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모양 이파리가 아래로 늘어지면서 자라는 러브체인이란 식물이 있다.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는 식물이라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나도 올 여름에 화분을 하나 구해서 키워봤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온 다음부터 영 시원찮은 모양새가 자꾸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극정성으로 아침마다 물을 주고 볕을 쏘였다. 그런데 들인 공도 모르고 이 녀석들이 기어이 죽고 말았다. 잎사귀가 녹아 내리면서 뚝뚝 끊어져 버렸다. 이 화초가 의외로 키우기가 힘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키워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 친구 집에 집들이를 갔다가 풍성하게 늘어져 잘 자란 러브체인을 보게 되었다. 애 둘을 키우면서 어떻게 저리 손이 많이 가는 화초를 다 키울까 싶어서 대단하다고 한 마디 했더니, 친구가 웃으며 

  “저건 잊어버리고 내 버려 둬야 잘 커. 물도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주고. 괜히 자주 물 주면 다 녹아 버리지.”

하는 게 아닌가.

 

  화초를 키우면서 물만 자주 주면 그게 잘 키우는 거라고 생각해온 나로서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는 기분이었다. 서울내기, 비만 오면 농사 풍년이라고 한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었다. 사랑 받는 식물들은 괴롭기 그지 없는데, 나 혼자서 정성을 들인다고 그 부지런을 떨었으니…….

 

   헌데, 주위에 내가 화초 키우듯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많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학원이란 학원은 다 보내 줘. 게다가 바쁘다고 차로 일일이 다 태워다 줘. 친구도 좋은 애들로만 찾아 줘. 책도 명작으로만 골라 사다 줘.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이렇게 엇나가는 거야?”

 

  이런 부모들의 푸념을 듣노라면 죽어버린 내 러브체인이 생각난다. 과한 집착과 자기식의 사랑은 아이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모자라서 엇나가는게 아니라, 바로 과하기 때문에 엇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잊어버리고, 내버려두는 지혜가 우리 아이들을 스스로 자라게끔 만든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왜 잊어버릴까?

 

  겉으로 보기에 과한 사랑은 사실은 사랑의 본질을 왜곡한다. 사랑은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득하게 두고 봐 주기엔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게 아닐까? 그 부족한 믿음을 감추기 위해서 더 과장된 사랑 과시를 내보이는 게 아닐까?

 

  끊어진 러브체인이야 새로 사면 된다지만, 부모의 과욕으로 끊어진 아이들의 희망은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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