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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윤정의 우리 숲 산책
차윤정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전문가란 그 분야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맞다면 이 책은 숲 전문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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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신갈나무의 한살이에 그 삶의 치열함 앞에 인간인 나, 절로 숙연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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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이유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궁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인 구달과 그 친구들, 희망의 이유를 삶으로 증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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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1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인원, 침팬지와 인간의 유전자 차이는 1%..
그녀를 보며 사람의 "선함"에 희망을 갖지요.


산딸나무 2007-10-1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몇 퍼센트일까요?
문득 그게 궁금해집니다.
 
음식혁명
존 로빈스 지음, 안의정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동창 녀석 하나가 요리사가 되었다. 요리사가 되고 나서 채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내게 이 책을 권했다. '학교 다닐 때, 가난한 자취생들이 집에서 돈보내 오는날, 모처럼 고기 구우러 가자고 하면 넌 늘 가서 상추랑 오이만 먹고왔잖아. 이 책을 보니까 네 생각이 나더라구. 야, 그때 '고기 안 먹으면 몸이 약해지잖아.'면서 툴툴댔던거 사과할께.' 그 녀석의 기억처럼 주위 사람들은 나를 채식주의자로 기억한다. 나 역시 채식을 고집하는 바람에-더 정확하게는 육식을 거부하는 바람에- 생긴 에피소드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추억의 갈피속에 담고 있다.

초등학교 때였던가? 식구들 모두 소고기국 끓여 먹던 날, 어머니께선 내 몫으로 시래기국을 따로이 끓이셨다. 그 수고로움에도 불구사고 소고기국 퍼낸 국자로 내 국을 펐다고 안 먹겠다고 땡깡을 부려서 그 국자로 머리를 얻어 맞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릴 땐 특별한 신념이나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고기가 먹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채소나 과일을 보면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고기는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난 늘 건강했고, 내 식습관을 단 한번도 회의해 보지 않았다. 오히려, 편하게 외식을 할 수 없으니까 스스로 요리하는 걸 즐기게 되어서 생활하는데 좋았고, 성장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는 진보주의자가 되는게 전혀 꺼리낌이 없어 정신적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 인간들의 신념을 머리는 배신할 수 없어도, 그들의 몸은 종종 배신한다.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남성들이 그렇듯이.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내가 가진 사상을 먼저 살아준 내 몸이 있기에 20대의 사상적 방황을 훨씬 더 수월하게 치를 수 있었다.

이 책은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삶을 다시 한번 검증해준 책이었다. 저자의 풍부한 자료제시를 통해서 타인에게 내 심증을 물증화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개인적이냐 사회적이냐를 불문하고 자각은 치유의 첫단계이다.'는 추천사의 한 구절은 내가 지금까지 몸으로 자각해온 나의 식습관이 결국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내 눈을 깨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채식을 단순히 건강을 지키기 위한 행위 쯤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채식은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행위이자,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더불어서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길이다. 또한 육식의 길이 인간이 쾌락과 욕망과, 과잉으로 자신의 어머니인 자연을 학대해 온 길이란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왜 인간인가? 바로 의지로 본성과 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라 부르지 않는가.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너무 멀리 와 버린 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동물들을 '돈'과 '먹이'로 대체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먹는 푸성귀조차도 자본화 해버렸다. 그 어떤 푸성귀들에서도 이젠 쌉쌀하면서 고소하던 옛맛을 찾을 수 없다. 밍밍하고 들큰한 맛에 이젠 질려버렸다. 어머니가 가꾸시던 텃밭에서 여름내내 익어가던 오이, 그 향긋한 맛을 이젠 다시 맛볼 수 없는 걸까? 진정 우리들의 유토피아는 정말 에레혼-어디에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이 책에서 나는 채식주의자인 나의 희망과 채식주의자인 나를 경멸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희망을 읽었다. 당신이 그 어떤 목적으로 이 책을 접하든, 이 책을 통해 당신의 삶이 달라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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