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어서야 완전히 태어난다. -벤저민 프랭클린
이 책은 당연히 끝에서 시작된다. 이 여정은 오로지 여기, 삶의종착지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삶을 판단하는 것은 아직 보고 있는 영화나 아직 먹고 있는 음식을 평가하는 것과마찬가지다. 우리의 판단은 좋게 말하면 불완전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끝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어떤 끝도 행복하지 않다. 1790년 봄, 필라델피아 자택에서 펼쳐진 벤저민 프랭클린의 마지막 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마지막 장은 프랭클린의 둘째 딸이나 다름없었던 폴리 스티븐슨의 손으로 꼼꼼하게 기록되었다. 런던에서 두 사람은 수년간 같은 집에 살면서 자연 세계를 향한 맹렬한 호기심을 함께 나누었다. 벤은 폴리를 "귀여운 철학자"라고 불렀다. - P23
생애 마지막 해에 벤은 자기 침실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도르래 장치를 사용해 침대에 누운 채로 방문을 닫았다. 아편과 알코올을 섞어 만든 로더넘 복용량을 점점 늘리고 있었지만통풍과 신장결석, 늑막염으로 고통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폴리는 "그분에게서 불평과 짜증은 전혀 새어 나오지 않았"으며 눈곱만큼의 자기 연민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84세까지 긴 삶을 누렸다. 18세기 사람들이 맞이한 무수히 다채로운 죽음의 방식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프랭클린은 각종 질병과 두 차례의 전쟁, 여덟 번의 대양 횡단, 목숨을 앗아갈 만큼의 전기 부하와 칠면조를 이용한 엉망진창 실험에서 살아남았다.‘ 모두가 프랭클린의 긴 삶을 놀라워했다. 특히 프랭클린 본인이 가장 놀라워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 잠들었어야 하는 사람이 후대의 앞을 가로막은 듯한 느낌이네. 하지만 내가 일흔에 죽었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가장 중요한 사안을 고민했던 12년이 사라졌겠지." 이 말로는 부족하다. 프랭클린 인생의 마지막 10여 년은그가 가장 분주하고 가장 행복한 때였다. - P24
그러던 4월 17일 오후 11시 "그는 84년 하고도 석 달의길고 쓸모 있는 삶을 마감하며 평온히 영면에 들었다." 의사의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길고 쓸모 있는 삶이다. 쓸모는 18세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모든 발상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효용성이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이바지했는가?" 사실 우리는 쓸모 있는 삶에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런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런저런 것들이 "그저 나를 이용한다"고 불평한다. 다른 사람에게 늘 이용당하는 친절한 성격은 결함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최고의 칭찬일지도 모른다. 이용당하기를 피하지 말고 오히려 기꺼이 요청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네, 제발 저를 이용해주세요. - P26
쓸모는 프랭클린에게 특히 중요했다. 이 단어는 그의 자서전에거의 서른 번 등장한다. 쓸모는 그의 원동력이고 특성이었다. 그는 쓸모 있는 인쇄업자이자 쓸모 있는 정치인, 쓸모 있는 과학자, 쓸모 있는 작가, 쓸모 있는 친구였다. 또한 그는 쓸모 있는 혁명가였다. 아마 조지 워싱턴 다음으로 가장 쓸모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 의문스럽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다. 우리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삶을 살렸다. 우리 어머니는 교사였다. 어머니는 삶을 빚었다. 내 친구 제임스는 명상을 지도한다. 제임스는 삶을 진정시킨다. 나? 나는 종이위에 글을 휘갈기고 어떤 날은 그마저도 많이 못 한다. 그러니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다. 벤저민 프랭클린과 비교하면 더더 - P26
욱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래전부터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은은한 우울감이 올라온다. 벤은 이렇게 낙담한 적이 없었다. 그는낙관적 전망을 유지했고, 다른 이들이 희망을 잃을 때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또는 개선할 수 있을지 물으면 그는 늘 이런 식으로 답했다. "안 될 게 뭐야?" 벤저민 프랭클린은 실용주의자라기보다는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말하는 "가능성주의자 possibilian"에 가까웠다. 실용주의자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가능성주의자는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은 일도 그 미래 가능성을 믿는다. 가능성주의자의 인내심은 끝이 없다. 가능성주의자는 언제나 끈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고 절대 한숨 쉬지 않는다. 어쩌면 내 안에 가능성주의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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