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달

                                 손택수

  스무살 무렵 나 안마시술소에서 일할 때, 현관 보이로

어서 옵쇼, 손님들 구두닦이로 밥 먹고 살 때

  맹인 안마사들도 아가씨들도 다 비번을 내서 고향에

가고, 그날은 나와 새로 온 김양 누나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런 날도 손님이 있겠어 누나 간판불 끄고 탕수육이

나 시켜먹자, 그렇게 재차 졸라대고만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화근이라도 되었던가 그날따라 웬 손님

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상한 구두코에 광을 내는 동안

퉤, 퉤 신세 한탄을 하며 구두를닦는 동안

  누나는 술 취한 사내들을 혼자서 다 받아내었습니다

전표에 찍힌 스물셋 어디로도 귀향하지 못한 철새들을

하룻밤에 혼자서 다 받아주었습니다

  날이 샜을 무렵엔 비틀비틀 분화장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던 추석달

                                                 시집 [목련전차]중에서

 

 

 

 

 

 

 

 

 

 추석이면 어김없이 추석달의 시구들이 떠오르고 나는 이보다 더 서글퍼지는 명절의 시를 알지 못한다.

 이천십구년 구월 십삼일 모처럼 맑은 날의 추석에 일몰과 월출을 동시에 만났다.

 아니, 만나기를 기다렸다. 광교산 형제봉에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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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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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 엄마는 된장과 술국밥을, 아니면 된장술과 국밥을 팔아서 아들을 위하려고 섬에서 올라와서, 아들을 위해서 살고있구나 생각했고 그러자 눈물이 핑 돌았다.
 "대화를 그렇게 하지 마시고요, 사모님, 여기 과일 받으시고 합의금 관련 저희 제안도 봉투를 열어서 보시고요. 저희가 이렇게 사과를 하니까요."
비서관이 준비한 모든 것들을 넘기고 나서도 분위기는 나아지지않았다. 한참 말을 않던 소년의 엄마는 술 드셨죠? 하고 상수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아버지는 문득 당황했다.
"반주 정도 일 때문에 했어요. 식당 사장님이니 잘 아실 것 아닙니까."
"맨정신도 아니면서 하는 사과 안 받아요. 돈도 싫어요. 우리 애법대 갈 애예요. 그런 돈으로 안 키운다고요. 그리고 학생, 학생이왜 울어? 형이 그랬으면 형이 사과해야지. 울지 마, 울지 말고 학생은 똑바로 살아, 돌아가신 엄마 생각하면서 공부하며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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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 돈황과 하서주랑 - 명사산 명불허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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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이지만 이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20킬로미터가 넘었다. 그때는 갈수기여서 웅장한 황하는 아니었지만 드넓은 갈대밭을 헤치면서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 그렇게 유장할 수 없었다. 내가 역사책에서 수없이 만나왔던 그 황하의 실물을 처음 만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맺혔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에 가는 길에 요동벌판의 지평선을 보면서 "사나이로서 한번 목 놓아 울 만한 곳이다"라고 했던 그런 감정이었다.
그때 중국문명의 요람이라는 황하의 도도한 흐름을 보면서 이런 엄청난 땅덩이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심오하게 생각하고 정교하게문화를 창조했던 이 욕심 사나운 민족의 역사를 회상했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국토에 거대한 인구와 거대한 문명을 갖고 있는 중국에 비할 때 초라할 정도로 땅은 좁고, 인구도 적은 우리나라의 사정과 역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자니 우리는 그 좁은 영토에서 삶을 영위하면서도 중국 변방의 다른 소수민족과는 달리 끝끝내 중국에 정복당하지 않고 그들의 문명에 버금가는 문화를 창조하여 오늘날 누가 보아도 동아시아에서 당당한 문화적 지분을 갖고 있는 문명국가로 부상해 있음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 우리 역사의 저력, 그리고 후손들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독립된 민족국가로넘겨준 조상들의 피어린 노력과 희생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기어이나로 하여금 눈물방울을 맺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375년, 서양에서 일어난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촉발시키족이 바로 이들 북흉노였다는 학설이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휴가 홀연히 사라졌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흉노 제국은 멸망했지만 흉노인은 여전히 유목민으로 살았다. 오호십육국시대의 전조(前趙304~329), 북량(北凉, 397~439) 등이 흉노의 후예가 세운 나라였다.
 한편 이들이 사용했던 동복(銅)이라는 이동용 가마솥이 우리나라 가야 유적에서도 발굴되어 가야의 상층부가 북방에서 내려왔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아무튼 5세기 이후 흉노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지금 하서주랑에 와서 흉노의 역사를 이렇게 일별하자니 중국에 있는 55개 소수민족의 처지를 우리와 자연히 비교해보게 된다. 중국인이 오랑캐라고 부른 변경민족의 흥망성쇠와 영욕을 보자면 오늘날 중국이라는 대국의 힘에 눌려 중국의 자치구 또는 자치주를 이루며 조상들 삶의 방식을 이어가거나, 아예 더 서쪽으로 밀려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스탄 자가 붙어 있는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되어 있다. ‘스탄 이란 땅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동아시아 제민족의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견지한 역사적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하나의 민족이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강역을 확보하니대대로 역사를 이어온 것은 피나는 희생과 불굴의 의지 아래 조상들이 우리에 내린 유산이고 축복이다. 하서주랑에 서린 흉노의 역사가 이를 절절히 기르쳐준다.

명사산 명불허전(鳴山鳴不虛傳)"

 명사산의 울림은 헛되이 울리는 것이 아니다‘가 된다. 글자 하나를바꿈으로써 그 감동의 진폭이 이렇게 더 고양된다. 이를 놓치지 않고,
다시 와보게 해준 내 친구 광호가 너무 고마웠다.
 덧신을 반납하러 입구의 광장으로 나와 다시 명사산을 바라보며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는데 명월광장의 이름도 밝을 명(明)자가 아니라 울릴 명(鳴)자를 쓴 ‘명월(鳴月)광장‘ 이었다. 명사산에서는 모든 것이울리고 또 울릴 뿐이다.
 떠나기 싫은 발걸음을 무겁게 옮기면서 가다가는 뒤돌아 명사산의아름다운 능선을 바라보고 또 가다가는 멀어져가는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모두들 오늘 밤 달이 뜰 때 여기에 와서 술 한잔 걸치면 우리 마음을 또 어떻게 울릴 것인가라고 헛기분을 내며 주차장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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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박준


눈을 감고 앓다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저는 한 번 잃었던
길의 걸음을 기억해서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같은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2012)]중에서

눈을 감고 그려보아도
눈을 뜨고 읽어보아도
참 쓸쓸한 시,
허나 쓸쓸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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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잃고 산벚나무에 기대어 울었네
 산벚은 더이상 위로가 아니어서 울었네

 나뭇잎 사이로 실종되던 노을도
 붉은 나비에게서 나던 막걸리 냄새도
 더이상 위로가 아니어서 울었네
          [산벚을 잃고]중에서

두고 간 글들.
다시, 찬찬히 읽겠습니다.
나의 시인이여.....
아픔 없는 곳에서 부디 평온하소서.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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