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젠더가 사소한가?

 페미니즘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 중 하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 말이 뭐냐면, 남성에게는 퍼스널한 문제가 여성의 입장에서는 폴리티컬하다는 거예요.
여성에게는 공적 영역도, 사적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영역도 모두정치의 장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선거 세 번이 모두 젠더에 의해서 승패가 갈렸어요. 이회창씨는 일가의 병역 비리로 두 번 고배를마셨고, 박근혜씨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당선되었죠. 그런데도, 사회과학자와 매체가 젠더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글을 본 적이 없어요.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곤란한 문제입니다. 사적인 관계, 연애, 이성관계의 정치경제학을 분석하거든요. 남성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죠. "허리 아래는 얘기하지 않는다?" 저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남성들은 모든 것이 허리 아래에 있나요(웃음?) - P24

소수자는 권력에 저항하면 할수록 권력을 얻어요.. 지들의 말을 들으면 안 돼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나는 파이에 관심 없고순결하고 권력욕 없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게 나오면 절대안 돼요. 순결하고 싶은 것도 권력욕이죠. 남자사회는 그런 여자.
정치색이나 의식이 없는 여성을 바라니까. 페미니즘은 협상하려는기지, 가부장제에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자본주의에저항하거나 반대할 수 있어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벗어난 공기 밖은 없어요. 저항하려는 게 아니라 틈새를 확장하고 그들의 언어와 협상해서 목소리를 가시화시키는 거죠. 제 안에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가득해요. 자신만 상록수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자본주의 혹은 현실정치에서의 여당과 야당의 관계, 대개 이런 걸 정치라고 하잖아요. 여성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심각한정치적 문제로 보는 사람은 드물어요.  - P27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관계입니다. 사회를 떠난 인간은 없고,
권력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젠더만 탈정치화하려고 하십니까. 제가 권력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은,
권력의 개념과 관련이 있어요. 권력은 영향력 혹은 힘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권력은 어떤 지위에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파워에 민감해야 합니다. 파워과 사익은 달라요. 따라서
‘큰 정치‘, ‘작은 정치‘가 따로 있지 않아요.
- P28

우리는 낯선 것을 싫어합니다. 주체적인 여성성이 영화 안에등장하는 것은 관객들을 낯설게 합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전지현의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싫어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증오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어색해하고,
실제로 자주 본 모습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만큼 거리를 느낀다는것을 뜻합니다. 그런 것은 즐기기 힘들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편안하게 즐길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에 돈을 잘 지불하지 않습니다.
남자를 두드려 패고 굴복시키면서 세상을 개척해가는 여성 보스의 모습을 난 본 적이 없는데? 영화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군.
자연스럽지가 않아. 관객의 무의식이 그렇게 응답하는 영화는 성공하기 어려워요. 산업은 그런 영화의 제작을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고정적 여성성이 강화되고, 관객의 고정관념도 고착되는 끝없는 되먹임이 일어나죠.
- P69

 2017년 초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은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었습니다. 반기문씨는 UN 사무총장 시절에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소수자 인권옹호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역대 UN 사무총장 중에 성적소수자 인권 향상에 가장 힘썼다고 평가받았고 그래서 미국의 동성애자 인권단체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기문씨가 다른 건 몰라도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강력한발언을 전 세계적으로 여러 번 했기에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이제와서 오리발을 내밀기는 너무 부끄러울 테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뒤집더라고요. 그는 유력한 대신 후보로 떠오르자마자 이렇게말했습니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차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일 뿐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뜻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인권을 지지하는 것보다 차별에 반대한다는 것이 훨씬 더 적극적인 행동이니까요. 문제는 차별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하면서 그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에 있죠. 차별에 반대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차별 반대의 첫번째 걸음이니까요. 동성애자의 인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건 사실 이런 뜻이죠. "나는 저쪽 아이들이랑 안 친해요." 즉 반에서 왕따당하는 급우가 있는데 친하다고 하면 같이 왕따당할까봐 두려워서 별로 안 좋아한다고 허겁지겁 손사래를 치는 형국이죠.  - P102

"기독교의 숙원사업은 이러이러합니다. 이것은 한국의 발전과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면 "잘 새겨듣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밀어주십시오"라는 말을 우아하게 말을 돌려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교연‘에 갑니다. 그다음에는 ‘KNCC‘에 갑니다. 그다음엔조계사를 찾아가고 천주교의 추기경도 만나러 갑니다. 한국의 3대종교의 주요 단체, 교단, 성직자 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죠. 이렇게어느 한쪽의 종교에도 편향되지 않는 균형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것 같지만 사실 편향적입니다. 한국에는 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세 개 종교만 찾아가는 것일까요? 3대 종교가 다수이기때문에?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다수이고소수이고를 떠나 왜 선거 전에 종교단체에 가냐는 것이죠. 2017년2월 14일만 해도 그날은 문재인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당내경선에나가기 위해 예비후보로 등록을 한 날입니다. 바로 그날 찾아간 곳이 ‘한기총‘, ‘한교연 입니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명박 대통령도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던 날, 현충원을 방문한 후 제일 처음으로간 곳이 바로 ‘한기총‘이었습니다. 한기총은 서울시장선거부터 대통령선거 등을 앞두고 유력한 후보들이 찾아가는 곳입니다.  - P109

이 부분은 한신대학교의 강인철 교수가 연구를 많이 해놓으셨습니다. 저는 소개만 하자면, 노태우 당시 대통령 후보는 불교계의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불교계 공약이란 걸 처음 내놓습니다. 이걸시작으로 14대 대통령선거 때는 개신교가 김영삼 장로를 이승만에이어 두번째 장로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적극 나서게 되죠. 결국대통령으로 만듭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충현교회 장로였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남기고 정권을 넘기게 되죠. 보수개신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집권시기에는 철저한 반정부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명박 소망교회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전력을 다 쏟죠. 한국은 대형교회가 유난히 많습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선거에서 교회의 입김이 훨씬 더 강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역구에 출마하는 국회의원이 동네에 있는 대형교회에 다니지 않기힘들죠. 그래서 목사들도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 P116

기독교뿐만 아닙니다. 불교신문에 실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세 대통령이 불교계에 약속한 것 중 지킨 것과 안 지킨 것을비교한 기사가 있습니다. 누가 가장 많이 불교계와 한 공약을 지켰올까요? 의외로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임기 내내 개신교에 편향된행보를 보여서 논란이 많았던 대통령인데 말입니다. 불교계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불교계에도 결국은 뭔가를 많이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게 문제입니다. 왜 저쪽만 더 잘해주느냐는 끝없는 눈치싸움이 정치와 종교 사이에 벌어집니다. 많은 세금이 그렇게 ‘밀당‘을 하는 와중에 쓰입니다.
- P117

지금 저는 기독교가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아닙니다. 부디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라고, 또 마음 상하지 않길 바랍니다. 핵심은 종교와 정치의 유착입니다. 이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종교인이 정치인과 세속의 권력을 나누고, 정치인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종교와 거래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정교유착에 너무 관대합니다. 이걸 당연한 문화의 한 흐름 정도로 생각합니다.
- P121

노무현 대통령이 힘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죠? 상고 출신이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엘리트들이 그게 싫었던 거예요. 대학도안 나온 상고 출신이 우리 앞에서 거들먹거려?‘ 이러면서 대놓고,
얕보고 대통령으로 제대로 존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사회문제는 뭐죠? 학력차별이에요. 학벌주의죠. 그런데 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죠? 문재인 대통령을 노무현처럼 잃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엇이 그 당시 문제였는지 다시 잘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2002년 12월에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2003년 1월부터 바로 반정부시위를 해요.
누가? 개신교가요. 보수개신교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호국기도회를 하며 압박을 가합니다.  - P125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종교인들은 맞서 싸웠습니다.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집회에 참여하고, 지명수배자들을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정치활동이지 않느냐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때는 종교의 힘을 정부에 발휘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억압하고 괴롭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옆에 서서 그들을 핍박하는 이들에게 함께 대항하는 것은 정교분리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다. 정교유착의 문제는 힘있는 자들끼리 기득권을 계속 나누어 먹으려고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라면 아마 민주시민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있으신 분들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유감스럽게도 종교는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적폐입니다. 정치가 종교화되면 정치인은 정치를 하는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구원자‘로 신봉됩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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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클라라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니 다행이다."
"카팔디 씨는 조시 안에 제가 계속 이어 갈 수 없는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에게 계속 찾고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팔디 씨가 틀렸고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결정한 대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네 말이 맞을 거야, 클라라, 내 에이에프를 다시 만났을때 나는 바로 그런 말을 듣고 싶단다. 잘되어서 기쁘다는말, 후회가 없다는 말, 너 저쪽 먼 쪽에 B3들 있는 거 아니?
우리 가게에 있던 아이들은 아니지만, 네가 같이 있고 싶다면 사람들한테 너를 옮겨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거야."
"아뇨, 괜찮습니다. 매니저님, 여전히 친절하세요. 하지만저는 이 자리가 좋아요. 그리고 되돌아보고 순서대로 배열할 기억들이 있어서 괜찮아요."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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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의 경우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죠. 전에 다 이야기했잖아요. 쌀을 가지고 만든 것은 인형이었어요. 애도 인형이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이후로 아주 많은 발전이 있었어요. 이걸 알아야 해요. 새로운 조시는 모조품이 아니에요. 진짜 조시가 될 거예요. 조시가 계속 이어지는 거라고요."
"나더러 그걸 믿으라고요? 당신은 믿어요?"
"물론 믿죠. 진심으로 믿어요. 클라라가 저 안에 들어가서 본 건 아주 잘된 일이에요. 클라라도 우리와 함께해야 하니까. 이미 오래전부터 그랬어야 하죠. 그 차이를 만드는 게클라라니까. 이번에는 지난번하고 아주 절대적으로 다를 겁니다. 믿음을 가져야 해요, 크리시. 지금 와서 마음 약해지지 말고요."
- P304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내가 말했다. "새로운 조시가필요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존의 조시가 건강해질 수도 있어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만들 기회가 필요하긴 합니다만,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시니까 지금 이 말씀을 드려야 할 것같아요. 만약에 그런 슬픈 날이, 조시가 떠나야만 하는 날이 온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팔디씨의 말이 맞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도울 테니 샐 때와는 다를 겁니다. 이제 왜 어머니가 조시를 관찰하고 배우라고 요청했는지 알겠습니다. 그 슬픈 날이 절대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날이 온다면 제가 배운 것을 모두 동원해 저위에 있는 새로운 조시가 이전의 조시와 최대한 비슷해지도록 훈련하겠습니다."
- P305

우리는 감상적인 사람들이죠.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 세대는 여전히 과거의 감정을 지니고 살..
마음 한편에서 그걸 붙들고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 내면에 가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계속 믿고 싶어 해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는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건 없어요.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당신도 알고요.
우리 세대 사람들은 무언가 있다는 생각을 놓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 생각을 버려야 해요, 그리시. 이 안에는 아무것도없어요. 조시 내면에 클라라가 계속 이어 나갈 수 없는 것은아무것도 없어요. 두 번째 조시는 모조품이 아니에요. 정확히 똑같은 존재니까 당신이 지금 조시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그 애를 사랑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사실 믿음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합리적으로 생각하기만 하면 되죠. 나도 그렇게 해야 했고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아주 좋아요.
당신도 그렇게 될 겁니다."
- P308

시내버스가 버려진 과일 상자 옆에 멈춰 섰다. 아버지가 멈춘 버스를 돌아서 가려 하자 뒤에 있던 차가 화난 듯 빵빵지렸다. 그러고 또 다른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우리한테 화를 내는 건 아니고 멀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말씀하신 마음이요, 내가 말했다.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수 있을 겁니다."
- P321

극장 사람들을 유리창을 통해서 보는 대신 직접 보면 더뚜렷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로 오니사람들 모습이 매끈한 판지로 만든 원뿔이나 원통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단순화되어 보였다. 옷에는 접히거나 주름진데가 없고 가로등 아래 얼굴도 마치 등고선처럼 평평한 판을 쌓아 만든 모양으로 보였다.
우리는 왁자한 소리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어느 시점에나는 걸음을 멈추고 조시의 팔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는데조시가 내 뒤에 없었다. 조시가 릭에게 "저기 엄마 있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서 그쪽을 돌아보았지만 조시도 릭도없고 대신 매끈한 이마만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다. 누군가가 내 등을 밀었는데 거친 손길은 아니었다. 그때아버지 목소리가 들렸고 다시 돌아보니 아버지와 헬렌 씨가서 있고 그 옆에 낯선 사람의 팔꿈치가 있었다. 아버지가 하는 말이 들렸다.
- P344

내가 밴스 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지만 헬렌 씨도 릭도눈을 들지 않았다. 나는 헬렌 씨를 보며 헬렌 씨와 밴스 씨가 한때는 서로 열렬했고 사랑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다. 헬렌 씨와 밴스 씨도 지금 조시와 릭이 서로에게 그런것처럼 다정했던 때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또 언젠가는 조시와 릭도 서로에게 저렇게 매정해질 수도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차에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말하던 게 떠올랐고, 아버지가 야적장에서 나지막한 해바로 앞에 서 있는 모습, 아버지의 몸과 긴 그림자가 하나의길쭉한 형체로 이어지고 아버지가 손을 뻗어 쿠팅스 머신분출구의 뚜껑을 돌려 열고 나는 그 옆에 소중한 용액이 든플라스틱 생수병을 들고 초조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헬렌 씨가 물었다. "밴스가 어떻게 하려나? 도와주겠다는 건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말해 줄 수는 있었잖아."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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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교류 모임이 우리 사이에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을까 겁이 났다. 그러나 며칠이 지났어도조시는 나에게 전과 다를 바 없이 밝고 다정하게 대했다. 나는 조시가 교류 모임 이야기를 꺼내기를 기다렸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말했듯이 나에게는 무척 유용한 교훈을 준 일이었다. 나는 조시에게 ‘달라지는 면이 있다는 것, 내가 그것에 적응할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런특성이 조시에게만 있는 게 아님도 알게 되었다. 매장 쇼윈도에 디스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면을 마련해 놓으려 한다는 것,  - P130

교류 모임이 있고 3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에 나는 조시의 자세와 숨소리를 보고 조시가 평소처럼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나는 비상 버튼을 눌렀고 어머니가 바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라이언 박사에게 전화를 했다. 잠시 뒤에 가정부 멜라니아가 다시 라이언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서두르라고 다그치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언 박사가 도착해서 조시를 조심스레 진찰하고는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안심했고 의사가 가고 난 다음에는 한층 활기차게 움직였다.  - P131

"제가 여기까지 본 게 얼마나 주제넘고 무레한 행동인지합니다. 당신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고 제 부탁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아주 넓은 마음이 있으니 한순간만 멈춰서 제 제안을 한번들어 봐 달라고 부탁드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요. 당신을 특별히 행복하게 만들 만한 일. 만약 제가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때는 보답으로 조시에게 특별한 자비를 보여 주실수 있을까요?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에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동안 주위에서 무언가가 뚜렷하게 달라졌다. 헛간 안은 여전히 밀도 높은 붉은빛으로 가득했으나 이제 어떤 부드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사방이 아직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있긴 해도 부분 부분이 해의 마지막 빛줄기 속에서 둥둥 떠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유리 진열대의 아랫부분이 진열대 다리 바퀴를보고 알아보았다. 천천히 떠올라 그 옆 칸 뒤쪽으로 들어가흐릿해지는 것을 보았다.  - P246

헛간 안쪽이 점점 어둑해지고 있었지만 다정한 어둠이었다. 이내 부분 부분 쪼개진 것들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실내공간이 나뉘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가 떠나갔음을 알았고, 그래서 접는 의자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맥베인 씨 헛간뒤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서 나무가 울타리처럼 죽 늘어서있는 곳까지 펼쳐진 풀밭과, 해가 그 뒤로 피곤한 듯 이제흐릿한 빛을 내며 땅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았다. 하늘이밤으로 물들며 별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해가 쉬러 내려가면서 나를 향해 다정하게 미소 짓는 걸 느꼈다.
마음에 고마움과 존경이 솟아서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해의 마지막 빛이 땅 밑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 P247

"나 죽고 싶지 않아, 엄마, 죽기 싫어."
"괜찮아, 괜찮아." 어머니 목소리는 아까 내 목소리만 큼작았다.
"죽기 싫어, 엄마
"알아, 할아, 괜찮아."
나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 문으로 나가 어두운 복도로 갔다. 난간 옆에 서서 천장과 아래쪽 현관에 생긴 기이한 밤의무늬를 보면서 방금 일어난 일의 의미를 머릿속에서 곰곰이되새겨 보았다.
잠시 뒤에 어머니가 조용히 방에서 나와 내 쪽은 쳐다보지 않고 자기 방으로 가는 짧은 복도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조시의 방문 안쪽은 조용했다. 내가 침실로 돌아가 보니이불과 침대가 단정히 정돈되어 있고 조시는 다시 새근새근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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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와 내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는매장 중앙부 잡지 테이블 쪽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창문이 절반 넘게 보였다. 그래서 바깥세상을 볼 수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사무직 노동자, 택시, 조깅하는 사람,
관광객, 거지 아저씨와 개, RPO 빌딩 아랫부분이 보였다. 우리가 좀 적응이 된 다음에는 매니저가 매장 앞쪽 쇼윈도 바로 뒤까지 가도록 허락해 줘서 RPO 빌딩이 얼마나 높은지보았다. 딱 적당한 시각에 그 자리에 가면 해가 우리 빌딩이있는 쪽에서 RPO 빌딩이 있는 쪽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 P11

렉스는 손님들이 나가기 전까지 계속 웃음을 짓고 있었고 손님이 떠난 뒤에도 슬픈 기색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렉스가 했던 농담이 떠올랐고, 문득 해의 자양분을우리가 얼마나 많이 받을 수 있느냐 하는 생각에 렉스가 전부터 골몰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에이에프가 렉스만이 아니었으리라는 걸 안다. 사실 그건 공식적으로는 문제조차 아니었다. 우리 모두 실내 어디에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 사양을갖추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몇 시간있다 보면 피곤한 느낌이 들거나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불안해지기도 했다. 자신에게 고유한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게 알려지면 영영 집을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다.
- P17

내가 쇼윈도에 가고 싶어 한 데는 햇빛이나 선택받을 가능성과 무관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야겠다. 대부분의 에이에프나 로사와 다르게 나는 늘바깥세상을 아주 세세하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셔터가 올라가고, 바깥쪽 인도와 나 사이에 유리 한 장밖에 없어서지금까지는 가장자리나 귀퉁이밖에 못 봤던 수없이 많은 것들을 가까이에서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자, 나는 순간 너무 들떠서 해와 해의 인자함조차 잊을 정도였다.
RPO 빌딩이 벽돌로 뒤덮여 있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흰색이 아니라 연노란색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고(22층이었다.) 창문 아래마다 창턱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 P19

그런데 그때 틈이 더 벌어져서 아이가 실은 에이에프와 같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소년 메이에프였는데 세 걸음 뒤에서 아이를 따라가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소년 에이에프가 우연히 뒤처진 게 아님을 알았다. 아이가 늘 이런 식으로걸으라고, 자기가 앞에 갈 테니 몇 걸흠 뒤에 따라오라고 했고 소년 에이에프는 지시를 받아들인 거였다. 시나가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 소년 에이에프가 사랑받지 못한다.
는 걸 알 텐데도, 나는 소년 에이에프의 걸음걸이에서 고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집을 찾았는데 나의 아이가 나를 원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궁금했다. 이 둘을 보기전에는 에이에프가 자기를 멸시하고 싫어하는 아이와 같이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그때 앞쪽 택시가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늦추고 뒤쪽 택시가 바짝 붙어 서는 바람에 더는 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지 않을까 싶어 계속 지켜보았는데, 횡단보도 위 인파 속에는 없었고 건너편 인도는 택시들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 P33

"클라라는 B2예요.. 4세대에 속하죠. 지금까지 나온 최고1의 버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B3가 아니라서."
"B3 모델의 혁신은 성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 성향의 아이에게는 최고급형 B2가 가장 적합한 짝이라고 느끼는 고객도 많습니다."
"그렇군요.."
"엄마, 나는 클라라가 좋아요. 다른 애 말고요."
"기다려 봐, 조시. 어머니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아티피셜프렌드(Artificial Friend, AF)는 하나하나 다 다르다죠?"
"그렇습니다. 특히 이 수준에 다다르면 개성이 확연합니다."
- P69

조시의 이 말에 교류 모임 동안 여러 상황에서 조시의 손 모양이 떠올랐다. 환영하는 손, 제안하는 손, 긴장한 손, 그리고 조시의 얼굴, 누군가가 왜 B를 고르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조시가 웃으며 말하던 목소리도 떠올랐다. 이제 그럴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그러자 매니저가 한말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창가로 와서 약속을 하고는 다시오지 않거나 심지어는 다시 왔는데 다른 에이에프를 데려간다던 말, 나는 느리게 이동하는 택시 사이 틈으로 본 소년에이에프를 생각했다. RPO 빌딩 쪽 인도에서 아이보다 세걸음 뒤에서 풀이 죽은 모습으로 따라가던 모습, 조시와 나도 그런 식으로 걷게 될지 궁금했다.
"아마 이제 너도 알겠지." 해의 무늬가 드리워 있는데도 릭? HF "이 무리로부터 조시를 구해야 한다는 거."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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