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에 서고 싶은가. 혐오의 편에 서고 싶은가, 작은 친절편에 서고 싶은가. 영화 <르아브르) 속에서 난민 소년 옆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배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답은 명확했다. 자신이 당한 인종차별 앞에서는 분노하면서,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여행의 끝이 되어서야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는 건 두 달간 내여행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를 방증하는 걸지도 몰랐다. 놀랍게도 모두 친절했고, 기적처럼 어떤 위험도 만나지 못했다.
이 운이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운이나에게 찾아와서 나는 파리에서 안전하게 행복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부랴부랴 남편에게 연락을 한다. 오늘 내가 탄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에 대해 긴 수다를 시작한다. 이제 파리의 시간은 3일 남았다. - P303

여행 초반에는 모두 설렘 필터를 끼고 여행지를 둘러본다. 이름 없는 작은 공원에도 설레고, 시장에 과일이 예쁘게 쌓여만 있어도 카메라를 든다. 풀밭에 누운 사람들은 낭만으로 해석되고, 낯선 언어로 된 간판들 하나까지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설렘은 곧 산화된다. 심드렁 필터의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 풍경이 저 풍경 같고, 특별함은 잘 포착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새로운 걸 경험해도 잠깐 즐겁고 또 금방 무심해진다. 익숙한 맛이 그립고, 때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찾아온다. 체력적으로도 좀 지친다. 여행중반기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다 떠날 날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갑자기 애틋 필터를 - P304

장착한다. 뭘 보더라도 애틋하다. 어딜 가더라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창문에 어른거리는 나무 그림자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 새삼스럽고,
매일 먹던 맛이 결정적인 맛으로 둔갑한다. 이곳이 더 이상 나의 일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고, 천천히 걷게 된다. 나의 여행은 한 번도 이 공식을벗어난 적이 없다. 두 달의 파리 여행도 똑같은 공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파리와 산뜻하게 이별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할 거라고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정작 겪어보니 참으로 곤란했다. 나는 참으로 파리와의 이별식을 혼자 요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욕심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이 나타나니 자꾸 또 욕심을 내게 되었고, 막상 떠난다 생각하니 무엇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아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길을 걷던 내 눈에 술집 간판 하나가 눈에들어왔다. Demain, C‘est Loin. 뭐라고? 내일은 아직 멀다고? - P305

문장 하나를 손에 쥐고 계속 걸었더니 문득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로댕 작품이 생각났다. 로댕은 1880년부터 죽을 때까지 30년 넘게 <지옥의 문>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지옥의 문>을 완성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1년 넘게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신곡> 속 <지옥 편>에 나온 이야기들을 작품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지옥의 문 앞에 서서 작품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문에 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하나하나 독립적인 작품임을 알게 된다. 가장 유명한 건 문의 맨 위에서 지옥을 내려다보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문의 왼쪽 아래에는 우골리노백작과 그의 죽은 자식들이 있다.
단테의 《신곡》 속 우골리노는 13세기 이탈리아 귀족이다. 대주교 루지에리와 함께 음모를 꾸몄지만, 루지에리의 배신으로 자신의 자식들과 손자와 함께 피사의 탑 속에 감금이 된다. 탑의 열쇠는 강으로 던져졌다. 그들은 꼼짝없이 탑 속에 갇혀하나둘씩 굶어 죽는다. 그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우골리노는 고통과 비탄과 굶주림 속에서 결국 자식의 시신을 먹으며 버텨 마지막 생존자가 된다. 그것이 우골리노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다. - P307

단테의 신곡》도 안 읽었고 우골리노는 더더욱 몰랐던 나는,
며칠 전 오르세 미술관 2층에 갔다가 로댕의 <지옥의 문> 옆에우골리노 조각이 단독으로 크게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아무 배경지식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궁금했다. 거인 같은 남자가 비탄에 잠겨 바닥을 기고 있다. 그 옆으로 작은 사람들이 죽어 있다. 남자 발치의 갓난아기도 죽어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을 묘사한 것인가.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혼자 살아남은 저 거인 같은남자의 표정이 저런가. 어떻게 저런 감정을 작품에 그대로 옮겨올 수 있는가. 남자의 비통함은 나에게로 곧바로 전이되어 나도 비통한 심정으로 작품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우골리노라는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단테의 《신곡》 속 우골리노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 P308

계속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앞에서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에서 바라보았다. 앙상하게 말라 뼈가 다 드러난 얼굴. 감정을 숨길 구석조차 다 사라진 벌거벗은 얼굴.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각각의 각도에서 감정이 다 다르다는 걸 알아채게 되었다. 정면에서 얼굴을 바라보면 참담한 현실에 어찌할 바 모르는 얼굴이다. 시선은 오갈 데를 모르고 텅 비어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자식들이 다 죽어 있는데, 무슨 이런형벌이 다 있는가. 그 와중에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이 가장 참담한 형벌이다. 우골리노의 왼쪽 얼굴에는 (관람객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오른쪽) 그 비참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롯한 슬픔. - P308

비탄, 참척의 고통. 하지만 우골리노의 오른쪽 얼굴을 보는 순간, 섬뜩함이 느껴졌다. 다른 어떤 각도의 표정과도 달랐다. 그것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이 지배한 얼굴. 본능이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저 본능이 자식의 시신을 먹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살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다시 정면에서 보면 그 막막하고도 고통스럽고도 살고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이 드러난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면면이 이토록 다르다. - P309

다시 한 인간의 얼굴을 그토록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 건까르띠에 재단에서 열린 론 뮤익 전시에서였다. 론 뮤익은 몇 해전 한국에서도 전시를 한 극사실주의 조각가다. 그는 특히 대형 인체 조각으로 유명한데, 한국 전시에서도 가장 화제가 된건 6미터가 넘는 여인의 조각이었다. 커다란 침대에 누운 이거대한 여자는 어찌나 사실적인지, 혈관부터 주름과 머리카락한 올 그리고 무엇보다 표정까지 다 살아 있는 여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생생한데, 오랜만에 파리에서 다시 론 뮤익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까르띠에 재단이 숙소근처였던지라, 어느 날 닫혀 있는 그곳 앞을 지나다가 3미터는족히 넘을 것 같은 하얀색 두개골들이 전시장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전시를 준비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바로 론 뮤익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전시가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 까르띠에 재단으로 달려갔 - P309

다. 수십 개의 두개골이 나동그라진 모습도 장관이었고, 5미터가 넘는 신생아의 사실적인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내가 떠날수 없었던 작품은 배를 탄 남자를 표현한 (Man in a Boat〉라는 작품이었다. 낡은 배에 혼자 앉아 있는 이 벌거벗은 남자는팔짱을 낀 채 목을 길게 빼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뭔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깐깐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성마른 표정.
그 누구도 쉽게 믿을 리 없는 얼굴. 하지만 조명이 비추는 그의왼쪽 얼굴 쪽으로 다가가자 조금 다른 면이 보인다. 분명 지쳐있지만 혹시나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표정이었다. 희박한 희망만큼이나 간절한 얼굴. 하지만 조명이 닿지 않은 반대쪽 얼굴을 보았더니, 그곳은 이미 포기가 장악했다. 자신에게 희망의 신호가 도착할 리 없다는 절망으로 가득한 얼굴. 언뜻보았을 때는 성마르게 생긴 사람이 벌거벗은 채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인간은 한순간에도 여러 감정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P310

"그때 그 사람 얼굴 봤어?" 라고 우리는 얼마나 쉽게 단정 지으며 이야기하는가. 상대에 대해서 얼마나 주저 없이 간편하게결론을 내리는가. 하지만 그 누구도 하나의 얼굴로 살지 않는다. 한순간에도 정면과 오른쪽과 왼쪽 얼굴은 모두 다른 말을한다. 로댕의 우골리노가 그랬고, 론 뮤익의 보트 속 남자가 그랬다. 그리고 매 순간의 우리가 그렇다.


예술가들이 그 순간을 포착해서, 우리에게 순간의 풍성함을 - P310

다 안겨주고 있었다. 한 번에 한 순간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를위해 한순간의 우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아무런근거도 없는 나의 해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미술 작품들은 언제나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답을 던져주는 존재다. 내가 그 답이 필요했기에, 작품에서 그 답을 찾아낸 것이다. 그게 객관적인 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간절한 답, 내가 기댈 수 있는 답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로댕과 론 뮤익, 조각가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아티스트가 나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던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두 개의 메시지가 연결되어내 마음에 박혔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Demain, C‘est loin‘이라는 술집 간판 앞에서 뜬금없이 연결이 된 거다. - P311

빠르게 판단했고, 단숨에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세세한 결을 헤아려야 하는 순간도 많았지만, 그게 짐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속도는 능력이었고, 단순함은 결단력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복잡한 감정을 털어놓을 때도, 나는 결론부터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물며 나의 감정도 뭉뚱그려서 구석에 처박아놓는 일이 많아졌다. 그 감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도 있으니까. 복잡한 걸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게 일에서는꼭 필요한 능력이었지만, 그 능력이 불필요하게 일상에서도발휘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매일 책임질 일이 너 - P311

무 많았으니까. 매일 눈앞에 빚쟁이처럼 달려드는 일들 앞에서 정신을 차리려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이제과거다. 오늘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좋아하는 조각상 앞에서의 나를 소환해낸 것이다. 그 앞에서의 나는 회사에서의 나와는 명백히 달랐다.


두 달 전, 파리의 시간이 내 앞으로 쭉 뻗어져 있었다. 정해진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매일 내 마음의 결만 보살피며 그날 하루의 모양을 결정했다. 그 시간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시간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온몸으로 살았다. 이 시간은 내가 마련한 시간이지만, 동시에 이 시간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도 나의 몫이었다. 꿈을 살기 위해 왔다면 내 꿈에 부합하는 시간을 다름 아닌 내가 만들어내야만 했다.  - P312

매일을 살고, 매일을 곱씹었다. 매일의 섬세한 맛까지 다 느끼고 싶어 매 순간 열심이었다.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 지금부터는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이다. 결국 내가 기댈 것은 그 시간뿐이다. 정해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나에게 매일 도착할 24시간. 그 시간을 파리에서의 나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내일은 저 멀리 두고, 아니, 내일을 차라리 잊고, 오늘을 살면 어떨까. 매 순간의 결들을 풍성하게 맛보며. 다채로운 감정을 곱씹어 차근차근 알아채며. 조금은 느긋하게, 조금은 고요하게, 훨씬 더 깊게. - P312

결국 돈이 아니라 시간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정적인돈 대신 넘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24시간을오롯이 내 마음대로 살며, 내가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정된 삶을 지키는 대신 무정형의 시간을 모험하고 싶다. 그렇다면 너무 모든 걸 정하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목표 같은 건 당분간 잊는 건 어떨까. 40년 넘게 정해진 모양대로 살았는데, 앞으로의 모양도 정해져 있다면 조금 슬플 테니까. 무정형인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여, 찬찬히 나만의 하루를완성해내고 싶다.
자주 불안할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의심할 것이다. 24시간을 받아 들고 한숨을 내쉬기도 할 것이다. 내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 겨우 이거였나 고민할 것이다. 파리에서의 내가종종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치의 반짝임을챙기려 애쓴다면, 결국은 행복한 인생이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지난 두 달간 그랬던 것처럼. - P313

막막한 만큼 자유로울 것이다.
고독한 만큼 깊어질 것이다.
불안한 만큼 높이 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여행은 이제 끝나지만,
이 삶을 계속 여행해보고 싶어졌다.
무정형으로, - P314

파리의 무엇이 그렇게나 좋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대답하긴 어렵다. 사랑은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매력적이고, 웃기고, 다정하고, 감동을 줬다가, 또 울렸다가, 새침했다가 또 자기 방식대로 친절했던 파리. 그 모든 시간이 빚어낸 울퉁불퉁한 파리가 나에게 있다. 이 파리의 모양은 내 마음에 꼭든다. 그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파리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해버리는 것은 참 귀한 능력이라고. 오래전 분명 자신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새 잃어버린 그 마음을 오랜만에 다시 찾은 기분이라고. 좋아하는 마음은, 이토록이나 전염성이 강하다.


부디 이 마음이 당신에게도 전염되길.
그리하여 멀지 않은 어느 날
부디 당신도 당신의 그곳에 도착할 수 있길. - P3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니모리슨Toni Morrison


1931년 미국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태어났다. 하워드대학교에서영문학을 전공하고 코넬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여러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랜덤하우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0년 첫 소설가장 파란 눈으로데뷔했고, 1973년 출간한 두번째 소설 「술라」가 전미도서상 후보에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후 1977년 솔로몬의 노래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1987년 출간된 「빌러비드」로 이듬해 퓰리처상, 로버트 F. 케네디 상 등을 수상했다. 「빌러비드」는 오프라 윈프리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92년에는 음악에서 적극적으로 모티프를 차용한 소설 「재즈』를 발표해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1993년 "독창적인 상상력과 시적 언어를 통해 미국 사회의 핵심적인문제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평과 함께 흑인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96년 전미도서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2006년프린스턴대학교 교수직에서 퇴임한 후에는 집필에 매진해 소설자비」 「고향」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등을 발표했다. 2012년 버락오바마 대통령에게서 자유 훈장을 받았고, 2019년 88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숨을 거두었다.

가장 파란 눈은 작가의 고향 로레인을 배경으로, 파란 눈을 가지면끔찍한 현실이 뒤바뀔 것이라고 믿은 흑인 소녀의 비극을 다룬 소설이다. 차별과 빈곤, 폭력이 대물림되는 흑인 사회의 슬픈 연대기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과 대비되어 더욱 강렬하게 그려진다.

서문


일시적으로든 지속적으로든,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거나 거부했을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모르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고작 무관심이나 가벼운 짜증 정도의 기분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상처가 될 것이다. 우리 중에는 실제로 미움을 받는 일이 어떤 건지 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것도 본인은 어떻게 해볼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면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 때 그 미움이나 증오가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당신이 그런 대우를 받을 까닭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얼마간 위로가 된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가 정서적으로 힘이 되어주고지지해준다면 피해는 덜해지거나 사라진다. 인간으로 살아가다보면겪게 되는 (심각하든 심각하지 않든) 스트레스로 여기게 된다.
『가장 파란 눈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 관심은 그보다는 다른 것에 - P7

있었다. 남들의 멸시에 대한 저항이나 그것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배척을 정당하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때 초래되는 훨씬 더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결과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지독한 자기비하의 피해자가 결국 위험하고 난폭한 성향이 되어, 자신을 거듭거듭 욕보이게될 적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다른 부류는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고, 자신들에게 부족한 강한 자아상을 건네주는 구조 속으로녹아들어간다. 대부분은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지만 말없이, 이름도없이, 그것을 표현하거나 인정할 목소리도 없이 붕괴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자아를 일으켜세울 ‘두 다리‘를 가지기이전의 아이들에게 자존감의 종말은 금방,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무관심한 부모와 무시하는 어른, 자체의 언어와 법과 이미지로 절망을 강화하는 세상에 어린 나이라는 취약성이 더해지면 파멸로 이르는 길은 확정적이다. - P8

그래서 내 첫 책인 이 소설은 어린 나이나 성별이나 인종으로 인해해로운 외부 영향력에 가장 저항하기 힘들 법한 인물의 삶으로 들어가려는 기획이었다. 심리적 살인이라는 암울한 서사로 시작하고 나니, 주인공의 수동성에서 서사의 공백이 초래되어 주인공 혼자로는 지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곤경을 이해하고 공감까지 보낼 수있는, 하지만 든든한 부모와 왕성한 혈기라는 이점을 지닌 친구들과급우들을 만들어냈다. 그들도 무력하긴 마찬가지라 친구를 세상에서구해내지는 못했고, 주인공은 망가져버렸다.
이 소설의 첫 구상은 어릴 적 친구와 나눴던 대화에서 나왔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무렵이었다. 친구는 자기 눈이 파란색이면 좋겠다고 - P8

했다. 나는 파란 눈을 가진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고, 그러자 반감이 일었다. 슬픔이 담긴 친구의 목소리가 동정을 바라는 투라서 동정을 꾸며 보이긴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친구가 그런 훼손을 원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그애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때까지 난 예쁜 사람, 사랑스러운 사람, 멋진 사람, 추한 사람을 보며 살아왔다. 그리고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당연히 사용하기도 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충격적인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 충격의 강도는 아무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것을 소유한 사람조차, 아니 본인이라 특히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맞먹었다.
내가 그때 살펴보았던 그 얼굴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이른 오후 거리에 깃든 적막, 빛, 그 고백을 듣던 순간의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때가 내가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알게된 순간이었다. 나 혼자 상상해왔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은 그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본인이 실행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 P9

「가장 파란 눈」은 그런 문제를 두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자 했던 시도다. 그애는 어째서 자신이 소유한 것을 체험하지 못했는지, 혹은 영원히 체험하지 못할 것인지에 대해서. 또한 그애는 어째서 그렇게 근본적인 변화를 원했는지에 대해서. 그애의 욕망에는 인종적 자기혐오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후 스무 해가 지났지만 그런 것이 어떻게 습득•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 자기 본연의 모습보다 괴물이 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누가 그애에게 심어주었을까?

그애를 보며 모자란다고 아름다움의 저울에 올려보니 너무 빈약하다고 여긴 이는 누구였을까? 이 소설은 그애를 단죄하는 시선을 쪼아 없앤다.
1960년대에 인종적 아름다움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켜, 나는 그런 주장의 필요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들에게매도당할지언정, 공동체 내에서는 이 아름다움이 왜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못했을까?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어째서 광범위한 대중적 발화가 요구되었을까? 그 대답은 금방 자명해졌고 지금도 그러하니, 총명한 질문들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을 시작한 1962년과 이것이한 권의 책을 이루게 된 1965년에는 그렇게 자명하지 않았다. 인종적 아름다움의 주장은 모든 집단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문화적·인종적 약점에 대한 자조적이고 익살스러운 비판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부 시선에서 유래하는 절대불변의 열등함이라는 가정을 내면화하는 해로운 과정에 대한 반대였다. 따라서 나는 한 인종을 통째로 악마화하는 기괴한 현상이, 아이라는 사회의 가장 연약한 구성원이자 여자라는 가장 취약한 구성원인 인물 속에 어떻게 뿌리박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무심한 인종적 멸시로도 초래될 수 있는 인간성의황폐화를 이야기로 구성하면서 난 전형적이 아니라 독특한 상황을 선택했다. 페콜라의 사례가 지닌 극단성은 평균적인 흑인 가족이나 화자의 가족과 달리 구성원을 무력하게 만드는 무력한 가족에서 기인한다. 페콜라의 삶이 비록 남다르지만 그 취약성의 몇몇 면모는 모든 여자아이 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아이를 말 그대로 산산이 부숴버린 사회와 가정의 폭력성을 탐구하면서 난 일상적이거나 예

외적이거나, 무시무시한 배척의 여러 장치를 마련했는데, 그러는 내내페콜라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악마화 과정에 공모하는 일이 생기지않도록 무진 애를 썼다. 다시 말해 페콜라를 맹비난하고 그애의 파멸에 기여한 인물들을 비인간적인 인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한 가지 문제는 소설적 탐구에서 그렇게 연약하고 취약한 인물에게큰 비중을 두면 그런 인물은 아무래도 산산이 부서지기 쉽고, 그러면독자는 그런 상황을 따져 묻기보다 그 인물을 적당히 동정하고 말 수있다는 것이었다. 서사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독자가 재배열하도록 했던 내 해결책은 당시엔 좋은 방안으로 보였는데, 지금 보니 만족스럽게 실행된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효과도 없었다. 마음이 움직이기보다 동정심만 보인 독자들이 많았으니까.

또다른 문제는 당연히 언어였다. 멸시하는 시선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전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소설은 인종적 자기멸시라는 쓰린 신경을 타격하고 드러낸 뒤, 그것을 마취제가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아름다움을 경험했을 때 발견한 작용을 모사하는 언어로 진정시키고자했다. 그 순간은 워낙 인종에 침윤되어 있었기에 내 친구가 원했던, 아주 검은 얼굴의 아주 파란 눈에 내가 느꼈던 반감, 그애가 아름다움에대한 내 관념에 해를 가했던 일), 난 명백하게 검은 글쓰기를 하려고고군분투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들에도불구하고 난 여전히 그것을 추구할 것이다.
내 언어 선택(말하는 투의 구어적 대화체), 충분한 이해를 돕기 위해 흑인문화에 뿌리박힌 관례에 의존한 일, 직접적인 공모와 친밀함의

효과를 (거리를 두어 설명하는 구조 없이) 추구했던 일, 그리고 침묵을깨뜨리면서 동시에 형성하려는 시도는 미국 흑인문화의 복잡성과 풍부함을 문화라는 이름에 값하는 언어로 변형하려는 시도다.
표현적 언어가 내게 제기했던 문제를 지금 다시 돌아보니, 그것이여전히 유효하고 끈질기게 지속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교양 있는‘
언어가 인간의 존엄을 떨어뜨린다는 말이 들리고, 문화적 푸닥거리가문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상황이 눈에 띄고, 효력을 없애는 은유의호박 속에 자신이 보존 처리되는 상황을 목격하는 지금, 나의 서사기획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 집이 있다. 녹색과 흰색이다. 문은 빨간색이다. 무척 예쁘다.
여기 가족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 딕. 제인은 녹색과 흰색의 집에 산다. 아주 행복하다. 제인을 보라.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다. 놀고 싶다고 한다. 누가 제인과 놀아주지? 고양이를 보라. 야옹야옹 운다. 이리와서 놀아. 이리 와서 제인이랑 놀아. 고양이는 놀아주지 않는다. 어머니를 보라. 무척 상냥하다. 어머니, 제인과 놀아줄래요? 어머니가 웃는다. 웃어요, 어머니, 웃어요. 아버지를 보라. 아버지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 아버지, 제인과 놀아줄래요? 아버지가 싱긋 웃는다. 싱긋 웃어요, 아버지, 싱긋 웃어요. 강아지를 보라. 멍멍 짖는다. 제인이랑 놀아줄래? 강아지가 뛰는 걸 봐. 뛰어, 멍멍아, 뛰어. 봐, 봐, 여기 친구가오네. 친구는 제인과 놀아주겠지. 재밌는 놀이를 하겠지. 놀아, 제인, 놀아봐.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이곳에서 내가 글을 쓴다면 ‘살고 감동하고 사랑하라‘가 되려나. 살아 있다는 감각이 솟구친다. 거리낄 것이 없는 완전한 자유 안에서 나는 젊은 사람들처럼 뛰었다가, 아줌마 아저씨들의 속도에 맞춰 걸었다가 또 내 마음대로 움직였다. 언덕 위에 올랐다가 호숫가로 내려가기도 했다가, 커다란 나무에 몸을 바싹 붙이고 앉기도 한다. 작은 반짝임에도 사소한 촉감에도 아낌없이 감동한다. 이러려고 그토록 호들갑을 떨며공원 근처로 숙소를 고집했던 걸까. 한 번도 내 것인 적이 없었던 아침 시간을 내 마음대로 써보고 싶어서. 평생을 한결같이미워했던 아침 시간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찾아주고 싶어서. 아침부터 숨쉬듯 쉽게 행복해지고 싶어서.


살고 감동하고 사랑하고 있다.
이곳이 나의 매일이라는 것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만들어낸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P203

미술관을 좋아하지만 미술적 지식은 부족한 나는 언제나 나의 느낌에 충실하다. 느낌이 오는 작품만 들여다보고, 느낌이오지 않는다면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늘 이곳에서 나는 다르다. 나는 유나 작가님의 오일 파스텔 제자. 작가님과 우리는 한 달간 꽃을 그릴 예정이다.
운명처럼 전시장 입구에서 밀레의 <데이지 꽃다발> 그림이나를 맞아준다. 덕분에 첫 그림부터 나는 좀처럼 떠날 수가 없다. 그림 앞에 딱 붙어서 하얀 데이지꽃을 표현한 파스텔의 선들을 유심히 본다. 뒤에 배치된 꽃과 전면에 나선 꽃이 어떻게다르게 표현되는지 들여다본다. 그늘 속에 잠긴 꽃들은 또 어떤 색으로 어떤 농도로 표현했는지도 유심히 살펴본다.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서 꽃을 클로즈업해 찍고, 따라 그려보고 싶은 부분들도 또 찍는다. 다음 그림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 P219

도 다시 돌아와서 또 들여다본다.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밀레, 훌륭한 화가였구먼. 그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만종>이 아무리 유명하든 말든, 나는 꾸준히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담담한 <데이지 꽃다발)에나는 마음을 홀라당 빼앗긴다.
겨우 그 그림 앞을 떠나자마자, 또 바로 다음 그림에게 붙잡힌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하얀 강아지를 안고 있다. 나는 하얀 원피스의 레이스도, 하얀 강아지의 털 하나하나도 좀처럼 믿기지 않지만,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이 하얀데 그토록 또렷하게 구분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 도대체 믿기지 않는다. 분홍색 옷을 입고 검정 모자를 쓴 여자를그린 마네의 파스텔화는 또 어떻고. 들여다볼수록 머릿속에 물음표만 늘어났다. 여인의 머리와 모자를 표현한 검은색, 얼굴을 표현한 흰색, 입술 위의 빨간색, 옷을 표현한 분홍색, 바탕을 표현한 회색, 딱 다섯 가지 색으로 이런 그림이 가능하다고? 드가의 발레 소녀들은 또 어떻고. 영원히 토슈즈를 고쳐매고 있고, 영원히 무대 뒤에서 뛰어나가기 일보 직전인 소녀들. 영원히 보고 있어도 영원히 새로울 그림들. - P220

지쳐서 일찍 집에 들어온 어느 오후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세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옆커다란 창을 활짝 다 열었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빗소리만들었다. 도로 위를 미끄러지는 차들의 소리가 지나가고, 빗속을 뛰어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고, 다시 빗소리. 안과 밖의 선명한 풍경 차이. 포근한 침대와 시원한 비. 얇은 잠옷과 창밖의 흔들리는 나뭇잎들. 적막과 빗소리. 일상과 비일상. 경계에 누워 경계의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어떤 현실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20년간 지속되어온 나의 일상과 지금 이시간의 거리가 가늠되지 않았다. 너무나 일상적인 한순간처럼보이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나의 일상이 아닌 곳에 일상인 양천연덕스럽게 누워 있다. 생의 이런 무게감은 너무나도 생소해서 이것이 나의 생인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아직 밖은 밝았다. 뜨거웠던 공기가 진정이 되고 차가운 바람이 슥 불어 들어온다. 나는 창문을 닫을 생각이 없다. 이불 - P246

속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모든 것이 아무리 비현실이라도, 이 바람의 서늘함과 이 이불의 포근함은 너무나도 나의현실이다.


저녁이 되어 비가 그치고 난 후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거실 창문을 다시 열고, 창문 앞으로 옮겨둔 나의 작은 책상에 저녁 식사를 차린다. 토마토를 썰고, 민트잎을 마음껏 따서 넣고 치즈도 썰어 넣는다. 샐러드 채소에는 블루 치즈를 마음껏 넣는다. 오이절임에도 딜을 아낌없이 넣는다. 세 가지 샐러드를 앞에 두고, 또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을 꺼냈다. 내 방식대로 내가 먹고 싶은 걸 가장 신선하게 먹는다. 가장 신선하게마신다. 음악을 틀고 창문을 더 활짝 연다. 마침내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살면서 나에게 가장 다정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 P247

이 안전은 우연이다. 우연히 내가 저기에 없었고, 우연히 누군가가 거기에 있었다. 우연히 내가 안전하고, 우연히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다. 일상이라 단단히 믿고 있던 지반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나의 안전은 얼마나 수많은 우연이 결합해서 기적적으로 찾아온것인지. 이 안전에 필연은 없다. 도서관에서 읽던 책에 세월호이야기가 나와서 결국 울었던 며칠 전이 생각났다. 수많은 생이 가라앉는 순간을 모두 같이 목도한 기억이 우리에겐 있다. 이태원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몇 겹으로 짓눌린 날들도 있다. 오래 아팠고, 오래 슬펐고, 오래도록 죄스러운 날들이있었다. 나의 안전은 당연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을 일상이라 부르며 이것을 당연한 듯 누리고 있지만 이것은 특별한 것. 투명하도록 얇고 우연한 안전이 손에 만져졌다. 나의 안전이 누군가의 위험을 담보로 한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누리는 모든 말 - P255

짱한 생활이 말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를 향한 건지도알 수 없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더는 음악 속에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창문을 열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안전을 빌었다. 그렇게 창가에 밤늦도록 앉아 있던 밤이 있었다. - P256

공연을 마치고 나와 지은 작가님과 카페에 앉아 오래도록이야기를 나눴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이야기는 글을 쓰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본 나젤 장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우리만의 작은 세계를 글로 지키고 있다. 책 읽는 사람이 드문 이시기에, 들인 노력과 받는 보상이 전혀 일치할 수 없는 이 세계를 못 떠나고 있다. 무슨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세상이니까 못 떠나는 거다. 파리까지 와서 한국어로 글 쓰는 일의 고단함에 대해, 우리의 같은 운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글을 쓴다는 정체성이 파리까지 와서 새로운 인연이 되다니. 한국에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야, 지은 작가님에게 받은 그 모든 마음들은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 생겨난특별한 유대감이었음을 깨닫는다. 그것이 한국이든 파리든 글쓰는 이의 고충은 한결같으니까. 매일 의심과 싸우며, 매일 가장 깊이 좌절하며 쓴다. 그 사실을 서로는 알고 있다. - P277

무엇을 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은 쉽다. 하루는 크루아상을 먹었고 뱅센느 숲을 갔죠. 또 하루는 공연장까지 걷다가 신기한 마을을 발견했어요. 하루는 한 문장 안에 간편하게 요약된다. 하지만 그렇게 요약 가능하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나만의 작고도 사소한 모험이 있었고, 그 모험 끝에 나는 요상하게 생긴 나의 보물을 꼭 쥐고 돌아왔다. 객관적으로 예쁘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시장에서는 전혀 값이 안 나간다고 평가받을지는 몰라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신비로운 빛이 있었다. 그 빛이 나의 하루를 찬찬히 비추는 걸 보노라면,
그 빛 아래에서 드러난 새로운 나의 모양이 나는 참 반가웠다.


참 오래 걸렸지. 이 모양의 나를 만나기까지.
참 만나고 싶었지. 이토록 낯선 나를, - P295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번엔 몸을 일으켜 절벽 위로 올라가는 산책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야가 달라진다. 운이 좋았다. 들꽃 시즌에 이곳에오다니. 들꽃들이 작지만 강한 어조로 이 언덕이 자기들 땅이라 외치고 있다. 특히 절벽 끝엔 노란 들꽃들이 촘촘하게 피어서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화려하게 태양빛을 반사하고 있는 에메랄드색 바다 위로 앙증맞게떠 있는 노란색 부표. 해변엔 알록달록한 사람들의 모습. 유난히 절벽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는 나는(여수 향일암과 남해 보리암에 끝없이 가는 이유다) 프랑스에서도 한결같은 나의 취향을 확인한다. 왼쪽에 바다를 두고 한가롭게 절벽 위 산책 길을 걸으며 크게크게 호흡했다. 깊이깊이 숨을 들이쉬고깊이깊이 숨을 내뱉으며, 이 감각은 또 얼마나 오랜만인가 생각했다. 자연 속에서만 새롭게 깨어나는 감각들이 있다. 바다의 광활함이 주는 사고의 폭이 있고, 자갈의 재잘거림이 깨우는 청각의 예민함이 있고, 작은 들꽃들이 흔들어 깨우는 마음의 진동이 있다. 그것들이 동시에 나를 찾아와서 나는 그곳에서 아낌없이 행복했다. - P3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 명이 넘게 투입되어 채석장을 인위적으로 바꾸었다지만, 이곳에서 인공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이어지는 넓은 산책로도 자연스럽게 굽어 있고, 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도 마음껏 꼬불하다. 둥근 호수도 있고, 호수 안에는 기암괴석의 절벽도 있고, 절벽 위에는 로마식 건축물의 전망대도있다. 길은 계속해서 몇 갈래로 갈라지며, 영원히 이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이 커다란 공원 안에 가장 많은 것은 바로 잔디밭, 완만한 언덕에도, 가파른 언덕에도 드넓은 잔디가 펼쳐진다. 그 위로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물론 ‘빼곡‘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뷔트 쇼몽 공원에 조금 각박한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아무리많아도, 그러니까 이토록 날씨가 좋은 토요일 저녁 시간에, 파리 시민 모두가 뷔트 쇼몽 공원에 온 게 아닐까 착각이 들 만큼사람이 많아도, 이 공원은 붐빌 수 없다. 여전히 한적한 공간이있다. - P199

자연의 모든 시기엔 제각각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지만, 그래도 부인할 수 없는 전성기가 있는 법이다. 나는 어쩌자고뷔트 쇼몽 공원에, 날씨 좋은 6월의 저녁에, 해가 지기 전 가장빛이 아름다울 때 찾아온 걸까. 천국에 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과장이 아니다. 숲의 정령처럼 높다랗게 자란 나무들이 제각각 녹색으로, 갈색으로 몸을 치장하고 잔디밭을 빙 두르고 있다. 모든 나무들이 기분 좋은 바람에 몸을 내맡기고 살랑살랑 - P199

잎을 흔들며 대화를 한다. 호수 옆 나무도 치렁치렁 머리를 수면 위로 드리우고 있다. 그 나무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작고 어린 사람들은 나무 밑에, 잔디 위에, 제각각 자리 잡고 앉거나누워 있다. 웃으며 술을 마시고, 웃으며 대화하고, 다시 대화하며 웃는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도 많다. 모두가 이빛나는 시간이 사라져버리기 전에 아낌없이 생을 살아버리고있다.
절벽 뒤로 곧 넘어가려는 해는 마지막으로 금가루를 온 세상에 뿌린다. 그 노란 기운을 받아 나뭇잎들이 투명한 형광으로 빛나고, 물은 금빛으로 반짝인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모두 금발이 되고, 모두의 실루엣에도 금색 가루가 내려앉았다. 그 누구도 아름답지 않을 수 없는 시간에, 눈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곳에 도착해버렸으니 어떻게 이곳이 천국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끝없이 사진을 찍고, 아름다움에 발을 동동 구르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 이것은 카메라 안에 갇히는 자연이 아니다. 천국은 그렇게 쉽게 기록되지 않는다. 기록할 순 없어도 기억할 순 있다. 매일 오면 되니까. - P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있을 때도 나는 선을 넘지 못한다. 하지 말라는 건 하지않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것은 건드리지도 않는다. 결국 들킬것 같고, 결국 망할 것 같다. 불안한 건 질색이다. 영화를 보다가도 등장인물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면 그때부터 엄청나게 불안해한다. 왜 저래. 하지마 좀. 하지만 선을 넘어야 다른이야기가 펼쳐진다. 선을 넘어야 예상치 못한 세상을 마주할수 있다. 선을 좀 넘어야 비로소 인생은 풍성해진다. 20년 만에회사라는 울타리를 넘는 용기를 내놓고도, 여기서 또 고분고분하게 주변만 알짱거리고 있는 내 손을 붙들고 친구가 선을넘었다. 그 순간 나를 찾아온 해방감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막혀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 구석구석까지 바람길이 나는 것같았다. 내내 접혀 있던 날개가 살짝 펼쳐진 것도 같았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숨을 아주아주 깊숙이 들이마셨다. 오늘이 풀밭의 첫 주인공은 우리다. - P139

스타벅스에서 친구가 말한 건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뭔가또 대단한 것을 찾아 나서려는 나에게, 친구는 이 순간을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고객으로 여기지 않길 주문하고 있었다. 너도 여행을 온 거고, 나도 여행을온 거고, 우리 둘의 여행이 이곳에서 문득 겹친 것뿐이니 너무조급해하지 마. 나는 그냥 아침을 좀 더 느긋하게 바라보고 싶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친구의 이 말은 김민철여행사에 곧바로 전달되었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고객의 주문이다. 아니, 오히려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순간을 친구와 함께여행할 기회였다. - P141

지나가다 봐둔 예쁜 카페에 들어간다. 한적한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을 시킨다. 비현실적으로 봉긋하게 우유거품이 올라온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따뜻한 크루아상을 먹는다.
몰랐다. 유명하지도 않은 동네 카페에서 이토록 맛있는 크루아상을 먹게 될 줄은. 이토록 쉽게 만족하는 우리니까 굳이 멀리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집 앞 빵집의 따뜻한 바게트가 가장 맛있고, 집 앞 카페에서 따뜻하게 내주는 크루아상이 제일 맛있다는 걸 오늘 알게 되었으니. 그리고 우리의 행복은 이토록 간단한 레시피로 완성된다는 사실도. 물론 그 행복은 각자에게아주 다른 모양이다. 내 행복은 자주 미술관에 있었고, 내가 찍는 파리 사진들에 자주 있었고, 덕분에 나는 끝없이 헤매는 여행을 택했다. 친구의 행복은 여유로운 아침에, 편안한 자세에,
햇빛과 바람에 있었다. 파리에 무엇이 유명하든 말든 친구는자신의 행복 앞에 스스로를 데려다주는 법을 알고 있었다. - P143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혼자 도서관에 가던 어린이는, 처음 파리에 왔을 때도 도서관에 반해버렸다. 파리 도서관 때문에 반드시 여기에 돌아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여기에 와서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전적인 분위기의 따뜻한 조명 아래 나도 있고 싶었다. 오래전 그 꿈도 실패했는데, 그 꿈을 하루치 살아보는 것도 실패라고? 친구앞이라 실망한 마음을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불행은 이미 내 마음속에서 몸집을 한껏 부풀렸다. 친구가 복도 끝으로 가길래 나도 맥없이 친구를 따라 그쪽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무슨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놀랍게도 똑같은 타원형 도서관이 하나 더 있었다. 심지어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하늘색 조명이 놓인 개인석은 꽉 차 있었지만, 괜찮았다. 마침내 들어왔으니까. 우리는 빈 의자에 앉았다. 카메라를 꺼내서 찍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도서관이니까. 관광지가 아니니까. 카메라 소리로 민폐 관광객이 되고 싶 - P157

지 않았다. 이 공간에 스며들고 싶었다. 일상인 척 가져온 책을읽으려 했다. 하지만 실패. 책을 몇 줄 읽다가 다시 실패. 시선이 자꾸 도서관으로 향했다. 공간 자체가 너무 오랜 꿈의 모양그대로라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 척하며 공간을 더 열심히 읽었다. 오래전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질투 섞인 눈으로 여기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봤을까. 하지만 나는 더이상 20대가 아니었고, 이들을 대책 없는 질투심으로 부러워할 나이는 지났다. 다만 이곳에 슬쩍 속해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꿈과 지금 나의 거리를 충분히 알고도 남을 나이라 다행이었다. 친구가 돌아가도 여기에 다시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 P158

실제로 나는 나중에 혼자 이곳에 와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날은 그토록 앉고 싶었던 개인석이 비어 있었다. 하늘색 조명 하나를 내 몫으로 가지고 책을 읽다 보니 불현듯 도서관이어두워졌다. 순식간에 공간은 빗소리로 가득 찼다. 유리 천장은 바깥 날씨를 그대로 공간 전체에 투영했다. 빗소리가 점점거세지며 그 큰 도서관 전체를 두드려댔지만, 나는 괜찮았다.
우산을 안 챙겨왔지만 나는 어둑해진 도서관 안에, 원하는 하늘색 조명 아래 안전하게 자리 잡았으니까. 나는 책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책이 너무 좋아서 고개를 들면 책보다 아름다운 도서관의 풍경이 보였다. 오래전 후배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일주일만 내 맘대로 시간을 쓰고 싶다는 내 말에, 후 - P158

배는 그럼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겹도록 책만 읽고 싶어"라고 말했다. 후배는 그런 대답을 하는나를 지겹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다른 대답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책만 읽어도 괜찮은 시간을 살고 싶다는 그 소원이 이런 공간 속에서 이뤄지기를 바란 적은 없다. 너무 과한 걸인생에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어쩌다 나는이곳에서 지겹도록 책만 읽어도 좋을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좋아하는 것 앞에 ‘지겹다‘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는 호사가어찌하여 내 것이 됐단 말인가. 나는 하늘색 구름 같은 질감의꿈속에서 마음껏 뒹굴었다. 마음껏 점프했다. 한참이 지나 다시 유리 천장으로 빛이 들어올 때, 나는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섰다. 비 온 뒤 말간 세상을 말간 마음으로 걸었다.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부러움 한 톨 깃들 여지없는 말간 마음이었다. 물론 이건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후의 이야기지만.

시간은 봄처럼 야속하게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슬퍼할 시간은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여전히 수많은 처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 P159

여기서 우리의 길은 갈라진다.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길이다. 우리는 서로의 길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잘 걷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진하게 포옹을 하고 각자의 최선을 다해 각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서로의 길이 평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순진하진 않다. 다만 그 길끝에서 우리가 다시 평온하게 만나길 바랄 뿐이다. 우리 각자가 바라는 우리가 되어서. 그러기 위해 저 멀리 근사한 꿈을 세워둔다. 불가능한 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능하게 만들 거니까.

우리는 우리만의 축배를 든다.
19년 동안 같이 즐겼고, 같이 울었고, 같이 웃었다.
인생에 이 이상을 바랄 수는 없다.

안녕, 나의 유일한 동기. - P163

청소부터 했다.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이불을 털고, 설거지를 하고, 향을 피운다. 오랜만에 낮잠도 잔다. 언제 나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나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다가,
더 이상 가고 싶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튈르리 정원, 오랑주리 미술관, 팔레 루아얄, 에펠탑, 르봉 마르셰 백화점, 오르세 미술관, 뤽상부르 공원, 마레 지구, 보주 광장,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트로카데로 광장, 바토 무슈 유람선, 사마리텐 백화점, 몽쥬약국, 몽마르트르 언덕, 생마르탱 운하, 퐁다시옹 루이비통, 생제르맹, 퐁피두 센터, 로댕 미술관, 지베르니, 오베르 쉬르 우아즈, 옹플뢰르와 몽생미셸 그리고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와 술집과 시장과 공원과 성당까지. ‘파리‘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모든 곳에 다녀왔다. 쉽게 떠올리기힘든 곳도 김민철여행사는 쏙쏙 찾아내서 안내했다. 파리원정대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 물론 더 이상 파리에 갈 곳이없다는 건 아니다. 파리는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니, 어떤 곳도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만 내가 지친 거다. - P165

이제는 애쓰지 않아도 나는 나를 찾을 수 있다. 무리하지 않아도 나를 돌볼 수 있다. 내 마음을 읽어,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면 된다. 책과 노트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유난히 날씨가 좋은 주말이었다. 덕분에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공원에도 카페에도 행복한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밝음이, 신남이, 웃음이 버겁기만 했다. 그세계엔 내가 원하는 자리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자꾸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만 방향을 틀었다. 외로움이 필요했다. 침묵이간절했다. 그러다 발견했다. 작은 선술집을. 텅 빈 그곳을 이토록 반짝이는 날씨에 실내에서 술을 마실 멍청이는 나 빼곤없다. 나는 어둑어둑한 선술집 창가 자리에 앉았다.  - P167

파리에서 한 달씩 머무를 숙소를 구하는 나의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1. 근처에 큰 공원이 있을 것(완성하고 싶은 아침이 있었으므로).
2. 두 개의 숙소가 완전히 다른 지역에 있을 것(아예 다른 도시에 도착한 기분이라면 환영).
3. 너무 비싼 동네거나 너무 한국 사람이 많은 동네는 피할것(편안하게 여행하려면 아무래도).
4. 침실과 다른 공간이 분리되어 있을 것 (나는 20대가 아니므로 이 정도는 누려도 된다).
5. 큰 창문이 있을 것(그 앞에 책상을 놓을 수 있다면 더 좋고).

5월의 집은 그 모든 기준을 통과했다. 숙소는 깨끗한 5구에 있었고, 뤽상부르 공원이 바로 옆이었고, 조금만 걸으면 무프타르 시장에 도착할 수 있고, 침실과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발 드 그라스 성당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큰 - P175

창문이 두 개나 있었다. 리뷰가 몇 개 없는 점이 매우 마음에걸렸지만, 뤽상부르 공원과 거리가 너무나 가까워서 모험을해보기로 했다. 모험은 아주 성공이었다. 하지만 5월의 숙소와동네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기에 결과적으로 나는 점점 더 쪼그라드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6월에 내가 예약한 숙소는 파리 20구, 파리의 끝, 위험하다는 평이 압도적으로 많고, 관광객은 도대체 갈 일이 없는 동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P176

순식간에 택시는 그곳을 지나쳤지만, 나는 보았다. 도로 옆작은 광장을. 작은 광장 위 무대를. 그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 아래에서 춤을 추고 있는사람들을. 그 사람들을 아낌없이 비추는 찬란한 태양을. 시간은 이제 토요일 정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택시는 나를 새로운 숙소 앞에 내려주었다. 숙소 입구에서 무대가 또렷이 보였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나오는 그 잠깐에 사라질 무대가 아니었다. 그런 유의 흥이 아니었다. 나는 진정하고 벨을 누른 후 새로운 숙소로 올라갔다.
낡고 잘 관리된 나무 바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쪽벽엔 소파, 맞은편 벽엔 초록색 주방. 옆방엔 커다란 침대와 키가 큰 창문, 그 밖으로 넘실넘실 출렁이는 키가 큰 초록 나무들. 정확하게 사진으로 본 그대로다. 역시나 이번에도 숙소 찾기 대마왕이 성공적으로 일을 해버렸다. 가방을 내려놓고, 작은 테이블부터 창문 앞으로 옮긴다. 노란색 의자도 그 앞으로옮긴다. 이로써 나는 키가 큰 나무를 창밖으로 보며 밥을 먹고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집은 더 완벽해졌다.
집에 필요한 것들을 체크한 후 나는 곧장 음악으로 향한다. - P188

딱 손바닥만 한 사이즈로, 딱 얇은 지갑 같은 두께로 나의 치즈가 잘려졌다. 이 정도 크기라면 얼마든지 더 사도 된다. 얼마든지 다양하게 사도 된다. 마트에서 포장된 완제품 치즈는 나혼자 다 먹는 데 며칠이나 걸렸지만, 이 정도 크기로 살 수 있는 거라면 나의 치즈 세계는 앞으로 얼마나 넓어질 것인가. 나는 그 세계의 준비된 인재였다. 치즈를 위한 나의 위장은 무한대로 열려 있고, 낯선 치즈를 향한 내 마음의 넓이는 측정 불가이니 말이다.
치즈 가게에서 줄을 서며 나는 새삼 또 배웠다. 누구든 자신의 차례가 오면 그 시간을 충분히 누려도 된다는 것을. 궁금한것을 물어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도 된다는 것을. 이곳은 - P192

자리에 앉기도 전에 주문해야 하는 한국이 아니다. 내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매려하느라 너무 급한 선택을 하지않아도 된다. 내 시간에 대해 당당해져도 된다. 그것은 나의 권리. 눈치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주인장까지도 기다려준다. 고민 끝에 내가 두 번째로 고른 치즈는 겉에 허브가 잔뜩 발린 Al romero 치즈였다(이름도 처음 듣는 치즈였다). 비싸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데 다 합쳐서 겨우 8천 원. 웅장해진 마음으로, 치즈의 이름이 적힌 영수증을 손에 꼭 쥐고 가게를나섰다. 이것은 평범한 영수증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파리 생활이 달라질 거라는 확약서였다. 두고 봐. 치즈계의 만수르가 되어주겠어. - P193

제일 어려울 거라 생각한 치즈 가게 관문을 넘었으니, 나는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치즈 가게 맞은편 마트에 가서 장을봤다. 늘 빵과 곁들일 생채소와 요구르트, 햄과 과일 정도만 샀는데, 새 동네에 왔더니 새 마음이 장착된 건가. 파스타와 파스타 재료를 사고, 신선한 줄기콩과 엔다이브와 오이와 딜 그리고 민트도 다발로 산다. 집 바로 앞에 벨빌 맥주 양조장이 있길래 병맥주도 종류별로 사 왔고, 작은 식료품 가게에서 올리브절임도 포장해 왔다. 양손과 어깨에 먹을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텅 빈 냉장고를 꽉꽉 채웠다. 이 모든 것이이 집에서 반경 50미터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양조장까지는10미터, 양조장에서 코너를 돌면 치즈 가게, 2차선 도로를 건 - P193

너면 커다란 마트. 마트에서 다시 코너를 돌면 축제가 열리는작은 광장. 광장 옆엔 유기농 마트 그리고 낯선 나라의 궁금한식당들까지. 이토록 내게 필요한 것들이 꽉꽉 들어찬 동네라니. ‘동네‘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동네라니.


5월에는 멀리멀리 계속 뻗어나가며 우리 동네의 지도를 그렸다. 마음에 드는 곳이 생기면 나는 거침없이 그곳을 우리 동네로 편입시켰다. 동네는 나날이 커지기만 했다. 그러나 6월은아주 다를 것 같았다. 나는 작게, 아주 작게 지도를 그리고 싶어졌다. 그냥 이곳에 살고 싶어졌다. 밖의 파리가 어떻든, 유명한 무엇이 어떻든 간에 그냥 여기에 있고 싶었다. 그래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궁금한 식재료들을 사다가 밥을 해 먹고, 해피 아워에는 집 앞 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매일 다른 치즈를 사다 먹으며 그냥 이 작은 동네 안에 머물고 싶었다. 지도를 작게, 아주 세세하게, 시간대별로, 아주 촘촘하게 그리고 싶어졌다. - P1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