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림의 세계에도 바둑처럼 급수가 있다고 할 때 조선시대 화가 중에 입신(入神)의 경지라는 9단에 오른 이는 몇이나 되며, 9단 중에서 타이틀을차지할 만한 기량을 갖고 있던 화가는 누구일까? 또 그림의 세계에도 운동경기처럼 종목이 있다고 할 때 진경산수에서 겸재 정선, 속화에서 단원 김홍도가 금메달을 차지한다면 문인화 부문은 누가 차지할 수 있을까?
나는 단연코 능호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이 그 영광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않는다. 이는 나 개인의 의견만이 아니다.
당대의 평가도 그렇고 오늘날 미술사가 대부분의 견해도 그렇다.
이인상보다 한두 세대 후배되는 문사인 이규상(李규象, 1727~1799)은 『일몽고一夢稿)』의 「서가록(書家錄)」과 「화주록」에서 이인상의 그림과글씨를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그의 그림은 보통 화가들의 좁은 오솔길을 훌쩍 뛰어넘어 곧바로 꼿꼿한 자태와 파리하면서도 강단 있는 정신으로 화가의 상승별품(上乘別品)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화주록」)
이인상 그림의 필획은 그윽한 맛이 있는 가운데 깎아지른 듯 삼엄하며, 화법이 독특하면서도 막힘 없이 산뜻하고 시원하여 고금 화가들의 뛰어난 경지를넘나들고 있다. 그의 전서(篆書)와 팔분(分)의 획은 비록 옛날의 명수라 하더라도 그와 대적할 만한 이가 많지 않을 것이며, 도장은 힘 주는 것이 가지런하여 천기(天)가 흐르고 있다. 따라서 전서와 팔분, 회화와 전각 모두 신품(神品)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서가록」) - P59

능호관이 서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양반 사회에 어엿이 한몫 끼어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시 사회적 기류가 서얼허통(庶孼通)에 점점 관대해져 가는 추세였고 특히 그것이 노론의 입장이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가 완산 이씨라는 명문의 자손으로, 특히 백강의 후손이라는 집안 배경이 있었다. 이미 그의 증조부, 조부, 삼촌 등이 모두 백강의 음보로 현감이나 찰방을 지낸 바있다. 셋째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그의 높은 인품과 뛰어난 학식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능호관 이인상의 인품은 정말로 곧고 높았던 모양이다. 그 주변에 있던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개결(介潔)한 선비라고 증언하였다. 그는 사람됨이대단히 원칙적인 도덕 군자였고 타협을 모르는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였던모양이다. 동년배 친구였던 황경원은 그의 묘지명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은 사람됨이 강직하고 곧아서 남과 마음이 잘 맞지 않았으며, 아첨해서 세상에 출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과 말할 때는 씩씩하고 굳세며 엄하고 곧아서 법도를 바로 지키니 사람들마다 경복(敬服)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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