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창비시선 456
이상국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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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이상국

   산에 가 돌을 모아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나를 모르고 나도

   돌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게 돌에다 한 것인지

   내가 나에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탑을 쌓은 나와

   탑을 쌓기 전의 내가 다르듯

   탑이 된 돌들도 이미

   그전의 돌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남은 아니었다

   그곳이 산천이거나 떠도는 허공이거나

   우리가 무엇으로든

   치성을 드리고 적공을 하면

   짐승들도 함부로 하지 않고

   비바람도 어려워하는 것 같았는데

   산에 가 돌로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돌만은 아니었다

   나도 나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와 나 사이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시집 [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사람] 중에서

   지난 5월 25일 심**님께서 돌아가셨다. 위독하셔서 119로 실려간 지 5일 만이었다.

   나이트 근무였다. 출근하자마자 어르신의 용태부터 살폈다. 잠깐의 낮잠 동안 꿈으로 내게 오셨다. 엄마도 그랬다. 꿈으로 내게 오셨다 가셨다. 설마 했는데 호흡이 달랐다. 아침에 퇴근할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지셨다. 그렇게 119가 오기까지 40분쯤, 응급처치를 하느라 분주했던 시간이 지나고 십분쯤 손을 잡아드렸다. 따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셔야 한다고, 손주를 보고 가셔야 한다고 쉼 없이 말을 걸면서...... 점점 호흡은 가빠지고 산소포화도는 낮아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을 잡은 채 계속 말을 걸었고 대답을 하셨다. 함께 있던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기도를 해주셨다. 고맙다 하신다. 그렇게 구급차로 실려가셨다. 겨우 손을 놓았다.

   47년 전 아버지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그날 밤, 병풍 뒤 아버지의 관이 놓인 방에서 자다 깨었다. 동생은 무섭다고 울면서 나가는데 나는 무섭지 않았다. 35년 전 엄마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내 꿈에 오신 시간에 돌아가셨다. 입관 전 겨우 도착해서 작별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엄마 이마를 쓸던 손의 감촉이 아직도 서늘하다.

   그분의 손은 따뜻했다. 따뜻한 손을 맞잡아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어서 어찌나 감사하던지. 떠나시고 나서도 한참이나 손에 감촉이 남아있어서 망연하게 손을 내려다보는데 그제서야 다리가 푹 꺾였다. 그렇게 보내드렸다. 그분은 1933년생이시다. 생애가 어떠했는지 단 한 줄도 알지 못하지만 생의 마지막 두 달쯤의 시간을 함께 해드릴 수 있었다. "돌을 모아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나를 모르고 나도/ 돌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게 돌에다 한 것인지/ 내가 나에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전 이 시를 읽는데 그분을 향한 나의 서원이 꼭 이랬구나 싶었다. "돌도 돌만은 아니었다/ 나도 나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와 나 사이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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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일 K-포엣 시리즈 11
안현미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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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일

                     안현미

 

  그날 이후 누군가는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견디고 있다

  그것은 깊은 일

  오늘의 마지막 커피를 마시는 밤

  아무래도 이번 생은 무책임해야겠다

  오래 방치해두다 어느 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마음처럼

  오래 끌려다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어떤 마음처럼

  아무래도 이번 생은 나부터 죽고 봐야겠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삶을 살아야겠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혼자 밥 먹는, 혼자 우는, 혼자 죽은 사람으로 살다가 죽어야겠다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그것은 깊은 일

                    시집 [깊은 일] 중에서

 

 

 

   경험은 겪은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기억이다. 경험은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의미화하는가, 내가 겪은 일은 어떤 것인가. 경험은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때 비로소 '떠오르고' 인지되고 해석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자기 경험을 바로 볼 수 있는 렌즈가 주어지지 않는다. 남성의 언어가 여성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한다. 자기가 겪은 일을 남 이야기하듯 말한다. 나도 그랬다. 가부장제는 모든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 가해 남성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자기가 저지른 일을 남의 얘기처럼 말하며 피해 여성을 비웃거나 자신과 같은 가해 남성 '동료'를 비난하기도 한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폭력이 훨씬 심각한데도 '덜 맞은' 여성들을 보며 놀라고 걱정한다. 경험, 몸, 인식의 분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정희진] p102, 103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늑대, 여우, 토끼가 한 집에 사는 것이 가능할까? 늑대가 여우를 때리지 않을까?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지 않을까? 먹이 사슬에서 포식자와 피식자가 같이 살 수 있는가? 이처럼 근대 핵가족은 성별과 연령이 교차하는 위계적 제도다. 가정 폭력은 근대 이전에도 빈번한 문화였지만 늑대, 여우, 토끼처럼 서로 덩치 차이가 크고 힘이 다른 이들이 함께 사는 곳에서 폭력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구조다.

  쉼터(shelter house)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다. 쉬는 곳이라기보다는 긴급 피난처다. 미셀 푸코는 군대, 감옥, 병원이 훈육의 공간이라고 했지만 여성의 경험은 다르다. 집에서 전쟁을 치르는 여성에게 감옥은 방공호일 수 있다. 동네마다 쉼터(방공호)와 여성 자경단이 있어야 한다. 왜 쉼터를 찾아 서울까지 와야 하는가. 쉼터는 '자기만의 방'이자 고통을 함께 해석하고 위로하는 공동체다. 그곳은 언어가 다른 세계다. 다른 국민이 사는 네이션(국가)이다.

  내가 여성의전화에서 일하던 시절 어떤 가해 남편이 단체 상근자들을 인신 매매범으로 고발한 적이 있다. 우리가 피해 여성을 가두고 노동을 착취할 뿐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괴담처럼 "새우잡이 통통배에 여성들을 팔아 넘겼다."는 것이다. 상근자들은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구타 남편은 그렇다 치고, 남자의 말을 믿고 사무실에 출동한 경찰은 뭐 하는 사람인가. 그런 영화 같은 시절이 지나가고 쉼터가 만들어진 지 30년이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 공간을 위해 노력한 수많은 여성들을 존경한다. 우리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살아남았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살아남은 이들의 궤적이고, 우리가 살아갈 방향이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그 일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중에서 P106, 107

 

 

 

  햇살이 뜨거웠다. 며칠 만에 만나는 반가운 햇살은 악수를 나누기보다는 손사래를 칠 정도로 오전임에도 이미 달구어질 대로 달궈져서 화들짝 손을 거두고 싶었다. 냉방을 안 틀고 있는 버스는 뜨거웠고 하필이면 저 페이지를 마저 읽던 내 심장은 녹아내렸다. 심장초음파 검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딱 저 페이지에서 책을 덮었다. 더 읽다가는 초음파 검사도 전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차피 결과는 다음 주에 보는 것이지만.

   "정희진의 글쓰기 3"편인 이번 책은 읽으면서 벌써 몇 번째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한 꼭지를 겨우 읽고 밀어두고 다시 한 꼭지를 읽다가 미뤄두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서평인데, 언제나처럼 그 책들을 내가 읽게 될 것 같지 않고 설사 읽는다 한들 서평을 쓸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어떤 책에 대한 서평이라기보다는 책 한 권을 통해 자신의 견해와 철학, 경험과 정신이 뭉퉁그려졌음에도 스스로 검증하고 검증한 혹독한 글쓰기의 산물이어서 읽는 동안 덩달아 경건해지는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 밥벌이로서 서평에 매달리는 작가의 자세가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밥벌이는 냉혹하고도 경건한 삶의 과정이다. 누구도 그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는 가진 게 몸뚱어리밖에 없어서 몸을 굴려 밥을 번다. 작가 정희진은 글을 써서 밥을 번다. 많이 다르지만 결국 같다. 치사하고 더럽지만 참아야 하는 순간도 있고 견뎌야 하는 수모도 있다. 누가 더 괜찮은 삶이냐고 묻는다면 질문자를 뜨아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밥벌이는 신성하다. 어떤 밥벌이가 괜찮은지는 없다. 다만 그 밥벌이의 가치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스스로 검증하고 세상의 잣대로 검증당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 앞에 항상 노출되고, 막무가내로 참고 견뎌야 한다면...... 저런 글 앞에서 나는 무릎이 꺾인다. 분노하지만 눈을 감아 버릴 수밖에 없는 가부장제의 폭력 앞에서 나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겨우, 부끄럽게도.

  언젠가 후배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아마도 결혼을 해서 두들겨맞고 살고 있다고 해도 그 결혼을 지키고 살 사람이라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말지언정 그 약속을 파기할 자신은 없는 사람이어서, 아예 결혼을 포기했다고. 빈말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나 자신이 무서워서 비혼을 선택했다. 물론 반대일 수도 있다. 어차피 확률은 반반, 내 선택이 옳다고는 믿지 않지만 시간을 거슬러 다시 결정을 한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내가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나는 맞고 살기는 싫다. 나는 장난으로라도 툭 친다든가, 애칭으로라도 비하적인 호칭이 너무 싫다. 참고 살기 싫다. 어느 누구도 누군가에게 입으로든 손으로든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 해서는 안 된다. 참으면 더욱 안 된다. 그래서 안현미 시인의 『깊은 일』이다. 이것은 저 심장 깊숙한 심연(深淵)이고 더욱 아득한 먼바다의 深淵이다. 안현미 시인의 신간을 오래 기다렸다. 시인은 쑥과 마늘만 가진 채 동굴에 있었던 모양이다. 다짐과 각오가 안쓰럽고, 이런 세상에 놓인 시인의 무거운 책무가 안타깝다.

 

 

 

   "너도 할 수 있어!"

 

  그 한마디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깐 그건 어떤 슬픔 앞에서도 어떤 절망 앞에서도 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습니다. 누구나 해줄 수 있는 평범하지만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그 한마디 말 때문에 나는 윌트 휘트먼처럼 나 자신을 축하하고 나 자신을 노래하는 시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그날 이후, 누군가는 남은 전 생애로 그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겨우, 살아 있습니다. 어쩌면 저주가 가장 쉬운 용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그 바다를 슬퍼하고 그 바다를 노래하는 시인으로 살다가 죽어야겠습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사랑할 수는 있었지만 사랑을 초과할 수는 없었다고, 깊고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내 새끼가 너무 보고 싶다고 울부짖는 당신, 할 수만 있었다면 대신 죽고 싶었을 당신, 당신은 말합니다. 십자가는 천사의 날개 고난 버전 같다고. 무섭고 쓸쓸하고 한없이 고독한 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인간을, 잃어야 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중단해야 맞는다고 생각하는 밤입니다.

 

   "기록하겠습니다."

 

  어떤 슬픔은 새벽에 출항하고 어떤 아픔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들은 그 바다에 못 박혔습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그 바다에 못 박힌 천사 같은 내 새끼가 너무 보고 싶다고, 잊지 않겠습니다. 잊힌대도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고 기록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생은 그 바다를 슬퍼하고 그 바다를 노래하는 시인으로 죽다가 죽어야겠습니다.

                                    2020년 흰쥐의 해

                                                   안현미

 

 

 

  [깊은 일] 시집에서 시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당신은 남은 생을 그 바다의 기록으로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이 문장들을 읽는데 속이 아렸다. 청양고추를 한꺼번에 백 개를 씹어먹으면 이럴까?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면서 아주 예전에 광화문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히죽대던 우리를 보았을 시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 무례를, 그 무식을 용서하시라. "사랑을, 인간을, 잃어야 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중단해야 맞는다고 생각하는 밤입니다." 어차피 심장은 괜찮을 것이다. 조금 두껍고 약간 커서 일 년이면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온 지 벌써 여섯 해째다. 深淵, 가라앉는 밤이다, 라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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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517
곽효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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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곽효환

   숲길도 물길도 끊어진 백두대간

   둥치마다 진초록 이끼를 두른

   늙은 나무들 아래에서

   더는 갈 수 없는 혹은

   길 이전의 길을 어림한다

   검룡소 황지 뜬봉샘 용소는

   강의 첫,

   길의 첫

   숲의 첫

   너의 첫

   나의 첫은

   어디서 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바람만 무심히 들고 나는

   어둡고 축축한 숲 묵밭에

   달맞이꽃 개망초꽃 어우러져

   꽃그늘 그득한데

   붉은 눈물 피다 만 것들의 첫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시집 [너는] 중에서

    유월의 첫날, 곽효환 시인의 첫을 읽는다. 첫! 이 익숙한 느낌이 뭐지 싶었는데, 허수경 시인의 『농담 한 송이』를 포스팅할 때 제목으로 썼던 첫이다. 시집의 첫 번째 시를 생각한 첫. 그래, 그런 첫도 있었다. 언제나 첫.

    "둥치마다 진초록 이끼를 두른/ 늙은 나무들 아래에서" 나무의 정령이 깃들어 있을 듯한 그런 원시림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여름 한라산에서 열대 우림을 만날 수 있다는 지인의 얘기에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내가 아침에 걸어온 숲길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반쯤 섞여있다. 유월의 숲길은 나무들의 왕성한 경쟁으로 고개를 들어야만 하늘을 볼 수 있다. 나무 사이가 너무 촘촘한 건 아닌가 잠깐 생각했다. 잦은 비 와, 아침 녘에 한차례 뿌리고 간 비 덕택에 나무들의 아랫도리는 젖어 있었다. 햇빛이 차단되는 물기 머금은 숲은 신령스럽다. "더는 갈 수 없는 혹은/ 길 이전의 길을 어림한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지점에서 발원지를 생각한다. 끝이다 싶은 곳에서 첫을. 나아가고 있을 때는 기억하지 않는 첫을. 반환점을 돌아가는 유월의 첫, "달맞이꽃 개망초꽃 어우러져/ 꽃그늘 그득한데/ 붉은 눈물 피다 만 것들의 첫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망연하다. 그 많은 첫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의 첫은 어디서 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유월을 살아봐야 한다. 그렇게 또 한 달이, 한 해가 끝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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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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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

                   김소연

 

   벚나무는 천 개의 눈을 뜨네

   눈동자도 없이

   눈꺼풀도 없이

 

   외투를 세탁소에 맡기러 가는 길과

   교회의 문전성시와

   일요일과

   눈썰매와

 

   벚나무는 곧 버찌를 떨어뜨리겠지

   벌써 나는 침이 고이네

 

   거미처럼 골목에 앉아

   골목에 버려진 의자에 앉아

   출발도 없이

   도착도 없이

 

   벌거벗은 햇볕

 

             시집 [수학자의 아침]중에서

 

 

  '벚나무는 천 개의 눈을 뜨네/ 눈동자도 없이/ 눈꺼풀도 없이' 김소연시인 『그늘』의 첫 연, 저 구절은 울집 냉장고 문짝을 이 년이 지나도록 지키고 있다.

  왜 저 구절일까는 잊었다. 아마도 매일 걷는 길, 벚나무를 지켜보던 중이어서 와닿았으리라 짐작할 뿐.

  이제 그 길을 걸어 출· 퇴근하지 않는다. 아쉬워서, 그리워서 더욱 좋은 길이다. 가끔 걷고 싶을 때나, 다른 길을 걸었는데도 어쩐지 더 걷고 싶어질 때 일부러 찾아가는 길이다. 언제 어느 때 걸어도, 걷기 좋은 길을 집 근처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새삼 확인하고는 한다. 며칠 전 찾았을 때는 언덕엔 노란 금계국과 흰 개망초와 보랏빛 붓꽃들이 초록 초록한 풀들을 배경으로 하늘거리고 있어서 흡사 텔레토비 동산이거나 윈도 바탕화면 같았다. 자연스러운 것들이 어우러져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액자 속 풍경이다. 이 액자의 마법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풍경을 사계절은 물론, 원하는 어느 때나 마음껏 누리고 살 수 있는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 맞다.)

  벚나무 마루길에는 어느새 버찌 까맣게 떨어진 채 밟히고 있었다. 눈동자도 없이, 눈꺼풀도 없이, 천 개의 눈으로 밟히는 버찌를 바라볼 벚나무 생각에 버찌를 밟지 않고 지나려고 잠깐 색시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그 숱한 버찌들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나무도 알고 있으리라, 그래서 천 개의 눈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꽃이 아니었다면, 열매가 아니었다면 무슨 나무인 줄 모르는 나무들 많다. 벚나무를 모를 리 없고, 느티나무 모를 리 없지만 때죽나무, 쥐똥나무, 이팝나무, 층층나무쯤 되면 자신 없다. 올해 처음 알았다. 꽃만큼이나 예쁜 잎을 가진 라일락을. 새롭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게 꽃에 취하고 혹하는 사이가 지나고 나면 과실이 아닌 대부분의 나무들은 잊힌다. 감탄하며 보았던 문화유산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잊듯이. "골목에 버려진 의자에 앉아/ 출발도 없이/ 도착도 없이" 잊어버리고 다시 만나면 처음 보는 것처럼 감탄을 연발하리라. 나무는 내가 그러시거나 마시거나 제 할 일을 부지런히 할 테지.

  밤새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무섭게 내렸다. 거센 비를 견딘 나뭇잎들, 여린 꽃들이 아침이 되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심한 풍경으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저 천연덕스러움을 닮고 싶은 아침이다. 쥐똥나무 향기, 더욱 짙어졌다.

  내 생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천이십일년 오월이 가버린다.

  고마웠다. 쉰 일곱 번째의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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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발음하기
이임숙 지음 / 창조문예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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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이임숙

 

 

   푸르고 슬픈 기억이여 너를 놓아 줄 수가 없구나

   한때의 척박한 사랑을 옹졸한 고뇌를 누렇게 색이 바랜

   치사한 이율배반을 옆구리에 낀 채 잘도 살아왔구나

 

   빗살무늬토기처럼 흠집 많은 과거를 들추었더니

   오글거리는 열매들 말라서 비틀어진 열매들

   찰랑거린다 눈 밝은 세상을 차분차분 걸어오느라

   숨 한 번 제대로 쉰 적 없어도 불꽃으로 나부댈

   새싹 고스란 고스란 돋는다 이미 그렇게

 

                     시집[를 발음하기] 중에서

 

 

   작년, 작년, 작년 같은 작년들을 쉼 없이 흘려보낸 지금에서야 이 시집을 마주한 일주일이었다.

   지나온 세월의 너비가 처음 보던 남한강처럼 넓고 유장하다. 애써 감추려는 시인을 닮았다. 2006년, 이임숙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렇게 오른손 손가락만큼이나 뵈었을까, 함에도 "눈 밝은 세상을 차분차분 걸어"온 그 걸음 온전히 알 듯한 세월이었다. 시인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내게는 쭈욱 "새싹 고스란 고스란 돋는"분이셨다. 아셨으면 좋겠다.

 

 

 

   '를' 발음하기*

 

   '를'은 '을'과 자매지간이지만 입천장을 떨게 한단다

   그렇지만 조바심이 일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야

   그는 받침 없는 곳에서 바닥에 닿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지

 

  '을'이 받침 있는 섬돌을 믿고

   방자하게 입을 떼다가

   황급히 혀를 말아 쥐고 입 천장을 짚지 않았다면

   아무도 누구의 주인 행세를 할 수 없었을 텐데

   받침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차이가 나지

 

   가슴 울리는 떨림이 있었는가

   처음부터 그 떨림 다 보고 있었는가

   귀가 멍멍해지도록 아득한 그 소리 듣고 있었는가

   영원을 믿고 믿지 않고의 차이는

  '을'과 '를'의 발음처럼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데서

   시작된 것이겠지

 

   홀로 된 네 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나는 벌써부터

   가늘게 가늘게 버들피리 불던 그날 그 소리가

   무엇을 어떻게 떨치고 나온 소리였는가를

   가만히 생각해 보는 거야

 

   떨림이 없다면

   아무도 누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작이 아니라면, 가슴이 없었다면

 

    *'를' 발음과 '을' 발음이 정확하게 되지 않은 아이가 있다.

    발음되지 않은 것이 그 발음뿐일까만 듣지 못하고 내는 소리들은 어눌하고 갑갑했다. 얇고 미세한 울림으로만 감지되는 소리들, 태초의 빛이 그러했을 것이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는 읽노라면 매번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그래서 애써 모른 척하고 싶어지는.

   이 세월에 담긴 시인의 마음을, 시선을 짐작조차도 할 수 없는데 이렇게 담담하게 풀어놓을 수 있다니 무릎이 꺾인다. 이 시가 아니었다면 '그까짓 을'이 '고까짓 를'도 이토록 중요하다는 걸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꼭 '조사'에만 해당할까만은 '를'을 앞세운 그 먹먹하고도 결기 세운 마음을 생각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겨우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 한 명의 독자로서.

 

   내가 안다고 거들먹거리는 얄팍한 것들은 티끌보다 작고 가벼우며 그때 까불다 지은 죄들은 들보보다 무겁다. 하여'복음'은 나 같은 사람에게 맞춤하다. 내게는 시인의 사는 모습 그대로가, 마음 길이 '福音'이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겠지만/ 내 마음대로도 어떻게 좀 안 될까요?" 가끔은 만사 제치고 떼쓰고 싶어진다. 시인도 알 것이다.

   훌쩍 세월이 흐른 다음에도, 우리는 여전할 것이다. 사람, 안 변한다. 혹시 모른다. 왼손 손가락만큼 만나서 숲길을 걷고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작은 꽃들에게 눈 맞춤할지도. 또 혹시 모른다. 찻잔을 앞에 두고 말없이 창밖의 풍경을 같이 바라볼지도.

   그래도 지금, 내가 항상 감사해 한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

 

 

 

  복음

 

   위층 사람과 마트 가는 길,

   할아버지 한 분이 찬송가 부르시네

   예수 천당! 붉은 글씨가 한눈에 들어오기에

   교회라면 질색 팔색인 위층 사람에게

   저 할아버지 믿는 구석은 하나님인데

   죽고 나면 믿을 구석 있느냐고 물어보았네

 

   있구 말구요, 보험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그거면 우리 애들 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예요

 

   애들 말고 당신, 했더니

   나야 어찌 되든 애들만 잘 살면 되지

   죽고 난 다음인데 어쩌겠어요

 

   어딘가로 푹 빠져들어가는 이 느낌

   나는 진짜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죽고 난 다음인데 어쩌겠어요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겠지만

   내 마음대로도 어떻게 좀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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