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섞어서 만든 소설을 팩션이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도 관련된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베니스의 개성 상인' 이라는 소설로 큰 인기를 얻었던 오세영 작가가 꾸준히 수준급의 작품을 내고 있다. 역사를 전공했기에 역사의 비어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다. 이번에 나온 작품은 홍경래의 난과 나폴레옹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내용이다. 홍경래 난은 1812년에 일어났고 나폴레옹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두각을 나타내서 1804년 황제가 되고 1821년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사망했다. 대체 어디서 이 두 사건이 접점이 있지?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교묘한 장치를 통해서 두 이야기를 이어주고 있다.


우선 전체적인 이야기는 홍경래의 난이다. 이 난은 오랫동안 이어진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과 당시 기근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고 시대상으로 더 이상 양반을 기반으로 한 사회가 지속되지 못하는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반란이라는 형식으로 폭발한 것이었다. 책은 그런 배경의 난을 뒤에 두고 '안지경' 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반란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안지경은 무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지역 차별이라는 굴레 때문에 크게 성장하지 못한 인물이다.여러 모로 재능이 있는 그는 홍경래 군에서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고 결국 홍경래를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호위하는 임무를 받게 되었다. 반란군의 최고 수뇌를 호위한다는 것은 그만큼 신임을 받고 능력이 있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조선의 해가 지고 있긴 해도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초기에 평안도를 휩쓸듯했던 반란군의 기세가 곧 꺾이고 관군이 상황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실패의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결국 마지막 거점이 함락하고 홍경래와 도주를 했던 안지경은 바다에 떠돌다가 우여곡절끝에 프랑스 군함에 승선하게 되고 이 군함이 중간 기착지로 삼았던 세인트 헬레나 섬에 남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나폴레옹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후 황제가 되어 유럽을 호령했던 나폴레옹! 저 변방의 조선에서 민중에 의한 혁명을 도모했던 안지경. 내용과 형식을 달라도 두 사람이 품었던 이상과 기상은 비슷했기에 마음을 나누게 된다. 나폴레옹에게서 진정한 혁명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얻게 되는 안지경은 실패한 홍경래의 난을 잇기 위해 다시 조선으로 향한다. 그가 꿈꾸는 혁명은 성공할 수 잇을까.


책에서도 나오지만 홍경래 난은 각종 사회적인 모순이 표출되어 반란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났지만 그 대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면이 있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조차 없던 시절에 백성이 우선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그 자체가 혁명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상이 전국으로 고르게 퍼지지 않았고 세상을 뒤엎을만한 전력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난을 일으켜서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당시 난이 성공해서 혁명으로 이어졌다면 우리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인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책은 홍경래 난이 실패하게 되는 요인들을 여러 인물을 통해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책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큰 뜻을 품은 안지경의 활약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나폴레옹을 만나게 되는 과정은 좀 무리수 인것 같아도 시대적인 상황으로 있을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런데 안지경이 홍경래 난이 실패한 이유를 깨달았으면서도 개선된 책략을 내 놓지 못하고 비슷한 실수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오는 것이 아쉽다. 사실 홍경래 난은 실패로 끝났음이 역사적 사실이어서 다르게 결말을 만들 수 없었겠지만 어떤 미세한 흐름으로 구한말의 개혁에 영향을 줬다 식의 이야기가 전개가 되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잘 엮어내는 오세영 작가의 팩션 소설답게 쓰여진 책이다. 전혀 접점이 없어보이던 홍경래 난과 프랑스 혁명과의 연결을 잘 연결시킨 것은 역시 작가의 역량이겠다.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