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젠더가 사소한가?
페미니즘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 중 하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 말이 뭐냐면, 남성에게는 퍼스널한 문제가 여성의 입장에서는 폴리티컬하다는 거예요. 여성에게는 공적 영역도, 사적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영역도 모두정치의 장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선거 세 번이 모두 젠더에 의해서 승패가 갈렸어요. 이회창씨는 일가의 병역 비리로 두 번 고배를마셨고, 박근혜씨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당선되었죠. 그런데도, 사회과학자와 매체가 젠더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글을 본 적이 없어요.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곤란한 문제입니다. 사적인 관계, 연애, 이성관계의 정치경제학을 분석하거든요. 남성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죠. "허리 아래는 얘기하지 않는다?"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남성들은 모든 것이 허리 아래에 있나요(웃음?) - P24
소수자는 권력에 저항하면 할수록 권력을 얻어요.. 지들의 말을 들으면 안 돼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나는 파이에 관심 없고순결하고 권력욕 없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게 나오면 절대안 돼요. 순결하고 싶은 것도 권력욕이죠. 남자사회는 그런 여자. 정치색이나 의식이 없는 여성을 바라니까. 페미니즘은 협상하려는기지, 가부장제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자본주의에저항하거나 반대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벗어난 공기 밖은 없어요. 저항하려는 게 아니라 틈새를 확장하고 그들의 언어와 협상해서 목소리를 가시화시키는 거죠. 제 안에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가득해요. 자신만 상록수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자본주의 혹은 현실정치에서의 여당과 야당의 관계, 대개 이런 걸 정치라고 하잖아요.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심각한정치적 문제로 보는 사람은 드물어요. - P27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관계입니다. 사회를 떠난 인간은 없고, 권력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젠더만 탈정치화하려고 하십니까. 제가 권력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은, 권력의 개념과 관련이 있어요. 권력은 영향력 혹은 힘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권력은 어떤 지위에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파워에 민감해야 합니다. 파워과 사익은 달라요. 따라서 ‘큰 정치‘, ‘작은 정치‘가 따로 있지 않아요. - P28
우리는 낯선 것을 싫어합니다. 주체적인 여성성이 영화 안에등장하는 것은 관객들을 낯설게 합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전지현의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싫어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증오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어색해하고, 실제로 자주 본 모습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만큼 거리를 느낀다는것을 뜻합니다. 그런 것은 즐기기 힘들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편안하게 즐길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에 돈을 잘 지불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두드려 패고 굴복시키면서 세상을 개척해가는 여성 보스의 모습을 난 본 적이 없는데? 영화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군. 자연스럽지가 않아. 관객의 무의식이 그렇게 응답하는 영화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산업은 그런 영화의 제작을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고정적 여성성이 강화되고, 관객의 고정관념도 고착되는 끝없는 되먹임이 일어나죠. - P69
2017년 초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었습니다. 반기문씨는 UN 사무총장 시절에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소수자 인권옹호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역대 UN 사무총장 중에 성적소수자 인권 향상에 가장 힘썼다고 평가받았고 그래서 미국의 동성애자 인권단체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기문씨가 다른 건 몰라도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강력한발언을 전 세계적으로 여러 번 했기에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이제와서 오리발을 내밀기는 너무 부끄러울 테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뒤집더라고요. 그는 유력한 대신 후보로 떠오르자마자 이렇게말했습니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차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일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뜻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권을 지지하는 것보다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이 훨씬 더 적극적인 행동이니까요. 문제는 차별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하면서 그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에 있죠. 차별에 반대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차별 반대의 첫번째 걸음이니까요.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건 사실 이런 뜻이죠. "나는 저쪽 아이들이랑 안 친해요." 즉 반에서 왕따당하는 급우가 있는데 친하다고 하면 같이 왕따당할까봐 두려워서 별로 안 좋아한다고 허겁지겁 손사래를 치는 형국이죠. - P102
"기독교의 숙원사업은 이러이러합니다. 이것은 한국의 발전과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면 "잘 새겨듣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밀어주십시오"라는 말을 우아하게 말을 돌려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교연‘에 갑니다. 그다음에는 ‘KNCC‘에 갑니다. 그다음엔조계사를 찾아가고 천주교의 추기경도 만나러 갑니다. 한국의 3대종교의 주요 단체, 교단, 성직자 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죠. 이렇게어느 한쪽의 종교에도 편향되지 않는 균형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것 같지만 사실 편향적입니다. 한국에는 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 개 종교만 찾아가는 것일까요? 3대 종교가 다수이기때문에?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다수이고소수이고를 떠나 왜 선거 전에 종교단체에 가냐는 것이죠. 2017년2월 14일만 해도 그날은 문재인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당내경선에나가기 위해 예비후보로 등록을 한 날입니다. 바로 그날 찾아간 곳이 ‘한기총‘, ‘한교연 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명박 대통령도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던 날, 현충원을 방문한 후 제일 처음으로간 곳이 바로 ‘한기총‘이었습니다. 한기총은 서울시장선거부터 대통령선거 등을 앞두고 유력한 후보들이 찾아가는 곳입니다. - P109
이 부분은 한신대학교의 강인철 교수가 연구를 많이 해놓으셨습니다. 저는 소개만 하자면, 노태우 당시 대통령 후보는 불교계의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불교계 공약이란 걸 처음 내놓습니다. 이걸시작으로 14대 대통령선거 때는 개신교가 김영삼 장로를 이승만에이어 두번째 장로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적극 나서게 되죠. 결국대통령으로 만듭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충현교회 장로였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남기고 정권을 넘기게 되죠. 보수개신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집권시기에는 철저한 반정부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명박 소망교회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을 다 쏟죠. 한국은 대형교회가 유난히 많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선거에서 교회의 입김이 훨씬 더 강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역구에 출마하는 국회의원이 동네에 있는 대형교회에 다니지 않기힘들죠. 그래서 목사들도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 P116
기독교뿐만 아닙니다. 불교신문에 실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세 대통령이 불교계에 약속한 것 중 지킨 것과 안 지킨 것을비교한 기사가 있습니다. 누가 가장 많이 불교계와 한 공약을 지켰올까요? 의외로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임기 내내 개신교에 편향된행보를 보여서 논란이 많았던 대통령인데 말입니다. 불교계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불교계에도 결국은 뭔가를 많이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게 문제입니다. 왜 저쪽만 더 잘해주느냐는 끝없는 눈치싸움이 정치와 종교 사이에 벌어집니다. 많은 세금이 그렇게 ‘밀당‘을 하는 와중에 쓰입니다. - P117
지금 저는 기독교가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아닙니다. 부디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라고, 또 마음 상하지 않길 바랍니다. 핵심은 종교와 정치의 유착입니다. 이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종교인이 정치인과 세속의 권력을 나누고, 정치인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종교와 거래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정교유착에 너무 관대합니다. 이걸 당연한 문화의 한 흐름 정도로 생각합니다. - P121
노무현 대통령이 힘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죠? 상고 출신이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엘리트들이 그게 싫었던 거예요. 대학도안 나온 상고 출신이 우리 앞에서 거들먹거려?‘ 이러면서 대놓고, 얕보고 대통령으로 제대로 존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사회문제는 뭐죠? 학력차별이에요. 학벌주의죠. 그런데 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죠? 문재인 대통령을 노무현처럼 잃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그 당시 문제였는지 다시 잘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2002년 12월에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2003년 1월부터 바로 반정부시위를 해요. 누가? 개신교가요. 보수개신교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호국기도회를 하며 압박을 가합니다. - P125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종교인들은 맞서 싸웠습니다.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지명수배자들을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정치활동이지 않느냐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때는 종교의 힘을 정부에 발휘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억압하고 괴롭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옆에 서서 그들을 핍박하는 이들에게 함께 대항하는 것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교유착의 문제는 힘있는 자들끼리 기득권을 계속 나누어 먹으려고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라면 아마 민주시민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있으신 분들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유감스럽게도 종교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적폐입니다. 정치가 종교화되면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구원자‘로 신봉됩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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