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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율리아 에브너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몇 년 전에 윌 스미스가 아들과 함께 토크쇼에 나와서 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자신이 14살 때 당연히 멍청했지만 그때는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없었기 때문에 방구석에서만 멍청할 수가 있었다는 것. 사춘기 아들의 SNS를 겨냥해서 한 이 유머는 사람들의 공감을 샀고 각자 어릴 때 흑역사를 생각하며 그 기록이 인터넷에 남아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울지를 아찔해하며 SNS는 인생의 낭비다 라는 퍼거슨의 말로 결론을 내며 웃곤 했다.
하지만 윌 스미스의 방구석 멍청이 이론은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가 인터넷 특히 SNS로 전세계 익명의 사람들과 연결 될 수 있기 전에는 개인이 멍청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전시하고 퍼트리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방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미쳐가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은 극단적인 위험한 주장들을 혼자만 가지고 있기 보다는 인터넷에 전시해서 동조자를 찾아 관심을 받고 그것으로 수익까지 내는 게 가능해졌다.
이 책은 극단주의 특히 극우 백인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여성혐오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방구석에서만 혼자 떠들지 않고 세상에 나와 정치세력을 만들고 테러까지 저지르는 현상을 점점 확대되어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 율리아 에브너는 극단주의가 사람들을 모으고 그 주장을 확산시키는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서 극우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그들의 비밀 채팅방에 잠입하고 현실의 모임까지 찾아간다.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을 숨기면서 잠입 취재한 기록들은 암담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 재미와 흥미진진함을 주기도 하는 부분이다.
저자가 잠입한 인터넷상의 극단주의자들은 주로 유럽과 미국의 백인 남성들 집단으로 그들의 주장의 기본에는 백인우월주의가 깔려 있다. 요즘 유럽 여러 나라의 선거철마다 극우 정당이 다수의 득표를 했다느니 하는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바로 그 극우 정당들이 연결되어 있는 지점들에 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커뮤니티가 있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파시스트들이고 나치즘을 찬양하며 우생학을 믿는다. 자신이 순수 백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유전자검사를 실시하고 그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지를 보여줘야 하는 곳들도 있다.
이들은 당연히 이민자들을 혐오하고 이대로 계속 이민자들을 받다간 백인들이 결국 없어질 거라고 위기론을 부추긴다. 백인 말살의 배후로는 정치세력, 기존 언론 매체, 유대인들, 엘리트들의 비밀 단체가 있다는 음모론까지 가미하는데 물론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런 주장에 코웃음을 치겠지만 문제는 이들이 이런 식의 황당한 주장들을 정직하게 다 내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요즘 이들은 소셜 미디어와 젊은 세대들에게 먹힐 재밌는 밈, 게임 등을 적극 활용하여 혐오를 마치 재밌는 농담이나 게임 같은 것으로 보이게끔 한다. 당연히 젊은 세대들은 이들이 생산하는 밈을 재밌게 소비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커뮤니티로 흘러들어가거나 그들의 주장을 그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극단주의자들은 방구석에만 있지 않고 인터넷상에서 세력을 형성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새로운 젊은 피를 모집하기 위해 극우 트롤들은 인터넷에서 여론을 오염시키면서 점점 정치세력화 한다. 이들은 젊고 세련된 이미지의 청년들의 지지가 절실했던 기존의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결국 극단주의자들의 SNS나 커뮤니티에서 만들어낸 단어나 밈을 정치가들이 똑같이 말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비단 유럽과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기반의 극단주의 커뮤니티만 이 모양일까? 우리나라는? 당연히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회의 불안을 파고드는 극단적인 주장에 집단의 심리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가짜뉴스에 인터넷 트롤들의 활약 그리고 혐오를 유머로 만드는 밈까지.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를 파고드는 이 혐오의 극단주의 유혹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말미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긴 하지만 부족한 느낌이다. 규제를 더 한다거나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해결책은 너무나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지금의 이 심각한 상황에선 크게 와 닿지 않는 느낌이다.
왜 점점 더 혐오에 빠져드는가, 젊은 세대들은 왜 극단주의 무리에 기꺼이 끼어서 소속감을 얻는가 하는 문제들을 더 파고 들어봐야 좋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이 책은 극단주의가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니 이것으로 그 소임을 다 한 거 같고 좀 더 깊이 ‘왜’에 집중하는 책을 찾아서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