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는 오케스트라만의 공연이었고, 2부에 정경화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1부 내내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정경화가 나오길 기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그런데 나의 인내심도 모르고 오케스트라연주는 길어지기만 했다. 급기야 오케스트라는 원래 계획에도 없던곡까지 연주를 했다. 정경화가 나와야 하는데, 정경화는 왜 안 나올까.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리고 정경화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바이올린도 없이. 맨손으로, 정경화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바이올린을 잡는 대신 마이크를잡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정경화가 말을 했다. 오늘 오전에 갑자기손에 마비가 왔다고. 연주를 하는 대신 말을 했다. 연주를 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 P136

그때 2층에서 내려다본 정경화는 작았고, 머리숱도 적었다. 나의 영웅 정경화가. 내 롤모델이 나를 그토록 울렸던 그 위대한 연주가가 작았고 적었고 마비가 왔다. 2005년의 일이었다.


***

그 후로 나는 정경화의 비발디 <사계> 공연을 보러 성남에 갔고 바르톡 공연을 보러 인천에도 갔다. 나는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을 해야 했다.
- P137

그리고 2012년. 명동성당에 정경화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를 들고 나타났다. 명동성당과 정경화와 바흐의 조합이라니.
그보다 더 어울리는 조합이 어디 있을까. 길고 딱딱한 성당 나무의자에 앉았다. 이런 분위기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나올까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정경화는 드레스 대신 하얀 셔츠를 입고 성당 제단 앞에 섰다. 그보다 더 어울리는 차림이 또 어디 있을까. 누구보다 기품있었고,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1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오늘이 어머니의 기일이라 했다. 관객들도 숙연해졌다. 그 시절 한국에서 정경화라는 바이올리니스트도 모자라 정명화, 정명훈까지 길러낸 그 어머니. 모를수는 있어도, 알고 난 후에는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 어머 - P137

니에게 그보다 더 흡족한 제사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진공상태와도 같은 침묵이 성당을 가득 메웠다. 그 공기를 뚫고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그 소리가 명동성당의 높다란 천장을 돌아 뒷벽에 부딪혀 내 귀로 들어왔을 때 나는 우주의 탄생을 귀로 듣는 느낌이었다. 먼 소리가 둥글게 지금의 나에게 도착하고 나는 먼 소리를 지금의 소리라 착각하며 멍하니 입을 벌리고 소리를좋았다. 높은 소리는 신생 별이었고 낮은 소리는 오래된 별이었다. 활과 바이올린 사이에는 공기가 흘렀고 지구와 달처럼 그 공기는 아득했고 멀리서 도착한 빛과 소리는 아름다웠다. - P138

그리고 <파르티타>. 그리고 무려 <샤콘느> 연주가 시작되었다. 바흐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악장인 <샤콘느>. 연주가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곡. 하지만 그만큼 연주가의 깊이를 들키기 쉬운곡. 그래서 브람스는 이 곡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렬한 느낌의 완전한 세계"라고. 젊은 연주가의 <샤콘느>는 깊이가 없고, 늙은 연주가의 <샤콘느>에는 기교가 부족하기 십상이다. 너무 젊지도 너무 늙지도 않은 그 팽팽한 긴장감의 나이에 <샤콘느>를 위한 나이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이 정경화의 <샤콘느>가 아닐까?
어느새 나는, 20년 전 그때처럼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 턱에고였다. 닦을 생각도 못하고 펑펑 울어버렸다. 1974년, 정경화가 아 - P138

주 어렸을 때 녹음한 바로 그 바흐 <샤콘느> CD를 수십 년 동안 성경처럼 간직하며 들어온 나였다. 그런 내 앞에서, 예순도 넘은 정경화가 그 나이만큼 단정한 셔츠를 입고, 바흐를 연주하고 있었다. 작지 않았고 적지 않았고, 유연했고, 거대했고, 전부였다.


***

한때 정경화처럼 연주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때때로 정경화의 CD를 틀어놓고 정경화의 선율을 따라서 연주해보곤 했다. 물론단 한 음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늘 몇 음 따라 하다 말고 바이올린을 내리고 정경화의 연주에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 예쁘고 작고 예민하기 짝이 없는 바이올린은 나에게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 P139

안다. 타고난 기억력의 소유자인지라 나는 그 곡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곡의 제목조차 알지 못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키스 자렛의 곡들을 다시 찾아서 들어봤지만 비슷한 곡도 찾아내지 못했다. 실은 한 소절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단할 기준조차 없다. 아마 다시 그 곡을 들려줘도 나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혹은 음악이 너무 좋다며 이게 무슨 곡이냐고 물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곡을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꼭 기억하고 싶다. 피아노와 새들의 합주를 피아노가 멈추는 순간 시작되었던 새들의 독주를 새들의 독주를 듣기 위해 멈춘 피아노를, 그제야 들리고 보이고 만져졌던 보석들을 그 보석들을 지금 우리가 오롯이 누리고 있다는 깨달음을. 행복에 정수리까지찌릿찌릿해지던 순간을, 그 순간의 나를. 우리를. - P148

카메라라는 걸 손에 쥐고 처음 나간 순간을 기억한다. 안보이던 게 보였다. 방금 있었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았고, 지금의 빛은 1분 후에 다른 빛이 되는 걸 보았다. 나는 경이에 차 있었는데,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내 옆을 지나갔다. 노을이 지고있는데, 저렇게 노을이 지고 있는데, 노을빛 때문에 이 벽이 이렇게아름답게 빛나는데.
그때 깨달았다. 나는 카메라를 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쥐게 되었다는 걸.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는 걸. - P153

외국 여행을 갈 때에도 언제나 이 카메라부터 챙긴다. 무겁고, 귀찮다. 하지만 이 카메라가 없는 순간이 두렵다. 너무 찍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이 카메라가 없어서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른 카메라를 탐낸 적은 없다. 다른 렌즈를 사고 싶어 한 적도없다. 비싼 라이카도 최신식 카메라도 나에겐 관심 밖의 이야기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장비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다만 다른 사진에대한 욕심은 많다. 끝도 없다. 남들이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내 사진과 비교하며 초라해진다. 어쩜 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 탄복을 하면서 그 실력에 욕심을 낸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래로 이 욕심은 더해가기만 할 뿐 줄어들진 않는다. 아마 평생 그렇게 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평생 잘 찍지 못할 것이다. 평생 잘 찍는 누군가의 사진을보며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평생 찍을 것이라는것을. 그렇게 찍는 순간은 어쨌거나 나만의 순간이 된다는 것을. 대단하진 않을지라도 나만의 시선은 끊임없이 버려지리라는 것을. - P156

처음부터 의도는 없었다. 의도가 있었다면 이토록 성실할수 없었을 것이다. 늘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멀리서도 보였고, 다가갈수록 가슴이 뛰었다. 찍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랬다. 기분이 너무 좋아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실했다. 좋은 기분을 위해 성실했다. 아니, 어쩌면 성실하다는 표현은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마음을 따라갔을 뿐이다. 마음의 움직임에 몸의 움직임을 맡겼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에게는 수많은 나라들의 수많은 도시들의, 수많은 벽의 기억이 생겼다. - P159

사진을 배우고 난 후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은 사람만큼 사진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요소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진 앞에서도 사람의 눈은 신기하게도 사람을 가장 먼저 찾아낸다. 아무리 구석에 있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어김없다. 어떤 사진 앞에서도, 어떤 사람이라도 똑같다. 덕분에 사람이 없는 사진은생기가 없기 십상이다. 물론 사람 하나 없이도 눈을 사로잡는 위대한 사진도 많다.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내 경우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나는 사람이라는 피사체가 필요했다. 그 순간, 그 표정, 그 몸짓, 그러니까 그때가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그 사람을 찍고 싶었다. 그 - P167

래서 사람을 중심으로 찍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벽 사진만은 예외였다. 벽 사진에는 사람이 필요치 않았다. 누군가가 신경 써서 가꿔놓은 창가, 창문마다 다르게 걸려 있는레이스 커튼들, 거리낄 것 없이 다 내보이는 창문들, 해를 향해 가슴을 열어젖힌 빨래들, 해가 넘어간 뒤에도 바람에 걸려 있는 빨래들, 벽에 무심하게 기대 있는 자전거, 새 칠을 입은 벽, 한 번도 칠해지지않은 벽, 지금 막 누가 그림을 그려넣고 있는 벽, 폐허에 홀로 남은벽, 노란 벽, 파란 벽, 주황색 벽, 그 모든 색이 다 섞인 벽 등, 벽은언제나 그 자체로 완벽한 모델이 되어주었다. - P169

하지만 그런 걸 감히 꿈이라 불러도 되나. 그건 그저 욕망이라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나는 늙어버렸으면좋겠다고 생각했다. 10대엔 10대라 힘들었고, 20대엔 20대라 너무힘들었다. 왜 이렇게 시간은 무정형이지. 왜 이렇게 나는 휘청일까. 사소한 상처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나이가 분명 있을 텐데. 울음이멈추는 나이가 나에게도 분명 올 텐데. 그건 또 언제인가. 60이 되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고요한 시간이 드디어 내게도 찾아올 것 같았 - P180

다. 어떤 자극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고요하게.
60이 되고 싶었다. 그게 꿈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그저 늙어가는 것이 꿈이 될 수 있는 건가. 그냥 늙고 싶은 건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60살이 된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고요한 얼굴이고 싶었다. 세상의 어떤 풍파도 감히 박살낼 수 없는 깊고 따뜻한 얼굴이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그저 늙는 것이 아니라잘 늙어야 했다. 그때면 얼굴에 모든 것이 다 새겨져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시간과 만남과 선택과 마음이 모두 새겨져 있을 텐데, 그얼굴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잘 늙고 싶다는 것도 꿈으로서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모든 취업 원서에 ‘잘 늙기‘를 꿈으로 써냈다.
50군데 원서를 내고도 50군데에 다 떨어진 건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 P181

물론 이제는 안다. 내가 어릴 적 꿈꾸었던 그런 말짱한 나이는없다는 걸. 60이 되어도 내가 꿈꾸는 것처럼 무심하게 고요할 리 없다는 걸. 오늘은 여기가 아파 우울할 것이고, 내일은 저기가 골칫거리일 것이다. 내가 괜찮은 어떤 날에는 남편이 말썽일 것이다. 그때내게 일거리가 있다면 그 일이 하기 싫어 몸부림일 것이고, 그때 내가 백수라면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의 가계가 걱정일 것이다. 전세계를 여행하고도 남을 시간이 있지만 돈이 없을 수도 있고, 돈이 있더라도 몸이 안 따라줄 수도 있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별일 없이 산다‘라는 친구의 말이 제일 부러운 말이 될 수도 있다. 별일이 없다니.
난 아직도 순간순간이 별일이라 미치겠구먼. 어쩌면 루르마랭의 그할아버지도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이 지긋지긋해 혼자서 여행을 온•걸지도 모른다. 나름의 방법으로 도피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아무도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의 60은 무슨 색깔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젊음의 형광빛보다는 늙음의 희미한 빛 - P188

에 끌린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배 나온 할아버지들의 나뭇둥걸 색깔을 좋아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부부가 서로를 챙겨줄 때의 빛바랜노을색은 늘 찡하다. 골목골목 수다를 떨고 있는 할머니들의 하얀머리를 보면 경쾌해진다.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회색표정도 꽤 귀엽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분홍색으로 차려입고, 할아버지에게도 분홍색 니트 티셔츠를 입힌 할머니를 봤을 때는 가던 길을 되돌아갔다. 할머니를 붙잡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 그 색깔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60살의 나를 모른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모든 세월을 통과한 노인들을 볼 때면 늘 뛰어가서 사진을 찍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 각각의 시간을 사진으로 찍으며 막연하게 나의 시간을 상상해보는 걸지도 모른다. 60이 되었을 때 나의 색깔.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핑크빛으로 두근거린다. - P190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물론 이미 카피라이터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 나무를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나무가 나의 마지막 나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않는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또 어떤 나무가 뿌리를내리기 시작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나무를 키우기로 결심을 한다면, 잘 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비옥한 토양을 가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토양을 가꿨는데도 아무나무도 안 자란다면? 그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게비옥한 토양은 남을 테니까. 그 토양을 가꾸는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할 테니까. 그 토양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행복하지 않을도리가 없으니까. - P200

영어, 독일어, 라틴어, 희랍어, 일어, 불어, 사람들은 내 언어 욕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박장대소를 한다. 그리고 하나라도기억하는 언어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같다. 기역할 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단어를 외우는 뇌세포가 없다. 그런데왜 그렇게 많은 언어에 욕심을 냈느냐고? 모르겠다. 언어에 유독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그냥 배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 열망, 어쩄거나 확실한 것은 뭔가를 배울 때의 나는 확실히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즐거워하고,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기어이 짬을 내서 배우러 달려간다. 그러니 나에게 ‘배운다‘ 라는 말은 장밋빛 미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장밋빛 현재를 위한 말이 된다. - P209

말이 지겹고, 글이 구차하다 느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흙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큰 위로였다. 흙을 만지는 시간만큼은정직해지는 느낌이었다. 흙이 정직했으니까.
무게를 실어 미는 방향으로 정직하게 흙은 나갔다. 흙이 달라지면 결도 색깔도 결과물도 달라졌다. 같은 흙이라고 해도 날씨에 따라 성질이 달라졌다. 흙끼리 붙일 땐 끝에서부터 한 땀 한 땀. 절대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해야 했다. 공기가 들어가면, 가마 속에서 흙이 터졌다. 약간이라도 갈라진 곳이 있으면, 어김없이 가마 속에서쩍 하고 갈라졌다. 흙은 정직했다. - P214

하지만 엄마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탈춤반 공연을할 때마다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걸 보면 내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를 굳이 탈춤반에서 찾지는 않은 것 같다. 떨어지는 성적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내가 공부를 점점 못 따라가는 거지.
방목, 완전한 방목. 엄마는 나를 방목했다. 이제 와서 엄마는 그걸 엄마의 교육철학이라고 말하지만,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동생도알고 모두가 안다. 그걸 철학이라고까지 포장할 순 없다. 엄마는 나를 방목했지만, 동생에 대해선 전혀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방목을 해놔도 나는 울타리 밖으로 안 나가는 아이였기 때문에 방목을 했던 것이고, 동생은 아무리 묶어놔도 어느새 울타리를 뛰어넘는아이였기 때문에 그냥 각자에 맞게 반응을 했을 뿐이다. - P242

어떤 부모가 안 그렇겠냐만은, 나에 대한 엄마의 믿음은 신앙에가까운 측면이 있다. 정말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방치에 가까운 방목아니냐면서 내가 엄마를 놀리지만, 나도 알고 엄마도 안다. 그 방목이 아니었다면, 나는 울타리 안에서 영원히 머물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울타리만 넘어가면 더 풍성한 풀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울타리 안에서 먹을 풀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믿음은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고, 멀리멀리 떠나보낸다. 그래도된다는 용기를 준다. 내 맘대로 해도 결국 엄마는 나를 믿을 거니까. 엄마는 그럴 거니까. - P245

오스카 와일드 다음은 누구를 이야기하실까 궁금해하던 찰나, 최근 팀장님은 우리가 써간 카피를 보시고는 "너무 인문학이 많은거 같아."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멍한 나에게 "요즘 스무 살처럼 써. 걔들은 이런 말투 아니야. 이런 논리로 말안 해, 인문학을 버려."라고 첨언을 하시더니 급기야 "인문학은 개뿔."이라는 말을 하셨다. 인문학으로 광고하시는 분의 입에서 "인문학은 개뿔"이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물론 그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문학‘이 주어였으니 인문학으로 광고한 게 맞긴 맞지만,
팀장님은 ‘인문학으로 광고하신다. 그런 팀장님 밑에서 10년을일했다. 이러다가 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이 아니라
‘읽지 않은 책으로 카피 쓰는 방법‘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 P253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쓰다‘와 ‘살다‘는 내게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나는 이 문장 속에서도 언제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쓸 수 있어 진실로 다행이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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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기억력이 있다. 오해는 마시길. 한 번 보기만 해도 고스란히 외워버리는 능력이 아니라, 같은 구절을 수백 번 읽어도 고스란히 잊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쓴 카피 한 줄도 못 외우는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한 곡도 못 따라 부르는 팬이 되었고, 남편이 바로 며칠 전에 들려줬던 음악에 "좋다. 누구 음악이야?"라는 질문을 또 하는 아내가 되었다.
이건 너무하다 싶어 병원 검사도 받아보았다. ‘정상‘. 이 두 글자가 똑똑히 적힌 종이를 들고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냥 나는 머리 - P6

가 안 좋은 것이었다. 머리가 안 좋아서 아무리 공부해도 역사 성적은 늘 그 모양이었고, 머리가 안 좋아서 그토록 외우고 싶었던 시한편을 못 외운 거였다. 머리가 안 좋아서 지난주에 본 영화의 줄거리를 못 기억하는 거였고, 머리가 안 좋아서 지금까지 그렇게 고생한거였다. 모두가 머리가 안 좋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니, 정정하자.
머리의 다른 영역까지 다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유독 ‘기억‘ 과 관련된 머리는 평균 이하임이 확실했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능력을 상실한 대신 나는 ‘성실‘이라는 능력을 얻었다. 말 그대로 나는 끊임없이 읽고, 듣고, 보고, 찍고, 경험하고, 배우는 부류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인간 부류에 속한다. 한 선배가 농담처럼 말했다. - P7

"넌 나보다 열 배를 더 열심히 살지만 어차피 열 개 중 아홉 개는잊어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나와 같은 분량을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선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선배의 말이 틀렸다고생각한다. 나는 내가 잊어버린 아홉 개가, 그러니까 내 머리가 ‘기억‘
하지 못하는 아홉 개가 내 몸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다.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렸던 경험에서 내 머리는 그 곡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몸에는 그 눈물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좋아하는음악 앞에선 기꺼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난 후에도 그 줄거리나 주인공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시 - P7

간이 오래 지난 후에도 그 책을 떠올리면 심장의 어떤 부분이 찌릿한 것은 내 몸에 그 책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었던장소, 그때의 바람, 설렘 등은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건 마치 자전거 배우기와 같아서 한번 강렬하게 몸에 기록된 경험들은어지간해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어쨌거나 누구나 뇌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으니, 몸은 감정을 기록하는 일도 떠맡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내 몸은 유난히 나쁜 뇌 덕분에 유난히 고생이다.
‘몸에 기록한다.‘
이 문장 덕분에 나는 서른 살이 넘어 나의 기억력과 화해하였다. 더이상 나는 내 기억력을 책망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꼭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니. <죄와 벌>의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니. 나는 기억을 잘하는 나보다 눈물이나 웃음이나 심장소리로 순간순간을 몸에 기록하는 나를 더 좋아한다. 그러니 이 책은 그 기록에 관한 기록이다. 경이로울 정도의 기억력을 가진 한 인간의 몸부림에 관한 기록이 될 것이다.
2015년 7월
김민철 - P8

물리적인 환경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적 환경에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도 일으키지 않고, 안경도 끼지 않은 채로 침대 옆에 있는 책부터 펴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꼭 내게 읽어준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도 그 책을 정리한 글을 써서 내가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남편과 나의 책 취향은 꽤 다른 편인데, 내가 남편의 관심 분야에 무관심한 것과는 달리, 남편은 내 관심 분야에도 관심을 놓치지않고 괜찮은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꼭 선물로 사서 준다. 간혹내가 남편 분야에 관심을 보이면, 남편은 입문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책까지 차근차근 선물해준다. 자부한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책 친구를 나는 가지고 있다. - P16

이 환경은 회사에서도 계속되는데, 10년 넘게 한 팀에서 일하고있는 박웅현 팀장님은 좋았던 책이 있으면 꼭 권해주시고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신다. 그분의 독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결코우연이 아니다. 남편에 비해 팀장님과는 관심 분야도 꽤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게 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팀장님과 나는 서로 읽고 좋았던 부분을 정리해서 교환한다. 신기하게도 같은 책을 읽고도 좋아하는 부분은 꽤나달라서 팀장님이 내게 보내주시는 요약본을 보면 새롭게 그 책을 읽는 느낌까지 든다. 그뿐만이 아니라 좋은 책이 있으면 내게 무심하게 선물해주는 선배도 있고, 책 이야기로 술자리를 꽉 채울 수 있는친구도 있고, 어쨌거나 인간관계적으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 P17

팀장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렇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 모두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기게도, 나는 이미 나를 포기했는데 말이다)그 부분을 책에서 찾아 보여주시지만, 역시나 나는 곤란하다. 내게 그 책은 ‘어떤‘ 부분이 좋았던 책이라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그러니까 ‘어떤‘이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희뿌연 구름처럼, 뭔가, 어딘가, 좋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만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백 권의 책을 읽고 단 열 권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가까스로 기억해내는 몇 권이 있다. 내게는 울림이 있었다. 이책들 때문에 알지 못하던 세계로 연결되었다. 이 책들 때문에 인생의계획을 바꾸기도 했다. 이 책들 때문에 회사 가는 일까지 즐거워졌던 아침이 있었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기억난다. 사람은 안 변한다지만 이 책들 덕분에 잠깐 동안이라도 변했던 나는 기억난다. 그게 내가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의 어쩌면 전부일 것이다. - P18

"내가 신기한 책 하나 보여줄까?"
그리고 남편은 책 한 권을 꺼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아니 수없이 본 책이었다. 우리 집에도 있는 책이었다. <자본론>이었다. 그런데 책이 이상했다. 책이 아팠다.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갖은 방법을 통해 고문을 받은 사람의 모습을 책으로 재현한다면 그 모습일 것 같았다. 아니, 고문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소중히 읽었다는 걸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소중히 한 글자한글자 쓰다듬으며 읽었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읽었으면, 얼마나 잘근잘근 씹으며 읽었으면, 얼마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좌절하며, 희망하며, 다시 좌절하며 읽었으면 책이 이럴까. 모든장이 손때가 덧입혀져서 부풀어 있었다. 종이 한 장보다 손때의 두 - P30

께가 두꺼웠다. 제본은 이미 오래전에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가다듬고, 다시 떨어지고, 다시 가다듬은 흔적들이 보였다. 너무 놀라서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시간을 산 것일까. 80년대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경제학에서 사학으로 전공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그 청년은 어떤 시간을 견딘 것일까. 언제나 정중하게, 언제나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고, 말하기보다는 듣는 모습이 더 익숙한 선생님은 어떤 시간을 통과한 것일까. 아득했다. 몇 번 뵌 적도 없고, 오래 말해본 적도 없는 선생님이었지만 갑자기 선생님의 모든 시간을 다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 한 권이 그랬다. 글자 한 자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책은 모든 것을 제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P31

그러니까 그날 밤 내가 ‘이해했다고 믿는 문장은 어쩌면 나의 철저한 ‘오독‘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선생님의 설명은 안 듣고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내 세계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지금 우리 집 책장에는 오독의 임무를 다한 책들이 다시 한 번 오독의 기회가 오기를, 오독의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책들은 제발 자신에게 오독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책이 어느새 5톤에 달한다. 그 책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이 있을까?아마도. - P40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론 단숨에 핵심에 도달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최선의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엔 하나에 2만 원이나하는 사과를 사 먹는 사람들을 위한 카피를 써야만 했다. 다시 한 번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내가 껴안을 순 없어도,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다.
소설책을 편다. 거기 다른 사람이 있다. 거기 다른 진실들이 있다. 각자에게 각자의 진실을 돌려주려면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좁고 좁은 내가 카피라이터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 P51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

 마이클 커닝햄, 《세월》, 비채, 2012


그렇다면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 P71

그 일상은 바람이 살랑 부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가 아닌, 한낮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회사 앞 식당의 점심 속에 있다. 그일상은 스탠드 불 하나 켜놓고 밤새워 쓰는 글이 아니라 창백한 형광등 빛 아래에서 작성하는 문서 안에 있고, 잘 포장된 초콜릿이 아니라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는 껌 속에 있다.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 하는 서류 더미에 더 많이 할애된 일상,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소통보다는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이 소모되는 일상, 갓 갈아낸 자몽주스보다는 믹스커피에 더친숙함을 느끼는 것이 어쨌거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 P72

그러니 나는 다른 일상을 꿈꾼다.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아침 바게트가 일상이 되고, 노천카페가 일상이 되고, 밤새워 쓰는 글이, 퐁피두 센터가, 세비야의 햇살이, 라인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가 렘브란트의 그림이 고흐의그림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자고, 모든 하루가 내 손에 고스란히 달려 있으며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생활이 일상이 되길 꿈꾼다. 파리가 일상이 되길 꿈꾼다. - P73

그러니 그건 나였다. 내 일상을 망치고 있는 것은 내가 범인이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회사도 범인이 아니었고, 야근도범인이 아니었다. 물론 파리도 범인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이클 커닝햄의 이 구절이 내게 그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나를 구원할 의무는 나에게 있었다. 매일은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그 깨달음에 앞의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무뎌질 때마다 내가 쓴 이 기이한 반성문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아직도 회사 책상 앞에는 파리 지도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위에 종이 한 장이 더 붙어 있다. 파리로 붕붕 떠다니는 내 마음을알고, 어느 날 박웅현 팀장님이 나에게 써주신 글귀다. 이제는 반성문 대신 이 글귀를 읽는다. 서른여섯 살에도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붕붕 떠다니니까. - P76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중국의 시 - P77

문장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내게 이런 가르침을 주는 책은없었다. <행복의 충격》을 읽으며 막연하게 수상하다 느꼈던 것이 이책을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변했다. 언젠가 프랑스로 떠나기 위해 지금을 잘근잘근 씹어 견디고 있는 내게 이러는 건 반칙이었다. 그런내게 이런 가르침은 필요하지 않았다. 전혀.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던져졌다. 그다음은 홀린 듯 빠져들었다. 나는 카뮈의 《안과 겉>, <이방인>, <시지프 신화>까지 달음박질쳤다. 그리고 마침내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 찾아왔다.
출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라니. 출근은 내게 결코 화해불가능한 어떤 것이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6년을 매일 회사를 가면서,
그 6년을 매일같이 나는 회사에 가기 싫었다. 막상 도착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할 거면서, 심지어 열심히 일할 거면서, 나는 매일아침 출근이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출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 찾아온 것이었다. 명백히 시지프 신화> 때문이었다. 명백히 김화영과 카뮈의 짓이었다. - P83

이것이 처음 <행복의 충격>을 읽었을 때 내 마음속의 지진이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나를 위한 공간은 지중해 어디에도 없다고 선언해버린 것이었다. <결혼, 여름>도, <안과 겉>도, <이방인>도, <시지프신화>에서도 같은 선언이 이어졌다. 중요한 것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그곳에 살아남아 버티면서 멀고 구석진 고장에 서식하는 괴이한 식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계속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일침을 놓고 있었다.


광채 없는 삶의 하루하루에 있어서는 시간이 우리를 떠메고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이 시간을 떠메고 가야 할때가 오게 마련이다. ‘내일‘, ‘나중에‘, ‘네가 출세를 하게 되면,
‘나이가 들면 너도 알게 돼‘ 하며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살고있다. 이런 모순된 태도는 참 기가 찰 일이다. 미래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니 말이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의 신화 >, 책세상, 1998 - P85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아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
분명 프랑스를, 지중해를 알기 위해 책을 펼쳤었다. 그렇다. 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지중해를 만나고 싶었다. 태양과 구릿빛피부와 풍부한 해산물과 지금 행복한 사람들의 공간을 꿈꾸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 도착한 곳은 정신의 지중해였다.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지 않는 것, 지금의 이 태양을 남김없이 사는 것. 영원히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영원히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지만,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 내려오는" 시지프처럼. 자신의 불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깨어 있으면서 결국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한 시지프의 공간이 바로 지중해였던 것이다. - P86

술을 마셨고 가을이었고,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고, 노란 조명과 그 은행잎이 만나서 세상이 다 노랗고 예뻤고, 선선했고, 기분이좋았고, 젠장. 이곳이 지중해였다. 내가 지금, 여기를 이보다 더 오롯이 살 수는 없는데, 지구 반대편에 지중해가 무슨 상관인 건가. 여기가 지중해인데. 내가 지금 좋은데. 팀장님 말이 다 맞았다. 그런데 나는 가고 싶었다. 동시에 안 가고 싶었다.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나는 흔들렸고, 팀장님은 잡았고, 갔다 오라고 말하고, 얼마든지 갔다오라고 말하고, 술은 맛있고, 나는 흔들 흔들 계속 흔들,
그리고 나는 지중해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있는 휴가를 다 끌어모으고, 토요일, 일요일을 있는 대로 갖다 붙였다. 3주 반, 그러니까 거의 한 달에 가까운 휴가가 생겼다. 모두 지중해에 쏟아부었다.
혼자서 카뮈의 무덤이 있는 남프랑스 루르마랭과, 김화영이 70년대에 유학을 했다는 엑상프로방스와 파리와 아를과 니스로 떠났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그만두지 않은 것이다. 결국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결혼을 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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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서야 완전히 태어난다.
-벤저민 프랭클린


이 책은 당연히 끝에서 시작된다. 이 여정은 오로지 여기, 삶의종착지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삶을 판단하는 것은 아직 보고 있는 영화나 아직 먹고 있는 음식을 평가하는 것과마찬가지다. 우리의 판단은 좋게 말하면 불완전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끝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어떤 끝도 행복하지 않다. 1790년 봄, 필라델피아 자택에서 펼쳐진 벤저민 프랭클린의 마지막 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마지막 장은 프랭클린의 둘째 딸이나 다름없었던 폴리 스티븐슨의 손으로 꼼꼼하게 기록되었다. 런던에서 두 사람은 수년간 같은 집에 살면서 자연 세계를 향한 맹렬한 호기심을 함께 나누었다. 벤은 폴리를 "귀여운 철학자"라고 불렀다. - P23

생애 마지막 해에 벤은 자기 침실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도르래 장치를 사용해 침대에 누운 채로 방문을 닫았다. 아편과 알코올을 섞어 만든 로더넘 복용량을 점점 늘리고 있었지만통풍과 신장결석, 늑막염으로 고통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폴리는 "그분에게서 불평과 짜증은 전혀 새어 나오지 않았"으며 눈곱만큼의 자기 연민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84세까지 긴 삶을 누렸다. 18세기 사람들이 맞이한 무수히 다채로운 죽음의 방식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프랭클린은 각종 질병과 두 차례의 전쟁, 여덟 번의 대양 횡단, 목숨을 앗아갈 만큼의 전기 부하와 칠면조를 이용한 엉망진창 실험에서 살아남았다.‘ 모두가 프랭클린의 긴 삶을 놀라워했다. 특히 프랭클린 본인이 가장 놀라워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 잠들었어야 하는 사람이 후대의 앞을 가로막은 듯한 느낌이네. 하지만 내가 일흔에 죽었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가장 중요한 사안을 고민했던 12년이 사라졌겠지." 이 말로는 부족하다. 프랭클린 인생의 마지막 10여 년은그가 가장 분주하고 가장 행복한 때였다. - P24

그러던 4월 17일 오후 11시 "그는 84년 하고도 석 달의길고 쓸모 있는 삶을 마감하며 평온히 영면에 들었다."
의사의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길고 쓸모 있는 삶이다. 쓸모는 18세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모든 발상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효용성이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이바지했는가?"
사실 우리는 쓸모 있는 삶에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런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런저런 것들이 "그저 나를 이용한다"고 불평한다. 다른 사람에게 늘 이용당하는 친절한 성격은 결함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최고의 칭찬일지도 모른다. 이용당하기를 피하지 말고 오히려 기꺼이 요청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네, 제발 저를 이용해주세요. - P26

쓸모는 프랭클린에게 특히 중요했다. 이 단어는 그의 자서전에거의 서른 번 등장한다. 쓸모는 그의 원동력이고 특성이었다. 그는 쓸모 있는 인쇄업자이자 쓸모 있는 정치인, 쓸모 있는 과학자, 쓸모 있는 작가, 쓸모 있는 친구였다. 또한 그는 쓸모 있는 혁명가였다. 아마 조지 워싱턴 다음으로 가장 쓸모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 의문스럽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다. 우리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삶을 살렸다. 우리 어머니는 교사였다. 어머니는 삶을 빚었다. 내 친구 제임스는 명상을 지도한다. 제임스는 삶을 진정시킨다. 나? 나는 종이위에 글을 휘갈기고 어떤 날은 그마저도 많이 못 한다. 그러니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다. 벤저민 프랭클린과 비교하면 더더 - P26

욱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래전부터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은은한 우울감이 올라온다. 벤은 이렇게 낙담한 적이 없었다. 그는낙관적 전망을 유지했고, 다른 이들이 희망을 잃을 때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또는 개선할 수 있을지 물으면 그는 늘 이런 식으로 답했다. "안 될 게 뭐야?"
벤저민 프랭클린은 실용주의자라기보다는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말하는 "가능성주의자 possibilian"에 가까웠다. 실용주의자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가능성주의자는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은 일도 그 미래 가능성을 믿는다. 가능성주의자의 인내심은 끝이 없다. 가능성주의자는 언제나 끈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고 절대 한숨 쉬지 않는다.
어쩌면 내 안에 가능성주의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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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시작이었다. 어디에서든지, 무엇을 묻든지, 이 마법의 질문을 덧붙이면 사람들의 얼굴에 진지함이 깃들었다. 그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야?"라고 물었을 뿐인데 ‘나에게 인생이란 어떤의미인가를 고민하는 얼굴로 바뀌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취향을 동시에 다 불러내서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다른 이유도 없고, 순전히 나를 위해서. "What‘s your favorite?"이라는 질문을 하는 낯선한 사람을 위해서. 상대가 진지하게 너의 결정을 믿겠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 P111

그 질문을 여행 내내 써먹었다. 와인 숍에서의 일이었다. 와인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주인은 서너 개의 와인을 추천해줬다. 그리고다시 꺼낸 나의 회심의 한마디, "What‘s your favorite?" 와인 가게 사장님은 추천한 와인 한 병 한 병을 다 쳐다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이걸 좋아하나? 아니 이걸 좋아하나? 난 뭘 좋아하나? 고심 끝에 주인은 한 병을 골랐다. "그럼 그걸로 살게!"라고 말하고 계산을 하려는 찰나, 주인이 바코드를 찍어보더니 찡긋하며 말했다.
"심지어 이건 지금 세일 중이야. 원래는 13유로인데 지금 세일해서 8유로야." - P111

독일 쾰른에는 쾰른 대성당이 가장 유명했지만, 그건 내 관심사밖이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나의 목적지였다. 렘브란트가 거의 마지막에 그린 자화상. 잔뜩 장식을 하고, 자신만만한 표정, 한껏 밝은 표정으로 그려진 자화상이 아니라, 추하고 어딘가 비굴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자화상. 아니 비굴하다, 라는 수식어로 어떻게 그 표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의 그 표정을 가감 없이 그려낸 화가의 마음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오스카 코코슈카와 앙드레 말로 등 거장들이 극찬한 렘브란트의 그 표정 앞에 앉아 오후를 보냈다.  - P116

검정색과 노란색만 가득한 그 자화상에는 화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가 뒤의 어둠 속에 서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사람. 마치 마지막이라는 걸 직감한 것처럼, 저먼 세계에서 렘브란트를데리러 온 것 같은 사람을 화가는 그려 넣었다. 그 사람 앞에서 웃고있는 화가의 설명할 수 없는 표정에, 렘브란트의 파란만장한 인생전체를 담아낸 것 같은 그 표정에 나는 푹 빠져버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쾰른으로 출장을 간다는 친구에게 그 미술관을 추천했다.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별 생각 없이 미술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이 자화상을 발견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가 나왔다고 말했다. 너무 놀라서. 그런 그림은 또 처음이라서. - P116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내가 하루를 바친 곳은 반 고흐 미술관이었다. 반 고흐의 그림이라면 내가 좀 알지, 라는 표정으로 미술•관에 들어섰다. 하지만 실제 보는 그림은 컴퓨터나 책을 통해서 본그림과 완전히 달랐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그림은반 고흐의 <The Bedroom>이었다.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혔다.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있다가 스물한살의 나는 수첩을 꺼내 썼다. ‘<The Bedroom>은 내가 보던 것과가장 비슷하면서도 느낌은 가장 다르다. 그의 노란색은 창백해 보이고, 광기가 넘치고, 아파 보이기도 한다. 그 역동적인, 살아 움직이는 색깔에 반 고흐는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난 이사람을 견딜 수 있을까‘ 마음이 자꾸 이 그림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다른 그림들을 보다가도 다시 이 그림 앞에 와서 섰다.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오고, 그 과정을 무한 반복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나는 겨우 미술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 P118

외국 유명한 미술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볼 때면 늘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평소에도 이토록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서울에서도 미술관을 가본 적 없고, 살면서 한 번도 미술관에 가본 적없는 사람들이 파리에 왔으니까, 그래도 루브르니까, 라며 땡볕에길게 줄을 선 걸 보면 가서 말하고 싶어진다. 안 그래도 돼요. 유명하다고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림을 좋아하지도 않잖아요. 술을 좋아하신다고요? 그럼 여기 진짜 맛있는 와인을 파는 집이 있어요. 빈티지를 좋아하신다고요? 그럼 이 도시만큼 좋은 곳이 없죠. 조금만 걸어보세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진짜 여기 잘 오셨어요. 아무 카페에나 앉아서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해보세요. 여행의 참맛은 거기에 있어요.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는, 바로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어쩌면 그것을 찾는 것만으로도 남들과는 다른 여행의 출발선에 서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 P123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동시에 여러 순간을 사는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지금 어디에 있을 것인가, 거기에 언제 있을 것인가. 여행에서 이 두 가지질문은 끝없이 교차한다. ‘나의 시간‘을 선택하고 ‘나의 공간‘을 선택하여 그 둘을 직조하면 비로소 ‘나의 여행‘의 무늬가 드러난다. 이 무닉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며 나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그 무늬를사랑하는 것은 나의 의무가 된다. - P127

내가 아일랜드에서 술쟁이가 되었을 때를 좋아한다. CD가게의 주인아주머니 이야기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수십번을 말했다. Dick Mack‘s를 비롯한 수많은 펍들에 대해서도 수년간을 자랑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 술쟁이들이 그리워졌다. 낮이든 밤이든 펍에 들어서면 아일랜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는술쟁이들의 성전이 그리워졌다. 낮이든 밤이든 거기서 술을 몇 잔씩이나 시켜먹는 술쟁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모르는 우리에게도 술잔을 들어 건배를 하며 "슬란챠!"라고 말하는 술쟁이들. T로 시작하는요일엔 술을 마셔야 한다고 말하면서, Sunday를 Thunday라고 바뭐 말하는 술쟁이들, 좋은 술도 좋은 펍도 여행하지 않으니, 우리는늘 다시 아일랜드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제는 어제의 술을 마셨으니, 오늘은 오늘의 술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 그럴수밖에 없다. - P146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찾는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중국 북경에서는 기차를 타고 열한 시간 떨어진 도시 핑야오에 기어이 도착했다. 프랑스 보뉴에서는 한 할머니의 대저택에 초대를 받기도 했다. 패티 스미스를 보기 위해 도착한 님에서는 바로 옆 식탁에서 패티스미스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큰 도시에서의 행운은 늘모자라지만 작은 마을에서의 행운은 밤늦도록 말할 수 있다. 이탈리아 그 마을에 관해, 포르투갈 그 마을에 관해, 아일랜드 그 마을에관해,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작은 마을 관해서는 끝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끝없이 말할 수 있다. - P155

살아오면서 그런 유의 행복을 종종 맛본 적이 있다. 여행끝에 마시는 한 잔의 물, 소박한 은신처, 세상 어느 귀퉁이에서 남모르게 살아가는 인간의 따뜻하고 소모되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은 낯선 이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의 끝에서낯선 이가 나타날 때, 인간을 발견한 그 마음은 기쁨으로 설렌다. 그리하여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지극히 확대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중해 기행>, 열린책들, 2008 - P157

작은 마을들은 어김없이 우리를 확대한다. 큰 도시에서는 우리를 버린 것임에 틀림이 없는 행운의 여신이, 유독 작은 마을에서는우리를 잽싸게 발견한다. 그리고 행복의 진수성찬을 차려버린다. 이진수성찬은 오롯이 우리들의 것, 어디에서도 맛본 적 없는 독특한맛,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다정한 맛. 그 소박한 진수성찬을 맛보고 싶다면 시간을 줘야 한다. 행운의 여신도 우리를 찾아낼 시간이 ㅣ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 하루가 아니라. 3일, 유명한 것이 없으므로 오래, 별게 없으므로 천천히.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 풍경이므로 음미하며, 낯선 얼굴들과 마주칠 때마다웃는 낯으로, 그렇게 여행의 보석을 품는 것이다. 나만의 보석을 세공해가는 것이다. 작지만 확실한 보석을. - P157

혼자 여행을 하면 사람들이 쉽게 다가왔다. 손만 들어도 히치하이킹이 가능했다.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들이 먹을 걸 나눠줬다. 밥을 사주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한 무리의 소녀들을 이끌고 섬으로 여행을 온 선생님은 혼자 다니는 나를 딱하게 여긴 건지, 가는 곳마다 나까지 데리고 다녀줬다. 그 밤, 그 선생님이예약해놓은 민박집의 주인할머니는 방을 같이 쓰자고 말했고, 숟가락만 하나 더 놓으면 된다며 밥까지 차려주셨다. 그 겨울에 남해의별미를 나는 염치도 없이 잘 받아먹었다. 외국 사람들도 혼자인 내게 친절했다. 집으로 초대한 할머니도 있었고, 밥을 사준 사람들도있었다. 유난히 내가 불쌍해 보였던 걸까? 알 수 없다. 어쨌거나 ‘혼자‘는 내 여행의 단단한 코트였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그래서 벗고싶지 않은. - P172

때로는 여행을 떠나와
누군가의 일상이
묵묵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어이 살아야 한다. - P203

그렇게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생전 처음 보는 수프를 맛봤다. 파리에서 그 불친절한 사람들만 가득하다는 파리에서 맛있었고 따뜻했다. 나의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남편과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누가 파리 사람이 불친절하대?"
분명 불친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파리에도 서울에도 그렇듯이. 분명 두고두고 욕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방콕에도 서울에도 그렇듯이. 분명 편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터키에도 서울에도 그렇듯이. 하지만 분명 친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도시와 사랑에 빠지도록 큐피드의 화살을 쏘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두고두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그러하듯이. 그러니 여행 가방에 결코 넣지 말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선입견. 나의 눈을 가려버리고, 나의 마음을 닫게 만드는 바로 그 선입견. 그것만 내려놓아도 여행 가방은 가벼워질 것이다.

영양실조 아이들을 돕자는 캠페인도 아니고, 식수를 주자는 캠페인도 아니고,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모자를 만들어주자는 캠페인도 아니고, 자전거라니 생소했다. 하지만 조금의 설명만들으면 알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밥을 주는 건 ‘지금‘을 살게 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하는 건 ‘미래‘를 선물하는 것이라는 걸, 가로등도 없는 길을 하루에 네 시간 넘게 걸어서라도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내전으로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에게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생계에 대한 부담으로 학교를 포기해야만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자전거로 희망을 선물하자는 캠페인이었다.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다. - P228

겨우 그거여서 미안했고, 부족해서 미안했고, 겨우 몇 시간에 힘들다고 생각한 게 미안했다. 무엇보다 절망을 말할 자격도 없으면서그들의 희망을 비관한 것이 미안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내가그들의 희망을 비관한단 말인가. 저렇게 희망이 웃고 있는데, 고작풍선 하나에 웃는데 저 웃음을 어떻게 비관할 수 있는가. 나는 오래전 하워드 진의 책에서 읽은 가르침을 떠올렸다. 나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희망을 고집하는 것.
전쟁에도 불구하고, 지뢰에도 불구하고, 비닐봉지 집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고집하는 것, 풍선 하나에, 꽃 한 송이에, 화알짝 웃으며, 아이들이 기어이 희망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끝끝내 꺾일지라도, 끝까지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어떤 희망은 의무다. - P233

남의 여행은 남의 떡이다. 언제나 더 커 보이고, 언제나윤기가 흐른다. 흠집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고, 부러운 행운만 넘쳐흐른다. 어쩜 그 여행의 풀밭은 그토록 푸르른지. 남의 여행을 직접이야기로 듣는 시대를 지나, 이제 블로그에서, 각종 SNS에서 남의여행을 보게 되면서 이 증상은 좀 더 심각해진다. 앞뒤 맥락 따위 존재할 수 없는 그 찰나의 사진 한 장을 보며 우리는 여행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주름살을 제거해버린다. 저 여행은 모든 것이 풍족해. 저 여행은 커피 잔에 떨어지는 빛 하나까지 어쩜 저렇게 - P241

완벽할까. 저 사람은 내내 행복하기만 할 거야. 같이 간 사람이랑 싸우는 일도 없겠지. 돈이 왜 부족하겠어. 돈이 부족하다면 저런 걸사지도 못하지. 여행은 왜 또 저렇게 자주 가. 시간도 넘쳐나나 봐. 명백히 세상은 엄친아들의 여행으로 넘쳐난다.
알고 있다. 나의 여행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란 사실을 내가 나의 SNS를 보고 있어도 이토록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여행이 없어 보인다. SNS에서는 내가 방금 버스를 놓쳤다는 사실도, 어마어마하게 바보짓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엄청 비린 생선을엄청 비싼 돈에 먹었다는 사실도 편집된다. 잘 재단된 사진과 함께올라가니까 나조차도 내가 완벽한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여행자라는 착각까지 하게 된다. 사진밖의 나는, 현실의 나는, 언제나, 어김없이, 햇빛 알레르기와 싸우는중인데 말이다. - P242

결국 겨울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햇빛 알레르기에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결론에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물론, 이 결론은 거짓이다. 햇빛 알레르기에 좋은 점이 뭐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햇빛 알레르기의좋은 점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완벽한 여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여행은 오직 남의 SNS에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이 사진은 어떤 풍경으로 보이는가? 고즈넉한 시골길 위에서 귀여운 강아지들이 노니는 풍경? 사실, 온 동네 개들이 동시에 몰려나오며 미친 듯이 짖어 뒷걸음치며 도망가는 중이었다. 물론 이 사진도나의 SNS 상에서는 평화로웠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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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남자 이름이지만 엄연히 여자. 광고회사 TBW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자주 책을 읽고, 때때로 글을 쓰고, 매번 떠나고 싶어 한다. 《모든 요일의 기록>, <하루의 취향>, <치즈: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등을 썼다.


"나는 나의 빛을 기록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빛은 나를 고스란히드러내는 빛이었기에 미처 몰랐던 취향이, 애써 외면했던 게으름이,
펼칠 수 없는 모범생적인 습관이, 난데없는 것에 폭발하곤 하는 성질머리가, 또 어지간한 것들은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해석해버리는 단순합이 여행의 빛 아래에서 드러났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 진지하게 배웠다. 여행이 내게 나를 말해주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을 통해 일상에서 아이디어의 씨앗을 키워가는 카피라이터의 시각을 보여줬다면 <모든 요일의 여행>은 ‘여행자‘가 된 카피라이터만의 시각을 보여준다.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도시의 바깥을 꿈꾸지만 결국 남는 건 사진밖에 없는 천편일률적인 여행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유명하다는 그곳‘을 향해 여행지에서조차 분주한 사람들. 그들에게 이 책은 작지만 확고한 나만의 여행을 직조해가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과정은 잃어버린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고,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이 말은 뻔하다. 굳이 종이를 낭비해가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는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
갑자기 문장은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다른 햇살이 스며든다. 공기의 질감까지 부드러워진다. 심장 어딘가가 간질간질해진다. 오후다섯 시의 그 하늘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한낮 차가운 와인을 마신 듯한 기분이 되기도 한다. 낯선 골목이 노래로 가득 차기도 하고,
낯선 얼굴이 두둥실 떠오르기도 한다. 유난히 작았던 숙소가 문득 - P10

다정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비바람에 고립되었던 그 아찔했던 순간은 인생의 모험으로 포장된다. 폭포 앞에 서는 사람도, 골목 끝에서는 사람도, 끝없는 시골길 위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나간연인의 얼굴이 겹쳐지는 사람도 있고, 유독 높았던 웃음소리가 덧입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장 하나 바꿨을 뿐인데 저마다의 여행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빛나기 시작한다. 좀처럼 바래지 않는 빛을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 P11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 그 모든 여행 끝에내가 내린 결론이다. 분명 같은 곳으로 떠났는데 우리는 매번 다른곳에 도착한다. 나의 파리와 너의 파리는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다. 나의 보석은 너의 보석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여행지의 문제인 걸까. 여행을 떠나는 시기의 문제인 걸까. 우연히 만나는사람들의 문제인 걸까. 어쩌면 나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했다. 결국 나는 내 깜냥만큼의 여행을 할 수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 나는 나의 빛을 기록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빛은 나를고스란히 드러내는 빛이었기에 미처 몰랐던 취향이, 애써 외면했던게으름이, 떨칠 수 없는 모범생적인 습관이, 난데없는 것에 폭발하곤 하는 성질머리가, 또 어지간한 것들은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해석 - P11

해버리는 단순함이 여행의 빛 아래에서 드러났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 걸 못 견디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런걸 위해서는 다른 모든 걸 포기해버릴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저런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등등 여행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 진지하게 배웠다. 여행이 내게 나를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여행에 대해 말해줄 차례다. 그 어떤 여행기도 여행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하여 결국 실패로 돌아갈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말해볼 생각이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굳이 종이를 낭비해가면서까지 쓸 필요는 없는 말이지만, 나는 여행을 좋아하니까.

2016년 7월
김민철 - P12

무턱대고 닛포리 지하철 역에 내렸다. 관광책자에는 없는 곳이했다. 낡은 골목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마음에 드는 골목을 따라 한없이 들어가다 보면 고양이가 나타나 나를 또 다른 골목으로 이끌었다. 누군가의 집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정적이 흐르는 그 골목길엔 고양이와 나만 있었다. 4월 햇살에 고양이는 눈을가늘게 떴다. 나도 가늘게 눈을 뜨고 가만히 있노라면 생과 사의경계가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공동묘지 옆으로 우체부 아저씨가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나를 다른 골목으로 이끌었다. 골목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요히 나를 스쳐지나갔다. 생명을 가진 것들도, 생명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들도 모두 고요했다.
그렇게 낯선 골목을 네 시간 동안 헤맸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밥을 먹으러 들어간 카페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커피‘라는 말도 못 알아듣는 주인장에게 식사를 주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읽지도 못할 메뉴판은 덮고 "코히"라고 짧게 주문했다. ‘기묘하지만 마음에 드는 동네다‘라고 메모를 했다. 이제 그만 여기를 - P22

빠져나갈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풍경이 말을 거는 동네였다. 아까와는 또 다른 자전거, 또 다른 화분과 꽃, 또 다른 골목이 펼쳐지는 동네였다. 유명한 것 하나 없었지만, 그것 말고는 모든 것이있는 동네였다. 화분과 꽃과 낡은 골목길과 함께 느긋해져도 좋았다.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꼭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일상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여행에서 나는 또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어딘가에 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머리를 양쪽으로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줬다. 괜찮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고. 오롯이 너의 시간이라고. - P24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걸어 다녔다. 지하철 역에서 다시 친구를 만났다. 집 근처에서 저녁을 사먹고, 마트에 들러서 찬거리를샀다. 매실 장아찌도 사고 연어도 사고 캔맥주도 여러 개 샀다. 일본식 아침을 해먹자며 친구와 낄낄댄다. 그러다 문득, 이 순간을 찾아내가 도쿄까지 왔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 순간이 서울에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일상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회사 갈 걱정에 이불 속에서부터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되는 일상. 이른 아침 단박에 깰 수 있고, 왠지 억울한 심정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일상. 출근길에 삼각김밥이나 우유를 입에 쑤셔 넣지 않아도 되는 일상. 집에 들어오기 전 - P24

에 내일 먹을 음식을 간단하게 장볼 수 있고, 피곤하다며 멍하게 TV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되는 일상. 이것도 해야 하는데, 저것도 해야하는데, 라며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일상. 정직하게 몸을 움작이고, 머리는 잠시 쉬게 만들 수 있는 일상. 피곤해진 몸 덕분에, 끊임없이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머릿속 덕분에 이른 시간에 잠을 청하게 되고 그리하여 다시 일찍 일어날 수 있는 일상. 일상을 벗어나여행을 하러 온 곳에서 나는, 비로소 원하던 일상의 리듬을 찾는 중이었다. 어쩌면 원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충분히 증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으로서 내가 맡은 일을 다 했다. 내가 종일토록 기쁨을 누렸다는 사실이 유별난 성공으로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행복해진다는 것만을 하나의 의무로 삼는 인간 조건의 감동적인 완수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 P25

‘떠난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도착한다‘라는 말에 도착한다.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않는 유목민은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떠나기만 하는 여행자도 없다. 우리는 떠난다. 그리고 반드시 어딘가에 도착한다. 그것이 여행자의 숙명이다. 문제는, 어디에 도착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지에 도착하고 싶지 않았다. 일상에 도착하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지 이미도쿄에서 깨달아버렸다. 일상을 떠났으면서 다시 일상에 도착하고싶다는 이 모순. 이것이 내가 풀어야 하는 숙제였다. 어느새 내 여행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방법부터 달라져야 했다. - P29

가장 먼저 내가 바꾼 것은 숙소였다. 분명 호텔의 미덕이 있다. 하얀 시트와 깨끗하게 정리된 방과 푸짐하게 차려낸 아침.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말끔한 얼굴들. 누군가는 호텔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이 시작된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서울이나 파리나 도쿄나 다 같은 얼굴을 한 호텔방이 아니었다. 하얀호텔방의 익명성이 아니었다. 멸균된 그 공간을 거치지 않고 속살로직행하고 싶었다.
답은 집을 빌리는 것이었다. 단 며칠짜리 집이라도 우리 집이 필요했다. 비슷하지만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도시마다의 시장에 갔다가 돌아올 골목이 필요했다. 양손 가득 낯설고 궁금한 재료들을 사서 돌아올 대문이 필요했다. 서툰 실력을 뽐내며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부엌이 필요했다. 신기한 맛의 음식을 두고 술 한잔할 테이블이필요했다. 그 음식보다 더 맛있을 창밖 풍경도 필요했다. 너무 좋은집은 부담스러웠다. 너무 비싼 집도 필요 없었다. 그런 집은 나의 일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깨끗해야 했다. 남의 허물까지 치우고싶진 않았으니까. 아무리 일상을 꿈꾸어도 이건 여행이니까. - P30

좋은 숙소는 중요하다. 좋은 식사만큼이나 여행에서 중요하다. 다만 좋은 숙소가 꼭 비싼 숙소는 아니다. 지금 내게 좋은 공간. 내가 편안해지는 공간, 샤워기는 좀 불편해도, 화장실이 좀 좁아도, 컵들은 하나같이 짝이 안 맞아도, 나무 바닥이 삐걱거려도, 매트리스가 좀 딱딱해도, 나에게 좋은 숙소란 나의 일상 같은 숙소였다. 완벽해 보이진 않지만, 내 몸을 구겨 넣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숙소. 지금 막 도착했지만, 며칠은 산 것처럼 순식간에 익숙해지는 숙소.
긴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편안하게 한숨을 내쉴 수 있는 숙소,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겐 완벽한 숙소. 수많은 집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 집들에 도착하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날지도 모르겠다고 종종 생각한다.


함께 브리악에 있는 우리 집에 머물던 때가 생각난다. 시간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자기를 낮춘 채 밖에 서 있었다. 시간이 어찌나 잘 훈련되어 있던지 마을에 간 그녀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야 비로소 짖어대기 시작했다.
로맹 가리, 《여자의 빛>, 마음산책, 2013 - P34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그대가 길을 가다가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그대가 꿈꾸던 행복이 ‘그런 것‘
이 아니었다고 해서 그대의 행복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다면-그리고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민음사, 2007 - P48

내가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처럼 결단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거나, 혹은 결단을 늘 행동으로 옮기고야 마는 성공수기들의 주인공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이탈리아 소도시에서 빨래를 널다 들어와서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브라질 오지를 탐험하면서 수첩에 이 글을 끄적이고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일요일 오후에 겨우 빨래를 널고, 다음 날 출근을 괴로워하며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나는 지극히 소심하고, 어설픈 확신 따위에 인생을 거는 치기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으므로, 나는 ‘만일‘이라는 가정법에 인생을 송두리째 걸수 있는 인간형이 아니므로, 스물한 살이 아니라 서른일곱 살쯤이되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해 그 정도는 알게 된다. 동시에 결국 이곳이 나의 고향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매일을 살아가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라면, 다른 곳에도 고향은 없다는 것을. - P57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바뀔 수 없는 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사는 이곳이 고향인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끝없이 여행을 꿈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생 하나를 준비하는 것처럼 여행을 준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여행 때마다 여기서 살아보면 어떨까 꿈꾼다. 이 음식이, 이 햇살이, 이 공기가, 이 나른함이, 이 매혹이, 그러니까 마주치는 이 모든 것이 일상이 되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혹시 여기가 나의 고향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깨지 않는 꿈은 없듯이, 끝나지 않는 여행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 P58

시작은 스물두 살 때였다. 혼자서 전국 일주를 하겠다며 서해를따라 내려가다가 남해 땅끝마을을 거쳐 보길도로 들어갔었다. 중간에 친척들이 있는 곳에 들러 용돈을 두둑하게 받은 터라 여행은 점점 더 길어지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여행의 종착역은, 여수였다. 대구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을 했다. 여수로 오라고. 같이 여수를 여행하고 같이 대구로 돌아가자고 말을 했다. 게으름뱅이인 친구는 어쩐 일인지 순순히 수락했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여수를갔다. 처음으로 향일암에 갔고, 처음으로 남해에서 떠오르는 해를봤고, 놀랐다. 남해도, 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일출을 보는 것도처음이라 놀랐다. 산 위에서 해를 정면으로 받고 앉아 눈을 가늘게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우리 둘은 한참이나 앉아 있다가 대구로 돌아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해마다 여수에 갔다. 사람들은 물었다. "또 여수에 가?"라고.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겨울이니까요"였다. 푸른 잎이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듯 겨울이 오면 나는 여수를 향해 길게 목을 뺐다. 빼곡한 달력에 틈을 벌려 겨우 여수에 내려갔다. 그때마다 친구도 대구에서 - P72

여수로 왔다. 그녀도 나도 왜 여수에 끌리는지 이야기한 적은 없다.
그냥 겨울이면 여수에서 만났다.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춥다. 여수는 맨날 춥네"라며 시장 밥집으로 향했다. 언젠가 시장에서 귤 파는 아주머니가 알려준 밥집이었다. 이름도 잘 모르고, 그냥 시장 안쪽으로 쭉 들어와서 과일 경매장을 지나 양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가 밥집이었다. 추운 겨울에 주인할머니의 온돌방에 앉아 밥상을 받았다. 할머니의 장롱에 등을 기대고 뜨끈한 바닥에 엉덩이를 지지고 앉아 갓 지은 밥에 갓 만든 반찬으로 가득한 백반을 먹고있노라면 이상한 위로가 내 입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밥상은10년 동안 삼천원이었다가, 사천 원이 되었다가, 오천 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밥상이 주는 위로의 가격은 언제나 측정 불가였다. - P73

할머니의 온돌방에서 누룽지까지 잘 얻어먹고 난 후에는 언제나오동도로 향했다. 실은 오동도보다 우리가 좋아한 것은 오동도 입구의 놀이공원이었다. 놀이기구가 서너 개 남짓 있는 그 놀이공원에는늘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한겨울에 바이킹을 타며 소리를 지르는 정신 나간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고운 여수에 정신 나간 사람은우리 둘로도 충분했으니까. 각자의 남자친구까지 데리고 여수에서만난 날에는 네 명이서 같이 바이킹을 탔다. 바이킹에서 내려와 멀쩡한 사람은 나와 친구뿐이었다. 남자들은 확실히, 약했다. 이게 뭐라고. 그깟 바이킹에 무너져 내리는 남자들이라니. 우리는 쯧쯧 소 - P73

리를 내며 한심하다는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영원한 과거. 놀이공원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실은 오동도든 놀이공원이든 돌산대교든 굴찜이든 게장이든 회든 뭐든, 여수의 유명한 그 무엇도 우리에겐 큰 상관이 없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향일암. 처음으로 우리가 여수와 사랑에 빠진 곳, 바닷가 절벽에 서서 해를 향해 있는 암자. 자주 보던 동해나 서해가 아니라 남해를 향해 있는 암자. 파란색 바다가 아니라 은색과 하늘색과 연두색이 미묘하게 섞여 빛나는 남해를 향해 있는 향일암. 그 향일암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다. - P74

코스는 늘 같았다. 향일암 밑에 있는 민박집 아무 데나 들어가서 하루를 자고, 다음 날 새벽이면 헉헉거리며 향일암에 오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여수 공식이었다. 향일암을 등지고 서면 바다와 절벽에 매달린 붉은 나뭇가지들이 눈에 같이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향일암나무, 이름도 모르는, 알려고 한 적도 없는 그 나무는 나에게 향일암 나무였다. 보는 순간 가슴이 찌르르한 향일암의 증거였다. 선배와 같이 향일암에 갔던 어느 해에는, 선배에게 그 나무에 대해 고백했다.
"선배, 고백할게 있어요."
"뭔데?" - P74

"실은, 여수 그렇게 많이 외봤으면서도 나는 이 나무들 끝에 잎이 돋아난 걸 본 적이 없어요. 늘 겨울에 왔거든요. 그래서 푸른향일암은 상상도 못하는 거지. 그건 거짓말이라고 혼자서 생각해버리는 거지."
"그게 뭐꼬."
"그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서울에서라도 이 나무가 보이면, ‘아, 남해다!‘라면서 좋아해요."
"이게 무슨 나문데?"
"나도 몰라요."
늘 같이 간 친구도 몰랐을 것임에 틀림없다. 향일암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일방적이고, 모호하고, 단편적이었다. 겨울이 아닌 향일암은 알지도 못하고, 좋아한다면서 무슨 나무인지도 알지 못했다. 전형적인 짝사랑의 징후였다. 일방적으로 마음을 정해버리고, 알아서 상대방을 해석해버리고, 나만의 상대방을 만들어버리는. 나는 향일암을 짝사랑했다. 친구도 나도 향일암을 깊이깊이 짝사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향일암이 불탔다. - P75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언니에게도연락이 왔다. 회사 사람들도 문자를 보내왔다. 나의 여수 사랑을 아는 모두가 연락을 해왔다. 향일암이 불탔다고. 너 괜찮냐고. 괜찮을리가 없었다. 향일암이 없는 여수라니, 붉은 그 나무가 무사하지 않은 향일암이라니, 그래서였다. 해마다 내려가던 여수에 안 내려가기시작한 것은 도저히 향일암을 볼 자신이 없었다. 새 페인트칠로 번쩍번쩍한 향일암을 마주하면 내 과거까지 이상한 색으로 채색될 것같았다. 다만 무사하길 빌었다. 피해가 크지 않길 빌었다. 나의 여수가, 향일암이 온전히 회복되길 빌었다. - P76

이번 겨울, 용기를 내서 여수에 다녀왔다. 바다도 그대로고 산도그대로고 붉은 나무도 그대로였다. 번쩍번쩍하지 않고 조용히 복원된 향일암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향일암도 그대로였다. 감사하다고, 정말로 감사하다고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다시 해마다 여수에 올 용기가 생겼다. 다시 여수를 짝사랑해도 좋겠다는 확신까지 들었다. 잠깐 사랑했다가 잊어버리는 것보다는, 오래도록 한 도시를 오해하며 바라보는 짝사랑도 꽤 괜찮지 않은가?
그제야 다시 친구의 전화가 생각났다. 처음 그 노래를 들었을 때의 뭔가 빼앗겨버린 듯한 기분도 생각났다. 여수가 내 것도 아닌데 빼앗겨버린 듯한 기분이라니. 아니, 누군가 빼앗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빼앗겨버린 듯한 기분이라니. 나조차도 황당했던 그 기분이, - P76

다시 아름다워진 향일암을 앞에 두고 눈 녹듯이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좋아하는 그 도시에 대해 유명한 가수가 노래를 발표해주는 것도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 들었다. 처음 그노래를 들었을 때의 그 기분은 오간데 없었다.
그 겨울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수에 왔다고. 향일암은무사하다고. 우리 다시 여기 와도 괜찮겠다고. 이 여행은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겠다고. 그리고 내내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시도 때도없이. 누가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수 밤바다~" - P77

딱 한 걸음 차이가
결정적 차이가 된다.

한 걸음만 가까이.
한순간만 천천히.

다리 위 난간에 앉은
이 여자처럼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천천히.

그녀는 오래도록
이 햇빛을 기억할 것이다.
이 바람을 잊을 리 없다.
이 순간이 잊힐 리 없다.

그제야 사태는 선명해졌다. 우리는 그의 삶의 관광객이었다. 잠깐 들렀다 멀리 떠나는 관광객. 순간을 영원이라 생각해버리고, 파편을 전부라 착각해버리는 관광객. 단골술집이라며 우리가 아무리 친한 척해봐도 변하는 사실은 없었다. 우리는 누노의 일상이 될 수없었다. 그에게는 다른 일상이 있었던 것이다. 별일이 있어도, 별일이 없어도 수시로 그곳을 들락날락거리며 안부를 묻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음식을 나눠먹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의 일상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그 사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3년 전 그 밤은 이미 신화가 되어버렸다. 내가 그 밤을 신화로 만들어버렸다. 3년 전 그 밤을 소중히 하고, 닦고, 글로 쓰고, 사 - P95

진을 찍고, 책에 싣고 자랑하면서. 하지만 누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 그 밤은 평범한 밤 중 하나였으니까. 그것은 누노의 일상이었으니까.
호르헤의 충격을 소화하고, 누노의 충격까지 꾸역꾸역 소화하며 앉아 있다 보니 명확한 것이 생겼다. 그제야 나의 이기심에 나조차 너털웃음이 났다. 나는 그들이 유적이 되길 바랐던 건가. 움직이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고, 백 년 전에도 백 년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일 유적지의 돌덩이가 되길 바랐던 건가. 지나간 과거만 쓸고 닦아 애타게 기억하는 박물관이 되길 바랐던 건가. 나는 3년 동안 이토록이나 변했으면서 그들의 변화에는 왜 이토록 매정한 것인가. 나는 수많은 것들을 다 잊어버렸으면서 그들은 왜 나를 잊으면 안 되는 건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랐던 건가. - P95

"진실이 항상 비극은 아니야."

진실이 항상 비극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이 진실이 나는 마음에 든다. 상상보다 훨씬 더 풍성한 진실이었다. 새 생명과 눈물이 흐르는진실이었다.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모르는 진실을 찾기 위해 끝없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원히여행자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진실이 진실로 마음에 든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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