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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밤 ㅣ 기담문학 고딕총서 3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준래 옮김, 이애림 그림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은 문학성도 문학성이지만 일단 재미가 있어야 무슨 책이던 관심을 받게 된다.
산업적인 면에서도 재미나고 스토리가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나 게임, 드라마, 애니메이션등 여러분야로 응용할수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책들이 환영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붐을 이루다시피 할 정도로 많은 장르 소설들이 나오고 있는데 선택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독자들에게는 좋은일이다.
인기를 끄는 장르 소설들이 추리나 스릴러, 무협쪽인데 이번에 새롭게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장르는 기담문학이라고 한다.
기담이란 뜻은 이상야릇하고 재미난 이야기라는 뜻이라고하는데 기괴하면서도 무섭기도 하고 그러면서 재미난 뭐 그런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나이트메어식의 피가 넘쳐나는 그런 종류가 아닌 은근히 오싹하면서도 나중에 생각하면 무서운 느낌이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시리즈로 펴낸다는 말인데 일단 다른 많은 기획물과는 차별된다는 면에서 점수를 얻을만하다.
그 1차분으로 나온 3권의 책중에서 이 책 오월의 밤은 유명한 러시아 작가인 고골의 기담문학 단편선이다.
고골이 이런 글도 썼었나 할지도 모르겠지만 근대 러시아 작가들에게 민화나 설화같은 것은 글을 쓰기 위한 큰 토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러시아라도 고골의 이 작품들에게서는 어딘지 좀 낯선 느낌이 나는데 그것은 고골이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그 우크라이나 민담을 바탕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영미쪽이나 일본쪽의 소설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읽은 탓인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쪽의 문학은 쉽게 읽혀지지 않을수도 있다. 뭔가 달콤함이 빠진듯한 느낌이랄까. 상대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질박함과 서정성의 낯선 아름다움이 은근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고골의 여러 작품중에서 좀 기괴하고 무서운 내용의 단편을 실은 책인데 솔직히 그리 많이 무섭고 오싹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식의 기괴한 이야기, 특이한 설정 등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전체가 6개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번째로 나오는 '비이'는 그 내용의 독특함때문에 드라마나 영화로도 자주 만들어진 작품이다. 여기서 흡혈귀가 나오는데 특이한것은 인간과 아주 비슷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것이다. 내용은 죽은 수령의 딸이 저세상에서 현세의 권력자들을 움직여서 어떤 사람을 자신에게 오도록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내용인데 마녀,흡혈귀,신학생등 각기 구분되는 캐릭터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장면등에서는 이래서 영화화가 많이 되었구나 싶었다. 영상으로 꾸미기에 재미난 장면과 줄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인 '무서운 복수'는 과거의 어떤 범죄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형벌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좀 오싹한 설정의 이야기이다. 불교의 윤회설이 언뜻 생각나기도 했지만 이것은 그 끝이 없다는 점에서 더 무서운거라고 할수있을것이다. 잘못을 저지르면 그 벌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니 착하게 살라는 뜻일까. 그보다는 그 형벌의 무한성이 은근히 무서운 느낌을 주는 이야기였다.
'성 요한제 전야'는 제목에 교회관리원이 들려준 괴담이라고 하면서 이야기꾼의 형식을 빌어서 들려준다.
한 고아가 자신을 고용한 주인의 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악마의 힘을 빌리고 그 댓가로 다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고골은 카자크인을 묘사했는데 그 표현들이 그들을 능히 상상할수 있을꺼 같았다.
활기차고 시끄러우면서도 강인한 카자크인을 만날수 있었다. 결말은 어떻게 보면 좀 싱거운거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든 작품.
'이반 표도로비치 슈폰카와 그의 이모'는 어떻게보면 좀 유머스러운 내용같기도 한 이야기다. 이웃과 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카에게 생각하지도 않는 결혼을 강요하는데 거기서 느끼는 조카의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고골은 뒤에 설명에서도 나오지만 이모로 대표되는 여성과 결혼이란것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꿈에서 결혼한 여성이 거위가 되어서 앉아있는 장면을 보면 그 뜻을 짐작할수있을것이다. 조카의 선택이 어떻게 될것인가 흥미를 자아낼려는 순간에 이야기가 끝나버려서 역시 아쉬운 마음이 든 이야기였다.
'저주받은 땅'은 교회관리자가 들려준 실화라는 부제가 있는데 성 요한제 전야와 짝을 이룬다고 할만한 이야기이다.
여기서도 악마가 등장하는데 농장의 어느 한 지점에서만 아무것도 수확되지 않는 그런 악마의 땅에 대한 내용이다. 내용자체는 뭐 그리 무서울꺼도 없는데 등장하는 카자크인의 묘사를 보는것이 재미있었다.
마지막 작품인 '오월의 밤 또는 물에 빠져 죽은 처녀'는 한 남자가 물에 빠져 죽은 처녀의 모습을 한 마녀를 찾아줌으로써 촌장의 딸과 결혼하게 되다는 이야기이다. 더 높은 사람의 '지시'에 의해 딸의 결혼을 허락한다거나 높은 사람과 식사를 하는것에 기뻐하는 촌장의 모습은 우리한테도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닌거 같아서 슬쩍 웃음이 감돌았다. 여기에도 역시 악마와 마녀가 등장한다. 제목이 길면서 뭔가 뜻하는 바가 깊을것이라는 생각과 맞지 않았던 작품.
기담문학이 곧 무서운 이야기만을 뜻하는건 아니라는 측면에서 이 책이 별로 무섭지 않다는것에 너무 아쉬워할껀 아니라고 생각하긴 해도 첫시리즈치곤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데는 분명 아쉬운 면이 많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잘 접해보지 못했던 러시아 문학, 그중에서도 우크라이나의 이야기를 접한거 만으로도 괜찮은 기획이라고 하겠다.
마치 하얀 쌀밥을 먹다가 거친 현미를 먹는 느낌이랄까. 쉽게 소화는 안되지만 씹을수록 그 맛이 살아나는 현미처럼 상대적으로 거칠고 낯선 내용이지만 찬찬히 시간을 들여서 읽다보면 은근한 맛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식의 마녀,악마, 흡혈귀 등의 캐릭터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느낌을 느끼면서 발랄함과 함께 울적한 느낌도 드는 작품이었다.
책은 생각의 나무 출판사답게 잘 만들어졌다. 제본도 튼튼하고 장정도 좋다. 내용과 관련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하는 겉표지의 독특한 디자인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에 관련 삽화도 넣어서 책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점이 좋게 보인다.
끝에는 옮긴이의 해설이 있는데 지은이인 고골에 대한 소개도 자세하고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비교적 충실한 해설을 써 놓아서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다만, 장르의 영속성을 감안할때 책 분량에 비해서 책값이 조금 비싼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낯선 장르의 기획물인데 좀더 독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가게 가격을 책정했으면 좋았을꺼란 생각이 든다.
다음 후속작들은 기담문학시리즈에 걸맞는 좀더 강력한 포스를 보여줄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