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 아야幸田文(1904-1990)
"한평생 둘러보며 살고 싶다."
1904년 도쿄 출생. 일본의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고다로한 (1867~1947)과 그의 아내 기미코 사이에서 둘째아이로 태어났다. 그러나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2년후엔 언니를, 그리고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엔 남동생마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다. 1928년 청주 도매업을 하는 이쿠노스케와 결혼해 이듬해 딸(훗날 작가 아오키 다마)을 낳았다. 그러나 가업이 기울며 10년 만에 이혼하고 딸과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194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다. 아버지 고다 로한의 삶과 문학을 기리며 그와의 일상을 기록한 『잡기 종언」 「장송의 기 등을 발표하면서 문필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4년에 발표한 단편집 『검은 옷자락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으로상하며 널리 이름을 알렸다. 1956년 소설 『흐르다신초샤 문학상과 일본예술원상을 받았고, 1973년 『싸움으로 제12회 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특유의 관찰과 섬세한 감성으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990년 가을, 향년 86세로 생을 마감했다.
나무는 고다 아야가 타계한 후 출간된 유작으로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고단사신초, 헤이본사 등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출판사에서 새로운 장정으로 거듭 출판되고 있다.
궁금하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가 헌책방에 가서 고르는 고다 아야의 나무 이야기다. 서점 주인은 그가고른 책을 보고는 "고다 아야 너무 저평가됐죠? 같은 단어도 이분이 쓰면 느낌이 다르다니까"라며 말을 건넨다. 책값을 계산하는 히라야마의 눈은 이미 첫 페이지에 꽂혀 있다. 아마 첫 문장을 읽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갑자기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로 옮겨갔다." 말년의 노작가가 홋카이도에서 야쿠섬까지 일본의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쓰고 엮은 산문집 『나무는 비전문가의 눈으로 착실하게 초목을 배워가며 그 안에 머문시간 그 자체다. 식물학자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몰랐을, 초목에 눈 밝았던 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였던 아버지는 그 전에도, 후에도, 꽃 이야기, 나무 이야기를 해주었다. 작가의 아버지에서 딸에 이르는 3대가 등꽃을 둘러싸고 나누는 대화는 다감하게 회고적인데,
그 안에 출렁이는 감상이 「나무』를 각별히 빛나게 한다. 고다 아야는 시종 조바심 내며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오늘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성급하게 쫓아간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던 지금까지의 여유는 사라져버렸다." 여유 없음이 충만함을 부른다. 매 순간이 귀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하야시 후미코가 "한 달에 35일 비가 내린다"라고 쓴 바 있다는 야쿠섬은 훗날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모티브가 된 장소로도 알려져 있는데, 고다 아야의 글로 야쿠섬을 방문하면 "신은 높은 나무 꼭대기로 강림한다"라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나무와 문학이 만나 『나무』가 되었다. 이 책의 탐미주의는 곧게 뻗어 자라는 초목의 힘만큼이나 죽음과 붕괴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말년의 글쓰기가 갖는 깊은 눈짓이 이런 것 아닐까.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나는 식물을 ‘종‘ 단위로 이야기할 때가 많다. 내가 그리는 식물세밀화 또한 종을 식별하기 위한 그림이다. 나는 줄곧 종보다 더 촘촘한 단위, 이를테면 북한강변에 선 버드나무, 어느 수목원 박물관 앞 복자기나무처럼 ‘개체‘로서 식물을 이야기하기를 꿈꾼다. 하나의 종 이전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내내 나무를 ‘개체‘로 이야기한다. 도쿄 에도가와의 절에 있는 소나무, 미에현 스즈카의 전원 속에 있는 녹나무, 후쿠시마현의 도로 옆 밭에 있는 삼나무...... 작가의 시선은 눈앞의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해 일본 전역의 나무와 식물계, 더 나아가 환경과 인간에 대한 사색에까지 이른다. 이 책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도감 같기도 하며, 긴 시와 같기도 하다. 나무 이야기 속에 인간의 삶의 이야기가 흐른다. 가을 숲을 묘사하며 다가올 겨울을 예감하고, 지나온 여름을 기억한다. 그야말로 이 책은 내내
오묘하다. 나는 이 책이 나무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소영 식물세밀화가
이야기는 갑자기 가문비나무의 세대교체로 옮겨갔다. 홋카이도 자연림에서 가문비나무는 쓰러져 죽은나무 위로 새로운 나무가 자란다. 물론 숲속의 가문비나무가 해마다 지상에 퍼뜨리는 씨앗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홋카이도의 자연환경은 열악하다. 싹이 터도 나무로 자라지 못한다. 하지만 쓰러져 죽은 나무 위에 안착해 싹을 틔운 씨앗은 행복한 씨앗이다. 수월하게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걱정 없이 여유 있게 커갈 수 - P11
는 없다. 쓰러져 죽은 나무 위는 좁다. 약한 존재는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열악한 조건에 적응할 수있는 정말 강하고 운 좋은 소수의 몇 그루만 겨우 생존을 허락받는데 현재 수령이 300~400년쯤 된 나무도 있다. 이 나무들은 같은 나무 위에 안착해 자랐기때문에 일렬종대로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열 맞춰서있다. 그러니 아무리 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눈에 ‘아, 이게 쓰러져 죽은 나무 위로 새로운 나무가 자라난 세대교체의 현장이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에서 산속의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감동이 느껴졌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인가. 이 얼마나 인상적인 이야기인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 눈으로 꼭 직접 확인해보리라 결심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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