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나라 교육제도란 것이 얼마나 변하지 않는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사지선다’ 시험이 ‘오지선다’로 발전(?)하고, 수우미양가 평가가 사라졌다는 정도가 그나마 달라진 것이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할까. 경쟁사회의 총알받이들을 키워내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이 땅의 교육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학교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운 놀이들이 교육이란 이름 아래에서 비명횡사해 가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빼앗긴 가장 큰 즐거움이 바로 ‘글쓰기의 즐거움’이었다. 글씨를 배우는 그날부터 날마다 반복되는 일기 쓰기의 강요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지겹고 괴로운 것이지 뼈저리게 배우게 되었다. 다행히 중학교 부터는 일기 쓰기 따위 숙제가 없어진 까닭에 내 속에 숨어있던 글쓰기의 즐거움은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확신하건대, 내가 지금 이런 글이나마 끄적거릴 수 있는 것도 제도 교육이 중학시절 부터 더 이상 내 글쓰기에 참견하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다.

 

  근데 요즘 아이들에게 독서수행평가라는 시험을 치르게 해서 성적을 낸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예전 그 괴로운 기억들을 다시 끄집어내게 되었다. 지정된 책들을 읽고 독서시험이란 것을 본단다. 처음엔 독서 시험이라 하길래, 무슨 독후감 같은 것인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아니라 주인공부터 시작해서 줄거리, 배경 따위를 묻는 오지선다 시험이었다. 아이들은 그 시험에 대비해 책을 읽고 외웠다. 정말 충격이었다. 아이들에게서 책 읽는 즐거움조차 빼앗아 버리는 우리 교육에 실망을 넘어서서 분노마저 느낀다.

 

  책이 귀하던 시절, 책읽기는 내 어린 시절을 버텨주던 즐거움 가운데 최상의 것이었다. 근데 이젠 그 자리를 컴퓨터 게임과 텔레비전이 자리하고 있으니 책읽기의 즐거움 따위는 빼앗아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고 감동 받지 않는다. 아니, 감동 받을 필요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동을 재는 시험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시험에 나와서 결과를 성적표로 받아볼 수 없는 감동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감동이 필요 없는 책읽기라……. 참,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본다는 어른들의 푸념이 내 입에서도 절로 흘러 나온다.

 

  책 읽기의 목적이 감동인데, 감동이 없는 책읽기를 가능하게 만들다니, 교육의 힘이 위대하긴 위대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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