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 서양과 조선의 만남
박천홍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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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방송국에서 세종대왕의 치적을 그린 드라마를 하고 있다. 사실 이당시 이룩한 문화적 성과는 그뒤 수백년간 조선의 기준이 됨음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봐도 상당히 앞서나간 문화였다.

하지만 한명의 세종만을 가졌던것이 조선의 행운이자 불운이었다. 세종조에 이루었던 그 많은 성취들이 더욱더 발전되고 이어진것이 아니라 그대로 고정되거나 오히려 후퇴하고 만다. 그에 비해서 문화적으로 후진적이었던 서양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결국 조선을 포함한 동양을 압도하고 만다.
그리고 그 결과로 동양에 대한 야만적인 호기심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것은 바다를 통한 이른바 '이양선'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흑심품은 통상의 요구로 이어지게 되는데 우월한 이양선의 무력시위앞에 중국도 일본도 결국 개항을 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은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가게 되는데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같이 알려진 나라가 아니고 어떤 이득을 취할만한 산물이 있는 곳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은둔의 왕국도 서양세력의 밥상에 서서히 오르게 된다.
그 중요한 시절, 과연 조선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바로 이 질문에 속시원히 대답해줄 책이 바로 이 책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이다.
왠 악령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조선의 입장에서 봤을때 서양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조선에게는 처음보는 괴물같은 존재였을것이다. 먼바다에서 펑펑쏘는 대포는 기울어져가는 조선에겐 큰 공포이자 위협이었고 결국 그 대포에 개항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과정, 즉 이양선으로 대표되는 서양과 조선이 만나게 되는 사건들을 시대순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흔히 19세기말쯤에 서양의 배가 출몰한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조선의 존재는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비록 소극적이지만 접촉을 시도했던것도 사실이다.
임진왜란때는 서양인 신부가 왜군을 따라서 조선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있고 그 이후 16세기 17세기에 제법 많은 이양선이 출몰했다. 물론, 19세기 그 힘든시기에 많은 이양선이 나타나서 많은 사건이 일어난것도 사실이다.

그때 조선이 보인 행동은 무엇이었을까.단 한가지 대답뿐이다. 바로 쇄국.
배가 난파당해서 표류한 외국인은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친절함을 보였지만 국내인과의 접촉을 엄격히 금지했고 서둘러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통상이나 무역에는 절대 응하지 않았고 그렇게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갈때까지 우물안 개구리처럼 밖에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반면 비슷한 처지의 중국과 일본은 사정이 좀 달랐다.
이들도 쇄국을 기본적인 정책으로 삼고있었지만 완전히 문을 걸어잠은 조선과는 달랐던 것이다.
중국이야 원래 조공의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외국과 무역이나 통상을 해온 나라고 일본은 난학으로 대표되는 네덜란드와의 통상으로 적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개항의 충격도 적었던것이고 역시 불평등한 개항이었지만 국력을 키워서 이웃 조선을 침략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과정을 재미나게 잘 그리고 있다.
이양선이 나타났을때의 조선인의 행동들. 허둥지둥하면서도 처음보는 파란눈의 외국인과 괴물같이 생긴 시커먼 배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는 조선인들. 그러면서도 국법에 걸릴까봐 소극적으로 대하는 사람들. 비록 쇄국을 정책으로 삼긴 했지만 서양세력의 존재에 대해선 조선도 인식하고 있었고 그 대비책도 논의되긴 했다.
중국이 서양세력의 힘에 굴복했다는 소식에는 공포로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 어쩌면 그런 사태를 능동적으로 타개할만한 힘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조선은 정조사후 망국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끝까지 세상을 향해 눈을 감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후손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정녕 상상이 안 되었을까?

책은 800쪽에 이르는 긴 분량이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관련 화보도 실어서 이해를 돕고 있고 물흐르듯이 잘 읽힐 정도로 쉽게 잘 쓰여져서 천천히 읽어본다면 흥미롭게 접할수 있는 책이다. 당시에 외국의 상황도 잘 설명하고 있어서 바다를 통한 서양과 조선의 만남을 잘 읽을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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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고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
제롬 들라포스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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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날 문득 눈을 뜬다.
그런데 내가 살아있는건지 죽었는건지 알수가 없다.
살아있다고 여기는 순간, 내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여기 있는건지 왜 그러고 있는건지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만 인식할뿐.

나탕. 자신을 잃어버린 한 남자. 병원에서 눈을 뜬 그는 사고에 의해서 자신의 과거를 잃어버렸다. 빙하에서 난파된 배의 카드뮴을 찾다가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오게 되었다는데 그는 전혀 기억나는것이 없다. 단순한 잠수부였다고 하는데 병원을 나서는 순간 위험을 느끼게 되면서 일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무엇인가 엄청나게 큰것에 관여된것이 아닐까.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세상에 나아가는 나탕.
하지만 점점 엄청난 사실앞에 맞닥뜨리게 되는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거대한 세력앞에 자신을 내던지게 된다. 과연 그는 자신과 세상을 구할수 있을까...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프랑스 스릴러의 한 작품인 이 책은 지은이가 다큐제작자에 르포기자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래서 허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사실을 깔고 있고 세계를 누빈 작가답게 유럽과 아프리카를 종횡무진 연결한다.
빠르게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서 사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스릴러 특유의 긴박감도 잘 표현된 작품이었다.

기억을 잃는다는 설정은 소설에서 참으로 흔하게 쓰이는 거지만 그만큼 이야기를 확장시킬수 있다는 점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다. 나탕의 기억상실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그렇게 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바로 사건의 시초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기억상실로 인해 거대한 음모를 파헤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식한게 용감하다(?)고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더욱더 파고들었으니 말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 못하게 정교하고 빠른 서술로 긴장감과 긴박감을 잘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다.
미국식의 스릴러와는 또 다른, 뭔가 자유스러운 느낌이 나는 스릴러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속도감과 재미를 흠껏 느낄수 있는 잘 만들어진 소설이었다.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었나했을 정도로 몰입감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것이 있다면 빠른 전개는 좋았으나 그것에 수반되는 개연성은 좀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었고 뭔가 크게 한방 터트리는 점이 없고 잔잔한 연타가 주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강한 이미지가 남은것은 아니었다.
이렇다할 반전이랄것도 없었던것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게 한것도 사실이다.

책은 잘 만들어졌다. 분량이 많다고 분책한것도 아니고 번역도 오자가 거의 없을정도고 가독성도 좋다.
다음에 나올 시리즈를 벌써부터 기다리게 할 정도로 재미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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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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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이 동물과 대비되는 여러가지 특징들이 있겠지만 가장 인간답다는것중에 하나는 바로 호기심이 아닐까싶다. 호기심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고 문명을 건설하게 된 동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호기심을 잘 발휘한 문학장르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일것이다.
쫓고 쫓기고 살인하고 그것을 추적하고...어쩌면 바로 우리의 일상사를 잘 묘사했기에 우리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설로 만든것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추리문학을 가깝게 여기는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최근에 이른바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많은 책들이 발간되고 있는데 그 핵을 이루는 추리소설도 당연히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역사가 깊고 저변이 넓으며 여러가지 상황상 번역하기에도 유리한 일본쪽 소설이 많이 나오고 미국쪽의 소설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비교적 최신작품들이 주를 이루는거 같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초기작들은 어땠는가에 대한 것을 보여주는 책은 별로 없었는데 여기 새로 나온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을 통해서 개척기의 추리소설들의 맛을 느낄수가 있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담백하면서도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정식 밥상을 배부르게 먹은 느낌이랄까. 추리문학이 발달하면서 추리력의 정교함이나 기술등이 과거와는 크게 다르겠지만 개척기의 소설들을 오늘날에 읽는다고 해서 전혀 뒤쳐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소설의 기본기가 탄탄하면서 문학 특유의 정신이 잘 구현되어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것을 강조한 소설은 한두번 읽으면 질리지만 이런 기본이 잘되어있는 소설은 언제 읽어도 새롭고 몇변이나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개척기이면서 황금기의 소설들 중에서 추리의 참맛을 느낄수 있는 5편의 중편소설을 선보이고 있다. 아주 긴 장편소설이 주를 이루는 요즘에 이런 중편이나 단편소설을 통해서 미스터리 문학의 참맛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단편이나 중편의 분량으로 정교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는 더 어렵다. 짧은 분량안에 압축해서 추리와 반전 미스터리 스릴등 여러 요소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대가는 대가답게 여기 소개된 책들의 지은이는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긴 소설에 못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 작품인 '3층 살인사건'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영국의 하숙집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무대를 감칠맛나게 잘 묘사하면서 여러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행동등을 눈에 보이듯 잘 그려내고 있다.이른바 영국식유머를 잠깐잠깐 느낄수도 있는 재미난 작품이었다. 결말부분의 반전은 현대물에 비해서도 손색없는 잘 짜여진 구조였다.

'데드얼라이브'는 법정스릴러 소설인데 유명한 존 그리샴의 소설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현실감있고 긴장감이 넘치는 내용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더 실제적인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그 당시 재판 제도도 흥미로왔는데 요즘보다는 열악한 수사를 할수밖에 없는 시절이었지만 그 해결과정이나 배심원 제도같은 내용이 설득력있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안개속에서'는 영국하면 떠오르는 안개라는 자연적 현상을 배경으로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영국의 클럽제도의 묘사나 당시 영국이 처한 시대적인 배경을 그린 부분도 재미있었다. 클럽안에서 모여서 이야기하는 풍경은 다른 미스터리 소설에서도 많이 보였던 장면인만큼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부분의 반전도 좋았다.

'버클핸드백'은 영국의 애거서 크리스티와도 견줄만한 미국의 작가인 라인하트의 작품인데 간호사탐정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하고 있다. 그 자신이 간호사였기에 그런 설정을 했겠지만 책 내용을 읽어보면 간호사라는 직업이 탐정을 하기에 유리한 점도 많다는걸 느낄수 있다. 주인공인 간호사가 처음으로 탐정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작품인데 살인이 일어나고 복잡한 사건이 일어나는건 아니지만 잔잔하면서도 잘 짜여진 추리의 참맛을 느낄수있게하는 기부 좋은 작품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은 주인공인 아노탐정과 그의 충실한 조력가인
리카르도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인데 마치 셜롬홈즈시리즈에서 홈즈와 조수인 와트슨의 관계를 보는듯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 작품은 다른 위에 작품들에 비해서 조금 심심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노탐정이라는 케릭터를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단것은 몇번 먹다보면 질린다. 순간적으로는 달고 맛있는것이 좋지만 결국 영양의 대부분을 보충하는것은 밥이다. 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지 않는가.
빠른 전개와 장면 전환,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내용의 요즘 일부 미스터리 소설들에 비해서 금방 마음을 끄는 흡입력은 부족하다고 해도 매일 먹는 밥처럼 추리의 참맛을 느낄수 있는 고전추리소설을 읽어보기 바란다. 배가 불러짐을 느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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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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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소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바로 든 생각이다. '마왕'과 '사신치바'를 통해서 그 독특한 필력을 보여줬던 이사카 코타로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 왔는데 이른바 오락소설이란다.
그런데 단순한 오락소설이 아니다. 어떻게보면 좀 작품성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오락소설이라는 광고문구는 왠지 함정같다. 일단 이 작품으로 불러들이는 자극제로 작용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오락소설이라는 틀을 넘어선 고품격의 스릴러 추리 소설이라고 할수 있을 작품이다.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잘생겼지만 평범한 택배기사 아오야기 마사히루.
평범한 생활을 하던 그에게 어느날 크나큰 일이 일어난다. 바로 총리암살범으로 몰린것이다.
물론 그는 총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암살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온 세상이 그를 보고 암살범이란다. 그리고 온 세상이 그를 쫓는다.
영문도 모른채 도망을 치는 아오야기.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누명을 쓰게 되었으며 자신이 살인범으로 되는 과정이 오랫동안 계획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여기저기 쫓기다 못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아오야기는 최후의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과연 그는 살아남을수 있을까? 누명으로부터 벗어날수 있을까?...

도망자라는 영화가 있다. 살인이라는 누명을 쓴 어떤 의사가 도망끝에 누명을 벗고 자신의 삶을 찾는다는 내용인데 드라마와 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플롯이긴 하지만 음모의 규모가 다르다. 이책에서는 누명을 씌운 주된 세력으로써 국가가 등장한다. 개인의 음모에 의해 긴 세월 도망하게 된 도망자의 주인공도 누명을 벗기 위해 큰 고초를 겪게 되는데 국가의 음모에 의해서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아오야기가 그 위기를 벗어나기란 어떻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단순히 암살장소에서 지목이 된것이 아니라 몇달전부터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아오야기의 이미지를 형성해놨던 것이었다. 그것이 총리암살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한꺼번에 터져나오게 된것이었다. 

국가는 아오야기가 그럴듯한 살인범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미지를 조작한다. 치한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지하철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실제로는 가지도 않았던 곳에 가공의 목격자를 만들어낸다던지 하지도 않았던 일을 증언할 사람을 만들어놓는다던지 해서 아오야기 혼자서 어떻게 해볼수가 없을 정도로 이미지를 만들어놨던 것이었다.
사실 이런식으로 국가가 한 개인의 이미지를 조작한다면 그 누가 당할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 진실이 왜곡되고 사실이 은폐되는 일이 허다한 지금의 시점에서 충분히 일어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시큐리티 포드라는 일종의 감시장치가 등장한다. 영상과 음성, 전화까지 모두 감청 도청이 되는 시설인데 이미 전국적으로 우범지대에 많이 설치된 cctv의 존재로 봤을때 충분히 있을수있는 설정이었다. 지금도 cctv가 인권과 사생활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데 범인을 쫓기위해서 시큐리티 포드가 설치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하면 참 등골이 서늘하다. 그야말로 쥐덫에 잡힌 쥐처럼 모든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되는것일것이다.

단순히 누명을 쓰고 도망자가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순과 특히 국가가 개인을 옥죌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담은 책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서 개인의 민주주의는 신장되었으나 국가는 개개인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기위해서 민주주의가 뒤처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그런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가진 개인이 늘어날수록 그 틈을 비집고 국가가 개입하게 되는것이다.

텔레비전 방송이나 신문에 실리는 정보가 다 옳은것만은 아니란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권력자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와 정보를 내보내기 위해서 그것을 조작하고 그 조작된 사실을 아무런 의심없이 수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진실을 알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거짓에 휘둘리는 바보가 되는 것이다.

왜 아오야기가 암살범이 되어야 했는지, 또한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누가 이런 일을 꾸몄는지 여러가지 의문도 들고 결말이 그리 시원하게 끝난게 아니라서 조금 불만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참 잘 쓰여진 이야기였다. 이야기 구조 자체가 탄탄하고 복잡하지만 치밀하고 정교한 복선, 그곳에 깃들여진 유머감각과 문제의식이 내용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어서 편하게 받아들일수있었다.
무엇보다 광고문구대로 재미있는 오락소설로써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여겨졌다.
역시 여름은 이런작품을 읽어야 제맛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삼 이사카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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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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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가 좋아졌지만 어떻게 보면 참 살기 힘든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이 밝아졌다고 믿기도 하지만 그 밝음이 엉뚱한 밝음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그 배신감과 허탈감이란것은 무척이나 크게 된다.

맛있나없나를 생각하기도 힘든 보릿고개시절을 지나서 지금은 절대빈곤시대는 아니다. 단순히 먹는다는것을 벗어나서 어떻게 잘 먹는가에 관한 관심이 커진 세상이다.
왜 잘먹는것에 대한 관심이 커진걸까.
바로 건강때문이다.
어떤 것을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되고 어떤것을 먹으면 건강에 해로운지 이제는 낱낱이 정보가 공개되고 그것을 따라 먹는 사람들도 많다. 건강에 별로 안 좋은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그게 안 좋다는 인식 자체는 하는것이다.

그만큼 건강에 관한 관심이 많은 이때, 내 몸이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그 자체를 판단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버렸다. 바로 거짓된 건강판단 때문이다.
가벼운 감기같은 병에도 과다한 약을 처방하는게 오늘날 우리네의 현실이기도 한데 문제는 이제 그런 차원을 지나서 말 그대로 '건강한 사람'을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사태가 버젓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제약산업은 이미 그 규모가 엄청나다.
다국적인 초대기업으로 그들의 매출은 상상이상이다.
그런데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병이 든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만드는것이 끝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까지 약을 먹게 할려고 하고 있다.
이 책 제목 그대로 질병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책띠지에 있는 어떤 다국적 제약회사 경영자의 건강한 사람에게도 우리 회사의 약을 팔고 싶다는 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사소한 병도 큰 병으로 만들어버려서 진짜 병자로 만들어서 그들이 만든 약을 먹게 한다. 제약회사는 더욱더 살이 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질병들이 어떻게 위험하게 인식되고 멀쩡한 사람도 불안하게 하는지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기존에 갖고 있는 의학 지식이 혼란스러울수도 있고 기존 의학 자체에 불신이 들수도 있겠다.

여러가지 질병중에 대표적인 고혈압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나이가 들면 고혈압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듦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수가 있는데 고혈압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가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그전에는 정상혈압이라고 할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어서 지금은 고혈압으로 판단이 내려지는 것이다. 고혈압은 낫는 병이 아니라 관리하는 병이기 때문에 한번 고혈압이 되면 약을 계속해서 먹어야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환자는 고혈압약을 만든 회사의 장기고객이 되는 셈이다. 그러기에 고혈압약은 수도 많고 경쟁도 치열하고 매출도 큰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는 이 고혈압기준을 만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제약회사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뇌물을 먹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이 기준을 정하는 자료를 제약회사가 제공하였다면 그것은 과연 옳다고 할수가 있겠는가. 이런식으로 건강하고 멀쩡한 사람을 조지에 아픈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이 기준으로 건강을 판단할수 밖에 없으니 참으로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할수가 있다.

그밖에도 이런식으로 건강한 사람을 병자로 만들게 되는 여러가지 사실들을 말하고 있는데 이런 기준이라면 대체 건강한 사람이라고 판단내릴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멈출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것이다. 이미 제약산업은 커질대로 커졌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수조원이 투입되고 있는데다가 각 나라의 의료현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더더구나 그 나라의 보건당국과도 연관이 있기에 쉽게 시정되기는 힘든거같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다는, 과잉건강을 '강요아닌 강요'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꺼 같다.
그리고 건강에 너무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는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완벽하게 건강해질려는 인간의 욕망이 있기에 이런 제약회사의 검은 음모도 진행되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전에도 이런 비슷한 내용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책의 내용처럼 구체적이고 폭넓게 알고 있진 않아서 적지않게 놀랐다. 지금 내 자신의 건강에도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깐.
정말 건강하기도(건강하다고 판정하기도)힘든 세상에 살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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