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다른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 P117

페넬로페의 침대에 누운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때로 그는 고향으로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아름다운요정 칼립소의 침대에서 매일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자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혜의 여신이 그를다시 고난의 여행길로 끌어냈고 그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기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곳으로 돌아갔다.
자주 떠도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오디세우스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할까? 과연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나는 거기에서 받아들여질까? 요술 장화를 신고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슐레밀, 그림자를 판사나이가 내 운명은 아닐까? 그런데 그런 삶은 과연 온당한가? 요즘의 나 역시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P132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P148

우리들 대부분은 돌아올 지점이 어딘지를 분명히 알고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돌아올 곳,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 내 집과 내 물건이 있는 곳은 여정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여행의 원점. 여행이 실패하거나 큰 곤란을 겪을 때 돌아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 그곳에서 우리는 피해를 복구하고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사이족의 청년은 달랐다. 여행의 목적지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오히려 고향이 유동적이었다. 육중한 돌로 지어진 케임브리지대학교는 수백 년 동안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아마 청년의 손자가 죽을 때까지도 어디론가 옮겨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곳, 그의 부족은 늘 이동 중이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삶인이들에게 여행이란 과연 무엇일까? - P191

‘여행의 이유‘를 캐다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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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그만이다. 호텔 청소의 기본 원칙은 이미 다녀간 투숙객의흔적을 완벽히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의 냄새까지 지워야하니까 호텔에선 가정집보다 훨씬 독한 세제와 방향제를 쓴다. 호텔에 들어설 때마다 맡게 되는 그 냄새, 분명 처음에는 자연의 어떤 향을 흉내냈겠지만, 어느 순간 그 근원을 몰각한 듯한, 아니 아예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한, 이제는 그저세제와 방향제 냄새로만 지각되는 그 익숙한 향의 습격을받는다. 나라마다 호텔 냄새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세제와방향제 특유의, 여타의 다른 잡냄새를 일거에 제압하는 독선적이고 인공적인 향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 덕분에 우리는 호텔의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마치 새집에 들어선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  - P65

소설가는 어떨까? 나는 전업이니 어디 묶여 있지는 않다.
구상과 집필 능력은 무게가 없어 어디로든 지고 다닐 수 있다. 전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뉴욕이나 바르셀로나, 런던, 파리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때 나도 그런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렇게 살수 있는 작가들은 주로 영어나 스페인어를 쓰고 있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페루에서 태어났지만 마드리드에서산다. 칠레 출신의 이사벨 아옌데는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살만 루슈디는 뭄바이에서 태어났지만 런던을 거쳐 지금은 뉴욕에 정착했다. 작가의 뇌는 들고 다니기 어렵지 않지만, 그 뇌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모국어로 짜여 있다. 작가는 모국어에 묶인다. 프랑스 작가 르클레지오가 ‘나의 조국은 모국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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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의 ‘내 방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한겨울의 한강변으로 나가 걸었다. 마치 오랜 외국 여행에서 갓 귀국한사람처럼 서울의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다. 한 선배 작가는 장편 출간에 즈음하여 가진 한 인터뷰에서 소설을 탈고하고밖으로 나오니 자기만 겨울옷을 입고 있더라는 말을 했다.
매일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 작가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그 토끼굴 속으로 뛰어들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주인공의 운명을 뒤흔드는 격심한 시련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어 현실의 여행지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 P26

중국은 그가 처음으로 가본 외국이었고, 젊은 날의 환상이 깨져나간 곳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찾은 중국에서 추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오히려 안온함을 느꼈다. 그는 비로소 오래 미루던 소설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아내는 집 밖으로 절대 나가선 안 된다고 다짐을 두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이었다. 비밀의 벽장을 열고 자기만의 세계로 내려가는 나니아처럼 그 역시 자신만이 열어젖힐 수있는 문을 열고 오랫동안 중단했던 소설 속으로, 매번 낯설지만 끝내는 그를 환대해주는, 비자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 그 나라로 바로 빨려들어갔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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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동백꽃은 


2월은 좀 무언가가 부족한 달
동백꽃은 한떨기 한떨기 허공으로 툭 떨어진다
떨어져서도 꿈틀대며 며칠을 살아 있는 꽃 모가지
낙태와 존엄사와 동반자살, 그런 무거운 낱말을 품고 
선홍빛 꽃잎, 초록색 잎사귀
툭, 동백꽃은 모가지째로 떨어져 죽는다.
부활이란 말을 몰라
단번에 죽음을 관통한다

더이상 퇴로는 없었다.
칼로 목을 자르자 하얀 피가 한길이나 솟구치고 
캄캄해진 천지에 붉은 꽃비가 내렸다는
겨울 속의 봄날
산 채로 모가지가 떨어지고
모가지째로 허공을 긋다가 땅바닥에 툭 떨어져
피의 기운으로 땅과 꽃봉오리는 꿈틀대고

한떨기 한떨기가 피렌체 르네상스 같은 동백꽃,
너무 아름다워 무서웠던 파란하늘 아래
꽃의 성모 마리아, 빛나는 한채의 두오모 성당의 머리를들고
툭, 무겁게 떨어지는 동백꽃

여한 없이 살았다
여한 없이 죽었다
불멸이란 말을 몰라 날마다 찬란했다

섬초


섬초는 묻는다
비금도의 시금치
차가운 해풍의 한가운데
얼음을 배로 밀고 나가는 푸른 밭의 쇄빙선
섬초
섬초에서는 난초꽃 향기가 난다
해안가 언덕에 바싹 붙어 파도소리를 세다보면
초산의 젊은 엄마 유방에 젖이 돌기 시작하는 것처럼
거친 잎사귀에 단맛이 돌고
난초가 따뜻한 곳에서는 꽃눈을 틔우지 않는 것처럼
비금도의 시금치는
아랫목 같은 것은 모른다
비둘기 발처럼 빨갛게 되도록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언 땅에 발을 꼭꼭 묻고섬초는 이렇게 시퍼렇게 만개할 때까지
쇄빙선의 칼 같은 배를 밀고 간다
올리브산의 포도나무처럼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그림
빨간 수박처럼

해안가 얼음산을 헤치고
파도소리를 줄기 속으로 밀고 가면 갈수록
비금도의 난초
속으로 단맛이 돌며
난초꽃 향기를 은은히 뿌리는 푸른 잎 무성한 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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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혀에 돋은 생채기, 팔꿈치의 굳은살,
새는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 뉴욕 시의 수많은 쓰레기트럭들의 종류, 시골 마을에 버려진 낡은 자주빛 전광판 등등.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어떤 한 장소에 오래 살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감각이 점점둔해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바로이런 이유 때문에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흥미롭다. 새로운 장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여준다. - P161

내가 산타페로 이사를 왔을 때 근처 식당에서 시간제 요리사로 일한 적이 있다. 점심 식사 준비를 위해 일요일 아침에도 여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내 운명이 한탄스럽기만 했다. 아침여덟 시, 나는 마구 섞여 있는 오렌지와 당근 중에서 당근만을 골라 내어 대각선으로 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주아주 깊구나!‘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당근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
내가 이렇게 되어 가는구나! 아주 작은 일에도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 보라. 당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라.
계속 그 목록을 늘려가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전글의형태와 장르에 상관없이 이 목록에 들어 있는 것들을 단 한번이라도 언급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
- P162

아이들이 빈 시리얼 상자를 흔들어댄다. 당신 지갑 속에는 1달러 25센트만 남아 있다. 남편은 구두가 안 보인다고 불평이다.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고, 당신은 채워지지 않는 백일몽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세상은 원자폭탄의 위협을 받고, 환경오염으로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일어나고, 바깥은 영하 10도이고, 코는 자꾸 막혀 오는데 당신에게는 저녁 식탁에 올릴 음식을 살 돈도 없다. 발이 퉁퉁 붓고, 치과의사와 진료 약속을 해야 하고, 개는 바깥으로 나가자고 성화이고, 냉동실에 들어 있는 닭을 꺼내 해동시켜야 하고,
보스턴에 있는 사촌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백내장 수술을받을 어머니도 걱정스럽고, 수퍼마켓에서는 참치 통조림을 세 - P163

일하고 있고, 당신은 일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방금구입한 컴퓨터를 풀고 설치도 해야 한다. 또, 당신은 오늘부터도너츠는 끊어 버리고 양상추를 먹기 시작해야 한다. 제일 아끼던 만년필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고, 고양이 새끼는 최근에 쓴 습작노트를 발기 발기 찢고 있다.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 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 P164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기차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기댈 것이라고는 나무 둥치만 있는 숲속에서, 혼자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사막의 바위 위에 앉아서, 당신 집 앞 모퉁이에 서서, 현관에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서재에서, 점심 먹는 계산대에서, 복도에서,
실업자 고용 사무실에서, 치과 대기실에서, 공항에서, 텍사스에서, 캔사스에서, 과테말라에서, 콜라를 홀짝이는 동안에도,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도, 베이컨과 양상추와 토마토가 - P164

들어 있는 샌드위치를 먹는 중간중간에도 당신은 글을 써야한다.
최근 뉴 오를렌스에 갔다가 우연히 그 근처의 공동묘지에들르게 된 적이 있다. 태양은 아주 뜨거웠다. 나는 노트를 꺼냈고, 시멘트 묘비 그늘에 기대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벽해."
내가 말한 완벽함이란 물론 물리적 시설이 완벽하다는 뜻이아니다.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 P165

"인간은 고통을 안고 산다‘ 라는 사실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라. 결국에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연민의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발 아래 깔린 시멘트와 혹독한 폭풍에 짓이겨진 마른 풀들마저도 다정스레 바라보게 한다. 예전에는 추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물들을 이제는 손으로 만지게 되고, 사물의 세부를 있는 그대로 보아도 거부감을느끼지 않게 된다.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 P172

이런 의혹에 귀 기울이지 말라. 의혹이 이끄는 곳으로 가보았자 고통과 부정적인 마음만 만나게 될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당신 글의 문제점만 집어 내는 비평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말 한심해. 그렇게 쓰면 어떡합니까? 도대체 당신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작가가 되겠단 말이오?"
비평가가 지껄이는 말에는 신경 쓸 것 없다. 거기에는 당신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다. 대신 자신의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의심이라는 생쥐에게갉아먹히지 말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 P175

우리는 모두 전체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케이트와 나는 월요일 온종일 서로를 관통하고, 모든 거리, 커피를 관통해서 글을 썼다. 이런 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
세상에는 많은 현실이 있다. ‘다른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문제에 당신이 지나치게 빠져있다면, 세상에는 수많은 현실이 있음을 꼭 기억해두라. 우리에게는 그냥 살아가는 우리 삶이 있다. 우리는 그냥 글을 쓰고 싶은 것이며, 그냥 비와 식탁과 음악과 종이 컵과 소나무를 만지고 싶은 것이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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