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단편이 살아남는다면 제가 정말 행복할 겁니다.˝  레이먼드 카버


충분히,
충, 분, 히,
행복하셔도 됩니다. 카버~!

깃털들



직장에서 알게 된 버드가 저녁이나 함께 먹자며 프랜과 나를초대했다. 나는 버드의 아내를 몰랐고 버드는 내 아내 프랜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 점에서 우리는 공평했다. 하지만 버드와 나는 친구였다. 버드의 집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었다. 버드가 저녁식사 초대를 했을 즈음. 아기는 생후 팔 개월 정도였을 것이다. 팔 개월이라니?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도대체, 지금까지의 시간은 또 다 어디로 간 걸까? 하루는 버드가 시가 박스를 들고 출근한 일이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버드는 내게 시가를 내밀었다. 드럭스토어에서 산 싸구려였다. 더치 매스터스. 한 개비마다 붉은 스티커를 붙여놓고 ‘사내애랍니다!‘라는 글씨가 인쇄된 포장지로 싼 시가였다.  - P9

올라는 씩 웃으며 다시 이를 드러냈다. 그녀는 버드를 쳐다봤다. 버드는 의자를 밀어 식탁에서 물러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못생긴 아기였다. 하지만 버드와 올라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마 그들은 못생겼다고 해도 어쨌든 괜찮아,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아기니까. 지금은 이런 시기를 거치는 것뿐이지. 조만간 다른시기가 찾아올 거야. 이런 시기도 있고 다른 시기도 있는 것이니까. 결국에는, 그러니까 모든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 P43

어떻게 공작이 그 회색 다리를 들어올려 살금살금 식탁을 돌아 왔는지 떠올린다. 그다음에는 내 친구와 그의 아내가 포치에 서서 우리에게 잘 가라고 말하는 장면을 올라가 집에 가져가라며 공작 깃털몇 개를 프랜에게 주는 장면을 나는 우리 모두가 손을 흔들고,
서로 포옹하고, 이런저런 말을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운전해 가는 동안, 차에서 프랜은 내게 바투 가까이 앉았다. 그녀는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내 친구의 집에서 우리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왔다. - P47

체프의 집



그리고 나도 뭔가 얘기했다. 나는,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면, 이게 처음이라고 치면, 그냥 그렇다고한다면, 그저 상상하는 것일 뿐이니까. 이제까지 일어난 일이 없었다고 한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그랬다면 과연?
이라고 내가 말했다.
웨스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고 상상하란 뜻이겠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 나는 그런 종류의 가정을 하지 못해. 원래 태어나기를 우리는 이렇게 태어난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알아?
나는 그런 말을 듣기 위해 온갖 일들을 다 팽개치고 600마일을 달려온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처럼 말할 수는 없는 거야. 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니까.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여기에 있지도 않았겠지. 내가 다른 누군가였다면 이런 모습도 아니었을 거고. 나는 나일 뿐이야. 모르겠어? - P57

웨스는 내 옆에 앉아서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턱을 가볍게 두드렸다. 웨스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우리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됐다. 나는 웨스를 바라본 뒤체프의 거실 안에 있는 체프의 물건들을 둘러보면서 지금 해야할 일이 있으니 빨리 그 일을 해야만 해, 라고 생각했다.
여보, 라고 나는 말했다. 웨스, 내 말 좀 들어봐요.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 거지? 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전부였다. 그는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을 정했음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무릎 위에두 손을 포개고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는 아무런 말도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부르기 쉬운 이름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이름을 불러왔다. 나는 한 번 더 이름을 불러봤다. - P58

이번에는 소리 내어 불렀다. 웨스, 라고 내가 말했다.
그가 눈을 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는 그대로가만히 앉아서 창문을 바라봤다. 뚱뗑이 린다, 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녀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미했다. 그저 이름일 뿐. 웨스는 일어나 차양막을 잡아당겼고 바다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러 갔다. 아이스박스에는 아직 물고기가 몇 마리 남아 있었다.
다른 건 별로 없었다. 오늘밤에 다 먹어치워야겠다, 라고 나는생각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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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버는 자신이 가르치던 뉴욕주의 시러큐스대학교를 떠난 지 몇 년됐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해줄 충고는 여전히 가지고 있다. 우선, ˝중요한 것들, 의미 있는 것들에 대해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모든 위대한 작가들이 퇴고를 했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하고, 그래서 젊은작가들 스스로도 퇴고를 거듭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퇴고 작업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카버가 진지하게 말한다.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 타자기의 소리, 잉크 냄새 같은 것들을 사랑해야만합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의 세계로 만들어야 할니다.˝ p 337, 338

무엇보다 써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글쓰기에 대해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마치 인생이 거기에 달려 있는 것처럼 쓸 수 있어야 하고, 기꺼이 그 길에 들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저를 가르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10년동안 배곯아가면서 하찮은 직업을 전전하고, 온갖 방식으로 퇴짜를 맞고, 거절당하고, 무시당할 준비가 돼 있나? 그렇게보낸 10년 뒤에도 여전히 쓰고 있다면, 아마 너희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다."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진 않겠지만, 무엇보다 글을 써야만 하고, 그리고 정직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해줄 것입니다. 의미 있는 것, 중요한 것을 써라, 그리고만약 운이 좋다면 누군가가 그걸 읽을 것이다. - P341

제대로 생각을 하는 독자나 작가라면 누구나 감상벽을 피합니다. 하지만 정서가 있는 것과 감상벽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정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상에서 사적이고 육체적, 정서적으로 내밀한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문학에서 이런 관계를 다루지 않아야 할이유가 뭐겠습니까? 「이발」이나 「선물」에서 드러나는 밀착의 경험은 어떤가요? 그런 경험들이 시가 되어서는 안 되는이유가 뭐가 있나요? 이런 사소한 경험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버텨내는 중요한 구조물들이고, 저는 이런 것들을 시로 전환하는 데 아무런 문제를 못 느낍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무엇보다 우리가 독자로서,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다 함께 공유하는 어떤 것입니다. - P348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아이러니하게 대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폄하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실제의 삶과 그것에 대해 글로 쓰인 삶 사이에 인위적인 것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든, 어떤 장벽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쓰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의미있는 것들은 종종 내밀한 것들입니다. 저는 누가 머리를 깎아주는 일이나 슬리퍼나 재떨이나 옥수수죽 같은 것들에 대해글을 쓴다는 생각을 두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부끄럽습니다. - P349

작업에 대한 책임이죠. 저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고, 해야 할일이 너무나 많이 있어요. 글을 쓰지 않고 며칠을 흘려보내고나면 그 시간이 다른 의미에서 아무리 좋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옳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에 책임감을 느끼거나,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기관에 신세를 지고있다는 느낌은 없어요. 작가로서 끊임없이 써야 하는 게 필수조건이라고 느낄 뿐인 거죠. 제가 끊임없이 써야 한다는 겁니다. 쓰지 않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없다고 느끼게 될 때에는 예외겠지만요. 그렇게 되면 물론 그만 쓰게 되겠죠. 하지만 제가 쓸 수 있고 무언가의 증인이 될수 있다고 느끼는 한, 계속할 생각입니다 - P354

둘 다죠. 주제와 스타일, 이 두가지는 떼어내기 어렵습니다.
존 업다이크는 단편소설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면, 쓰는일 중에서 아주 제한된 영역과 제한된 경험만이 자신에게 열려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영역들, 그리고 다양한삶들은 완전히 닫혀 있는 거죠. 그러니 작품이 작가를 선택하는 겁니다. 이건 제게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시인이자 단편소설 작가로서 말한다면, 제 소설들과 시들이 저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소재를 찾아서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어요. 이것들이 저한테 옵니다. 저는 그걸 쓰라는 부름을 받은 거고요. - P357

제 생각에 모든 작가는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쓴다고 봅니다. 자기를 즐겁게 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 좋은 독자들도 즐겁게 할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거고요. 저는 제 소설의 독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제시의 독자들을 따로 그려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존 치버가 자신은 지적인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쓴다고 했는데, 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시들은 단순히 자기표현의 문제는 아닙니다. 작가는소통을 원하고, 소통이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왕복 차선이에요. 어떤 작가가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그 작가는 자기 마음에 있는 어떤 것, 자신에게 고민거리가 되고 가까이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씁니다. 다만 적당한 형식, 자기가 느끼고 있는걸 독자들과 소통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이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적당한 방식을 찾아낼 필요가 있는 거죠. - P371

레이먼드 카버ㅡ내가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ㅡ는 아마도 오늘날의 미국 작가들 중에서 가장 ‘신화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는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소설가 군단을 배출하고 있는 문학 르네상스의 공인받은 거장이다. 카버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멈출 수 없이 쇠락해가는 것처럼 보이던 장르의 핵심인 ‘단편소설‘을 드물게 높은 수준에서 이해하면서 정제해낸, 혹시 스타일 정비공의 놀라운 작업이 아닌가 의심하게하는 연금술사인데, 정작 그는 단 한 가지 기준을 무조건적으로 지키라고 요구한다.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 쓸 것, 그리고 엘리트 그룹이 아니라 대중에게 말할 것." "나는 몇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를 한다. 왜냐하면단어들이 내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단어들이 적절한 것인 편이 나을 것이다." "싸구려 속임수는 안 된다. 나는 내 세계에 대해 말하고, 오직 그것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 작가를 다른 작가들로부터구분하는, 그의 스타일 이상을 의미하는 그만의 세계다." 단순한 실 한가닥에서, 정금의 규칙이 나온다. "단순함은 진실의 인장이다. 고대 로마인이 한 얘기로 알고 있다. 아마도 세네카?" - P375

카버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해지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제 소설의언어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 그대로지만, 동시에 분명하게전달될 수 있도록 다듬어야 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이건 상호 모순되는 조건은 아닙니다. 저는 한 작품을 열다섯 번은 고쳐 씁니다. 그때마다 작품은 바뀝니다. 하지만 자동으로 되는 건 전혀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건 하나의 과정입니다. 글쓰기란 무언가를 발견하는 행위예요. 글 쓰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저는 가장 생산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누군가가 질문을 던진다. 소설가가 시를 쓰려면 또 하나의 자신을만들어내야 하나요?
"저한테 그 두 가지는 연관된 장르입니다. 저는 소설을 시처럼 인색하게 쓰고, 시는 소설을 쓰듯이 씁니다. 요즘은 시만 쓰고 있는데, 제가보는 모든 것들이 시의 소재가 됩니다." - P378

그렇습니다. 서사적인 시, 내용과 주제가 되는 사건이 있는 시가 가장 제 흥미를 끄는 시입니다. 그리고 제 시들 중 어떤것들은 무척 소설적입니다. 저는 단편소설과 시 사이에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관계보다 더 강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성과 정확성, 의미를 담고 있는 세부 사항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세계의 표면 바로 밑에서 무슨 일인가가벌어지고 있다는 미스터리한 느낌 같은 걸 공유하는 거죠. - P384

시는 제가 소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있게 해줍니다. 시에서는 소설에서보다 스스로를 덜 통제하면서 좀 더 내밀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래서 좀 더 취약한 상태가 되는 듯합니다. 소설에서는 아마도 제가 좀 더 떨어져있고, 좀 더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어떤 이유에선가 저한테는 시가 좀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시는 제 속의 가장 깊은 곳 어디에선가 나옵니다. 소설은 늘 그런 건 아니에요. 이 시들을 쓰고 있는 동안, 살면서 전에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았어요. 상상이 가실지모르겠지만,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편씩 쓰기도 했습니다.
밤에 침대에 누우면, 제 안에 시가 또 남아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탈진했거든요. 그랬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텅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새로 활기가 돌면서 책상에 가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지금 절 데려가세요"라고 한 게 바로 그 뜻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죽어도 행복할 것 같았거든요. - P385

우선 생존을 꼽을 수 있겠죠. 좋은 소설은 진짜라는 느낌, 진실된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것도 조작될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삶을 어떻게 살아나가나요? 우리 각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요?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요? 제 소설의 이야기들은 커다란 정치적, 혹은 사회적 흐름에 주목하는 무대에 맞서서 각 개인의 차원에서 진행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사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체호프는이야기는 ‘그‘와 ‘그녀‘라는 두 개의 극점이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북극과 남극이죠. 저는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제 작품들 대부분에도 ‘그‘와 ‘그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세상이 ‘그‘와 ‘그녀‘에게우호적으로 돌아가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인물들, 제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처음에 볼 때에는 짓밟히고 두들겨 맞은 사람들로 여겨지겠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진짜‘라는 느낌, 그리고 무언가의 ‘성패가 달려‘ 있거나 ‘위기에 처한 느낌입니다. 그게 바로, 시가 됐든 소설이 됐든, 상당수의 우리 시대 작품들을 참아주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작가들이 그저 어슬렁거리고 있는 느낌이거든요.  - P401

그리고 이런 건 오래 남지 않을 겁니다. 오래 남을 작품은, 그게 체호프의 것이든 톨스토이나 플로베르의 것이든, 진실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에도, 그것들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실하게 남을 겁니다. 어떤 작품이 나오던 시기에 가치 있었고, 그 작품이 그 시기를 정확하게 포착했다면, 그 작품은 어떤 시대에도 가치 있게 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P402

제가 말하기에는 너무 크고 일반적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제가 모든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소통에 문제를 겪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소설에는 언제나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이야기의 표면 아래에서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제가 쓰는 사람들은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자주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 안에서 무언가가 말해지고, 무언가가 마무리되죠. 의미들이 약간 비뚤어지는 경우가종종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진행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떤 대사도 낭비되지 않고, 다른 어떤 요소도 낭비되지않는 듯합니다. - P403

예, 압니다. 그 친구들도 자기가 아는 것에 대해서 써야 해요.
그 친구들은 대학 캠퍼스나 교수-학생 상황에 대한 것 말고도 아는 게 많아요. 물론 대학이니 교수니 하는 것들도 당연히 주제가 되고, 그걸로 예술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작가는, 젊은 나이가 들었든, 꾸며내는 이야기는 하면안 돼요. 작가는 권위를 가지고 써야 하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어떤 것이나 자신을 감동시키는 것-감동시켜야 마땅한게 아니라, 실제로 감동시키는 것에 대해 쓸 때 잘 쓸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의 일상생활 속에 문학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순간들이 들어 있어요. 그런 것들에 대해 예민한 상태를유지해야 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그것들이 우리가 써야할 대상이에요. - P437

초기에는 글을 쓰려고 할 때, 지금 하는 것처럼 외부 세계를꺼버릴 수가 없었어요. 소설이나 시를 쓸 때에혹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작곡을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건 이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외의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해질 것. 말하자면, ‘캔버스‘ 외의 모든 것에 대해서요. 이걸소설과 시에 대한 상황으로 번역하면, 종이와 타자기 외의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해지라는 게 되겠죠. 강철의 의지로, 기관차처럼 일하는 능력에 대해 말하자면맹세하건대, 이게꼭 필요한 겁니다. 무엇이든 써본 사람은 이 모든 것이 필요조건, 요구 사항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물론, 정곡을 찌르는저 세 행은 르누아르의 편지에 들어 있던 겁니다. 그러니 저건 ‘찾아낸‘ 시인 셈이죠. 젊은 작가는 저 세 행에서 말하고있는 조언대로 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저건 필요 사항입니다. 이를테면, 차에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수리를 맡겨야 하는데 뮤즈가 찾아왔다고 합시다. 작가는 바 - P438

깥 세계의 일을 어떻게 해서든 모두 꺼버리고, 모든 걸 다 잊어버리고 타자기 앞으로 가서 앉아야 합니다. 그 시를 언급해줘서 반갑습니다. 저에게 글쓰기 철학이라는 게 있다면, 저세 행이 바로 그겁니다. 저것들도 제 묘비에 새겨도 됩니다. - P439

그러다 그 불꽃이 꺼졌죠. 제가 술을 마시던 시기의 마지막무렵에 가서는 그 불이 그냥 꺼져버렸어요. 하지만, 예, 전 살아남았죠. 사실은 제가 술을 완전히 끊고 나서 한 1년 정도,
아무것도 쓰지 않고, 쓰는 일이 더 이상 저에게 중요하지도않다고 느끼던 기간이 있었어요. 당시 저에게는 건강을 회복하고 죽어버린 머리를 되살려놓는 게 너무나 중요해서, 글을쓰느냐 마느냐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어요. 제 인생에서 두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았어요. 하지만 1년 정도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죠. 그러고 나서 상황이 좀 안정되고 제가 건강을 되찾았을 때, 엘파소에서 한 해 동안 가르쳤어요. 그리고그때 갑자기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그건 그냥 엄청난 선물이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있었던 모든 일이 모두 엄청난 선물이었어요. 매일매일이 보너스예요. 지금은 매일매일이 케이크 위에 놓인 크림이에요. - P455

레이먼드 카버는 1988년 8월 2일에 사망했다.
이 인터뷰는 카버가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얼마 전에 있었다. 그의 어조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카버는 즐겁고 희망에 차 있었고, 자신의 최고의 작품들은 이제부터 나오게 될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묘비에 새겨질 말들에 대해 농담을 하긴 했지만, 그의 말이나 신체에서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혹은 전혀 느낄 수 없었을 것이었다. 병이 깊어지고 왼쪽 폐를 들어내 - P455

고 난 뒤에도 카버는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이 출간되기 얼마 전에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을 때에도, 카버는 사람을 한없이 가라앉히는 방사선치료나 점점 나빠지는 건강에 대해 한마디의 불평도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새 책을 내다봤고, 시 쓰는 일로 돌아갈 것을이야기했다.
마지막 몇 달 동안, 카버는 테스 갤러거와 결혼했고, 미국예술문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시집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을 마무리했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테스 갤러거는 <뉴욕 타임스>와의인터뷰에서 카버가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들을 얼마나 즐겼는지 이야기했다.
레이먼드 카버는 자기만의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신조를 지닌 사내였다. 그 신조의 상당 부분이 이 인터뷰에 드러나 있고, 또한 카버를 염두에 두고 선택한 이 책의 제목에도 들어 있다. 카버의 인생의 나머지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담기 위해 인터뷰나 소개를 바꾸기보다는 그대로두고, 원래 발표되었던 것을 조금만 늘리기로 했다.
레이가 좋아한 방식으로, - P456

카버가 그리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익명의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끄집어낸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삶에 맞서시시포스적인 투쟁을 벌이고, 더 고약한 경우에는 그 싸움이 끝나기 전에 포기하고 만다. 그들은 희생자라기보다는 무고한 방관자들이자, 최소한의 필요도 제공하지 않는 너무나 잔인하고 너무나 무작위적인 이세계의 주변부 인물들에 가깝다. 이런 암울함은 이미 일어난 문제는 물론이고 다음 굽이에서 일어날 사고까지 전해주는 속삭임의 긴장감 넘치는 섬세한 어조를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카버의 소설에 담겨 있는진실의 놀라운 점은, 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카버는 깃털로 건드리는 것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는 손길로이런 공포감을 불러일으켜서,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이미 알고 있는 문제를 강조할 뿐이다. - P467

카버의 소설에는 깊은 깨달음이 됐든 부드럽게 돌아보는 것이 됐든, 수정같이 깨끗하고 분명한 대단원이 있다. 그것은 길 건넛집 포치의전등이 꺼지는 것처럼 특별할 게 없는 일일 수도 있고, "꿈이란, 결국 우리가 거기에서 깨어나야 하는 어떤 상태잖아요"라는 카버의 말처럼, 묵직한 걸로 치는 듯한 각성일 수도 있다. "그런 순간은 발견되어야 하는 - P468

거예요. 상상되어야 하는 것이고요.
모르겠어요 어떤 계획이나 개요 같은 걸 미리 준비해두고 소설을 쓰는 것도 좋은 것 같긴 해요. 그런데 대개의 경우에 제 글쓰기라는건 눈을 감은 채 날아다니는 거예요- 본능에 의지해서 나는 거죠!" 카버는 그 이미지를 떠올리며 웃더니 머리를 흔든다. "비밀을 다 누설하겠네요."
카버의 초기 두 선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절망적인 세계관을 제시했다면, 1983년에 내놓은 「대성당」은 그 시선에 가능성, 심지어 은혜로움까지 포함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내가 전화를 거는 곳에 수록된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읽어나가다 보면, 최근작들은 상대적으로 덜 험한 지형을 다루긴 하지만 그 작품들이 포착하고 있는 세계는, 설령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세계다.
카버는 이렇게 말한다. "제 소설들은 이제 좀 더 동반 가능한 게 된것 같아요. 그 표현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요. 전보다 좀 더 긍정적인 것 같고요. 모든 걸 하룻밤 사이에 바꿀 수야 없죠. 소설의 싹은 실제로 있었던 어떤 일에서 돋아납니다. 그건 제 모든 작품이 다 마찬가지예요." - P469

카버는 다른 작가들을 칭찬하는 일에는 재빠르고 너그럽고, 자신의상황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살면서 늘 마주치는 장애물들인 것처럼 말한다. 존 가드너 (1982년에 사망했다)를 기억하면서는 이렇게 말한다. "가드너는 늘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죠." 나는카버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잘 모르겠다는 몸짓을 하고는 미소 짓는다. "대개는 그랬죠.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전 행복합니다." 카버는 말한다. "그렇게 느껴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 P474

기침과 한숨과 함께한 인터뷰. 우리는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를 만나려고 지난 몇 달 동안 노력해왔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사과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요. 시애틀에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가야 합니다." 카버는 폐암 때문에 방사선치료를 받고 있었다.
카버는 귀찮다는 표는 절대로 내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를 배려하는 듯했다.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영국에서 오는로열티로 생활하고 있어요. 비평가들도 훌륭하고요. (기침)" 이 농담 반진담 반의 말은 그를 두고 가난하고 절박하고 절망적인 이들을 다루는소설로 미국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준다"고 비난하는 그의 까탈스러운 동포를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게 제가 사는 세계예요." 카버는 기침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가 지구의 반대편, 시인이자 동반자인 테스 갤러거와 함께 살고 - P475

있는 워싱턴주 포트 앤젤레스에서 하기로 한 인터뷰 약속을 다시 한번미룰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면서 한 이야기였다. "저는 가난한 노동자계급에 속한 사람이에요 어린아이로서 그들 중 하나였고, 어른이 돼서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나는 리비트와 매키너니가 맨해튼의 불빛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안 중부 미국의 어둠에 대해 말하는 작가에게 붙여진 ‘미니멀리스트‘라는 명칭에 대해 그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가 으르렁거렸다. "저는 그걸 넘어섰습니다. 미니멀리즘을 넘어섰습니다. 제 소설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어요. 더 있다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냥 꼬리표일 뿐입니다." - P476

그리고 그 개념이 그에게는, ‘들어내기‘의 예술가인 이 사내에게는거의 폐수술 수준으로("무시무시해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제 소설에서 한 군데만 들어내면 소설도 사라집니다." 카버는 그렇게 말하고는 좋아했다.
그가 걸러서 내보낸 몇 개의 단어들로부터는, 사람으로서나 지면에서나, 위대한 샐린저의 시선을 끌 만한 씁쓸함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뇨. 저는 그냥 저 자신이 좋아요. 예, 방사선치료는 힘들죠. 하지만 괜찮아질 거예요. 저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차분해요. 제가 은총을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카버는 검은 시인, 삶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묘사되어왔다.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능력과관계없는 일을 하고, 떠돌아다니면서 밤에는 시와 소설을 쓰던 시절에는 실제로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게 되면 여기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하겠노라고 약속했다.)그 뒤로 다른 계절이 왔다. 테스와 함께 살면서 재충전을 하기 위해 - P476

도시의 리듬이 필요해지면 뉴욕 여행을 다녀오고, 테스가 집의 반대쪽에 앉아 큰 창문으로 산을 바라보며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은 큰 창문으로바다를 내다보고 앉아 있는.
마지막에 가서는 이렇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기분이 어떠세요?"
"좋아요. 지금은 무얼 쓰기 어렵지만, 곧 좋아질 거라고 봐요. 끝내야 할 책이 한권 있어요. 회고록(믿어져요?)을 써야 되고, 출판해야 할시들도 있어요. 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자신의 문학만큼이나 담백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카버는 기침을 멈췄는데, 예의를갖춰가면서 인터뷰를 연기하고 있는 동안 그는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한 듯했다. - P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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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발부비새, 푸른 발로 부비부비


바스락, 푸른 발
한쪽씩 들어 보이며 구애를 하지
으쌰으쌰 받아줘받아줘사랑하자사랑하자

바스락, 푸른 싹
봄마다 새잎 밀어 올리는 이 힘은 대체 어디로부터
으쌰으쌰, 사랑하자사랑하자네게갈게네게갈게

다정하고 장엄한 이런 아침
네가 웃자 바스락,
네 뺨을 감싼 공기의 한줄기 끝에서
새싹이 돋듯
이랑이 막 깨어난 듯

인생별거 없다
안다
그래도 좋다
그래서 좋다
이런 순간이

바스락, 으쌰으쌰, 사랑하자사랑하자인생별거없다그래도좋다그래서좋다너를안으니좋다
단순한 낙천성의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힘

꼬리를 살랑거리다가버린 빛에 대해 말하는 것이
꼬리를 끌고 막 도착한 빛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이런 바스락,

우리에겐 다만 빛 드나드는 마음의 창문을 열어두는 연습이
으쌰으쌰 으쌰으쌰
바스락 바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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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카이사르는 특히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그 자신 때문에 그렇다. 그만큼 그는 다른 누구보다 완벽하고 뛰어나다. 살루스티우스도 그런 축에 들지만. 물론 나는 사람들이인간의 작품을 읽을 때 갖는 보통의 존경심보다 조금 더 큰 경의를 품고 카이사르를 읽는다. 때로는 그의 행위들과 기적과도 같은 그의 위업에 입각해 그 사람됨을 고찰하면서, 때로는 키케로가 말했듯이 그 어떤 역사가도 능가할 뿐 아니라 어쩌면 A 키케로마저도 능가하는 문장의 순정함, 그 흉내 낼 수 없는 우아미에 감탄하면서, 그의 치명적인 야망에서 나온 비열한 흑심을 감추기 위해가짜 색깔들을 덧입혀 놓은 경우들을 제외하면, 자기 적들에 관해 쓰면서도 그토록 신실한 판단을 하는 것을 볼 때, 그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결점이란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말을 아꼈다는 것밖엔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기 글에서 말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자질을 쏟아 넣지 않았다면 그토록 많은 위업을 이룩할 수는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 P146

탁월한 역사가는 알아 둘 만한 사실을 골라 낼 수 있고, 두 가지 전언 중 더 참다운 하나를 선별할 수 있다. 그는 왕공들의 사정이나 기질을 참작하고 그들의 속마음을 파악해서 그들에게 그들이 했음 직한 말을 부여한다. 탁월한 역사가는 자기가 믿는 바를우리도 믿게 하는 권위를 가질 만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자들(이 경우가 가장 흔한데), 그들이 우리를 다 망쳐 놓는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꼭꼭 씹어 주려 든다. 스스로에게 판단의 권리를 부여하고, 그 결과 역사를 자기 생각에 맞춘다. 일단 어느 쪽으로 판단이 기울면 서술을 그 방향으로 굽히고 비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아 둘 만한 것들을 골라 낸답시고, 우리를 더 잘 깨우쳐 줄 어떤 언행이나 사적인 행동들은 은폐한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서, 또 어떤 것은 아마도 좋은 라틴어나 프랑스어로 쓸수가 없어서 빼 버린다.  - P147

덕이란 우리 안에서 생기는 선(善)의 경향과는 다른, 더 고상한 무엇인 것 같다. 저절로 잘 조절되고 천성이 훌륭한 사람들은 유덕한 사람들과 같은 길을 따르고 행동에서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덕에는 축복받은 천성으로 인해 온화하고 평온하게이성이 이끄는 대로 자기를 맡기는 것보다 뭔가 더 위대하고 더능동적인 울림이 있는 것 같다. 타고난 온유함으로 모욕을 당해도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는 대단히 아름답고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리라. 하지만 급소를 찌르는 모욕으로 분이 솟아오를때, 복수하고 싶은 맹렬한 욕망에 맞서 이성으로 무장하고 크나큰갈등 끝에 마침내 자기를 제어한 사람은 의심할 나위 없이 훨씬더 장하리라. 전자는 잘한 것이요, 후자는 덕을 실천한 것이리라.
한 행동은 선이라 불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덕행이라 불릴 것이다. 덕이란 명칭은 어려움, 그리고 상반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적수없이는 행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은 선하시고, 강하시고, 자유로우시며 정의롭다고 하지 유덕하시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분이 행하시는 바는 전적으로 자연스러우니, 애써 하시는 것이 아니다. - P153

플라톤의 말이나 이런 예들은 우리가 사랑 때문에건 어쩔수 없어서건 결국 하느님을 믿게 된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무신론은 타락하고 해괴한 주장이며, 인간의 정신에 수립하기 힘들기도하거니와 궁색한 제안이다. 아무리 인간 정신이 건방지고 제멋대로라고 해도 말이다. 그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생각, 세상을 바꿀견해를 가졌다는 허영과 자부심에서 그것을 주장하는 척하는 자들이 상당히 많지만, 그들은 상당히 미치기는 했을망정 자기 양심에까지 그런 생각을 심어 두기에 상당할 만큼 강하지는 않다. 가슴에한방 세게 칼을 맞으면 바로 하늘을 우러러 합장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두려움이나 병이 이 변덕스러운 성미의 방자한 열정을무너뜨리면 곧장 일반인들의 신앙으로 돌아와 보통 사람들이 하는대로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진지하게 곱씹어 자기 것으로 만든 사상은 별개의 문제이다.
비틀거리는 정신의 방종에서 생겨나서 확신도 없으면서 지각없이 상상 속을 헤엄치는 저 표피적인 견해들은 그런 사상이 아니다. - P190

우리의 판단과 의지를 묶어 주고 우리의 영혼을 껴안아 우리 창조주와 결합시켜 줄 매듭은, 그 얽어 묶는 힘을 우리의 생각,
우리의 이성이나 정념이 아닌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포옹에서 얻는 매듭, 하느님의 권위와 은총이라는 단 하나의 형태 단 하나의얼굴과 광휘만을 갖는 매듭이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혼은 신앙의 지배와 명령을 받게 되므로, 신앙이우리의 다른 기능들을 그 능력에 따라 신앙의 목적에 봉사하도록이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이 기계(우주) 전체가 저 위대한건축가의 손이 찍어 놓은 어떤 표적을 갖고 있지 않다거나, 세상의 사물들에 그것을 짓고 만든 이와 닮은 모습이 없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분은 이 고매한 작품들에 당신 신성의 특징을 남겨 놓았다.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어리석음 탓이다. 그분 자신이 이 점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활동, 그것을 보이는 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신다고.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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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턴

어떤 서평가는 「다들 어디 있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색하고, 불편한 웃음이었다." 다 읽고 나서는 독한 술을 두어잔 마셨어야 했다고 했고요. 작가님의 유머는 고통에 가깝습니다. 안 그런가요?


카버

그게 인생이에요. 아닌가요? 많은 경우에 유머는 양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머에 웃는 건, 웃지 않으면 닭살돋게 하려는 얘기는 아니지만 웃지 않으면 울 것 같으니까 그런 거란 말이죠. 아무튼 제 이야기들에서 누군가 유머를 발 - P250

견했다니 반갑네요. 『대성당에 들어 있는 「신경써서 라는작품은 귀에 귀지가 꽉 찬 사내 이야기인데, 그 사내는 아주 암울하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지난달에 처음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읽었는데, 다들 박장대소를 하더군요. 어떤 부분들이 그렇게 웃긴 모양이더라고요.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는 웃지 않았지만, 어떤 부분들은 정말웃겼어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 종류의 유머는 아니고, 다크 유머인 거죠. - P251

제 생각에는 「대성당』에 수록된 작품들이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훨씬 더 풍성하고 흥미로워요. 물론 저한테 그렇다는 말이지만요. 예를 들어 「열」이라는 작품에서는 아내가 떠나고 남편에게 아이들이 남겨져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어린아이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예요.
제 인생이 바뀌었고 그래서 제가 좀 더 낙관적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게 적절할 것 같아요. 제 작품들에서 그 사실을 읽어낸 것이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제가 젊었을 때 저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긴 수많은 것으로 계속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다른 인생이던 시절에 일어난 일들로 돌아가 재료를 찾는 거죠. 지금 제가 사는 환경은 당시와 물론 많이 다르지만, 그 시절의 일들은 제게 아직도 크나큰 존재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 P252

이야기라는 건 물론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고, 어디엔가에 뿌리를 두고 있죠. 그런 면에서 제가 쓰는 모든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 속에서 다루는 소재들 중 어떤 것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거나 어디선가 얻어들은 것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증인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좋은 작가들 누구나가 그러듯이, 상상하고, 기억하고, 그것들을 뒤섞습니다.
전적으로 자전적인 걸 쓸 수는 없어요. 그렇게 했다가는 이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책이 나올 겁니다. 그게 아니라 여기서는 이런 걸 끄집어내고 저기서는 저런 걸 끄집어내어 눈사람을 만들 듯이 언덕 아래로 굴리는 겁니다. 굴러 내려가는 과정에서 다른 모든 것-우리가 들은 이야기, 눈으로 본 것, 직접 겪은 것이 달라붙게 되죠. 그렇게 이런 토막 저런 조각을 붙여서 어떤 일관성 있는 전체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 P253

제 생각에는 음악에서 작곡가의 고유성이 느껴져야 하는 것처럼, 글에서도 작가의 고유성이 느껴져야 합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몇 소절 들어보면 그게 누구 곡인지 알기 위해 계속 들어보지 않아도 된단 말이죠. 제가 쓴 소설에서 작가 이름을 보지 않은 채 몇 문장이나 한 문단만 읽고 나서도 그게제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심지어 그 이야기가 런던에 살면서 브뤼셀로 출퇴근을 하는 이야기 같은, 제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이야기라도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좀 이상한 거죠. 저는 기대치가 아주 낮은 상태에서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와 지금의 마음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카버 소설, 이것에 대해서는 아마 제가 제일 놀라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주 기쁘고 행복해요. 예. - P254

제가 쓴 단편소설들이나 시들은 자전적인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제가 쓴 글들 모두가 현실 세계에 각자의 출발 지점을 두고 있어요. 이야기들은 허공에서 뚝 떨어지지 않아요. 어디엔가 구체적인 출발 지점이 있어요. 상상력과 현실성, 약간의자전적인 요소와 풍부한 상상이 결합돼서 나오는 거죠.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그걸 다루는 제 의도에 따라 특정한 방향으로 전환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틀이 잡히게 됩니다. 대개의 작가들이 그렇게 하고,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작가로부터 기대하는 건, 작가가 자신이 다루는 주제에대해 권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작가를 신뢰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 하고, 이를테면 작가의 손에 자기를내맡기고 함께 떠나고 싶어 합니다.
제가 살았던 그런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아마 제가 쓴 그런특정한 이야기들을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도 그 정도의재미와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이야기를 썼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네요. 하지만 누가 알겠어요? - P259

그렇진 않았어요. 최소한 생각하시는 그런 모방은 아니었어요 프랭크 오코너가 기 드 모파상 흉내를 냈다거나 단편소설이라는 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보려고 모파상을 연구했다거나, 심지어 베껴 쓰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요.
서머싯 몸도 자기 스타일을 개선하고 다른 작가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걸 완전히 흡수하기 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문장을 베껴 썼다고 하죠.
저는 그런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 중요했고, 여전히 그런 작가들이 여럿 있어요. 몇 사람만 꼽자면체호프, 헤밍웨이, 톨스토이, 플로베르 같은 이들이죠. 이작가들의 장편과 단편들을 읽었고, 이 작가들 흉내를 내려고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좀 더 조심스럽게 쓰긴 했죠. 더 잘쓰려고 했고요. 이 작가들은 제가 존경하는 종류의 사람들이었거든요. 하지만 특정한 작가를 다른 작가들 위에 놓거나 하진 않았어요. 체호프를 제외하면요. 제 생각에 체호프는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단편소설 작가들 중 최고예요. 이사크 바벨도 또 다른 뛰어난 작가죠. 바벨은 두세 페이지만 가지고도엄청나게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 P264

제 생각에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는 누구나 자기에게 재능이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아니면 자기가 해야 하는 걸 할 수가 없을 거거든요. 자신을 지탱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러니까 모든 작가는 자신을 믿어야만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저 자신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은 채 지내다가, 존 가드너를 스승으로 만나면서 의문의 여지없이 삶이 바뀌었어요. 그 사람은 제게 엄청나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 P266

저는 무척 흥분했어요. 전에는 작가를 만나본 적이 한 번도없었거든요. 그때 제 나이가 열아홉인가 스물이었는데, 단 한번도 작가를 본 적이 없었어요. 가드너는 당시만 해도 출판된작품은 없었지만 작가였어요. 제가 그때까지 만났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어요. 저에게는 큰 도움을줬어요. 저는 그때 제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그런 시점에 있었는데, 그런 저한테 이런저런 것들을 보여줬습니다. 그가 하는 말들은 곧장 제 핏줄로 흘러들었고, 제가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꿨어요.
그는 제가 무언가를 열 단어로 말할 수 있다면, 스무 단어 대신 열 단어로 말하는 게 맞다는 걸 이해하게 해줬어요. 제게정확하라, 그리고 간결하라고 가르쳤어요. 그런 것들 말고도많은 걸 가르쳐줬어요. 그에게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제생활은 여전히 제 몸 하나 움직이기도 어려운 처지였는데, 그때당장 써먹기 어려운 것들도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그때 배운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어요. - P267

그랬죠. 그리고 같은 에세이에서 저는 에즈라 파운드가 "진술의 근본적인 정확성이야말로 글쓰기가 요구하는 단 하나의 윤리다"라고 한 말도 인용했습니다. 이건 어느 것 못지않게 훌륭한 시작점입니다. 여기에서 출발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는 윤리적인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작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걸 써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운이좋을 경우, 작가에게서 흘러나오고, 그 작품에서도 흘러나오는 선율이 있게 됩니다. 확실한 건, 작품은 무엇보다 먼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그 뒤에 지적인 연결이 이어져야한다는 겁니다.
체호프의 단편을 읽고 감동을 받았을 때, 그건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나서 감동을 받거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듣고감정적으로 동요된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무언가가 언어를,
심지어 1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다가오고 마음을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 P270

이상적으로는 이야기가 저를 선택하는 건데, 이미지가 오고 감성적인 틀이 그 뒤를 따릅니다. 저는 작가들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직접 경험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관심 부족 탓일 수도 있고, 지식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개입의 부족도 원인이 될 수있죠. 저는 젊은 정치가는 물론이고 늙은 정치가, 혹은 변호사, 혹은 대형 금융이나 패션 같은 것에 대해서는 쓸 능력이전혀 없어요.
이건 이야기가 되고 이건 안 된다를 판별해주는 필터가 항상 작동 중이죠. 아마도 자그마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어요.
어떤 종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성장하기 시작하는 아이디어의 배아 같은 거요. 이상적인 건 이야기가 작가에게 오는거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그물을 던져놓고 무언가 쓸 거리를찾아다니는 건 좋지 않아요. - P279

어조는 객관화해서 말하기 아주 어려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어떤 작가의 어조란 단순히 이야기를 직조해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작가의 고유성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 어조가 아닌건 말할 수 있습니다. 비아냥거리는 건 절대로 제 어조가 아닙니다. 역설적이지도 않고, 기발하거나 현란하지도 않습니다. 제 어조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진지하지만, 당연히, 어떤이야기들의 어떤 부분들은 유머러스하기도 합니다. 제 생각 - P296

에어조란 작가가 대충 조합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건작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진행 중인 작업에 그 관점을끌어들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조는 그 작가가 쓰고 있는 거의 모든 문장에 스며들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기술은 교육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해야 할 것이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누구나배울 수 있습니다. 문장을 더 잘 쓰는 방법을 이해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작업에 접근하는 태도로서의 어조는그런 식으로 다뤄질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작가가 자신의 어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어조나 철학을 차용하려 든다면 그건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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