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심연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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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작인 '악의 영혼'으로 인간이 가진 악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던 지은이가 이번에는 더욱더 강력한 악으로 무장한 '악의 심연'으로 돌아왔다. 그 작가가 말한 악시리즈 3부작중 두번째 작품인데 전작에도 끔찍한 살인이 나오지만 여기서는 더욱더 끔찍하고 처참한 살인이 나온다. 묘사가 자세하고 사실적이어서 과연 정말로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했다.

무대는 미국 뉴욕. 한 여자가 발가벗은채로 길거리를 가로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녀의 정신은 반미치광이가 되어있었고 끔찍하게도 머리가죽은 벗겨져있었다! 구출된 그녀의 몸에선 이상한 문신이 발견되고 그것을 단서로 또다른 희생자를 찾아낸 경찰은 수십명의 실종사건이 연결된 대규모 사건이란것을 알게된다.그리고 그 이면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악이 도사리고 있는데...

전작에선 프로파일링을 배우고 전직 FBI였던 유능한 경찰인 조슈아가 주인공이었는데 이번엔 그만 나오는것이 아니라 역시 능력있는 여형사 애너벨이 함께 주인공으로 맹활약한다. 이른바 원톱에서 투톱체제인것이다.그런데 조슈아의 신분이 특이하다. 형사가 아닌 사설탐정의 신분인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드러나지 않고 좀더 은밀하게 단서를 수집할수 있는 위치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곧 협력하면서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어가면서 묘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이쯤에서 뭔가 로멘스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지만 이 프랑스 작가는 미국을 배경으로 책을 쓰긴 해도 도식적인 헐리우드 스타일을 닮진 않는지 뜬금없이 그런 장면은 묘사하지 않았다.

작가는 소설에 표현된 여러가지 살인과 시체의 상태 등을 묘사하기 위해 법의학도 공부하고 실제 살인현장과 해부현장을 답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묘사가 참으로 사실적이고 자세했다. 피튀기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런 묘사가 나올때마다 그 부분은 대충 읽었다고는 해도 그 묘사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수 있었다.

여기에 나온 범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그런 악한 마음이 생겨났을까. 이 범인이 미쳤을까 아니면 정상이것인가. 미쳤다면 단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서 그의 죄에 벌을 내릴수 없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정신병있는 사람이라서 단순히 정신병원에 넣는걸로는 단죄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살인을 저지르는 그 과정에서 충분히 이성적인 머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저지른 그 수많은 피의 댓가로 사실 자신의 목숨하나로는 그리 충분치 않을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었는데로 이른바 미국식의 빠른 전개와 몰입감있는 속도감으로 잘 쓰여졌고 소비문화에 빠진 현대세계를 은근히 비판하는 저자의 뜻도 잘 반영되었다고 본다. 전작에 비해서 더욱더 긴장감있고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 된거 같다.
다만 아쉬운것은 결말이 좀 약하다고나 할까. 광풍이 휘몰아치듯 범인의 범죄와 그것을 쫓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너무 힘을 많이 쏟은 나머지 범인이 밝혀지는 장면에선 왠지 좀 힘이 빠진듯하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살짝 그 결말이 예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좀더 극적인 장면을 기대했는데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도 뭐 책 읽는내내 눈을 떼지 못하고 조마조마하면서 읽었으니 그정돈 넘어갈만도 하다.

이번책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잘 만들어졌다. 오자도 거의 없는거 같고 번역도 깔끔하다. 장정도 튼튼하고 깨끗하게 잘 만들어져서 5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임에도 책 넘김이 좋았다. 다만 이 시리즈의 1부인 악의 영혼은 2권짜리인데 이 책은 1권짜리이다. 원래 책 분량이 차이가 나서 그렇게까지 할수밖에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관성면에선 아쉬움이 있다. 1부도 같은 1권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지막 3부가 남았다. 악시리즈 마지막 작품에선 과연 어떤 인간의 악한 모습이 나타나게 될지 기다려진다. 더불어 인간의 악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은 어떻게 완결이 될지도 궁금하다.

재미있고 스릴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임산부나 심신이 약한 사람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 빈말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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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이시다 이라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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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랑말랑한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어떤 기괴하고 특이한 전개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일상에서 볼수 있는것, 익숙한것 하지만 그속에 독특함이 숨어 있는 글쓰기. 그 주인공은 바로 이 책의 지은이 이시다 이라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처럼 쉴새없이 읽어내려갈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꾸 읽고싶게 하는 것이 이 작가의 묘한 매력이라면 매력일까.

그런 이시다가 이번엔 유령을 가지고 왔다. 유령이야기는 워낙 흔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요리를 할까 궁금했었다. 결론은? 잼있다.
아주 흔한 소재고 그 유령이 현실세계를 막 돌아다닌다는 설정도 익히 봤던 소재지만 이시다는 그것을 그의 색깔로 잘 버무려서 또 다른 맛을 내는 유령추리소설로 내놨다.

주인공인 준이치는 어느날 잠에서 깬다. 그런데 그 느낌이 이상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의식은 있는 상태고. 그때 무엇인가가 눈을 덮는다. 흙이다. 이건 뭐지? 그가 어딘가에 파묻히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할수없다.소리도 지를수 없다. 왜이러지? 그 까닭을 그는 곧 알게된다. 바로 죽어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가 그런 상태로 있어야 할까. 왜 유령인 상태로 있었어야 할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의문은 자신이 왜 죽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난 세월중 2년이란 시간이 자신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기에 자신이 죽기전까지 어떤 상태였는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유령 유이치는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살아서가 아닌 죽어서. 그리고 얼마뒤 자신이 살해당했다는것을 알게되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도 있었음을 알게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한 그의 분투가 어떻게 될것인지...

그냥 단순한 유령이면 사실 큰 재미가 없다. 그래서 지은이는 유령이 된 유이치에게 약간의 '힘'을 주기로 했다. 사물을 움직이는 능력, 그리고 사람에게 말을 하는 능력등이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무서운 유령으로는 만들지 않기 위해서 딱 적당양의 힘만 줘서 유이치는 자신의 힘을 쓸 때를 가려야 했다. 바로 거기서 살아있는 인간의 반격이 가능해지는것이다. 조금의 힘을 가진 유령과 현실의 인간 사이의 싸움. 이것을 흥미롭게 잘 이끌어 가는것이 이 책의 매력이자 지은이인 이시다의 장점이라고 할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만일 내가 죽어서 저렇게 떠다니는 유령이 된다면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이런저런 제약때문에 알수없었던 것들을 알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죽으면 끝나야하는데 죽지않고(?) 유령의 상태로 있다는것도 좋지 않을꺼 같았다. 그런 존재가 얼만큼 있을진 몰라도 외로울꺼 같기 때문이다.

유령이 나오지만 무서운 공포분위기의 책은 아니다. 유령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한 미스터리물이라고나 할까. 요컨데 유령이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란것이다. 주인공인 유이치가 어떻게 의문사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가는 추리소설이라고 할것이다.

지은이인 이시다는 이런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가족소설,기업소설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그 글의 완성도가 뒤떨어지지 않는 작가인거 같다. 사랑소설을 써도 추리소설을 써도 그 나름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그리고 아주 극적이고 눈에 확 띄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해도 은근하게 끝까지 읽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을 자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황매에서 나온 이시다 이라의 전작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시길. 그의 또다른 모습을 느낄수 있을테니깐. 그리고 전작들과 이 책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묘사들을 찾아보는것도 재미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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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걸즈 라이프
요시카와 도리코 지음, 현정수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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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투성이에 고집쟁이들이지만 도저히 미워할수없는 쳔방지축 소녀들.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이다. 때때로 화가 나기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발랄한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20살 명랑한 '걸'들의 공동 생활을 그린 이 책은 4명의 각기 다른 스타일의 여성들이 벌이는 여러가지 일들과 사랑과 우정을 그렸는데 그 4명의 캐릭터가 각각 분명해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고 있다.

이야기는 고등학교 졸업후 고향에서 도쿄로 와서 도시 생활을 즐기고 있는 다마코의 집에서 시작된다. 평온한 삶을 즐기던 다마코에게 어느날 고등학교때 친하게 지냈던 3명의 친구들이 들이닥친다.
놀러온것이 아니라 같이 '살러'온 것이었다! 학교 다닐때 친하게 지냈긴 했지만 개성 강하고 이뻤던 이들에게 늘 주눅들어 있었던 다마코는 당연한듯 들어서는 친구들에게 쓴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함께 생활하게 된다.

자신이 언젠간 전국적인 유명 모델이 될꺼라고 믿는 기나코.
현모양처를 꿈꾸지만 호스티스로 삶을 살아가는 미후카.
아름답게 생겼지만 성격은 거친 독특한 취향의 유미.
그리고 소심하면서 평범한 성격의 다마코.
이들 4명이 새롭게 도쿄 생활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었다.

사실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 보기가 쉽진 않지만 만일 있다면 참 재미나겠단 생각도 했었다. 지은이가 4명의 독특한 캐릭터를 세밀하게 잘 구축한 덕분에 그리 큰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유쾌한 기분으로 책을 읽을수 있었다. 요컨데 이들의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이야기가 된다는 말일것이다.

시점은 조금 독특하게 전개된다. 처음에 다마코의 집으로 쳐들어와서 결국 4명이서 살게되는 이야기를 그리는가 했는데 곧 기나코, 미후카, 유미의 속마음과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을 읽으니 살짝 뜸금없이 보이던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도 했고 캐릭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들이 부럽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내가 이들의 나이때는 이들처럼 활발하고 재미나게 지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발랄한 소녀들과는 달리 대학을 진학했기에 상황은 좀 다르지만 이들처럼 지냈으면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그리고 서로 개성이나 성격은 다르지만 은근히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믿는 이들의 우정도 참 부럽게 느껴졌다.

골치아픈 일이 있다거나 심심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보라.
이 유쾌발랄활발한 소녀들의 재미난 수다에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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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의 창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허지은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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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단테의 신곡살인'에서 중세 베네치아와 단테의 신곡을 절묘하게 결합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예수의 유물을 가지고 새롭게 나타났으니 바로 이책 '롱기누스의 창'이다.

롱기누스의 창은 예수가 목숨을 잃을 당시 그의 몸을 찌른 창을 의미한다. 사실 예수의 유물은 그와 관련된 것은 그 무엇이던 사람들에게 성물로써 추앙받고 있는데 이 창마저도 '예수의 피'를 묻힌거라고 해서 어떤 큰 힘이 있을꺼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사실 예수가 인류에게 남긴 것은 엄청나지만 그의 뜻과 마음보다 이런 유물에 더 큰 호기심과 관심을 받는것도 사실이다. 성물과 관련된 기적이나 사건이 오늘날에도 심심치않게 일어나는것을 보면 알수 있다. 과연 그 성물이 기적을 일으킨것인지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맏음이 기적을 일으킨것인지는 알수가 없긴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것을 반영하듯 롱기누스의 창이 기적을 행하고 이 창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믿음하에 이 창을 가지기 위한 사람들의 경쟁이 배경에 깔려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 창을 가지기 위한 것이 다가 아니다. 이 창을 이용해서 인간창조의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유럽의 어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롱기누스의 창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어떤 지역에서 진짜 롱기누스의 창으로 보이는 물건이 발견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분석도 되기전에 발굴을 했던 특별 탐사팀이 한사람만 남기고 암살된다. 롱기누스의 창은 등장부터 피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이스라엘로 파견된 주디스는 큰 비밀을 알게되고 단순한 유물 탈취가 아닌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데...

언뜻보면 장미의 이름같은 기독교와 관련된 스릴러 추리소설 같지만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많은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예수가 과연 신인가 인간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에서부터 인간을 창조하는게 신만의 능력인가, 인간복제라는 기술을 통해서 똑같은 인간을 만든다면 그것은 과연 인간이라고 할수 있을까?
이런 근원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과연 어떤 것이 가장 맞는 선택일까 어느 것이 옳은것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 답을 찾기란 참 쉬운것은 아닐것이다.

인간 복제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터라 혹시 우리나라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핵심 연구자로 한국인 과학자가 나온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관련 연구가 세계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해당 과학자로 나온것이기도 하지만 악의 무리로 나온것은 약간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전작인 단테의 신곡살인에서 중세 베네치아를 상세하게 묘사했던 지은이는 이번에는 바티칸과 기독교의 성물에 대해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책을 좀더 몰입할수 있게 했다. 이미 많이 나오는 기독교관련 음모 추리소설과 다른 참신한 설정도 여전했으나 초기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갈수록 약해져서 끝에 가서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여전했다. 이 작가는 끝 마무리를 좀더 힘있게 하면 좋을텐데 끝이 별로 매력적이지 못해서 책을 다 읽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게 한다. 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탁월한거 같아서 새로운 책이 나오면 또다른 기대를 하게 하는것도 사실이다.

끝부분이 아쉽긴 했어도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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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새판짜기 - 박정희 우상과 신자유주의 미신을 넘어서
곽정수 엮음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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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이 들어섰을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것이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민주화가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이미 김대중 정권때 여야가 교체되었고 노무현 정권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하지만 김대중 정권때는 외환위기때라서 그것을 탈피하는데도 사실 벅찼었다. 그래서 부분적인 제도 개선은 있었지만 새로운 판짜기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례없이 인터넷으로 뽑힌 대통령이라고 할만큼 대중의 열망을 갖고 새롭게 등장한 정권이기에 기대를 가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떤가? 이제 새롭게 정권이 바뀌는 이 시점에서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일것이다. 지난 정권과 별 다름이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실책을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좌파정권으로 낙인찍힌것은 개인 '노무현'에 반감을 가진 거대 언론사의 왜곡된 기사때문일것이다. 그들의 논리에 맞게 정책을 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을 왜곡했던 건데 이른바 진보 세력으로부터도 보수 세력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는걸 보면 약간 측은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지난 5년동안의 노무현 정권의 경제 정책을 정리해봄과 동시에 앞으로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중견 경제학자 3명이 대담을 벌인 내용인데 이 중 한명은 실제로 정권에 참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들은 현재 우리 경제가 어떻게 표류하고 있으며 그 결과 어떤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사실 노정권이 출범할때 기대와는 달리 그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꺼라는 생각도 있었다. 대통령 한명 바뀐다고 해서 수십년에 걸친 '틀'이 바뀔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전에 정권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관료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과연 얼마나 바뀔수 있을까. 물론 전보다 좋아진것은 있을것이다. 합리적으로 바뀔것은 바뀌었고 더 개선된것도 많을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전체적인 패러다임이 바뀐것이 아닌것이다.
개발시대의 낡은 경제 논리가 이 민주시대에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틑을 바꾸지 못했고 급기야 정권이 바뀌고 만 것이다.

사실 쉽지 않을것이다. 수십년에 걸쳐 견고하게 구축해온 경제 체제가 단 5년안에 어떻게 바뀔수 있을것인가. 하지만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바뀐다는 대전제를 세웠어야 했다. 그래서 다음 정권 또 다음정권으로 이어지면서 개발 시대의 경제 논리와 '안녕'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정권도 그러질 못했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 아닐까.

재벌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공정한 경쟁'을 할수없다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인가 이룩해야는데 출발점부터 다르고 노력해도 불공정한 룰때문에 얻는게 없다면 그게 바른것일까?

재벌 아들과 가난한집 아들은 출발점이 다르다. 그 출발점부터 태생적으로 불공정한 것이다. 하지만 늦게 출발했더라도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가난을 벗어나 재벌 아들 부럽지 않게 잘 살수 있게 된다면 그것도 나름 공정하다고 할수있다.하지만 지금의 체제는 그 중간과정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벌은 영원히 재벌이고 가난한 사람은 영원히 가난하게 되는 '21세기 새신분제'나 다름없게 되버렸다. 최근 몇년간 자신이 중산층이라는 비율이 줄어들고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게 되는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있는것을 보면 알수가 있다. 아래에서 위로 갈수 있는 길이 막혀있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고 앞으로 우리가 철폐해야 하는것이다.

어느 나라던 중간이 튼튼해야 건강한것인데 우리 나라 같은 경우 재벌은 갈수록 잘 나가고 중소기업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대기업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위험성도 높아지는것이다. 재벌이 잘되면 모르겠지만 잘 안된다면 바로 '한방'에 나라가 흔들릴수가 있음은 우리가 외환위기때 어느정도 겪어봐서 알것이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을 튼튼하게 하기보다 대기업 재벌만 배불리는 정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것이 결국 재벌을 위한 것은 아닐런지?
최근 삼성의 사태를 봐도 '도덕적이고 건강한 재벌'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것인지 알수가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것과 마찬가지로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재벌을 적절히 견제하지 않으면 부패하게 마련이다. 재벌이 부패하면 그걸로 끝나나? 사회와 경제에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는 모두들 알것이다.그런데도 개혁을 하는데 머뭇거리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도 말했듯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때문일까? 그래서 성역이라고 그럴까?

이 책에서는 이런 현재 우리나라 사정과 양극화 문제, 경제 개혁 문제, 재벌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 등 우리나라 경제의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어설프게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서 여러가지 자료를 통해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경제에 큰 관심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거릴 주장들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다 옳은것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경제 민주화가 지금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이 방치될때 결국 어떻게 될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중간중간 경제학 용어가 나와서 조금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주장을 이해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있는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 경제 사정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기회가 될것같다. 이 책의 내용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책을 같이 읽는다면 좀더 균형있는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을꺼 같다.

경제에 큰 관심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읽어보는게 좋은 이유는, 결국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잘되면 하다못해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잘되는건 당연한 사실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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