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달

                                 손택수

  스무살 무렵 나 안마시술소에서 일할 때, 현관 보이로

어서 옵쇼, 손님들 구두닦이로 밥 먹고 살 때

  맹인 안마사들도 아가씨들도 다 비번을 내서 고향에

가고, 그날은 나와 새로 온 김양 누나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런 날도 손님이 있겠어 누나 간판불 끄고 탕수육이

나 시켜먹자, 그렇게 재차 졸라대고만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화근이라도 되었던가 그날따라 웬 손님

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상한 구두코에 광을 내는 동안

퉤, 퉤 신세 한탄을 하며 구두를닦는 동안

  누나는 술 취한 사내들을 혼자서 다 받아내었습니다

전표에 찍힌 스물셋 어디로도 귀향하지 못한 철새들을

하룻밤에 혼자서 다 받아주었습니다

  날이 샜을 무렵엔 비틀비틀 분화장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던 추석달

                                                 시집 [목련전차]중에서

 

 

 

 

 

 

 

 

 

 추석이면 어김없이 추석달의 시구들이 떠오르고 나는 이보다 더 서글퍼지는 명절의 시를 알지 못한다.

 이천십구년 구월 십삼일 모처럼 맑은 날의 추석에 일몰과 월출을 동시에 만났다.

 아니, 만나기를 기다렸다. 광교산 형제봉에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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