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매력적인 소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바로 든 생각이다. '마왕'과 '사신치바'를 통해서 그 독특한 필력을 보여줬던 이사카 코타로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 왔는데 이른바 오락소설이란다.
그런데 단순한 오락소설이 아니다. 어떻게보면 좀 작품성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오락소설이라는 광고문구는 왠지 함정같다. 일단 이 작품으로 불러들이는 자극제로 작용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오락소설이라는 틀을 넘어선 고품격의 스릴러 추리 소설이라고 할수 있을 작품이다.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잘생겼지만 평범한 택배기사 아오야기 마사히루.
평범한 생활을 하던 그에게 어느날 크나큰 일이 일어난다. 바로 총리암살범으로 몰린것이다.
물론 그는 총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암살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온 세상이 그를 보고 암살범이란다. 그리고 온 세상이 그를 쫓는다.
영문도 모른채 도망을 치는 아오야기.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누명을 쓰게 되었으며 자신이 살인범으로 되는 과정이 오랫동안 계획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여기저기 쫓기다 못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아오야기는 최후의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과연 그는 살아남을수 있을까? 누명으로부터 벗어날수 있을까?...

도망자라는 영화가 있다. 살인이라는 누명을 쓴 어떤 의사가 도망끝에 누명을 벗고 자신의 삶을 찾는다는 내용인데 드라마와 영화로 큰 인기를 끌었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플롯이긴 하지만 음모의 규모가 다르다. 이책에서는 누명을 씌운 주된 세력으로써 국가가 등장한다. 개인의 음모에 의해 긴 세월 도망하게 된 도망자의 주인공도 누명을 벗기 위해 큰 고초를 겪게 되는데 국가의 음모에 의해서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아오야기가 그 위기를 벗어나기란 어떻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단순히 암살장소에서 지목이 된것이 아니라 몇달전부터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서 아오야기의 이미지를 형성해놨던 것이었다. 그것이 총리암살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한꺼번에 터져나오게 된것이었다. 

국가는 아오야기가 그럴듯한 살인범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미지를 조작한다. 치한의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 지하철에서 사건을 일으키고 실제로는 가지도 않았던 곳에 가공의 목격자를 만들어낸다던지 하지도 않았던 일을 증언할 사람을 만들어놓는다던지 해서 아오야기 혼자서 어떻게 해볼수가 없을 정도로 이미지를 만들어놨던 것이었다.
사실 이런식으로 국가가 한 개인의 이미지를 조작한다면 그 누가 당할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 진실이 왜곡되고 사실이 은폐되는 일이 허다한 지금의 시점에서 충분히 일어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시큐리티 포드라는 일종의 감시장치가 등장한다. 영상과 음성, 전화까지 모두 감청 도청이 되는 시설인데 이미 전국적으로 우범지대에 많이 설치된 cctv의 존재로 봤을때 충분히 있을수있는 설정이었다. 지금도 cctv가 인권과 사생활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데 범인을 쫓기위해서 시큐리티 포드가 설치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하면 참 등골이 서늘하다. 그야말로 쥐덫에 잡힌 쥐처럼 모든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되는것일것이다.

단순히 누명을 쓰고 도망자가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순과 특히 국가가 개인을 옥죌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담은 책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서 개인의 민주주의는 신장되었으나 국가는 개개인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기위해서 민주주의가 뒤처지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그런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가진 개인이 늘어날수록 그 틈을 비집고 국가가 개입하게 되는것이다.

텔레비전 방송이나 신문에 실리는 정보가 다 옳은것만은 아니란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권력자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와 정보를 내보내기 위해서 그것을 조작하고 그 조작된 사실을 아무런 의심없이 수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진실을 알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거짓에 휘둘리는 바보가 되는 것이다.

왜 아오야기가 암살범이 되어야 했는지, 또한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누가 이런 일을 꾸몄는지 여러가지 의문도 들고 결말이 그리 시원하게 끝난게 아니라서 조금 불만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참 잘 쓰여진 이야기였다. 이야기 구조 자체가 탄탄하고 복잡하지만 치밀하고 정교한 복선, 그곳에 깃들여진 유머감각과 문제의식이 내용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어서 편하게 받아들일수있었다.
무엇보다 광고문구대로 재미있는 오락소설로써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여겨졌다.
역시 여름은 이런작품을 읽어야 제맛이란 생각이 들었다.
새삼 이사카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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