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2023년 초겨울 유홍준
국토국토박물관 순례를 시대순으로 찾아 나서자니 그 첫 번째 답사는 당연히 구석기시대 유적지로 향한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는 무려 120곳이 넘는다. 일찍이 1933년 함경북도종성에서 구석기시대 동물 뼈와 흑요석 석기가 발견되었으나 당시 일제는 우리 역사가 일본보다 앞선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않아 이 사실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해방 후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함경북도 지역의 고고학발굴에 나서 1963년에는 웅기군(오늘날 라선시) 굴포리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을 발견했다. 1966년에는 평양 인근의 상원군 흑우리(里)의 검은모루동굴에서 50만 년 전(북한 학계에서는 100만 - P13
년 전)으로 추정되는 동물 화석이 발견되어 크게 주목받았고, 뒤이어 상원군 용곡리, 평양 승호구역의 만달산 등에서 구석기시대 인골이 유물과 함께 발견되어 이를 ‘용곡인‘ ‘만달인‘이라 명명했다. 남한에서는 1964년에 연세대 손보기 교수가 공주 석장리 금강변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지를 발굴했고, 이어 1973년에는 제천 점말동굴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는 충북대 이융조 교수가 청원 두루봉동굴에서 구석기 유물과함께 5세가량의 어린아이 인골을 발견했다. 이 유골의 연대측정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발 - P14
굴자는 약 4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유골은 동굴의 최초발견자 이름을 따 ‘홍수 아이‘라 명명되었다. 그리고 1978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에서 한 미군병사가 주먹도끼를 발견한 후 이곳에서 30년간 발굴 작업이 이어져 약 8천 점의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고, 이곳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가 되었다. 특히 여기서 나온 주먹도끼는 세계 고고학 지도를 바꾸어놓았다. 이에 연천 전곡리 구석기시대 유적을 국토박물관 순례 일번지로 삼아 답사를 떠난다. - P15
이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약 1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처음 나타나 유럽, 중동, 인도까지 퍼져나갔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의 자바원인, 북경원인 등은 ‘찍개(chopper)‘를 사용했다. 그래서 하버드대학 모비우스(Hallam Movius) 교수는 구석기 문화를 아슐리안주먹도끼 문화와 찌개 문화로 분류했다. 이것이 이른바 세계 고고학 지도의 ‘모비우스 라인‘(Movius Line)이다. 그런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연천 전곡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P17
‘선사시대로 떠나는 은빛 타임머신‘은 유선형을 그리는 금속건물로 언제나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평면은 크고 작은2개의 주머니가 마치 아메바처럼 이어진 구조지만 정면관(파사드)은 달나라로 가는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내부는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연면적 5천 제곱미터 규모이며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고고학 체험실, 다목적 강당, 도서실 등을 갖춘 쾌적한 복합문화관으로 제법 큰 규모다. 시(市)도 아닌 군(郡)에, 그것도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이 외진 고을에 이처럼 멋지고 당당한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연천군의 자랑이자 국토박물관의 긍지다. - P30
이성적 사유능력. 이것은 모든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가장중요한 특징이자 자랑이다. 이성의 탄생에는 경험의 축적, 시행착오, 상대평가 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독버섯을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은 먹고 죽는 것을 본 경험의 축적으로 알게 되었다. 짧은 막대기보다 긴 막대기가 더 높이 달린 열매를 딸 수 있다는 생각은 초보적인 상대평가였다. 특히 인류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아 끊임없이 자연을 개조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도 개조해가며 오늘날 우리에 이르렀다. - P31
구석기시대에 이은 국토박물관 순례의 다음 행로는 당연히 신석기시대다.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약150곳으로 대부분 강변과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강변의 신석기시대 유적지로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자연히 드러난 서울암사동 유적지가 일찍부터 유명하고, 해안 유적지는 동해안의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영도 동삼동, 그리고 섬으로는 통영 욕지도와 제주도 고산리가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 중 어느 곳을 국토박물관 순례의 신석기시대 유적지로 삼을까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부산 영도 동삼동 패총을 택했다. - P67
영도 동삼동 유적에서는 초기 신석기시대의 덧띠무늬토기는물론이고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의 보편적 양식인 빗살무늬토기도 발견되었다. 고래를 잡아먹은 자취가 있을 정도로 활발한 어로 활동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일본과 교류하여 날카로운 흑요석 도구를 사용하거나, 조개껍데기로 팔찌를 만들어 치장하고, 가리비로 사람 얼굴 형상을 만드는 조형 활동도 있었음을 추정할수 있다. 특히 신석기시대 유적의 또 다른 상징인 패총(貝塚, shellmidden)의 자취가 여기 남아 있다. 패총이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나 생활 쓰레기들이 쌓인 것으로, 조개더미 또는 조개무지라고도 부른다. 한반도에서 패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 부산이다. - P69
일본인이 갖고 있던 이 덧띠무늬토기는 돌고 돌아 한국전쟁중 고물상에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동아대학교 설립자인 석당정재환 박사가 구입하여 현재는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도구에서는 이 덧띠무늬토기 복제품을 영도를 상징하는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나는 패총 터를 알려주는 비석을 앞뒤로 사진 찍고 문화재 안내판도 찬찬히 다 읽어보았다. 새롭게 안 사항은 없었지만 나로서는 지난 세월 한국미술사를 강의할 때면 줄곧 신석기시대 맨 첫 머리에 소개하는 이 유물의 고향을 다녀간다는 사실 자체로 오랫동안 묵혀둔 숙제를 마친 듯한 후련함이 있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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