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김장하 선생님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고계십니다. 그분은 저뿐만 아니라 100명 넘는 학생들에게장학금을 주셨습니다.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고 학교 운영이 궤도에 오르자 나라에 학교를 기부하셨습니다. 그외에도 경상대학교 남명관 건립, 진주신문 발행,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진주정신지키기 모임....
진주 없는 김장하 선생을 생각할 수 없듯이 김장하 선생없는 진주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진주시장 범민주 단일 후보로 추대되었을 때 단번에 거절한 사례는 선생님의 지향 - P85

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생활은 매우 검소합니다. 지금도 자가용 자동차가 없고 골프도 하지 않습니다. 명신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있을 때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서 학생들을 상대로 말씀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말씀의내용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기 눈앞에서 말하고있는 이사장이 조금 전에 자전거를 타고 교문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감사드립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아니었어도 자네는 오늘의 자네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자네를 도운 게 있다면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얻은 것을 사회에 돌려주었을 뿐이니 자네는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감사해야 한다."
선생님은 어려서 집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하지 못하셨고, 한약방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다가 독학으로 한약업사 자격 시험에 합격하여 오늘날까지 한약방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 공부를 많이 - P86

하지 못한 한 때문에 장학 사업을 하셨고 그 과정에서 저에게 선을 베푸셨습니다.
ㅈ저도 선생님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갚을 것입니다. 이런 선순환이 쌓여 이 사회가 훨씬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지길 바랍니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 그 성취는 최대한 보장하되 기회를 제공한 공동체에 성취의 일부를 내놓음으로써, 그에게는 자부심을 선사하고, 이 사회에는 새로운 성취를 거둘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길 빕니다.
제 평생의 스승이신 김장하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2011년 2월에 진주지원장으로 발령이 나서 선생님을 오랜만에 뵈었습니다. 식사 한번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공직자가 사는 밥을 먹을수 없다고 한사코 거부하였습니다. 2012년 2월 인사 발령이 나서 진주를 떠나기 전 식사 한번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또 거절하였습니다. 언제 다시 뵙겠느냐고 식사 한번 대접하지 못하고 떠나는 제 마음도 생각 좀 해주시라고 억지를 부려 겨우 승낙을 얻었고, 7천 원짜리 해물탕 한 그릇을 대접했습니다.) - P87

거주 단위로, 직장 단위로, 아니면 아무런 구획도 없이 자원 봉사 단체를 만들어 주위의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는 없을까?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는 이상 내가 행복할 수 없다고느낄 수는 없을까?
성공이 클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욕망이 덜 생겨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내 재산이 많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가난한사람이 덜 생겨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큰 세상이 효율성과 같은 단일한 가치로 빌딩을 이루고있는 반면, 작은 세상은 다양한 가치로 숲을 이룬다. 작은세상을 추구하자.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과 소통하자. 그리하여 따뜻한 세상이 만들어지고 먼 훗날 내가 그 작은세상 속에서 위로받을지 누가 알겠는가? - P90

셋째 날 여행은 비가 오는 속에서 진행하였다. 유람선을 타고 도야호수를 둘러볼 때도 안개 때문에 잘 볼 수 없었다. 호수 가운데 용암이 분출되어 만들어진 산이 섬처럼떠 있었다. 부근에 비지터센터가 있었다. 그 건물에도 태양광 시설, 풍력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으나 안개로 우스산을 볼 수 없었다.
다만 여기서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동안 자작나무를 처음 본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자작나무란 필명을 가진사람이 일본에 와서 자작나무를 처음 보다니…….
쇼와신산 사이로 전망대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동하는 관광버스 안에서 가이드 선생이 중세 시절 일본 지도자세 명의 리더십을 소개하였다.
"두견새가 울지 아니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놓았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아니하는 두견새를 죽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 P136

두견새를 울리며,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쟁취하여 에도 시대를 열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어떤 지도자가 필요할까? 두견새를 사랑하는 지도자가 필요하지 아니할까?
여행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 선배는 의자를 오브제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 자기 전에는 낮에 찍은 사진을 감상하였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 우리 팀은 객실에 모여 여행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에 모두 만족하였고, 선거관리위원회를 그만두더라도 이 모임을 계속 이어가자하였다.
니세코빌리지힐튼호텔은 24시간 노천탕이 운영되고있다. 하늘을 위로 하고 편백나무를 옆으로 하여 사색에젖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에도 온천욕을즐겼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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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은 하나의 물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물(物) 자체로 보는것이 아니라 그 물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상(像)을 갖고 이야기한다. 유식하게 말해서 오브제(objet)가 아니라 이미지 (image)로 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품에 대한 해설은 필연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조건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미술을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이미지를 극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가를고민해왔다.
그런 중에 옛사람들이 곧잘 채택했던 방법의 하나는 시각적 이미지를 시적(詩的) 영상으로 대치시켜보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제아무리 뛰어난 문장가라도 엄두를 못 내는 이 방법을 조선시대에는 웬만한 선비라면 제화시(題畵詩) 정도는 우리가 유행가 한가락 부르는 흥취로 해치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미지는 선명하게 부각되고, 확대되고, 심화되어 침묵의 물체는 생동하는 영상으로 다가오게 하였다. 그것은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이며,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인 것이다. - P73

춘삼월 양지바른 댓돌 위에서 서당개가 턱을 앞발에 묻고 한가로이낮잠자는 듯한 절은 서산 개심사(開心寺)이다.
한여름 온 식구가 김매러 간 사이 대청에서 낮잠자던 어린애가 잠이깨어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듯한 절은 강진 무위사(無爲寺)이다.
늦가을 해질녘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반가운 손님이 올 리도 없건만 산마루 넘어오는 장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한 절은 부안내소사(來蘇寺)이다.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골 한 아낙네가 솔밭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굴러가는 솔방울을 줍고 있는 듯한 절은 청도 운문사(雲門寺)이다.
몇날 며칠을 두고 비만 내리는 지루한 장마 끝에 홀연히 먹구름이 가시면서 밝은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듯한 절은 영풍 부석사(浮石寺)이다.

우리 어머니가 택한 것은 운문사 정경이었고 나는 부석사를 꼽았었다. - P75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하여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는 것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법성게(法性偈)」에서 말한 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조화하여 두 모습으로 나님이 없고,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됨"이라는 원융 (圓融)의 경지를 보여주는 가람배치가 부석사인것이다. 그러니까 부석사는 곧 저 오묘하고 장엄한 화엄세계의 이미지를건축이라는 시각매체로 구현한 것이다. 이 또한 이미지와 이미지의 만남이며,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일 것이다.
부석사는 태백산맥이 두 줄기로 나뉘어 각각 제 갈 길로 떠나가는 양백지간에 자리잡고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봉황산(鳳凰山)중턱이 된다. 이 자리가 지닌 지리적, 풍수적 의미는 그것으로 암시되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발길이 닿기 쉽지 않은 국토의 오지라는 사실에서 사상사적, 역사적 의미도 간취된다.
부석사 아랫마을 북지리에서 이제 절집의 일주문을 들어가 천왕문, 요사채, 범종각, 안양루를 거쳐 무량수전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조사당과 응진전(應眞殿)까지 순례하는 길을 걷게 되면 순례자는 필연적으로 서로 성 - P76

격을 달리하는 세 종류의 길을 걷게끔 되어 있다.
절 입구에서 일주문을 거쳐 천왕문에 이르는 돌 반, 흙 반의 비탈길은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로움을 보여준다.
천왕문에서 요사채를 거쳐 무량수전에 이르는 부석사의 본채는 정연한돌축대와 돌계단이라는 인공의 길이다. 그것은 엄격한 체계와 가지런한 질서를 담고 있으며 그 정상에 무량수전이 모셔져 있다.
무량수전에 이르면 자연의 장대한 경관이 
펼쳐진다. 남쪽으로 치달리는태백산맥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그것은 곧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서막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상처받지 않은 위대한 자연으로 돌아온것이다.
무량수전에서 한 호흡 가다듬고 조사당, 응진전으로 오르는 길은 떡갈나무와 산죽이 싱그러운 흙길이다.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온 우리를 포근히 감싸주는 여운인 것이다.
인공과 자연의 만남에서 인공의 세계로, 거기에서 다시 자연과 그 여운에로 이르는 부석사 순례길은 장장 시오리이건만 이 조화로움 덕분에 어느 순례자도 힘겨움없이, 지루함없이 오를 수 있게 된다.
지금 나는 저 극락세계에 오르는 행복한 순례길을 여러분과 함께 가고있는 것이다. - P77

나는 항시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고 최순우 관장의 「무량수전」 한편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왔다. 혹자는 이 글을 일러 너무 감상적이라고, 혹자는아카데믹하지 못하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감상적이면 뭐가 나쁘고 아카데믹하지 못하면 뭐가 부족하다는 것이냐고 되받아쳤다. 나는 그날 낭랑한 나의 목소리를 버리고 스산하게 해지는 목소리에 여운을 넣어가며 부석사 비탈길을 오르듯 느긋하게 읽어갔다. 박물관 인생이라는 외길을걸으며 우리에게 한국미의 파수꾼 역할을 했던 고인의 공력을 추모하면서,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 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 - P98

음을 더욱 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하여 ‘사무치는‘이라는 단어의 참맛을 배웠다.
그렇다! 내가 해마다 거르는 일 없이 부석사를 가고 또 간 것은 사무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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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퇴계는 결코 영남의 퇴계가 아니고 율곡은 결코 기호의 율곡이 아니다. 조선의 퇴계이고 조선의 율곡인 것이다. 대한의 퇴계와율곡이며, 세계의 퇴계와 율곡인 것이다. 일찍이 박세채(朴世采)가 말했듯이
"성리학에 깊이 침잠한 것은 퇴계였고 경세제용經世濟用)의 학을 담당한 것은 율곡이었다." 이론적 지성의 퇴계와 실천적 지성의 율곡이다. 나는 우리 지성사에서 이 두 분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자랑이자 복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대 지식인으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이론에 침잠하여 사리를 가늠해야할 때도 있지만, 실천에 매진하여 힘있게 추진하는 지성이 필요한 때도 있는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 속에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현상일 수 있다. 80년대의실천적 지성이 90년대에 와서 이론적 지성으로 자신을 추스르는 것을 보면서나는 퇴계와 율곡 둘을 모두 간직할지언정 어느 한 손을 들지는 않는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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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에 참석한 국민대 최종욱 교수가 우리는 "하버마스의 한국이 아니라 한국의 하버마스가 필요한 것"이라고 뼈있는 논평을 쓴 것을 읽은 것은 뒤의 일이었는데, 그때 내 머릿속에 전통의 원형질을 지켜준 문화유산의 보고로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안동이었다.
"약무호남(若無湖南) 무시조선(無是朝鮮)‘이라는 말이 있다. ‘호남이 없으면 그것은 조선이 아니다‘라는 뜻인데 그것은 남도의 풍부한 물산(物産)과따스한 인정, 멋진 풍류를 두고 하는 말인 줄로 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악무안동 무시조선‘이라는 명제를 내걸고 ‘안동이 없다면그것은 조선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니 그때는 무엇보다도 정신과도덕을 두고 하는 말임에 모두가 동의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남도답사 일번지에서 느낀 귀한 감정이란 따뜻한 고향의 품, 외갓집을찾는 편안함. 정겨운 이웃과 함께 하는 친숙함이었다. 이에 반하여 영남답사일번지라 칭할 북부 경북의 안동문화권에서는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적인 엄숙성, 전통의 저력, 공동체적 삶의 힘 같은 것을 절절히 느끼게 되니, 그곳에 갈 때면 나를 정신적으로 성숙시켜준 모교를 찾아가는 그리움 같은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남도답사 일번지는 화려한 원색의 향연을 벌이는 화창한 남도의 봄과 어울릴 때 제격이었듯이, 영남답사 일번지는 처연한 만추의 안동을 찾았을 때 더욱 깊은 감회를 새기게 된다. - P67

아닌게아니라 경상도 말씨는 거세고 시끄럽다. 이것이 남쪽으로, 또 바닷가로 갈수록 심해서 악센트는 강하게 앞쪽으로 쏠려, 아주머니를 부를 때 아지매‘라고 하면서 ‘아‘를 짧고 강하게 부른다든지, 말끝마다 ‘씨했다‘ ‘니지기면다‘라는 강한 말을 붙이는 걸 들으면 기겁을 할 정도고 오죽하면 부산 자갈치시장 같다는 말이 나왔겠나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북부 경북의 니꺼형 말씨는 그렇지 않다. 단어 또는 문장상에서 악쎈트를 뒤쪽으로 주므로 힘도 있고 설득력도 있다. 고평평의 교형, 평평평의서울말과 달리 평고평의 니껴형에는 무엇보다도 리듬감과 여운이 있다. 우리가 간혹 경상도 말인데 정말 듣기 좋다고 느끼는 경우는 모두 북부 경북사람말씨다. 이를테면 KBS 제1FM 「즐거운 한마당」에서 한동안 최종민 교수(안동)가 보여준 친숙함, MBC 라디오 칼럼에서 홍사덕 의원(순흥)이 보여준 명쾌함, 역사학자 조동걸 교수(영양).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의성)의 강의를 들으면 느끼는 당당함, 김도현 전 문화체육부 차관(안동)의 말씨에 서린 넉넉함등이 모두가 니꺼형 말씨의 고운 모습이다. 언젠가 영양에서 길을 묻는데 "그리 가믄 머얼데이"라고 말한 아저씨의 평고평의 여운있는 말씨가 답사에서 돌아오도록 내내 내 귓가에 기쁘게 남아 있었다. - P69

안동이 어떤 곳인가를 노래한 시로는 임동면 박실 태생의류안진이 쓴 「안동」(「누이, 세계사 1997)보다 좋은 것이 없다. 그게 안동이다.


어제의 햇볕으로 오늘이 익는
여기는 안동
과거로서 현재를 대접하는 곳
(---)

옛 진실에 너무 집착하느라
새 진실에는 낭패하기 일쑤긴 하지만
불편한 옛것들도 편하게 섬겨가며
차말로 저마다 제 몫을 하는 곳

눈비도 글 읽듯이 내려오시며
바람도 한수(首) 읊어 지나가시고
동네 개들 덩달아 대구(對句) 받듯 짖는 소리
아직도 안동이라
마지막 자존심 왜 아니겠는가.


이런 정신적인 것의 이야기가 안동의 문화유산마다 어려 있어 ‘들을 안동이지 볼 안동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겸손이며, 어느정도는 변명이다. 그게 안동이다. - P90

참나무 숲길을 벗어나면 갑자기 하늘이 넓게 열리며 산속의 분지가 나타나고 저 앞쪽 멀리로는 돌축대, 돌담을 끼고 늠름히 서 있는 봉정사 만세루가 아련히 들어온다. 어찌 보면 만세루가 오히려 은행나무, 감나무 사이로 어리어리비치는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고 우리는 그 만세루 눈길에 이끌리어 거기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게 된다.
만추의 안동, 참나무 갈색 낙엽이 단색조로 차분히 누렇게 물들고 있을 때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에 햇살이 부서지며 밝은 광채를 발하고 누구라 따갈 이없는 늙은 감나무에 홍시가 빠알갛게 익어 그 가을빛은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것은 비취빛 고려청자 매병에 백학이 상감되어 있는 것만도 황홀한데 그 학 머리에 붉은빛 진사(辰砂)로 점을 찍어 단정학(丹頂鶴)을 새겨놓은 것 만큼이나 눈과 마음을 상큼하게 열어준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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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름다운]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한 가지 더있다. 이 책의 제목은 많은 것을 연상시킨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내 심장은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에 반응한다. 한인간으로서 고통받을 수 있다. 외로울 수 있다. 평생 헤어나오지 못하는 슬픔이 있을 수 있다, 이해받지 못할 수있다. 두려울 수 있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모욕과 수치를 당할 수 있다, 뜻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을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실패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프루스트의 말처럼 "인생에는 우리를 덮치는 다양한시련들과 그 일련의 사건들에서 일종의 아름다움이 나오는 순간"이 있고 나는 그런 순간을 사랑한다. 내 ‘존재의 순간‘의 절반이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아는 것은 의미가 아주 크다. - P90

내 인생 이야기에는 몇 달 만에 번 수십억 돈, 스포트라이트, 부동산, 주식, 엄청난 모험, 눈부신 성취는 없다. 대신 뭐가있을까?
제주도에서 만난 누군가의 자동차 뒷좌석에 레이첼카슨의 책이 놓여 있던 것을 보던 하루가 있다. "어, 이 책좋아하세요?"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친밀감을 느꼈다.
그 책은 바다의 가장자리였다. 내 침대 위에도 있는책이다. 이제 바다의 가장자리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그책을 발견한 날의 기억과 합해졌다. 그날 느낀 햇살의 열기, 밀물과 썰물의 흐름, 따개비, 해초들, 성산 일출봉에 오르던긴 머리의 중국인 관광객이 입은 원피스의 하얀색, 한라봉주스의 오렌지색과 함께 떠오른다. 이렇게 책은 지극히사적인 영역으로 들어선다. 책은 내 사적인 삶과 너무 섞여있어서 이제 책을 통하지 않고는 나를 말하기가 불가능하다. - P105

내 인생 이야기에는 이 작가들의 말과 생각을 곱씹어보던날들이 있다. 내 인생 이야기는 이 작가들과 함께시작되었을 것이다. 이 작가들이 내 인생에 이야기의 씨앗을뿌린 것은 분명하다. 나의 사소한 몸짓, 미소, 거울을 보는동작, 시선, 목소리, 서글픔, 분투, 성취감, 선택의 순간들에이 작가들의 흔적이 묻어 있다. 이 작가들이 나를 자아바깥으로 빠져나와 다른 세계로 조금씩 들어가게 했다. 원래가던 길을 약간 벗어나 걸어본 샛길들, 오솔길들이 너무좋았다. 쉽게 현실에 지배당할 수 있었던 사람이 가능성, 자유와 독립, 해방, 저항, 진실, 아름다움이라는 말의 진짜의미를 알고 싶어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내 삶에서 써보고 싶어졌다. - P107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를 ‘책과 자연을 사랑하는 라디오피디‘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처음나를 말하는 이 방법을 생각해내고는 정말 기뻤다. ‘나‘ 자신을 학벌도 아니고 이력도 아니고 혈액형이나 별자리나 MBTI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로 설명할 수있다니. 이 생각을 한 날, 밤잠을 설칠 만큼 설렜다. ‘그래, 쭉이렇게 살아야지! 계속 가보자!‘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누구랑 같이 있든 "저는 책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순간 에너지가 달라진다. 그 직전까지 어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지와 상관없이 사랑과 기쁨이, 많은 빛나는 문장과 기억들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걸맞은 사람으로 말하고 싶어진다. 나의 모든 ‘나‘ 중에서 ‘책과 자연을 사랑하는 나‘가 나를 가장 돌아보게 하고 자극하고 분발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 P137

나는 해가 뜨기 세 시간 전에 숙소를 출발해 사막을 향해걸었다. 별이 어땠냐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마법에걸린 세상 같았다. 그전까지 나는 경이로움을 몰랐던 것같다. 환희를 몰랐던 것 같다. 별이 얼마나 많던지 또 얼마나찬란하던지 어떻게 설명해도 부족하다. 별자리를 그으려면우리는 무심코 별 옆의 별을 본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별뒤의 별이 보였다. 별 뒤에 별이 있고 별 뒤에도 또 별. 나는맨눈으로 2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3차원의 세계를 본 것이고 헤아리려야 헤아릴 수도 없는 깊이를, 무한을 얼핏 본것이다.
우주는 정말 깊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별이무더기로 나타났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하늘이 변했다. 별똥별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수없이 떨어졌다. 나는순수한 경이 때문에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얼어붙은 채 서있었다. 나는 목이 꺾일 정도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서서히빙빙 돌았다. 가슴이 뜨거웠다. 터질 것 같았다.
아타카마 사막이 지구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곳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별을모두 볼 수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날 그 하늘을봤다면 가장 슬픈 사람조차 "내 슬픔은 찬란해!"라고 느꼈을것이다. - P151

올리버 색스가 "나는 죽을 때가 되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고 싶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같았다(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해줄게."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친구들이 휠체어를 밀어서 색스에게 별을 보여주었다). 한국에 돌아온 다음에도 그날 밤을 잊지 못한 나는 친구에게 별 이야기를들려줬다.
"별은 진짜 아름다워. 거기선 별자리가 완전히 무한이야.상상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도 별자리를 만들자."
나는 이번에는 친구의 말에 압도되었다. 정신적인자극이었던 별이 뭔가 실천적인 자극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칠레의 별 이후 우리 인류에게는 영원할 몸짓인 하늘을 올려다보는 몸짓을 가진 인간족의 한 명이 되었다.
나는 매일 밤하늘을 본다. 매일 밤의 하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조차 그날의 하늘을 불러온다. 그날 밤의 별은 두고두고 즐겁게 떠올릴 추억이 되었다.
"인간에게 별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된다니까." - P152

나는 해변에서 아주 작은 돌 하나를 기념품으로 들고 왔다. 돌고래 모양 돌이었다. 이 돌도 내게는 탤리즈먼이다. 그저 내가 슬픈 일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칼새가 있나없나 몇 번이나 답사를 하고, 그날 아침 칼새를 발견하고
"혜윤 작가님, 칼새! 칼새!" 나보다 더 고래고래 소리를지르고, 내가 기운을 낼 수 있도록, 내가 미소를 짓도록 돕던 우도작은도서관 사람들과 나는 그 순간 ‘우리‘였다. 그 순간우리는 작은 공동체였다. 칼새와 애도 공동체.
그 돌고래 돌을 볼 때마다 낯선 사람에게 베풀어진 환대를, 따뜻하고 친밀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슬픔과 경이로움과 따뜻함이 함께 있던 순간. 엄마의 죽음으로 크게놀란 내가 다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의 영역으로 들어설수 있었던 순간. 그 순간에 만들어진 칼새 별자리. 이것은 탤리즈먼(돌멩이) 이야기면서 별자리 이야기면서 뷰티웨이 이야기(우도작은도서관 사람들=주술사, 나는 칼새와그들 덕분에 아름다움의 상태로 되돌려졌다. 다시 뭔가를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시작할 힘을 갖는 것,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다. 슬픔은 선물이 되었다. 이 이야기안에는 내가 힘을 내는 두 가지 방식이 모두 들어 있다. 하나는 자연의 경이로움, 하나는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경이로운 일들. - P162

배리 로페즈를 비롯해서 많은 작가들 덕분에 내 삶에일어난 일이 있다. 책을 사랑한 덕분에 사랑이 가리키는방향이 많아졌다. 용기와 기쁨과 감탄과 경이를 가리키는이름들이 많아졌다. 칼비노는 이야기의 도덕적 기능은이야기하고 듣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원한다면 책 속의 누구라도, 이야기 속의 누구라도, 사랑과 용기와 기쁨의 대상인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엷은울음참매도 섀클턴도 될 수 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자아 바깥, 책 바깥에서는새들이 아기를 기르고 나무가 이파리를 키우며 장차사랑스러움이나 아름다움이나 신기함으로 불리게 될 많은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꾼이 될수 있다. 서로를 위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 살아 있는 일이아름다운 일이 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함께 어둠을 건너자! - P167

읽기는 스스로에게 ‘기회 주기‘이자 ‘씨앗 뿌리기‘다. 책한 권이 삶의 전환점이자 어떤 일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페이지마다 삶을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가질수 있다.
더 고무적인 것은 읽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뭔가가 바뀐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그냥 어떻게 살기로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뭔가달라져야 할 것 같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삶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다. 읽기 전에는 없던 가능성, 다르게 보고다르게 관계 맺을 가능성이 생긴다(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관계‘ 맺기는 해방이다). 운명이 살짝 방향을 트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책 속에묻어놓은 우리 마음은 언젠가 기억에서 올라와 더 좋은선택을 하게 돕는다. 책 속에 묻어놓은 마음은 봄이 되면 꽃을 피운다. 파울 첼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실에 대한 기다림도 진실하다". - P176

읽기는 우리 인류의 특별한 존재 방식이다. 우리가 책을필요로 하지 않는 날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어떤일인가를 겪을 것이다. 어떤 일을 겪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고 삶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크고 작은 상처투성이고 살기 위해 계속 힘을 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책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하고 이런 마음에스며든다.
우리는 읽는다. 외롭고 괴롭기에, 우리는 읽는다. 도움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희망이 필요하기에, 우리는 읽는다. 길을 찾길 원하므로. 읽기는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아름다움이 있는 채로 살아낼 수 있다. 독자인 우리의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읽은 책 너머, 쓰인 책 너머, 아직 읽히지 않은, 쓰이지 않은 우리의 삶이 있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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