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 이 두 단편이 살아남는다면 제가 정말 행복할 겁니다.˝  레이먼드 카버


충분히,
충, 분, 히,
행복하셔도 됩니다. 카버~!

깃털들



직장에서 알게 된 버드가 저녁이나 함께 먹자며 프랜과 나를초대했다. 나는 버드의 아내를 몰랐고 버드는 내 아내 프랜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 점에서 우리는 공평했다. 하지만 버드와 나는 친구였다. 버드의 집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었다. 버드가 저녁식사 초대를 했을 즈음. 아기는 생후 팔 개월 정도였을 것이다. 팔 개월이라니?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도대체, 지금까지의 시간은 또 다 어디로 간 걸까? 하루는 버드가 시가 박스를 들고 출근한 일이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버드는 내게 시가를 내밀었다. 드럭스토어에서 산 싸구려였다. 더치 매스터스. 한 개비마다 붉은 스티커를 붙여놓고 ‘사내애랍니다!‘라는 글씨가 인쇄된 포장지로 싼 시가였다.  - P9

올라는 씩 웃으며 다시 이를 드러냈다. 그녀는 버드를 쳐다봤다. 버드는 의자를 밀어 식탁에서 물러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못생긴 아기였다. 하지만 버드와 올라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마 그들은 못생겼다고 해도 어쨌든 괜찮아,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아기니까. 지금은 이런 시기를 거치는 것뿐이지. 조만간 다른시기가 찾아올 거야. 이런 시기도 있고 다른 시기도 있는 것이니까. 결국에는, 그러니까 모든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 P43

어떻게 공작이 그 회색 다리를 들어올려 살금살금 식탁을 돌아 왔는지 떠올린다. 그다음에는 내 친구와 그의 아내가 포치에 서서 우리에게 잘 가라고 말하는 장면을 올라가 집에 가져가라며 공작 깃털몇 개를 프랜에게 주는 장면을 나는 우리 모두가 손을 흔들고,
서로 포옹하고, 이런저런 말을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운전해 가는 동안, 차에서 프랜은 내게 바투 가까이 앉았다. 그녀는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내 친구의 집에서 우리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왔다. - P47

체프의 집



그리고 나도 뭔가 얘기했다. 나는,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면, 이게 처음이라고 치면, 그냥 그렇다고한다면, 그저 상상하는 것일 뿐이니까. 이제까지 일어난 일이 없었다고 한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요? 그랬다면 과연?
이라고 내가 말했다.
웨스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고 상상하란 뜻이겠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 나는 그런 종류의 가정을 하지 못해. 원래 태어나기를 우리는 이렇게 태어난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알아?
나는 그런 말을 듣기 위해 온갖 일들을 다 팽개치고 600마일을 달려온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미안해,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처럼 말할 수는 없는 거야. 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니까.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여기에 있지도 않았겠지. 내가 다른 누군가였다면 이런 모습도 아니었을 거고. 나는 나일 뿐이야. 모르겠어? - P57

웨스는 내 옆에 앉아서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턱을 가볍게 두드렸다. 웨스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우리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됐다. 나는 웨스를 바라본 뒤체프의 거실 안에 있는 체프의 물건들을 둘러보면서 지금 해야할 일이 있으니 빨리 그 일을 해야만 해, 라고 생각했다.
여보, 라고 나는 말했다. 웨스, 내 말 좀 들어봐요.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 거지? 라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전부였다. 그는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을 정했음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무릎 위에두 손을 포개고 소파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는 아무런 말도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부르기 쉬운 이름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이름을 불러왔다. 나는 한 번 더 이름을 불러봤다. - P58

이번에는 소리 내어 불렀다. 웨스, 라고 내가 말했다.
그가 눈을 떴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그는 그대로가만히 앉아서 창문을 바라봤다. 뚱뗑이 린다, 라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녀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미했다. 그저 이름일 뿐. 웨스는 일어나 차양막을 잡아당겼고 바다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러 갔다. 아이스박스에는 아직 물고기가 몇 마리 남아 있었다.
다른 건 별로 없었다. 오늘밤에 다 먹어치워야겠다, 라고 나는생각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 P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