는 자로 의인화해서 그들의 말을 전하는 독특한 방법 등 이 모든 것을 통해서 나라를 위해 생을 마친 분들에 대한 깊은 경의가 진정으로 다가왔다. 해설에 나온 것들을 유념해서 글을 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그 연설 자체를 통해서 플라톤의 전몰자에 대한 생각들을 공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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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빨리 이 정암학당의 전집이 완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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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이의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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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이라는 숫자는 거대하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길고 긴 시간동안 사회라는 괴물과 맞서 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마흔이라는 숫자를 마주한 가장이라면 더욱 거대할 수밖에 없다. 가장이라는 위치의 무거움은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들었지만 가족을 부양한다는 사명감으로 오늘도 묵묵히 걸어 나아간다. 저자는 마흔이라는 숫자에 초점을 맞추고 그 나이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글을 썼겠지만 이 책을 보고 위로받는 사람은 비단 그뿐만이 아닐거라 생각된다. 아내와 자식을 둔 가장이면서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들이라면 누구나 위로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저자가 그동안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과 면담하면서 알게 된 이야기들을 재구성하여 이 책에 담고 있고 저자는 각각의 상황마다 알맞은 조언을 해가고 있다. 가족을 위해 회사와 집만 고가며 일했지만 자식들은 아버지를 꺼려하고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아내는 아내대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는 그동안 일해온 것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한 것인지 자괴감을 갖는다. 모두가 이런 모습을 보이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식으로서 어릴 적에는 알지 못했다. 가족을 위해 일하시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말이다. 점차 성장함에 따라 아버지의 어깨에 놓여진 그 무거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게 된 이후 항상 아버지께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런 나에게 이 책 속에 나오는 각각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제목그대로 아플 수도 없다는 사실이 왜 이리도 가슴아픈 것인지.


  처음에 이 책을 펼칠적에는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위로 열풍을 타기 위해 나온 서적인 듯 해서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마흔이란 숫자와 마주한 가장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저자의 의도는 인생의 전반부를 마치고 이제 후반부를 살아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하고자 한 것이었을 거라 본다. 그 나이대가 아닌 나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한 책이었다. 저자의 대상자에 속하지 않는 나였기에 공감은 할 수 있었지만 동감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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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千년의 우리소설 3
박희병.정길수 편역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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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대의 사회모습에 대해 궁금하다면 그 당시 소설을 보는 것이 그에 대한 답이다. 당시 사회가 어떠한 모습이며 무엇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확연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야 말로 우리의 궁금증을 제대로 해소시켜 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단지 그런 궁금증으로 인해서 소설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고전소설보다 국내의 고전소설이 나에게 더욱 큰 흥미를 가져다준다. 흔히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세계문학은 국내 고전소설보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내가 어릴 적에 자주 본 것도 국내 고전소설이었다. 비록 만화로 된 책이었으나 충분히 그 소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당시에 보았던 최척전의 내용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역시 난 우리 고전소설과 더 가깝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교과서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 우리고전소설을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보인다. 그에 반해서 세계명작소설은 찾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보면 왠지 서글픈 느낌을 느끼게 한다. 꼭 자국 소설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지만 아예 관심도 없는 듯한 분위기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오늘날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이라 판단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고전소설을 담고 있으며 원전이 한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어색함이 없이 한글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최척전>과 나도 처음보는 <김영철전>, <강로전>, <정생기우기> 이렇게 총 4편이 담겨있다. 모두 전란의 시대였던 17, 18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로 당시 사회상이 매우 잘 드러나는 소설들이다. 특히 최척전은 기구한 최척의 삶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 소설로 오늘날 각색하여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존인물이 강홍립을 소재로 하여 쓴 강로전을 통해서 당시 망해가던 명나라를 지지하던 서인들의 시각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던 광해군의 밀명을 받아서 행동했던 강홍립을 이렇게나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상대방을 깎아내려도 너무 깎아내린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소설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강홍립의 투항에 비분강개하는 병사와 다른 장수들을 통해서 의기있는 선비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사실이나 당시 후금을 핫바지로 보았던 조정의 기득권들 등 여러 가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만족이라고 깔보는 시각을 새삼스레 알게 되어 역시나 조선시대 대다수의 인물은 너무나 꽉 막힌 인물이라는 이미지만 더 얻게 되었다.

모두가 같은 배경을 하고 있어 기구하고 험난한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보여졌는데 김영철전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기구한 그의 삶에 대한 동정보단 나쁜놈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전쟁포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지내게 되었다지만 은혜를 모르고 내빼고 현지에서 갖게된 처자식을 두 번이나 버리고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아오다니. 정말 못난 놈이다. 차라리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좋았을텐데..


  전란의 시대속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별개로 험난하고 고단한 역정의 삶을 살게 된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서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고 암담했을지 상상 할 수조차 없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외적인 요인에 의해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도 느꼈다. 하지만 강로전을 제외하고 나머지 3편에서 다시 고향을 찾아간다거나 헤어진 가족을 만난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살아가진 않았던 것이라 생각해본다. 철저히 고통받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되는 <덴동어미화전가> 속의 덴동어미 또한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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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역사를 만나다 -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
안광복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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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쓴 작가의 다른 작품인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를 나름 인상깊게 보았기에 구입한 책이다. 저자의 글은 철학에 그리 큰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쉽게 술술 넘어가도록 쓰였다. 철학 자체가 일반인이 다가가기에는 부담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러한 단점이 없다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철학은 파편처럼 흩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의미 있게 엮어 주는 날실이고, 역사는 허공에 떠도는 사변들을 현실로 풀어 주는 씨실이라 보았다. 매우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피상적으로만 다가오는 역사로는 그 역사적 사실이 가진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사고방식을 결정짓는데 강한 영향을 끼치는 철학이라면 켤코 빠뜨릴 수 없지 않은가.


  철학을 통해서 역사적인 중요한 사건 내지 철학이 영향을 끼친 시대적 상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진다.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관계 속에서 볼 수 있는 서로 다른 사상들과 로마제국의 정신적 이념이었던 스토아 학파를 비롯하여 조선이 500년이나 되는 길고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국가이념, 중세 성경이 지배하는 정신을 벗어나 인간의 이성을 되찾았던 데카르트 등 역사의 주요한 인물과 사상들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켜 갔는지 매끄럽게 알 수 있다.


  철학에 대해 좀 알게 된 나는 좀 더 흥미롭게 보았다. 철학을 좀 알면 이런 쉬운 책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보았는데 읽어갈수록 연관된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펼쳐지며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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