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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 그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 그것도 인간의 생산물이엇다. 그것들은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히 이데올로기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그 발명품은 당초의 목적대로 쓰이지를 못했다. 흡사 칼이라는 발명품처럼, 똑같은 칼을 주부가 들었을 때와 도둑이 들었을 때....... 결국 각국의 공산당원이란 칼이라는 유익한 도구를 잘못 든 도둑과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인간의 문제였다. 인간......., 인간.......,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당원들의 부패와 타락의 뿌리는 이기주의다. 이기성이라는 본능의 힘은 무섭다. 모든 종교의 공통된 미덕은 나만의 이기심을 버리고 남도 위할 줄 아는 이타행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 지고한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각 종교의 성직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다수가 이기심에 사로잡혀 신의 이름을 팔아가며 타락하고, 사회 권력을 형성해 횡포를 자행하고, 심지어 신을 내세워 살인을 합리화 하는 전쟁까지 불사해온 것이 인류사였다. 그 막대한 해독 때문에 마르크스는 일찍이 종교를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이기심이라는 본능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듯 당원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 인간이란 본능적 존재에 지나지 않은 것인가. 그럼, 인간의 이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며, 이성의 힘에 의해 마르크시즘이 탄생했고, 그 이상세계를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다는 신념하나로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내가 3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지 않고 그냥 당원으로 살았다면 나도 인민들에게 원한을 살 정도로 부패하고 타락했을 것인가. 인간.......,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사람의 일생에 그 시대가 얼마나 담겨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선생님이야말로 우리의 분단시대를 온몸으로 떠안고 가장 정직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무 일도 한 게 없다고 하시는데, 평생을 수난당하고 산 그것보다 더 치열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또 중요한 사실은, 수 많은 장기수들이 당한 고난은 엄연한 분단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묻혀버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그건 꼭 기록으로 남겨져야 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전모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쓰고 싶어도 쓸 능력이 없어서 못 씁니다. 선생님은 쓸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안 쓰시는 건 겸손이 아니라, 죄송한 밀씀입니다만, 책임 회피고 비겁입니다. 그리고 자기 부정이고요."
-조정래 [인간 연습] 중에서-
프로필; 1943년 전남 승주 출생.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출간했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화상, 동국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
인간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그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해서, 더러 성공도 하고, 많이는 실패하면서 또 새롭게 모색하고 시도하고....... 그 끝없는 되풀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 고단한 반복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 특유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그 '큰 연습' 한 가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오다가 이 작품을 엮어냈다.
"진정한 작가란 어느 시대,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진보성을 띤 정치 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3년 전에 낸 산문집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다시 음미하게 되었다.
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
바햐흐로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은 온갖 유혹적 기능으로 독서 중심 세력인 젊은 층의 시간을 무한정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래서 '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러나......., 문학은 영혼의 호흡 작용이니까!
-[인간 연습] 작가의 말-
며칠, 낯설고도 익숙한 동네의 길들을 어슬렁거렸다. 어슬렁거리기에는 추운 날들이어서 가끔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고양이들만 만날 수 있었다. 길마다 모퉁이를 돌면 마트란 이름의 작은 가게들, 미장원, 빵집, 쌀가게를 겸한 과일가게, 치킨집, 게임방, 식당들이 서로 사이좋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포장마차 리어카도 쉬는 날인가 보다. 무수한 골목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열려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 골목도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 아무런 용무 없이는 저 막다른 골목의 끝까지는 가서는 안될 것만 같다고, 가서는 안되는 거라고 등 떠미는 바람이 있었다. 골목 앞에서 번번이 그렇게 돌아나왔다.
저 낮은 지붕을 찍고 돌아서다가 빨간 집배원 오토바이와 마주쳤다. 은근슬쩍 마주쳤던 시선이 서로 황급히 돌려졌다. 113이란 숫자가 뜬금없이 떠올랐다. 프힛~! 우리 2007년 1월의 대낮에도 만나게 되는 빨간 악령. 헐렁헐렁한 우체부 아저씨 바지 사이로 골목 바람이 지나간다. 그의 손에 들린 고지서와, 독촉장과, 안내문 사이에 '죽었니?'라고 쓰인 관제엽서라도 떨어질 것 같다. 이제는 얼굴도 희미한 친구가 보내어 火印으로 남은 '죽었니?' '죽었니?'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행이다. 아직 살아있다.
읽고 책상 위에 놓아둔 채로 이리저리 쓸려다니던 '인간 연습'을 꽂는다. 한시간 만에 읽어 버리고 아쉽고 아쉬워서 꽂지 못했던가,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 너무 오래 책상 위에 있었다. 아마도 허기를 채우지 못한 쓸쓸함이었을 것이다. 메모 두 군데 하고나니 끝이 나 있던 책........ 그의 대하에 오랜 시간 길들여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작가도 이름으로 말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