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언양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이라고 해야 하는데 나에겐그냥 언양이라고 입에 붙어 있다. 이건 내가 나이 많은 옛날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학, 고고학, 미술사학, 민속학 등 국학을전공하는 분들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본래 조선시대 언양현은 경상도의 당당한 고을로, 1895년에는언양군이 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울산군에 통합되었다. 그러다 1962년 울산읍이울산만을 끼고 있는 방어진, 대현면, 하상면 등과 합쳐 울산시로독립하고 나머지 지역은 울주군이 되는 바람에 이번에는 울주군 언양면이 되었다. - P117

그리고 조선시대만 해도 언양은 교통의 요충지여서 사람과 물화의 왕래가 많은 곳으로 자연히 객주가 발달했고 이에 따라 독특한 향토음식을 낳았으니 그것이 언양불고기다. 언양바로 북쪽은 소고기 산지로 유명한 울주군 두동면 봉계리인데 사실 두동면은 조선시대엔 경주에 속한 지역으로 울산과는 아무 연관이 없었다. 이 봉계는 생고기의 산지로서 유명한 것이고 언양은 조리법으로 이름을 얻은 것이다.
언양불고기는 껍질과 속을 제거하고 강판에 간 배에 잘게(3×5센티미터) 썬 쇠고기를 30분 정도 재워둔 뒤 양념장에 버무리고가열된 석쇠에 구워 만든다(본래는 한지에 물을 묻혀가며 구웠다). 그리고 구운 고기 위에 통깨를 뿌린다. 그래서 고소하고 먹기편하다. 서울 음식으로 석쇠에 굽는 바싹불고기와 비슷한데 배가들어가서 많이 달고 부드럽다. 그래서 언양에 가면 나는 언양읍성가까이 있는 언양불고기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래야 언양에 온것 같다. - P120

우리의 답사 목표는 천전리 각석이지만 이곳 안내판에서는 ‘천전리 공룡 발자국 화석‘이 더 눈에 띈다. 천전리와 반구대의 대곡천변에서는 중생대 쥐라기 (2억~1억 4천 5백만 년 전)와 백악기 (1억4천 5백만~6천 5백만 년 전)에 살던 공룡의 발자국이 약 130개 확인되었다. 스마트폰에서 ‘천전리 백악기 AR 공룡체험‘ 앱을 다운로드하고 실행시키면 백악기 공룡들의 모습을 증강현실로 만나볼 수 있는 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다.
천전리 각석 맞은편 바위 위에도 여러 개의 공룡 발자국을 볼수 있는데 나는 대개 여기서 천전리 답사를 시작한다. 그것은 공룡 발자국도 발자국이지만 이곳 너럭바위 위에서 계곡 건너 각석 - P135

을 바라보면서 대곡천의 물소리를 들으면 천고의 자연과 벗하는기분으로 너무도 마음 편하고 한가로워지기 때문이다. 기암절벽이 즐비한 천하의 절경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우리나라 산천의 맑은 계곡이 갖고 있는 정취와 그윽한 멋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는 나만이 느끼는 감정도 아니고, 오늘날의 답사객들만의 생각도 아니다. 1,500년 전 신라의 왕족과 화랑도 똑같이 이 계곡을 사랑하여 자신들이 다녀간 자취를 저 넓은 바위 절벽에 글로새겨놓았다. 그것이 천전리 각석이다. - P136

천전리 각석은 계곡 위쪽에 길이 9.5미터, 높이 2.7미터의 넓적한 바위가 땅바닥을 향해 15도로 기울어진 상태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천전리 각석이 풍화를 피해 잘 보존되어온 것은 바로이 기울기 덕분이었다. 바위 위쪽에는 청동기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형태의 추상무늬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일부신석기시대의 사실적인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하단부에는 훗날 신라 사람들이 새긴 글씨가 낙서처럼 어지러운 가운데, 명확하게구획을 짓고 마치 책을 펼쳐놓은 모양으로 전후 두 차례에 걸쳐 써 놓은 긴 글이 있다. 이 두 글은 서로 연결되어 먼저 쓴 것을 원명(原銘), 나중 쓴 것을 추명(銘)이라고 부른다.
1970년 발견 직후 당시 (1988년에 울진 봉평리 신라비가 발견되기 - P136

전)로서는 가장 오래된 신라 금석문의 발견이었기 때문에 학계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수영, 임창순, 이기백 등 원로 금석학자와 역사학자가 달려들어 글자를 해독했는데, 그 내용이6세기 전반 신라 법흥왕 때 왕가의 이야기여서 세상을 더욱 놀라게 했다. 학자들에게는 엄청난 기쁨이었다. 청명 임창순 선생이1971년 6월 8일 천전리에 다녀오면서 탁본의 여백에 쓴 소견에는 그런 기쁨이 절절히 들어 있다.
이후 수많은 학자가 후속 연구를 진행하여 대략 원명은 12행107자, 추명은 11행 184자 정도가 판독되고 있다. 글자의 판독과 해석에는 학자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 P137

반구대암각화의 전체 구성을 보면, 화면 오른쪽에는 고래 그림이 다양하게 나오고 왼쪽으로 갈수록 고래의 양이 적어진 반면에 멧돼지 등 물짐승 그림이 대부분을 이룬다. 이는 주된 사냥 대상이 어로에서 수렵으로 점점 바뀌어간 것을 반영한다. 새김 기법도 면새김에서 점차 선새김 위주로 바뀌었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연구는 아주 풍부히 이루어져 이와 관련된 저술과 논문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큐멘터리로도 여러 번 방영되어 지금도 유튜브(YouTube)를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또 이 그림들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선례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암각화에 비슷한 예가 있어 도상 내용의 유사성과 연대측정 등에서 더 면밀한 비교 검토가 필요하다.
반구대암각화에 그려진 작살 맞은 고래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의 창에 꽂힌 들소 그림을 연상케 한다. 원시인류 사회에서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유사한 행위는 유사한 결과를 낳는다‘는 믿음이다. 그들은 그림 속에서 사냥감을 죽임으 - P163

로써 실제 사냥에서 풍성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뉴기니의 원주민들은 타조를 사냥할 때 타조 춤을 춘다고한다. 이러한 것들을 유감주술(呪術, homocopathic magic)‘이라고 한다.
반구대암각화에 나타난 동물들 그림을 보면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인간의 모습은 동작을 설명하는 정도만 소략하게 그렸을 뿐이다. 즉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냥감이었고 인간은 동작만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뱃머리에서 손을 눈위에 얹고 고래가 어디에 있나 관찰하는 사람은 얼굴, 몸, 다리, - P164

손으로만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선사인들에게 성(性)은 생산의 근원이기에 고래 있는 곳을 관찰하는 인물은 남근이 강조되어 있고, 한쪽엔 돼지가 교미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반구대암각화가 그려진 이 바위는 신석기인들이 신성하게 여겨 제의를 올리던 곳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겪으면 여기에 사냥감을 그리면서 제사를드리는 주술 행위를 했을 것이다. 어로와 수렵을 생활의 주요 방편으로 삼았던 신석기인은 풍요롭고 성공적인 사냥을 위하여 이신성한 곳에 장구한 세월에 걸쳐 그림을 되풀이하여 그렸던 것은아닐까. 모든 생명체는 영혼이 있다는 애니미즘, 영혼과 대화하며 기원하는 샤머니즘, 그리고 영혼을 신성하게 모시는 토테미즘모두 이 반구대암각화에 서려 있는 것이 아닐까.
반구대암각화를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보는 견해가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으로 농경이 이루어진 시기인데 반구대암각화의 내용은 모두 어로와 수렵에 관한 그림일 뿐이고 농경에 관한 그림이나 청동기시대의 추상무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설득력 있다. - P165

동북삼성이란 요령성(遼寧省, 랴오닝성), 길림성(吉林省, 지린성), 흑룡강성(黑龍江省, 헤이룽장성)을 말한다. 그런데 중국은 역사의격변을 거칠 때마다 통치 방침에 따라 곧잘 지명을 바꿔 불렀다.
본래 이곳 이름은 만주(滿洲)인데 오늘날 의도적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동북삼성이라고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넓은 의미의 간도 땅이다.  - P178

"고구려는 산성의 나라였습니다. 후기에 들어오면 전국을 5부(部) 176성(城)으로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5개 권역 아래 주요 거점들로 안시성(安市城), 백암성(白巖城), 오골성(烏骨城), 박작성城) 등을 설치했는데, 우리가 가고 있는 봉황산성이 오골성으로 비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우리가 단동을 떠날 때 들르게될 호산장성(長城)은 박작성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박작성은 압록강변에 바짝 붙어 있어 강 건너 의주성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평양성에서 의주성, 박작성, 오골성, 안시성을 거쳐 요동성에 이르는 방어선에 고구려의 주요 산성들이 있습니다." - P189

안시성은 645년 당 태종이 직접 이끄는 대군이 고구려 정벌에나섰지만 전설적인 양만춘(楊萬) 장군의 통솔력과 병사들의 투지로 뚫지 못했다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그 전까지 정복 전쟁에서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던 당 태종이 3개월 만에 아무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물러난 곳으로 유명하다.
병자호란 이후 민족의식이 확대되면서 안시성 전투가 전설적으로 회자되는 가운데 이계 홍양호(洪良浩)의 『이계집(耳溪集)』이나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 봉황산성을 안시성으로 비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구만(萬), 김창업등은 이 견해를 의심했고,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당서(唐書)』와 『한서(漢書』 「지리지」 등을 인용하면서 안시성은 봉황산성 서북쪽에 위치한 개주(州) 일대에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여기에서 서쪽으로 1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요동반도의 해성, 하이청)에 있는 영성자산성(山城)을 안시성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바로 그 북쪽에 있는 성이 요동성이라고 한다. - P196

요단 2호에서 내려 우리는 다시 압록강단교로 가 끊어진 다리끝까지 걸어가며 원 없이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거기서 다시 신의주를 바라보며 북한 주민들의 움직임을 망연히 지켜보고 나선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압록강공원 초입에 대기하고있는 버스에 올랐다. 모두들 방망이로 머리를 맞은 사람처럼 멍한 눈빛으로 자기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우리의 버스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을 느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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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2023년 초겨울 유홍준

국토국토박물관 순례를 시대순으로 찾아 나서자니 그 첫 번째 답사는 당연히 구석기시대 유적지로 향한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는 무려 120곳이 넘는다. 일찍이 1933년 함경북도종성에서 구석기시대 동물 뼈와 흑요석 석기가 발견되었으나 당시 일제는 우리 역사가 일본보다 앞선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않아 이 사실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해방 후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함경북도 지역의 고고학발굴에 나서 1963년에는 웅기군(오늘날 라선시) 굴포리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을 발견했다. 1966년에는 평양 인근의 상원군 흑우리(里)의 검은모루동굴에서 50만 년 전(북한 학계에서는 100만 - P13

년 전)으로 추정되는 동물 화석이 발견되어 크게 주목받았고, 뒤이어 상원군 용곡리, 평양 승호구역의 만달산 등에서 구석기시대 인골이 유물과 함께 발견되어 이를 ‘용곡인‘ ‘만달인‘이라 명명했다.
남한에서는 1964년에 연세대 손보기 교수가 공주 석장리 금강변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지를 발굴했고, 이어 1973년에는 제천 점말동굴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는 충북대 이융조 교수가 청원 두루봉동굴에서 구석기 유물과함께 5세가량의 어린아이 인골을 발견했다. 이 유골의 연대측정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발 - P14

굴자는 약 4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유골은 동굴의 최초발견자 이름을 따 ‘홍수 아이‘라 명명되었다.
그리고 1978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에서 한 미군병사가 주먹도끼를 발견한 후 이곳에서 30년간 발굴 작업이 이어져 약 8천 점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고, 이곳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가 되었다. 특히 여기서 나온 주먹도끼는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꾸어놓았다. 이에 연천 전곡리 구석기시대 유적을 국토박물관 순례 일번지로 삼아 답사를 떠난다. - P15

이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약 1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처음 나타나 유럽, 중동, 인도까지 퍼져나갔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의 자바원인, 북경원인 등은 ‘찍개(chopper)‘를 사용했다. 그래서 하버드대학 모비우스(Hallam Movius) 교수는 구석기 문화를 아슐리안주먹도끼 문화와 찌개 문화로 분류했다. 이것이 이른바 세계 고고학 지도의 ‘모비우스 라인‘(Movius Line)이다. 그런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연천 전곡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P17

‘선사시대로 떠나는 은빛 타임머신‘은 유선형을 그리는 금속건물로 언제나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평면은 크고 작은2개의 주머니가 마치 아메바처럼 이어진 구조지만 정면관(파사드)은 달나라로 가는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내부는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연면적 5천 제곱미터 규모이며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고고학 체험실, 다목적 강당, 도서실 등을 갖춘 쾌적한 복합문화관으로 제법 큰 규모다. 시(市)도 아닌 군(郡)에, 그것도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이 외진 고을에 이처럼 멋지고 당당한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연천군의 자랑이자 국토박물관의 긍지다. - P30

이성적 사유능력. 이것은 모든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가장중요한 특징이자 자랑이다. 이성의 탄생에는 경험의 축적, 시행착오, 상대평가 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버섯을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은 먹고 죽는 것을 본 경험의 축적으로 알게 되었다. 짧은 막대기보다 긴 막대기가 더 높이 달린 열매를 딸 수 있다는 생각은 초보적인 상대평가였다. 특히 인류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아 끊임없이 자연을 개조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도 개조해가며 오늘날 우리에 이르렀다. - P31

구석기시대에 이은 국토박물관 순례의 다음 행로는 당연히 신석기시대다.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약150곳으로 대부분 강변과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강변의 신석기시대 유적지로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자연히 드러난 서울암사동 유적지가 일찍부터 유명하고, 해안 유적지는 동해안의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영도 동삼동, 그리고 섬으로는 통영 욕지도와 제주도 고산리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 중 어느 곳을 국토박물관 순례의 신석기시대 유적지로 삼을까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부산 영도 동삼동 패총을 택했다.  - P67

영도 동삼동 유적에서는 초기 신석기시대의 덧띠무늬토기는물론이고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의 보편적 양식인 빗살무늬토기도 발견되었다. 고래를 잡아먹은 자취가 있을 정도로 활발한 어로 활동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일본과 교류하여 날카로운 흑요석 도구를 사용하거나, 조개껍데기로 팔찌를 만들어 치장하고,
가리비로 사람 얼굴 형상을 만드는 조형 활동도 있었음을 추정할수 있다.
특히 신석기시대 유적의 또 다른 상징인 패총(貝塚, shellmidden)의 자취가 여기 남아 있다. 패총이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나 생활 쓰레기들이 쌓인 것으로, 조개더미 또는 조개무지라고도 부른다. 한반도에서 패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 부산이다. - P69

일본인이 갖고 있던 이 덧띠무늬토기는 돌고 돌아 한국전쟁중 고물상에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동아대학교 설립자인 석당정재환 박사가 구입하여 현재는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도구에서는 이 덧띠무늬토기 복제품을 영도를 상징하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나는 패총 터를 알려주는 비석을 앞뒤로 사진 찍고 문화재 안내판도 찬찬히 다 읽어보았다. 새롭게 안 사항은 없었지만 나로서는 지난 세월 한국미술사를 강의할 때면 줄곧 신석기시대 맨 첫 머리에 소개하는 이 유물의 고향을 다녀간다는 사실 자체로 오랫동안 묵혀둔 숙제를 마친 듯한 후련함이 있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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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가파른 낭떠러지인데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는 말할 필요도 없이 급류가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고, 뒤는 높다란 절벽이 우뚝 솟아 있는데가느다란 폭포가 절벽을 타고 곧게 떨어지고 있었다. 절벽은 오래전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 일대를 지금 절정인 단풍이 알록달록 다채롭게 장식하고 있었다. 표고가 높은 한랭지에 적응할 수 있는 나무만뿌리를 내려서 붉은색 단풍을 비롯해 노란색 단풍,
갈색 단풍, 주홍색 단풍이 어우러진 가운데 침엽의 진녹색도 적당히 섞여 있다. 수종은 다양하지만 모두 크게 자라지는 않고 표준 크기보다 작게 자라 분재 형태를 띠고 있었다. 절벽이라는 두려운 조건을 바탕으로, 절벽 위를 장식하는 단풍의 아름다움이란! 절로 탄식이 나오는 수려한 풍경이었다. - P138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떤 힘에 의해 갑자기 붕괴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발밑의 계곡을 내려다보니 섬뜩할 정도로 깊었다. 뒤를 돌아보자 절벽의 단풍은 비단에 수를 놓은것 같았다.
위험 지대를 수놓는 단풍의 아름다움은 각별했다. 위험성을 정확하고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옆에있어 가르쳐주었기에 호들갑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만약 아무것도 몰랐다면 나는 역시나 호들갑스레 행동했을 것이다. 나무는 역시 속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 P140

거대한 목재는 수백 년의 세월에 걸친 그만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저 젊은 목수를 압박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압박하면서 그와 동시에 젊은 목수의 담력과 기력을 키워주고 있다. 이것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점이라고 설명한다. 그 증거로 한번 거대한 목재를 다뤄본 젊은이는 그만큼 정신이 안정된다고 한다. 나무는 알게 모르게목수를 키워준다고, 나라지로 씨는 말하고 싶어다. 어지간히 나무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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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목적지인 쓰러져 죽은 나무 위로 새로운가문비나무가 자라나는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 현장에 도착했다. "잘 찾아보세요, 그쪽에 있을 거예요. 저쪽에도 있을 거고요"라는 말에 순간 당황했다. 도무지 짐작도 가지 않는, 일대에는 그저 비슷하게생긴 나무 밑동들만 있었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오늘까지도 그치지 않아 울창한 숲속은 다소 어두웠고 나무는 흠뻑 젖어 있었다. 위를 쳐다보니 우듬지는 가지가 이리저리 얽혀 우산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지난번에 듣기로는,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 현장은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 P15

일본 홋카이도 후라노의 숲속에서는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는데 가문비나무들은 한일자로 반듯하게 줄지어 서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하나는 배워서 만족한다. - P25

아버지는 똑똑한 언니를 몹시 흡족해하며 이것저것 더 가르쳐주려고 했다. 언니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언니는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걸어갔지만 나는 늘 뒤에 남겨졌다. 하지만 별도리 없으니 홀로 뒤따라갔다. 질투가 낳은 쓸쓸함이 있었다. 한쪽은 선천적으로 총명하다는 타고난 소질이 있는 데다 가르쳐주는 사람을흡족하게 하면서 자신도 즐겁고 화기애애한 상태에서 발전해간다. 그에 반해 다른 한쪽은 멍청하다는 부담이 있는 데다 가르쳐주는 사람을 한숨짓게 하면서 자신도 즐기지 못하고 질투를 맛본다. 그야말로비극적인 전개다. 환경도 부모님의 가르침도 초목과인연을 맺게 된 계기이기는 하지만, 언니를 향한 질투가 그 계기를 더욱 굳게 다져주었기 때문에 상당히 꺼림칙하다. - P29

꽃은 한없이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발밑은 보기도 무서워 이 뿌리를 보고 나서 꽃을 쳐다보면 꽃의 아름다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만다. 그러나 옆을 떠나가지도 않았다. 무서운 존재의 짓누르는 힘 때문에 일행이 재촉할 때까지 나는 우뚝 서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꽃에게 추억과 사죄를 마치고 온 것 같았다. 뿌리의 경우, 이번에 새로 대면했다는 인상이 강했다. 어쨌든 다음에 그 뿌리를 또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거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산과 골짜기에서 자라는, 자연 속의 오래된 등나무, 어린 등나무의 꽃과 뿌리를 보여달라고 할 심산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다리를 놓을 때 쓰일 정도로 질기다는 등나무의 강력한 힘에 묶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P44

8월의 편백나무는 기상이 높다. 멀리서 봐도 나무에 활기가 넘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모든 편백나무가 의욕적으로 살고 있는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약 나무가 떠들기 시작한다면 바로 이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곳의 편백나무는 적극적이고 왕성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더 높이 클 거다. 더 굵어질 거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의지를 느꼈다. 나무가 이런 식으로 기를 뿜어내는 존재란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무의 생명력 혹은 생기, 정기란 바로 이것일까 싶었다. - P45

그러나 너무 우수하면 내가 쓸쓸해진다. 천박한마음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훌륭한 것 앞에 서면한시도 버티지 못하고 감탄사만 내뱉으며 깊이 감동한다. 거의 무조건 곧바로 감동한다. 민감하다고할 수 있고, 근사한 것에 약하다고도 할 수 있다. 거기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자신의 꼴사나움을 생각하고는 마음이 점점 시들해져서 자신은이런 근사한 것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 여기며 인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감동했다는말은 사실 그 시점에서 끈끈한 인연이 생겼다는 뜻인데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고, 반대로 인연이 끊어졌다고 착각해 결국 몸을 사림으로써 근사한 것과의 인연을 거부한다.  - P53

평생 한쪽으로 기운 채 살아갈 편백나무의 높은 우듬지에 무성하게 달린 가느다란 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 작은 흔들림에도 기울어진 구간어딘가는 인내를 요구받고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몸이 기울어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까웠다.


인간에게 저마다의 이력이 있듯이 나무에도 저마다의 이력이 있다. 나무는 몸에 자신의 이력을 표시해서 보여준다. 몇 살인지, 별 근심 없이 오늘날까지 살아왔는지, 아니면 고통을 견디며 인내해왔는지, 행복하다면 행복했던 이유가 있을 터이고 고통을 겪있다면 몇 살 때, 몇 번, 어떤 종류의 장애를 만났는지 등을 자신의 몸에 전부 기록한다.  - P57

그렇다면 뿌리, 우뚝 솟은 부분, 나무 또는 줄기로 이루어진 것일까? 아니면 그 모두를 통틀어 나무라고 하는 걸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야쿠 삼나무는 그 애매한 부분을 통해 눈에 띄는 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천 년을 버텨온 인내의 집결과 같은 힘을. 어린 나무는 지면에서 완전한 원형으로 곧고 크게 자란다. 그것은 과거에 인내와 인고를 강요받은적 없는 경사스러운 원형이며 곧음이라 할 수 있다.
야쿠 삼나무는 곧고 크게 자라지 않는다. 원형이라고도 할 수 없다. 굳이 길게 이야기하자면, 부풀어 오른 혈관과 경련이 일어난 힘줄이 서로 다투고 얽히면서 어떤 부분은 기운이 넘쳐 불거지고, 어떤 부분은 반대로 깊게 쑥 들어간다. 자신의 무게를 오랜 세월 지탱해온 과정에서 생긴 거대한 혹을 갖는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 그저 힘, 힘의 작용인 것이다.  - P82

강럭하다면 더없이 강력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참혹한 인내의 집약이기도 하다. 나는 도시에 살며 허약하게 늙어온 터라 가끔씩 자연에 나왔다가 그와 같은 강력함을 보면 곧바로 서글퍼지는데, 야쿠 삼나무는 빗속에서 태연하게 똑바로 서 있어 티 없이 맑아 보였다.
꾸불꾸불한 오르막길이다. 조금 올라가다 멈춰서서 바라보니 이 삼나무의 전체 모습이 비교적 잘보였다. 바람이 희뿌연 비를 몰고 삼나무 사이를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삼나무에 비를 남겨두고 가는지 비는 옅은 하얀빛으로 바뀌어 지나간다. 그렇구나, 알았다. 여기서 비는 삼나무에게 주는 선물인것이다. - P83

개중에는 꽃보다 신록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신선함과 상쾌함 때문일 것이다. 나는 둘 다 좋아하지만 자세히 말하자면 꽃을 피우려는 꽃망울, 잎을 피우려는 신록에 가장 마음이 끌린다. 꽃망울에서 꽃이 싹에서 잎이 되려 할 때 그들은 결코 재빨리 피거나 자라려고 하지 않는다. 꽃은 꽃잎을 서로 스쳐대며 피기 시작하고, 잎은 흔들거리며 피어난다. 조심성이 많다고도, 아니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걸린다. 감나무 잎은고개를 숙인 자세로 느릿느릿 피어나고, 양귀비꽃은모자를 벗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꽃과 잎이 생명을 시작하는 데에는 각각 정체기가 있지만 그 정체기를 지나면 감나무는 초록 잎을 기르고 양귀비는 - P109

붉은 꽃을 피워내며 성숙한다. 나는 꽃과 잎의 시작혹은 탄생을 좋아한다. 그래서 신록이 피어나면 팬지 일단락된 듯한, 긴장을 늦춘 시각으로 보게 된다. 물론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기는 하지만, 싹이었을 때는 지켜보던 시선이 신록일 때는 관망하는시선이 되는데 거기에는 약간의 심적 거리가 있다.
이전부터 싹을 유독 좋아하긴 했지만 근래 수년간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생긴, 다음 세대로의 계속이나 새로운 탄생에 왠지 모를 희망이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것 같다. 내가 꽃도 잎도 탄생 시기를 좋아하는 연유는 틀림없이 그런 은밀한 속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신록도 물론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지만, 잎이 피기까지 아직 정체기에 있을 아베고개 단풍나무 숲의 새싹이야말로 내가 정말 보고싶은 것이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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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 아야幸田文(1904-1990)

"한평생 둘러보며 살고 싶다."

1904년 도쿄 출생. 일본의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고다로한 (1867~1947)과 그의 아내 기미코 사이에서 둘째아이로 태어났다. 그러나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년후엔 언니를, 그리고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엔 남동생마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다.
1928년 청주 도매업을 하는 이쿠노스케와 결혼해 이듬해 딸(훗날 작가 아오키 다마)을 낳았다. 그러나 가업이 기울며 10년 만에 이혼하고 딸과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194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다.
아버지 고다 로한의 삶과 문학을 기리며 그와의 일상을 기록한 『잡기 종언」 「장송의 기 등을 발표하면서 문필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4년에 발표한 단편집 『검은 옷자락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으로상하며 널리 이름을 알렸다. 1956년 소설 『흐르다신초샤 문학상과 일본예술원상을 받았고, 1973년 『싸움으로 제12회 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특유의 관찰과 섬세한 감성으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990년 가을, 향년 86세로 생을 마감했다.

나무는 고다 아야가 타계한 후 출간된 유작으로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고단사신초, 헤이본사 등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출판사에서 새로운 장정으로 거듭 출판되고 있다.

궁금하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가 헌책방에 가서 고르는 고다 아야의 나무 이야기다. 서점 주인은 그가고른 책을 보고는 "고다 아야 너무 저평가됐죠? 같은 단어도 이분이 쓰면 느낌이 다르다니까"라며 말을 건넨다. 책값을 계산하는 히라야마의 눈은 이미 첫 페이지에 꽂혀 있다. 아마 첫 문장을 읽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갑자기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로 옮겨갔다."
말년의 노작가가 홋카이도에서 야쿠섬까지 일본의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쓰고 엮은 산문집 『나무는 비전문가의 눈으로 착실하게 초목을 배워가며 그 안에 머문시간 그 자체다. 식물학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 초목에 눈 밝았던 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였던 아버지는 그 전에도, 후에도, 꽃 이야기, 나무 이야기를 해주었다. 작가의 아버지에서 딸에 이르는 3대가 등꽃을 둘러싸고 나누는 대화는 다감하게 회고적인데,

그 안에 출렁이는 감상이 「나무』를 각별히 빛나게 한다.
고다 아야는 시종 조바심 내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오늘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성급하게 쫓아간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던 지금까지의 여유는 사라져버렸다." 여유 없음이 충만함을 부른다. 매 순간이 귀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하야시 후미코가 "한 달에 35일 비가 내린다"라고 쓴 바 있다는 야쿠섬은 훗날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모티브가 된 장소로도 알려져 있는데, 고다 아야의 글로 야쿠섬을 방문하면 "신은 높은 나무 꼭대기로 강림한다"라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나무와 문학이 만나 『나무』가 되었다. 이 책의 탐미주의는 곧게 뻗어 자라는 초목의 힘만큼이나 죽음과 붕괴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말년의 글쓰기가 갖는 깊은 눈짓이 이런 것 아닐까.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나는 식물을 ‘종‘ 단위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내가 그리는 식물세밀화 또한 종을 식별하기 위한 그림이다. 나는 줄곧 종보다 더 촘촘한 단위, 이를테면 북한강변에 선 버드나무, 어느 수목원 박물관 앞 복자기나무처럼 ‘개체‘로서 식물을 이야기하기를 꿈꾼다. 하나의 종 이전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내내 나무를 ‘개체‘로 이야기한다. 도쿄 에도가와의 절에 있는 소나무, 미에현 스즈카의 전원 속에 있는 녹나무, 후쿠시마현의 도로 옆 밭에 있는 삼나무...... 작가의 시선은 눈앞의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해 일본 전역의 나무와 식물계, 더 나아가 환경과 인간에 대한 사색에까지 이른다.
이 책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도감 같기도 하며, 긴 시와 같기도 하다. 나무 이야기 속에 인간의 삶의 이야기가 흐른다. 가을 숲을 묘사하며 다가올 겨울을 예감하고, 지나온 여름을 기억한다. 그야말로 이 책은 내내

오묘하다.
나는 이 책이 나무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이야기는 갑자기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로 옮겨갔다.
홋카이도 자연림에서 가문비나무는 쓰러져 죽은나무 위로 새로운 나무가 자란다. 물론 숲속의 가문비나무가 해마다 지상에 퍼뜨리는 씨앗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홋카이도의 자연환경은 열악하다. 싹이 터도 나무로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쓰러져 죽은 나무 위에 안착해 싹을 틔운 씨앗은 행복한 씨앗이다. 수월하게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걱정 없이 여유 있게 커갈 수 - P11

는 없다. 쓰러져 죽은 나무 위는 좁다. 약한 존재는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열악한 조건에 적응할 수있는 정말 강하고 운 좋은 소수의 몇 그루만 겨우 생존을 허락받는데 현재 수령이 300~400년쯤 된 나무도 있다. 이 나무들은 같은 나무 위에 안착해 자랐기때문에 일렬종대로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열 맞춰서있다. 그러니 아무리 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눈에
‘아, 이게 쓰러져 죽은 나무 위로 새로운 나무가 자라난 세대교체의 현장이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에서 산속의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감동이 느껴졌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인가. 이 얼마나 인상적인 이야기인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 눈으로 꼭 직접 확인해보리라 결심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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