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1 기담문학 고딕총서 5
워싱턴 어빙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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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연주곡이 있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작곡한 연주곡인데 알함브라라는 궁전을 구경하고 감탄하면서 지은 곡이라고 한다. 사실 제목만 들었을때는 그냥 지은 것이 아닌가 했는데 실제하는 궁전의 이름이라고 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궁전이름이 꼭 소설이나 만화같은곳에 나올꺼같이 환상적이었던 탓이었다.
알함브라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왠지 모를 신비함은 그 궁전이 위치했던 곳과 역사를 알게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바로 유럽의 이슬람왕국이었던 그라나다왕국의 궁전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역사에서 중세에 카톨릭세력에 맞서서 섬같이 존재했던 이슬람국가가 있었으니 그것이 그라나다다. 지금의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수백년동안 이슬람의 문화와 예술이 꽃이었던 곳이고 그것의 정점이 알함브라 궁전이었던 것이다.
비록 나중에 같은 스페인의 크리스트국가에게 정복당하지만 그들이 남긴 문화와 기술등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특히 문학과 예술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되었다. 바로 위의 연주곡같은 것 말이다.

그 알함브라 궁전 이야기를 쓴 책이 바로 이 '알함브라'이다.
이 책은 미국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워싱턴 어빈이 알함브라에 머물면서 알함브라 궁전에 얽힌 민담이나 설화 등을 기행문과 소설의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찬란한 이슬람문화를 꽃피웠던 알함브라. 비록 몰락하긴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없어지지않고 오랜시간동안 남아있었다.
민담의 특성상 부풀려지기도하고 축소 삭제 되기도 하고 덧붙여지기도 하면서 그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것을 작가가 채집한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환상적인 알함브라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한다.

전체 1부와 2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먼저 알함브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알함브라에 도착해서부터의 첫인상과 주변 모습들 여정들이 자연스런 필체로 묘사된다. 비록 과거에는 찬란한 왕국이었지만 그때는 조그만 시골에 불과했을것이다. 지은이인 워싱텅 어빙 일행을 맞이하는 지역 사람들의 순박하고 친절한 모습이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짓게 했다.

일단 알함브라의 지배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지은이는 궁전의 여러 부분들에 대한 묘사를 하게 된다.
정의의 문, 코마레스 탑, 사자의 정원, 아벤세라헤홀에 이르기까지 궁전의 여러 모습들을 인상적으로 들려준다. 그 하나하나가 민담과 전설의 소재가 되고 무대가 되고 배경이 되는것이다.
그속에서 생겨난 여러 이야기들은 1부의 뒷부분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데 아라비아 점성술사와 세 공주의 전설이야기는 그 자체로 신비한 느낌이 들게 했다.
달빛을 받은 알함브라라는 제목의 글은 비록 보지는 못해도 글로도 충분히 그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궁전의 모습이 연상이 되었다. 알함브라의 군데군데 여러 부분에 비치는 달빛은 그속에 숨어있는 무어인의 손길을 일깨우면서 마치 마법의 나라에 있는것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실제로 보면 얼마나 꿈같은 광경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무슬림의 전설과 민담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알함브라를 건설한 왕과 알함브라를 완성한 왕의 이야기들, 퇴역군인, 공증인 , 왕자, 시동, 아름다운 여인등 등장인물들의 면면도 아라베스크처럼 다채롭고 이야기들의 소재도 다양하다.
'알함브라의 장미와 시동'이라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사랑이야기는 잔잔한 웃음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거기 나오는 류트가 나중에 파가니니의 바이얼린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과연 전설일까 진실일까. 전설이던 진실이던 알함브라의 보배로운 빛이 파가니니의 명기에 스며들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꺼 같았다.

기행문같으면서도 무어인의 전설을 이야기하는 이 책 알함브라는 알함브라의 매력을 멋지게 잘 표현한 책이었다.
궁전을 묘사하는 부분도 지루하지 않게 잘 쓰여졌고 오히려 궁전의 구석구석 우리가 지나칠만한 곳까지 아름답고 유려한 필체로 잘 인도하고 있다. 미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답게 참 멋지고 아름답게 알함브라를 잘 보여주고 있는거 같다.
무어인들의 삶이 녹아있는 여러 민담들도 아름다운 알함브라와 어울리게 인상깊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소개된다는 이 책은 책의 앞에 여러가지 지도와 사진등 궁전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는 여러 자료들을 실었고 중간중간 이야기와 관련한 도판들이 있어서 더욱더 책의 품격을 높였다. 번역도 비교적 괜찮았고 제본이나 책 디자인도 튼튼하고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책이었다.
다만, 이 책이 기담문학을 모은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온 책인데 환상과 미스터리 초자연등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그린 문학이라는 시리즈 취지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거 같기도 했다. 물론 환상적인 이야기와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알함브라 자체가 실제한다는 면에서 시리즈보다는 그냥 단행본으로 나왔으면 더 나았을꺼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의 손길이 깃들어있는 알함브라. 그 환상적이고 신비한 궁전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하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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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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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뜻밖이었다. 이시다 이라의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주제와 이야기여서 과연 같은 작자의 작품이 맞나하면서 지은이를 다시 살필 정도였다.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 파크" 같은 미스테리적인 작품만 읽다가 이 책을 만나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했다. 하지만 역시 이시다 특유의 빠르고 감각적인 문체를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호스트다. 이른바 '몸파는 남자'. 아주 파격적인 설정이다. 결코 양지에 있을수 없는, 음지의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 인데다가 더구나 남자다!
주인공은 20살의 대학생 료다. 학교는 잘 안나가고 칵테일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것이 아니라 그냥 인생이 따분해서 그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의 친구인 신야는 호스트다. 어느날 그가 미도 시즈카라는 자신이 속해있는 클럽의 마담을 데리고 온다. 거기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는 료.
평범한듯한 료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 비록 학교때 여자아이들의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겉으로 보이는 면으로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5천엔의 몸값을 받게되는 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클럽의 톱클래스급의 호스트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는데...

료의 직업자체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것인데 그를 찾는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이른바 '변태'스러운 사람들이었다. 남자 두명과의 관계에서만 만족을 얻는 여성, 오줌 누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쾌감을 얻는 여성등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혐오스러울수도 있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료는 그런 사람들의 욕망을, 그 간절한 욕망을 비록 댓가를 받지만 정성스럽게 들어준다. 그들의 삶도 어찌보면 존중받아야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는 욕망들... 그 다양한 욕망들에 과연 얼만큼 비난할수가 있을까. 그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 변태가 아닐까. 아마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른것은 아닐까. 그것을 알기에 료도 그들을 받아들일수 있었을것이다.

무료했던 삶을 살고 있던 20살짜리 청년 료는 이 직업을 하면서 세상을 좀더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하필 왜 그렇게 통해서 자신을 세상을 보게 되었을까 했지만 그 이유가 끝 부분에 가서 짐작하게 된다. 무의식중에 그를 지배했던 그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는것이다. 그와 더불어 그를 그쪽으로
이끌어냈던 미도 시즈카와의 관계도 어떤 인연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저런한 것들이 얽혀서 결국 료가 그쪽으로 갈수밖에 없는 필연이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정 자체가 남자 호스트가 주인고인만큼 이야기 내내 여러가지 파격적인 성적인 묘사가 나온다. 얼핏보면 외설인것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감각적이고 섬세하면서도 적절한 묘사와 전개를 해서 읽은이로 하여금 그속에 녹아들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야하긴 하지만 그리 속되보이지 않게 보이는것은 작가의 역량일것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 책은 위험한 소설이기도 하다. 호스트라는 직업, 창부라는 그 직업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자던 여자던 돈을 주고 성을 사는것 즉, 매춘은 필요악이던 뭐던 나쁜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의 욕망을 그런식으로 해소할수밖에 없는 현실때문에 비록 없앨수는 없다고 해도 말이다. 료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일것이다. 그가 그것을 통해서 성장을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꺼라고 생각할수는 없다. 이 책의 지은이도 물론 매춘 그 자체를 긍정적인 뜻으로 그린것은 아닐것이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그런 직업속에서도 인간은 있고, 또 성장할수도 있다는 그런 메세지를 던진건 아닐까.

어쨌던 참 매력적인 책이었다. 어쩌면 우리 속의 욕망을 대입해서 본것일지도 모르겠다. 책 주인공을 그려낸 표지 디자인도 좋았다. 몽환적이면서 나른한 주인공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번역도 깔끔했고 제본도 잘 되어있다. 다만 책분량에 비해서 책값은 조금 비싼편이다. 반양장본을 하지 말고 좀더 가볍게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20살이었을땐 어떤 생각을 했을까. 빨간색의 강렬한 표지에 걸맞는 선명하면서도 몽롱한 이야기. 뜻밖의 장소에서 색다르고 특이하게 세상보기는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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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 인기있는 미국 드라마로 csi라는 드라마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과학수사대쯤 될꺼다. 사건이 일어나면 과학적으로 증거를 분석해서 범인을 잡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여러가지 증거들속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건데 함깨 따라가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여기 현재도 아닌 중세시대에 매력적인 법의관이 있었는데 그 이름 아델리아.
그것도 여성의사. 이 책은 이 아델리아가 그 시대로서는 최고의 법의학적인 지식을 동원해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서양중세에서 의사라는 직업과 여성의 사회적인 위치는 오늘날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암흑의 시대라고도 불렸던 시기인만큼 교회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시절이었는데 사람의 병은 오직 기도와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고칠수있고 의술은 소용없는걸로 치부되었었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부속물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는데 바로 그 낮은 신분의 여자에다가 성직자도 아닌 의사가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자체가 사건해결이 험난함을 예고하는거나 다름없었다.

이야기는 중세 영국의 어느 마을. 갑자기 4명의 아이가 잔인하게 살인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아무도 그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가운데 몇몇사람의 부정확한 정보와 이어져내려온 편견등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몇사람의 유대인이 살해당하고 거의 폭동을 일으킬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 사건을 위해서 3명이 파견되는데 위에서 말했던 여의사 아델리아와 유능한 수사관인 유대인 시몬, 그리고 아델리아를 보호하는 하인인 아라비아인 만수르. 하지만 실질적인 조사를 하는것은 시체를 검안하는 아델리아.였다. 지역 수도원장의 도움을 받아서 살해된 아이들의 시체를 조사하는 아델리아. 아델리아와 함께 여러가지 것을 조사하는 시몬. 그들의 노력에 의해서 조금씩 사건의 면모가 드러나지만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면서 아델리아는 고립무원에 빠지게 된다. 용의자는 많은데 증거를 잡아야 하는 아델리아. 하지만 또 다른 아이가 유괴되고 증거를 잡을려는 찰라 살인자와 마주하게 되는데...

기존의 법의학 내용의 소설들이 대부분 현재를 배경으로 삼았던것에 비해서 이 책은 11세기 중세의 시대를 삼아서 그 자체부터가 흥미있었다. 과연 그 시대에도 현재와 같은 해부학적인 능력으로 범인을 잡을수 있었을까. 이 책은 그런 의심을 단번에 날려버릴만큼 이성적이고 유능한 여의사를 그려냈다.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을 대하는게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잘 모르는것이 있으면 바로 해부를 해보고싶어하는 지적호기심이 무척 왕성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반 생활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서투른 사람. 그런 캐릭터를 책에서 참 잘 그려냈다. 그리고 그녀를 돕는 여러 사람들의 묘사도 흥미있게 잘 그리고 있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듯이 눈에 아른거릴정도였다.

사실 이책은 시대적인 배경이 중세인지라 지금처럼 화려한 추리적인 기법과 장치들이 등장하는것은 아니다. 범인도 깜짝 놀랄만한 사람도 아니고 어느정도는 추측이 될만한 사람이었다. 어찌보면 좀 단순하다고 여길만하지만 500쪽이 넘는 긴 이야기를 범인이 잡혀서 끝날때까지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유지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11세기 영국 사회의 모습을 보는것도 흥미로왔고 왕권과 신권의 대립등을 적절히 삽입해서 역사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것도 재미있었다.
권력가의 임의대로 사적인 형벌이 행해지는 대신에 법에 의해서 합리적인 판단에 의한 벌이 내려지는 장면등은 세심한 자료 조사에 의한 고증같았다.

보통책보다 분량이 많아서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지은이의 역량이 그런것을 못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범인을 잡는 과정을 좀더 긴박하고 빠르게 전개시켰으면 더 좋았을꺼란 아쉬움은 있었다.

책은 깔끔하게 잘 만들어졌다. 가끔 어색한 표현이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번역은 무난했고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제본도 튼튼히 잘된편이다. 가격도 적당히 책정된거 같았는데 표지 디자인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 있으면 휴가철인데 이 한여름, 매력적인 여의사와 함께 중세로의 추리여행을 떠나보는것도 좋을듯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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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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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본래 공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릴때 할머니께서 해주시던 무서운 이야기에 너무 겁을 집어먹어서 그런지 나이들어서도 공포물은 그리 잘 보게 되지 않았었다. 특히 피가 난자하는 그런 영화는 돈주면서 보자고 해도 안 보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런 영상물과는 달리 소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는데 일단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서움이 덜해져서 그럴까. 뭐 나이도 먹었으니 마음이 더 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공포소설은 어찌보면 책 읽는 재미에 그 오싹함이 덜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다 읽고 나서 무서움이 갑자기 닥쳐올지는 몰라도 적어도 읽는동안에는 읽는 행위에 몰입하니깐.
이 책 ZOO라는 책도 그런 종류의 책에 속하는 책일듯했다.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은근히 오싹했지만 읽는 도중에는 그리 무서운줄 몰랐기 때문이다.
오츠이치라는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 공포물의 역사가 탄탄한 일본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기괴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다. 지은이가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라고 하는데 과연 영화감독답게 감각적이면서도 영상화를 하면 돋보일만한 이야기 구조를 보이고 있는 소설이었다.

전체가 총 10편의 단편인데 이 이야기들을 묶는 주제는 '살인' 혹은 '죽음'이다. 그런데 그 죽음이란게 예사롭지가 않다.
하나같이 엉뚱하면서도 의외,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죽음이다. 아니 죽음이 물마시는것처럼 쉽게 그려지고 있었는데 그 자체가 은근히 공포스러운 면이었다.

첫번째 이야기인 <SEVEN ROOMS>는 살짝 미스터리한 면도 보이면서 슬픈 이야기다. 주인공인 나는 누나와 함께 어느날 갑자기 어디론가 납치된다. 어딘지도 모르고 왜 납치된것인지도 모른채 어느방에 감금된다. 그러던중에 다른 방에도 자신들과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갇힌걸 알게되고 점차 일이 어떻게 된건지 짐작하는 가운데 남매의 죽음도 가까와오고 누나는 어떤 결심을 하게되는데..
설정 자체가 독특한 작품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납치,감금되고 어느날에 자신들이 죽을꺼란걸 알게되는 과정은 보통 사람이라면 공포와 체념,절망으로 벌써 삶을 포기했을것이다. 그치만 그 와중에서도 생각을 하는 누나. 10개의 작품중에서 가장 인상깊고 재미난 작품이었다. 왠지 '큐브'라는 영화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뒤를 이은 <SO - far>는 뭔가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아빠 엄마랑 살던 한 아이가 어느날 아빠와 엄마가 서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아빠는 엄마가 죽었다고 하고 엄마는 아빠가 죽었다고 하는 가운데 이 아이만이 그들 둘을 모두 보게 되는것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데 아마 그 아이에게는 그 선택이 무엇보다 괴롭고 힘들었을것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마음이 갈라지는 고통을 겪게될 아이들의 심리를 표현했다고도 할수있는 이야기였는데 발상 자체가 참 신선했다.

그외에 <양지의 시>라는 작품은 sf소설같은 느낌을 준다. 이야기를 잘 곱씹어보면 혼자 남는 공포와 외로움을 나타낸다고도 볼수있지만 인간같이 생각하고 활동하는 로봇의 등장이 흥미로왔다. 이 역시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로봇이 점차 인간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은근히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마지막에 작은 반전이 일어나는데 인간의 감정을 갖게된 그 로봇의 마음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이 책에서 가장 공포스럽고 잔인하다고 할만한것은 <신의 말>이었다. 어쩌면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잔인성을 일깨우는 작품이기도 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저주나 미움등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결국 그런 마음이 모든것을 끝장내는 마지막 장면은 무서우면서도 슬픈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렇게까지 할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친구가 있었다면 그렇지 않았을텐데. 외로움이 결국 파멸에 이르게 했다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나머지 다른 작품들도 보면 추리적인 면도 보이고 잔혹함과 슬픔도 보이고 미스터리한 면을 보이는 등 한편 한편이 각기 독특한 모습을 보이면서 인간의 어두운면을 잘 포착해낸 이야기들이었다. 정통 공포물은 아닌 퓨전호러라고 할까.
작품 하나하나가 영화화되면 꽤 재미있을꺼란 생각이 들 정도로 감각적이고 흥미있는 줄거리의 이야기들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주제가 '죽음'이었다면 속에 감춰진 주제는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 사회의 큰 병폐라는 외로움이 결국 공포를 불러오는것이다. 가장 무서운것이 인간이라고 하기도 하니깐. 외로움이 없었다면, 단 한사람이라도 그 외로움을 달래줄수있었다면 그 잔혹한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은이가 그런것까지 생각하고 글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내면의 공포와 외로움을 잘 표현해낸 소설이었다.

전체적으로 책이 참 깔끔했다. 활자도 보기 좋았고 번역도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겉표지 디자인은 전체 내용을 아우를만큼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고 좀 단순하게 보였다. 그리고 황매의 다른 책들에 비해서 제본이 좀 불안스러워서 책이 잘 떨어질꺼 같이 된것은 불만스러웠다.

400페이지에 이르지만 빨리 읽힐만큼 재미있는 이 소설, 여름에 읽으면 더욱더 재미있게 읽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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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자키 히로시 지음, 김수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가면 갈수록 경쟁을 해야하는 사회가 되어가면서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옛날에는 대학을 졸업해야 본격적인 고생을 한다고 했으나 이제는 대학생 아니 고등학생 중학생까지 경쟁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다.
그런 현상은 우리나라와 교육환경이 비슷한 일본도 예외가 아닐것이란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드는 생각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4명. 어느날 사와코가 뜻밖의 메일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릴레이소설을 같이 지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던 것이다. 스팸메일이 아닐까 했지만 왠지 끌리는 설정과 이야기에 그냥 동참하고 만다. 그리고 그외의 3명이 더 참여하게 되면서 4명이 각기 다른사람으로 분해서 릴레이소설을 잇게 된다.
스토커,스토커가 노리는 소녀, 소녀의 남자친구, 스토커를 추격하는 형사 이렇게 각각 분해서 자신의 차례에 글을 올리는 소녀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시작했지만 점점 더 이 소설에 빠지게된다.
그러던중 사와코의 글이 올라와야할 시점에서 올라오지 않으면서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게 되고 엉뚱한 일들이 일어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인터넷 가상 세계라는 독특한 공간을 이용해서 사춘기 소녀들의 외로움과 쓸쓸함과 슬픔을 잘 표현한 소설이었다. 소설에 참여하는 소녀들은 겉으로는 평범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애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명 한명 그 나름의 아픔을 간직한 아이들이었다. 엄마를 구하기 위해서 공부만 하는 사와코, 테니스를 잘하는 친구에게 가려져 후보에도 못들지만 친구를 위해서는 뭐든 할수있다고 생각하는 마유미, 겉으로 보여지는 엄마에게 염증을 느끼는 마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릴레이소설을 만든 유카리등 모두 무엇인가에 억눌려 지낸 아이들이 이야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에게 릴레이소설이라는것은 현실의 압박에서 벗어날수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이었지만 그 소설을 쓸때는 외로움을 느낄수 없었던 것이었다.

비록 집단따돌림을 당할만큼 외톨이들은 아니었다고해도 뭔가 주류에선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그토록 절박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릴레이소설에 빠진것은 소설을 쓴다는 재미도 있었겠지만 나와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 때문이었으리라.
직접 보지는 못해도 글을 통해서 그 친구의 성격이나 행동등을 그릴수가 있었고 어쩌면 소설이 무사히 끝났다면 진짜 실제로 만나서 친해질수 있는 사이가 될수있었을지도 몰랐을것이다.

책은 처음에 단순하게 시작하는 듯했지만 중간으로 접어서부터 상당히 긴박감있게 전개가 된다. 아주 정교한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추리적인 면도 짜임새 있게 잘 배치한거 같았다. 작은 반전도 일어나고 모든것이 밝혀지는 장면에선 아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그 모든것은 외로운 소녀들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나 좀 봐달라는. 나랑 놀아달라는 그 소리없는 외침이 아니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지은이는 끝부분에서 희망을 내비친다.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마이가 시도했던 그것에, 하나 둘 참여하는 사람들.
코끝이 찡해질만한 장면이었다. '그래, 참고 기다리면 되는거야. 절대로 외롭지 않아.
친구는 어디엔가 꼭 있을꺼야'라고 이야기하는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은 새롭게 펴내는 청소년 시리즈 첫번째 책이다. 휴대폰을 이용한 메일이용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주된 전개요소로 삼았지만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등은 우리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쉽게 몰입할수있었다.
10대 소녀 특유의 감수성과 행동등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서 공감하는 소녀들이 많을꺼같다. 10대들 뿐만 아니라 그또래의 자녀들을 둔 선생님, 부모님이 함께 읽으면 괜찮을꺼란 생각도 들었다.

책은 겉표지가 밝은 노란색으로 인상적이었고 보통 책 사이즈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져서 휴대하기가 간편할꺼 같았다. 내용이 여중생의 이야기라서 여성들에게 촛점을 맞춘듯한 디자인은 다소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했고 제본도 튼실했다.

외로운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나타내었지만 희망의 불씨도 살려놓은 체인메일.
갑자기 릴레이소설 하고픈 생각이 들게 한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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